서평: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서평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한길사

정철원(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홍콩영화, 특히 제목이 4자의 한자성어(?)로 되어 있는 영화는 보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다. 천편일률적인 4자의 한자말의 어감으로는 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잘 와닿지도 않고 그냥 그저 그런 무술액션영화 중 하나일 꺼라고 지레짐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만의 근현대사를 조명한 후샤오시엔 감독의 역작 「비정성시」를 제목만 보고는 암흑가의 비정함을 다룬 '흥콩느와르'계통의 영화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을 처음 접했을 때 나도 그와 비슷한 류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임진왜란까지 올라가진 않더라도 데스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만화작가나, 기껏해야 가와바타 야스나리,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의 이름으로밖에 연상되지 않은 일본어 이름이, 거의 7백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그것도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라는 '거창한' 제목 의 책을 쓴 정치학자의 이름일 수 있다는 게 아무래도 터무니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꼭 읽어보라'는 한 선배의 충고가 없었다면, 그리고 왠지 모르게 생기는 일본에 대한 최근의 내 관심이 없었다면, 영어나 독어, 불어 일색인 내 '정치학자 인명사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마루야마 마사오를, 아마도 선뜻 들여다 볼 생각을 못했을 터이다.

일본정치학자가 쓴 책 치고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라는 제목이 좀 거창하지 않느냐는 내 불만은, 말하자면 일본의 정치상황이라는게 보수자민당의 장기집권(90년대 들어 약간의 변화가 있긴 했지만)과 파벌정치라는 '전근대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런 낮은 수준의 정치상황에서 '고급스런(?)'정치학이 나올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일본의 정치연구'같은 '비교정치론'수준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고, 좀더 들어가면 '보편적인' 정치학은 아무래도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구미학자들에나 어울리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의혹'은 이 책의 일부 논문이 묶인 영문판의 제목이 'Thought and Behavior in Modern Japanese Politics'라는, '일본'이라는 한정(限定)어를 불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서문에서 보고는 '그것 보라'는 확신(?)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 가면서, 넘어가는 책장의 두께만큼이나 그 확신은 나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서구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성으로 바뀌어 갔다.

각종 저널에 실리기도 했던 짤막한 20개의 논문들은 1부 현대 일본정치의 정신상황 2부 이데올로기의 정치학 3부 '정치적인 것'과 그 한계 라는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이등병으로 전쟁을 직접 체험한 마루야마가 "전후에 사회과학분야를 연구하려는 학자의 출발점으로서, 또 동시에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실천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연구한 논문들이 들어있다. 제 2부는, 제국주의 간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야흐로 미소를 위시한 좌,우 양진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각 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던 논쟁점들에 대해 쓴 글들이 모여있다. 한편에서는 스탈린주의 비판을 계기로, '20세기 들어 인류가 시작한 위대한 실험-'현존'사회주의'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그 성과와 오류에 대한 각각의 주장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고, 그 대척점에 있던 다른 한 편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들을 억압하던 또 하나의 파시즘, 매카시즘의 광풍과 그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들이 있었다. 이제 파시즘의 미망에서 막 벗어나자마자, 공히 양진영의 경계선 언저리에 있던 일본에서도 그와 같은 논쟁들이 더 치열하고, 더 천박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마루야마는 이에 대해 적극 '개입'하되, '휘말려들지 않'으면서, 논쟁의 중심을 잡고자 했다. 3부에서는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배와 복종'같은 보편적인 정치학적 주제들에 대한 그의 묵직한 통찰력이 담겨있는 글들이 모여있다. 특히 여기에서는 매스미디어의 광범위한 보급과 더불어서 제기되는 현대정치의 '미디어 정치'의 문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내면화 문제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에 어떤 나라에서 있었던 옛날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 자신이 전쟁때 이등병으로 징집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다시 학교에 복귀한 정치학자로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무엇보다도 먼저 대결해야 했던 문제는 일본 내셔널리즘을 해부하는 일이었다. 일본의 패전은 단순히 구(舊)정치체제의 붕괴와, 경제적 폐허만을 남긴 게 아니었다. 지식인들을 비롯해 '황도(皇道)'의 실현을 위해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며 전심전력하였던 대다수 일본 국민들에게, '패전'은 기존의 가치체계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가져왔다. 패전의 다음해인 1946년, 약관 33살의 젊은 교수 마루야마는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를 필두로 '일본 파시즘의 사상과 운동(1947년)', '군국지배자의 정신 형태(1949년)'과 같은 일련의 논문들을 통해서, '총체적 혼돈'의 상황에 있던 일본국민과 지식인들에게, 그리고 '불가사의한 정신병자'로 전범국 일본을 바라보던 서구인들에게 '일본파시즘'을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제공해 주었다. 일본내 속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 정치적 도식화로서만 일본 파시즘을 분석했던 것에 비해 마루야마는, 일본전통에 대한 이해 속에서, 서양의 정치철학적 범주들을 '일본적' 혹은 '동양적'인 것으로 소화하여 일본파시즘의 특성을 분석한다.

먼저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에서 마루야마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은 언제나 기존의 현실 자체가 어떠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의식을 싸워서 얻는 가운데 있는 것"이라는 라살레의 말을 인용하면서, 뼈아픈 과거를 들추어내는 이 작업이 어떤 가학적 취미가 아니라, 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는 가운데 정신의 혁명을 이루려는 한 시도임을 밝힌다. 마루야마가 볼 때 연합국측에 의해 막연하게 '초(超, ultra)국가주의'라고 불리고 있는 일본내셔널리즘의 특성은 유럽의 그것과 비교할 봄으로써 드러날 수 있다. 우선 그는, 유럽근대국가에는 카를 슈미트가 지적하듯 "국가가 진리라든지 도덕과 같은 내용적 가치에 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그러한 가치의 선택과 판단은 교회와 같은 다른 사회적 집단내지 개인의 양심에 맡기고 국가주권의 기초를 그러한 내용적 가치로부터 사상(捨象)시킨 순수하게 형식적인 법 기구 위에 두는" '중성국가적 특징'이 있었음에 비해, 일본의 초국가주의는 국가가 진선미(眞善美)의 내용적 가치를 점유하려고 하는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홉스의 절대주의가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는 것이라면 일본의 주권자는 무(無)로부터의 결단자가 아니라 주권자 자신 속에 절대적 가치가 체현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활동은 국가를 넘어서 있는 도의적 규준에 따르지 않는" 것이고, 이같은 원리로서 일본의 관료들이나 군인들은, 절대적 가치체인 천황에 더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개개인의 자유로운 주체의식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행동의 제약을 자신의 양심속에 지니지 않고 보다 상급자(궁극적 가치에 가까운 사람)의 존재에 의해 규정되"게 만드는 원리가 지식인을 비롯한 전 일본인들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었고, 일본을 '브레이크 없는 열차'로 만든 셈이다. 한편, 엄격한 신분제를 특징으로 하는 봉건시대의 유산도 이같은 심리구조에 영향을 주었다고 마루야마는 지적한다. 절대적인 상명하복의 원리가 몸에 배인 일본인들은 윗사람에게서 받은 억압감을 아랫사람에게 푸는 것으로서 '정서적인 균형'을 유지하는데, 이러한 '억압의 이양'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서, 국내에서 온갖 억압을 받는 비루한 일본의 인민들이 밖으로 나와서는 '皇軍'의 일원으로서 무한한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감당한 억압을 '당당하게'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식민지 민중에게 요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을 통해 식민지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들도 '사악한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를 넘어 '사악함'의 원인, 그 정신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군국지배자의 정신형태'에서는 연합군측에 의해서 진행된 도꾜 전범재판의 기록을 토대로 보다 심층적으로 일본파시즘을 지탱하였던 일본인의 심리 구조를 파악하려고 한다. 특히 객관적인 여건으로 볼 때 도저히 무리였던 태평양전쟁을 개시한 일본 군국지배자들의 사고방식은, 많은 서구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고, 일본인들로서도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진 '패전'이라는 사실만이 명백할 뿐 스스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마루야마는 전범들의 자기변호를 분석하다가 두가지 논리적 광맥을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는 '기정 사실에 대한 굴복'이며 다른 하나는 '권한으로의 도피'이다. "제 개인적 의견은 반대였습니다만 모든 사물에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라는 도고의 말 속에서 마루야마는 "현실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것 혹은 만들어져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져버린 것,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어디선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의 '수동적 현실관'을 갈파한다. 또 여기에다가 어떤 때는 정치적으로 행동하다가도 불리한 상황이 되면, 자신의 '한정된' 책임과 권한뒤도 숨어버리는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가 더해져서, 법정에 선 '전범자'들 중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던 나찌스 지도자들과는 달리,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어쩔 수 없었음'만 되풀이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패전과 더불어 냉전의 소용돌이에 다시 휘말리면서 심상찮게 반동의 기운을 보이던 1949년 이 글을 썼던 마루야마는 글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에 어떤 나라에서 있었던 옛날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모두가 옳다고 해도 과연 그런가 보아야 하며 모두가 그르다고 해도 과연 그런가 보아야 한다 (子曰 衆好之 必察焉 衆惡之 必察焉 「논어 위령공 편」)"

마루야마가 대결하려 했던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는, 과거의 보수파시즘 세력들에 의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매카시즘적인 반동화, 보수화 경향이었다. 맥아더를 위시한 초기 미점령당국의 개혁정책은 미소간의 냉전체제가 심화되면서 다시 보수 반동적인, 이른바 역코스(reverse course)정책으로 변질되었고, 과거의 '전범자'들이 속속 복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속에서 경직된 좌익세력들의 과격한 구호는 이들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55년 성립된 자민당 정권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지배층이 "1)국민의 일상적 정치활동의 봉쇄 내지 선거법의 인위적 개정에 의한 의회정치의 형식화, 2)'민주적 자유'의 개념의 재정의를 통한 획일화"라는 방식을 통해 반동화 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즉 한편에서 '국민의 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투표일에 가서 투표하는 권리로 '제한하고' 그것 이외의 정치행동은 의회정치 하에서는 있어서는 안되는 '폭력''이라는 식으로 국민들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봉쇄해 나가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다양성의 존중, 다양성을 통한 통일을 전제로 하여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이름하에 그 적을 배제해가는 것을 제 1의 주요한 과제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라는 말도 '정통화-orthodox라는 말 자체가 자유주의의 본령과 배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시켜 자유의 내용은 '자유기업'의 의미만 남게 되고 언론, 사상의 자유는 그들이 인정한 정통한 것이 아니라면 배제당하는 매커니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같은 보수반동화 경향에 대한 견제로서 마루야마는, 아직도 그 잔영을 떨쳐버리지 못한 파시즘에 대해 보다 精緻한 이론화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당시에 지구의 반쪽에서 맹렬히 진행중이던 인간이성의 거대한 실험,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작업을 수행하였다. 마루야마는 어떤 '이념 진영'에 손쉽게 가담하기보다, 현재 그가 발딛고 있는 일본이라는 사회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주장하는 '정치적 실용주의자'이고 싶었고, 현존(했던)사회주의가, 비록 많은 내부적 모순과 잘못된 경향을 보이고 있음에도, 적어도 자본주의 진영의 퇴폐성을 견제할 수 있는 어떤 '내적인 미덕'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해롤드 래스키(Harold Laski)를 그 동반자로 삼았다.

일본 사상계에서 맑시즘에서의 전향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에 래스키를 처음 접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골수 서구민주주의자에서 급격히 맑시즘쪽으로 접근시킨 래스키가 가장 자신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정치학자라고 회고한다. 노동당의 이론적 기수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래스키는 서구가 자신의 내부로부터 파시즘을 성숙시켰던 것에 충격을 받아, 사회주의 진영으로 급격히 옮겨간 학자였다. 그러나, 서구민주주의의 전통에 대한 그간의 애착이 너무도 깊었던 나머지, 러시아 혁명의 세계사적인 의의를 편견없이 인정하면서도 그와 같은 유형의 혁명이 치러야 했던 희생의 거대함(이를 테면 그것의 전체주의적 경향)에도 비판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았다고 마루야마는 설명한다. 19세기 말부터 서구자본주의 문명은 이미 그 역사적 활력을 잃고 타락하여, 인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혁명적 기운이 일고 있었는데, 파시즘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재적으로 야기된 혁명적 상황에 대한 지배계급의 조직화된 반동적 움직임'이었다면, 사회주의 운동에는 그 체제적 위기를 타파할 현실적인 힘과 더불어, 마치 쇠락한 로마제국 말기의 기독교가 담지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새시대를 열어갈 고귀한 '인간정신'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마루야마는 사회주의'운동'에 들어있는 현실개혁의 고귀한 인간정신에 커다란 '친밀감'을 느꼈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서도 그들의 이론을 같이 고민하고, 비판하고, 조언했던 '동반자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래스키와 마찬가지로 마루야마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 사회주의에서 보이는 위험한 경향에 대해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무언가 완성된 것,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레닌의 말마따나 '혁명적 과업'수행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민주적 토론이, 그야말로 '운동과정'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국가권력을 잡자마자, 정통화되고 국가의 공인된 신조로서 '불변의 진리'화 되는 경향은, 마루야마가 볼 때, 서방세계의 적대적 '반혁명 기도'를 염두에 두더라도, 결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위험한 것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언뜻 '감상적'으로 보이는 이같은 태도는, '정통'자유주의자와 '정통'공산주의자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극단적인 흑백논리 아니면 긴박한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현학적 논의들만 난무하는 속에서, 진정으로 현실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자극이 되었던 것이다.

왜 학자는 오직 다른 학자들에게만 말하는가

정치철학, 정치사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마루야마의 글은 무척 쉽게 읽힌다. 내게 쉽게 읽힐 정도면, 많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믿어도 좋다. 그의 글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한 끝에 나는 두 가지의 결론을 얻었다. 하나는 그가 직접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정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학자뿐만 아니라 비직업학자들이 개입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있다. 책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찰리채플린의 「독재자」, 「로베레 장군」같은 영화들이나 사르트르를 위시한 수많은 문학작품들, 대화체로 서술되어 있는 '육체문학에서 육체정치까지', 편지글체의 '어느 자유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연설문체의 '현대사회에서의 태도결정' 등등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그의 폭넓은 인문적 교양만이 아니라, 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정치학적 문제를 놓고 말을 걸고 싶어하는 그의 의도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대중적인 글쓰기'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마루야마는 헤롤드 래스키 입을 빌어 말한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20여년 동안 일어났던 서구 지식인 사회의 퇴폐성을 지적하면서 래스키는, 그 시기의 지식인들은 "대중이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말을 걸"었으며,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어 그 시대 최고의 사회적 투쟁 바깥에 초연해 있으면서 오히려 거꾸로 그런 고고함에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바이런이나 디킨스, 발자크 같은 19세기의 걸출한 지식인은 모두 대중의 생활의 절실한 과제를 다루었으며, 같은 시대 사람들의 사상과 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바로 데모크라사의 발흥기에서의 "지식인과 대중의 아름다운 결합"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글이 쉽게 읽히는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와 관련되어 그가 다름아닌 '일본'의 대중들에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의 역사적, 사회적 경험에서 비롯한 사회과학이, '주류'를 넘어 '보편'성의 이름으로 전세계 지식인들을 호령하고 있을 때, 마루야마는 그 자신도 물론 그 세례속에서 학문을 시작한 '주변부의 학자'로서 출발하였지만, 자신이 뿌리박고 있는 사회 일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전문적이고 당당하게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더 나아가 바로 그것으로써 '보편적'인 정치학 수준으로 끌어올린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조금만 그의 글을 읽어 보면 그가 쓰는 어휘나 문장들은 논리적이고 정제되어 있지만 어려운 전문용어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일본에서의) '상식'적인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련해간다는 아래로부터의 방법과 수입된 용어에 대해서는 구체적 분석에서의 실효성을 언제나 문제삼는 위로부터의 방법'을 몸소 실천한, '일본'의 정치학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 정치학 개론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연상되는 경험을 했다. 같은 유교문화권에서 서구의 도전을 받은 나라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아니면 청산하지 못한 식민지 유산의 굴레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논문 둘은 '어느 자유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이었다. 현실에 천착하지 못한 채 '수입된' 이론들간의, 살벌하지만 공허한 논쟁경향을 비판한 '어느 자유...'는 마치 우리나라 80년대의 치열했던 논쟁지형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고(1950년에 쓰여진 글이다) '과학으로의 정치학' 역시 나도 모르게 종종 주어를 바꿔 읽게 만들었던 글이었다. 이 중에서도 후자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1946년, 30대의 소장학자로서 마루야마는 '회고와 전망'이라는 부제하에 전후 일본정치학계에 대한 느낌을 피력한다. 그는 먼저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의 정치의 압도적인 지배력과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의 심각할 정도의 발육불량--그 대비가 오늘날만큼 날카롭게 세상사람들의 눈에 드러난 시대는 없었다"고 진단하며. "자체의 기반과 환경으로부터 문제를 끄집어내는 대신에 유럽 학계에서의 그때그때의 주제나 방법을 끊임없이 뒤쫓아가고 있다는 것이 일본 학계 일반의 공통된 경향"이라고 질타한다. 정치학이란 기본적으로 시민적 자유를 가진 사회가 제공하는 '풍부한 소재'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플라톤과 마키아벨리를 거쳐 근, 현대의 구미 정치학은 모두 그런 지반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지만, 메이지 이후 일본은 "국권의 유일한 정통주체로서의 천황 및 실질적인 정치권력이 모든 과학적 분석의 저 너머"에 있는 상황이었고, "정치권력의 원천을 묻는다는 것은 터부 중의 터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치학의 연구대상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다소라도 양심적인 정치학자들은 오로지 방법론-그것도 다분히 방법론을 위한 방법론-적 논의로 시종일관하거나 일본의 정치현실 유럽의 정치학 교과서를 흉내내어 추상적인 해명을 가하는 일에 만족"하였다고 그는 계속 지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의 현실정치를 이해하는 데는 백권의 정치학 개론을 읽기보다도 정치적 지배층 내부의 인적 연계망에 정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또 사실이 그러했고, 넘쳐흐르는 정치학적 교양이 몸에 밴 대학교수보다도 신문기자의 예측이 흔히 적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마루야마는 '일본정치학의 불임성(不姙性)'이라고 정리하고는 앞으로의 정치학은 무엇보다도 '현실과학'일 것을 요청한다. 어떤 연구라도 "궁극으로는 우리나라의, 우리의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지 않게 되면 결국 한가한 사람들의 도락(道樂)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학자는 연구에 있어 자신의 판단이 항상 어떤 가치지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특정정파의 팜플렛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진리가치'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하는,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점이다. 마루야마는 "정치학은 순수하게 '있는 것 그대로'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가치판단을 포함한, '있어야 할 것'에 관한 학문"이라는 본인 스스로의 '가치판단적' 정의를 통해 동료 정치학자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내 숱한 학부시절의 고민을 떠올리기도 했던 이 '과학으로서의 정치학'은 내가 외람되게나마 정치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정치학 개론' 1장 1절이다.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관찰'과 '적극적인 가치의 선택'이라는 태도를 모두 다 배워야 한다는 것

방송국이 파업을 했던 몇 년 전이었던가 라디오에서 DJ의 멘트없이 계속 음악만 나왔을 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소음(?)없이 참 편안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서평이랍시고 쓸데없는 잡소리들을 적을 게 아니라, 차라리 따옴표들로만 채울 걸 하는 뒤늦은 생각이 든다. 정말 뭐가 좋은지 느끼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소개'라든가 '평(評)'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껍데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글을 다 쓰고 나니 입학한 지 7년이 지나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는 지금, 내가 왜 정치학을 공부하는가 하는 새삼스런 질문만이 계속 머리속을 울려온다. 마루야마 마사오를 위한 마지막 따옴표 하나.

"....학문적인 태도를 도그매틱한 태도로부터 구별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런 의문의 정신, 자신속에 깃들어 있는 선입견을 끊임없이 음미하고 자신의 이론에 언제나 보류를 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그런 무한한 인식과정을 어느 시점에서 문자그대로 단절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원한 모순과 이율배반이 있습니다.... 인식한다는 것과 결단한다는 것의 모순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이 아닌 인간의 숙명입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그런 숙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의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