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만난 사람: 두껍아 두껍아 유정희씨
그날이 만난 사람
두껍아 두껍아 유정희씨
두껍아의 역사와 두껍아를 여시게 된 계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원래 그날은 90년부터 운영했었는데, 90년 말 당시 전교조 수익사업단, 참교육사에서 우리말 티셔츠와 참교육이
세겨진 반지, 목걸이 등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민족미술 문화운동 협의회(민미협)에도 생활문화운동 차원에서
이런 물품들을 취급하기 시작했어. 그때는 서점에서 이런 물품들까지 같이 취급했는데, 공간도 좀 좁았고 이런
물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조금 '겁없이' 시작하게 되었지.
두껍아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고 취급하는 물품에 대해서 소개와 홍보를 좀 해주세요
두껍아에서 하는 일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을 텐데 한쪽이 생활한복, 전통적인 생활용품에 대한 판매이고
다른 한쪽은 학생회, 학회 등 학생들의 모임에서 주문하는 단체복, 기념품, 모자. 팩, 버튼 등이지. 원래
초기에는 민미협 아래 많은 공방들에서 도자기, 목걸이, 한지 등 여러 가지 물품들이 나왔었는데 공방들의 운동은
대부분 쇠퇴하고 말았고, 현재 생활문화 운동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생활한복 하나라고 볼 수 있어. 예전에는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라고 새겨진 반지같은 것을 끼고 뿌듯해했었는데, 요즘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큰 것
같아. 그리고, 초기에는 티셔츠도 많이 팔렸는데, 이제 대부분 단체복으로 주문해서 입으니까 별로구...
생활한복은 주로 30대들에게 소비되고 있지만, 사실 일반 옷과 비교해볼 때 많이 비싼것도 아니니까 많이 사서
입었으면 좋겠고, 계속 기념품이나 단체복 주문도 많이 했으면 좋겠구...
앞서 말씀하셨듯이 학생들과 연계를 가지는 사업을 많이 해오셨는데, 처음 여실때부터 지금까지 학생들과 관계 속에서 두껍아가 어떻게 자리매김 왔고, 앞으로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더불어 학생들의 안좋은 모습들이 있다면?
90년대 초 매장이 처음 생기기 시작할 때 연대 앞, 성대 앞, 한양대 앞에 생긴 제1세대 매장들은 두껍아처럼
학생들과 여러 가지를 함께 하는 매장들이었는데, 93-94년 이후로 생활한복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제2세대
매장들이 많이 생겨났지. 제1세대 매장들은 대부분 사회과학서점들과 운명을 같이 했는데, 일부는 좋은 위치로
옮겨 생활한복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이 되기도 하고, 큰 자본을 가지고 있는 큰 매장들에 경쟁에서
도태되기도 했고... 그렇게 본다면 두껍아는 생활한복도 취급하고, 학생들의 필요한 물품도 공급하는 혼합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 사실 생활한복의 판매로만 두껍아를 생각한다면 신림사거리 같은 곳으로 위치를 옮기는
게 더 낫겠지. 하지만, 그날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역할에 너무나 애정이 가기 때문에 계속 이
자리에 있고 싶어. 그리고, 안좋은 모습이라면 주문한 물품대금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조금 늦더라도 대부분
갚아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
두껍아를 여시기 전까지 그날을 운영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때의 그날과 지금의 그날을 비교한다면?
예전에는 지금 두껍아 자리에 그날이 있었는데, 원래 아주 아담하고 작았기 때문에 '사랑방'같은 그런 곳이었어.
그리고, 그 땐 서점이 세 개가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다른
서점을 이용하는 것도 있었고... 그래서, 학생들과 지금처럼 소식지같은 정식적인 연대사업을 하기가 힘들었어.
한군데 서점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그날만 남았는데, 오히려 하나가 되니까 이렇게 소식지도
내고 할만큼 활발한 측면도 있는 것 같아. 또, 중요한 차이라면 그 때는 그날 안에서 담배를 필 수 있었는데,
92년 말부터 금연이 됐지. 아무래도 책도 더러워지고, 공기도 탁하고, 물론 건강에도 안좋구...
작년 그날이 오면이 경찰에게 침탈당하고 누님께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 때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주세요.
작년 4월 15일에 갑자기 두껍아로 경찰들이 쳐들어와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지. 자료집을 판매했을
뿐인데도 마치 IS의 조직원인 것처럼 체포영장이 구성되어 있어서 황당했고, 사실이 아닌만큼 간단히 조사만 받고
나올 것으로 생각했어. 그런데 간단한 조사만 받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똑같은 내용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진술했던 얘기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았지. 너무 화가 나서 2박 3일을 계속 울었고 단식까지 하려
했었어. 하지만, 무엇보다 연행된 다음날 서울대학생들이 그날 앞에서 집회를 하고 항의방문까지 와서 모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힘을 얻었어. 서점을 계속 해온것에 대한 뿌듯함이 느껴졌고 그날의 존재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지. 구치소에 있을때도 매일매일 학생들이 면회를 와줘서 다른
사람들한테 부러움을 사기도 했구... 질문에서 좋은 기억이 아니라고 했는데, 오히려 많은 것을 받고 나왔던 것
같아서 오히려 나한테는 좋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애. 5월 14일에 구속취소로 나온 이후에도 서너차례
조사를 받았고, 지금도 조금 부담이 되는 상황이지.
약간 개인적인 질문인데, 누님은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셨고 졸업하신 이후 어떻게 그날과 관계를 가지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대학다닐 동안은 흔히 말하듯 성실한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었지. 대학을 졸업한 이후 89년 애를 낳으면서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던 중에 친구들을 통해서 사회과학서점을 알게됐어. 당시 백두글방, 열린글방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일은 잘 안됐고, 89년도에 그날을 운영하는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얼마동안 그날이 어렵게
굴러가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인연이 되서 그날을 하게 됐지. 91년에 참 인상적인 기억이 있는데,
≪우리사상≫과 ≪현실과과학≫이 나올 때는 불티나게 많이 팔려서 아예 책을 다 포장해놓고 큰 종이에 책 이름만
적어놓고 바를 정(正)자를 막 표시하면서 팔았었지.
올해 신림9동에서 구의원으로 출마하실 거라고 들었는데, 이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과 누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특히 두껍아나 그날은 대학과 주민과의 연대에 있어 하나의 매개고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측면에서 어떤 계획과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하구요.
신림9동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지역활동과 녹두거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문화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95년말 <관악사회복지>에 회원이 되어 활동을 했었어. 그러던 중 작년말에 나에게 올해 지자체선거에서
구의원으로 출마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한달여간 고민한 끝에 출마하기로 했어. 풀뿌리민주주의의
장이 되어야할 지방자치제도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풀뿌리보수주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구의회 활동이 '정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오히려 지역활동,
지역문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줬으면 해. 이 기회를 통해서 나
스스로도 열심히 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서점과 두껍아를 이용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만 해주세요
지속적으로 학생들이 아무런 경제적 제약없이 자유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 세미나도 하고 보기 힘든 영화상영 등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으면 하는데, 아직은 많은 경제적 제약이 있는 상황이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라면, 항상 좋은 것, 나쁜 것을 분명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 애정어린 비판과 질타가 있어야만 그날도 두껍아도 계속 달라지는 모습을 만들어나갈테니까.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고칠 수 있는 것이라면 바로바로 바꿔나가야지 발전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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