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사상의 자유

기획: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과 사상의 자유


한동안 양심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던 김대중 정부 출범 특별 사면이 지난 13일 단행되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특사'란 언론의 떠들썩함이 있지만, 지금도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양심수 분들이 엄연히 계시는 감옥 안은 여전히 서늘하리라. 그리고 더욱 확실한 사실은 양심수들의 79.5%를 구속한 공포스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이 땅에는 수많은 양심수들이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해 11월 4일 서준식씨가 (인권운동 사랑방 대표) 4·3 제주항쟁을 다룬 영화 <레드헌트>를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였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사회적 물의는 일으킨 바 있는데, 이는 국가보안법의 비상식적인 성격을 보여주었다. 영화 <레드 헌트>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어 당시 3당 대선 주자들이 칭찬을 하면서 관람을 하였는데, 그것이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면 이적표현물이라는 것이다. 더욱 가까이는 작년 4월 <그날이 오면> 서점 대표가 이적도서 판매혐의로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적이 있다. '국가보안법'은 서점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공간까지도 침투한 사상통제의 상징이라 볼 수 있겠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이승만 정권이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처벌하기 위한 치안유지법을 본따 제정한 이후 지금까지 독재정권들의 권력유지의 수단이 되어 왔으며, 분단이라는 상황을 악용하여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봉쇄하는 악법으로 세계적인 악명을 떨치고 있다. 반국가 활동과 반정부활동조차 거의 구분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단순한 민주화운동도 반국가 활동으로 몰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보안법의 위헌성과 법률적 문제점은 계속해서 지적되어 온 바 있다. 우선 국가보안법의 가장 핵심적인 존립기반인 제2조의 반국가단체의 개념을 예로 들어보자면 거의 대부분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이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전제하고 그와 연계시키고 있다. 그런데,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등 남북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시대에 들어서도 북한을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자기모순적일 뿐 아니라 우리 헌법의 제4조, 제66조 등도 평화적 통일 정책을 선언하고 있어 더 이상 법적 규범력을 인정하기 힘들다. 다음으로 제7조의 찬양·고무·동조 죄는 그 모호한 개념과 이에 따른 자의적 법적용으로 악명을 떨쳤는바,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백지형법'적인 독소조항이다.

이렇듯 국가보안법은 지극히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조항에 의해 정권의 입맛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헌법을 넘어서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막걸리 보안법'이란 별명을 얻은 국가보안법은 가히 광적인 반공주의를 무기로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능성조차 봉쇄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국가보안법 연구 1·2·3』(박원순 지음, 역사비평)은 이런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책은 1권 국가보안법 변천사, 2권 국가보안법 적용사, 3권 국가보안법 폐지론으로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이나 분량이 주는 위압감과는 달리 법에 관한 문외한일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져 있다. 특히 단순한 법조문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을 충실히 다루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장치이자 통치도구로서의 법의 성격을 명확히 전제하여 나름대로 사회인식의 틀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한다. 이 책에서 필자 박원순은 사상의 자유가 국가보안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국가보안법의 완전 철폐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의 악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건국이래 온 국민의 한 쪽 눈을 거세하고자 했던 '레드 컴플렉스'에 의존하고 있다. 긴 중세적 암흑의 역사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접근이란 매우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우선 '사상'이라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불온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이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것도 단지 '반공'의 틀 내에서만 의미를 갖는 왜곡된 '자유민주주의'의 왜소한 존재로 전락하였다. 물론 헌법에는 버젓이 사상의, 양심의 자유가, 그리고 집회·결사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지만 아직 창살 안에서 '양심수'로 남아 계신 많은 분들은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란 것이 '사상의 자유'와 결코 양립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국가보안법 연구 1·2·3』이 비교적 전문적이고 '국가보안법' 자체에 대한 논의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상의 자유』(조국 편저, 살림터)는 제목 그대로 좀 더 확대된 의미 '사상의 자유'에 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잊혀져 있는 사상의 자유의 의미와 내용을 복구하고, 어떠한 유보도 없는 전면적인 사상의 자유의 보장을 주장한다. 덧붙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이 되고, 변혁적 사상 등을 체제 내로 포섭시키려는 새로운 사상통제 방식에 맞서 '빨갱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역사적인 진정한 의미의 복원을 통한 좌익의 복권, 좌익의 명예회복'이라는 적극적인 대응을 해 나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광기에 가까운 우리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는 도대체 다른 방식의 어떠한 삶도 인정하지 못한다. '좌'가 절대악과 등치되는 사회! 그래서 진정한 '사상의 자유'란 단어가 낯설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사상의 자유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란 홈스 미국 대법관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말로만 있되, '죄수복을 입은 '사상의 자유!'가 이 땅에 실현될 그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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