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양심수들의 책

기획: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우리시대 양심수들의 책


새정부의 양심수 사면을 전후해 양심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00에서는 이번에 사면된 사람을 포함해 이번 사면에서 제외된 양심수들이 쓴 책과 감옥생활을 다룬 책을 소개하고, 이들을 가둔 국가보안법을 분석한 책과 법리상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아직도 풀리지 않은 양심수 문제를 또 다른 차원에서 환기시켜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 다시)

- 수정되지 못하고 완성되지 못한 문안입니다. 죄송합니다-

지난 한해는 그야말로 '박노해 신드롬'이라 불러도 될만큼 '수의입은 시인' 박노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해였다. 그의 책 『사람만이 희망이다』는, 사노맹의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경주교도소의 차가운 감방에서 8년째 갇혀있는 그의 몸과는 달리 대형서점에서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 '자유인'들의 손에 쥐어져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도 이런 인기를 업고 해냄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어 높은 판매부수를 올리고 있다.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있는 양심수의 상징 박노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노동해방의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인가. 한 발 물러서서, 한 때의 '불순했던' 그의 사상을 이제는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인가. 전두환, 노태우가 사면된 '국민대화합'의 시대,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새 봄. 그러나 감옥 안에는 아직도 수많은 '박노해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창작의 자유마저 제한당한채 여전히 춥기만 한 봄을 지내고 있다.

민가협에서 발표한 양심수는 98년 2월 17일 현재 478명. 이들 가운데는 40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우용각씨를 비롯해 2, 3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초장기수 23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 초장기수의 문제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형상화해낸 소설가 김하기. 제작년 여름 중국 연변 관광 중 술에 흠씬 취해 "북한에서 출판된 내 소설의 인세를 받으러 간다"며 두만강을 건너 북으로 간 그는 국가보안법상의 잠입, 탈출, 국가기밀 누설죄 등으로 징역 3년 6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는 부산대 재학 중이던 80년 계엄확대 반대 시위, 부림사건 등으로 구속돼 8년간의 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는데 감옥에서 만난 비전향 장기수들은 그의 주요 창작 모티브가 될 뿐 아니라 그가 소설을 쓰게된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데뷔작 '살아있는 무덤', 제 1회 임수경 통일문학상을 받게한 '완전한 만남' 등 8편의 소설이 뗌습막Î 시를 쓸 것"이라던 그의 포부는 일제시대 탄광징용사를 시로 담기위해 방북한 까닭에 6년째 감옥에 묶여있다.

민중불교의 선구자인 진관스님도 구속문인 5인 중의 한명이다.

76년 시문학사 추천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지선스님과 더불어 민중불교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함께 살자>(지양사, 1990)을 비롯, <까마귀 우는 산>, <광주에 오신 부처님>, <분단의 나라>, <통일꾼 만세> 등의 시집에 수록된 일련의 시들은 종교적 색채보다는 민중시적 모습을 강하게 띠고 있다.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독재자들에 대한 불타는 분노로 조국통일을 애타게 염원하는 시를 써왔던 그는 재작년 10월,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을 추진하면서 해외동포를 통해 북한쪽과 연락을 주고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6월,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돼 있다.

'옥중의 문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시인 김남주. 이미 94년에 타계했지만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중에 있던 79년에서 88년의 10년 동안 그가 낸 시집 3권-『진혼가』(청사, 1984), 『나의칼 나의피』(인동, 1987), 『조국은 하나다』(남풍, 1988)-과 번역시집-『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 1988)은 민중문학사에 길이 기억될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시인은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시대의 중요한 문제와 싸우는 해방전사와 같은 사람"(『창작이란 무엇인가』, 정민, 1994)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시는 감옥안에서 세상밖으로 나와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기만적 검열체제와 달리, 감옥안에서의 글쓰기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우유곽에 못으로 새긴 그의 시들은 그 자체가 눈물겨운 투쟁이 아닐 수 없다. 유고시집 『나와함께 노래가 사라진다면』(창작과비평사, 1995)에는 옥중에서 글을 써서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에서 쓴 김남주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짐작케 한다.

문인들의 경우 검열이 문제가 되어 구속된 후에는 사실상 창작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인이 아닌 경우에는 옥중서신들이 엮어진 책들을 통해 자신의 신념 및 구속의 부당함을 알리는 경우가 많다. 종종 '감옥은 제 2의 학교'라 불리는데, 옥중서신집이 감옥 안에서의 풍부한 독서체험과 명상의 시간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데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에서 10년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설문조사 분석 기사 참고) 성공회대 신영복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 1988)은 옥중서신집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 2개월을 복역함으로써 청춘을 감옥에 바친 신교수의 이 책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대학가 새내기들의 필독서로 자리를 굳혔다. 88년 출소 이후 펴낸 산문집 <나무야 나무야>(돌배게, 1996)는 감옥을 벗어나 국토의 이곳저곳을 직접 둘러보면서 그만이 느꼈을 법한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제공해 줌으로써 대형서점에서도 거뜬히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서가 한구석에 꽂혀 있는 빛바랜 옥중서신집들 속에서도 삶에 대한 진지함과 신념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의지, 사회를 보는 통찰력 등을 발견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레드헌트> 상영을 이유로 얼마전에도 구속됐다가 풀려난 바 있는 한국 인권운동의 '대부' 서준식. 그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유학생간첩 사건으로 7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할 무렵 사회안전법을 소급 적용받아 보안감호처분 되는 바람에 다시 10년 동안 자유를 빼앗겨야 했다. 1988년 출소한 후 펴낸 옥중서간집은 모두 세권이나 된다. (형성사, 1989) 1권 '모래바람 맞은 영혼' 2권 '새벽의 절망을 두려워않고' 3권 '고뇌 속에서 떠오르는 희망' 등의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는 감옜¡ 따른 인간적 외로움과 고통이 절절이 드러나 읽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조작사건의 또다른 피해자 황대권. 그의 책 <백척간두에 서서>(사회평론, 1992)는 약간 특별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혜경이라는 학교 영어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는 사랑의 싹이 되었고 그녀는 소중한 편지들을 시인 고은에게 보여줌으로써 한권의 책이 완성된다. 이 책은 그러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담은 연애편지 모음집은 아니다. 오히려 한권의 체계적 사회과학서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미국 남일리노이대에서 정치학을 연구하던 중 귀국하여 구속된 그에게는 제 3세계에 대한 연구가 절박한 과제였다. 스스로 제 3세계주의자라 칭하는 그는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지역마다 다른 사회를 만들어 왔으며, 새로운 사회에로의 전환은 어떻는 교도소측의 검열로 삭제된 부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총학생회 건설의 장본인 백태웅의 <남한사회주의자의 꿈>(사노맹관련 구속자가족대책위 엮음, 노동자의 벗, 1992)에는 그가 그간 각종매체에 발표했던 글들과 발표되지 않은 글, 옥중투고, 옥중편지 등이 엮어져 있다. 1부에 수록된 '남한사회주의자의 꿈'에서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노맹의 조직건설과정이 낱낱이 공개돼 있으며 '나의 수배일지'에는 '머릿결 좋은 생머리'인 그가 수배후 변장을 위해섟墟閨茱解ú 사회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천착이 드러나 있다. "과학, 기술은 사람이 세계에 작용하여 세계를 개조, 변화시키는 이론과 기술이므로 과학자, 과학기술자는 당연히 세계가 무엇이며,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이공계 학생들의 교양도서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감옥안에서의 체험을 다룬 책들도 있다.

제 7회 전태일문학상 글쓰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왈왈이들의 합창-노동자가 처음으로 쓴 감옥 이야기>(보리, 1997)를 쓴 이재관씨는 1981년부터 현대엔진 선반노동자 일을 시작했으며 1990년 골리앗 파업으로 구속돼 1년감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노동자뎔나 한 인간의 사상과 신념을 국가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가두어 둘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만이 희망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때묻고 빛바랜 그들의 책과 함께 시대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을, 그 삶을 진정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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