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24시 숨은그림찾기: 녹두거리에 대한 횡적 탐구
녹두24시 숨은그림찾기
녹두거리에 대한 횡적 탐구
<녹두거리의 호명테제: "정체성은 없다!"> 1. 택시
녹두거리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탈때 우리는 으레 "289종점"이라는 용어를 쓴다. 학교 안에서 소위 셔틀택시를
탈때는 "289!!"라는 말로도 충분하다. 외지인들에게는 간혹 '신림동 고시촌'이나 '먹자골목'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녹두거리. 관악인들에게는 보통명사처럼 익숙한 '녹두거리'라는 이름의 우리공간. 녹두를 녹두라고 편안히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학교에서 가깝다는 것, 사회과학서점과 학사주점 등과 같이 아직
대학문화가 통용된다는 것 이외에 녹두거리에 이렇다할 내세울 꺼리는 전무하다. '녹두'라는 단어를 발음하면서
우리들이 느끼는 막연한 친근감과 애착심, 그 내부에는 무엇이 있을까. 녹두거리를 녹두거리라고 당당히 호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넘쳐나는 방문화: "일상은 있다!"> 2. 방
그날 메모판을 기웃거린 후 녹두거리로 본격적인 진입을 하는 저녁시간. 특별한 행사나 과모임이 있는 날은
학사주점을 찾기도 하지만 두세명씩 짝지어 내려온 학생들의 발걸음은 보통 당구장을 거쳐 호프나 소주방을
찾게된다. 단란주점이란 것도 생겼고 전화방이란데도 있다지만 아직은 남의 일처럼 들리고, 시간때우기 위해선
일요일 한낮 오락실이나 만화방이면 충분하니까. 생맥주나 칵테일소주에 적당히 기분도 좋아지고 평소때 않던
화두로 언쟁도 하고나면, 노래방으로 목풀러가는 것이 기본코스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노래방 갈것이냐 마느냐로
말들이 많았다지만 요즘은 노래방에서 전자음 반주에 맞춰 신곡 한두개쯤 잘한대서 내세울 만한 일도 못된다.
언젠가는 락까페도 단란주점도 진부한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섬뾵하다. 그러고보니 팍팍한 일상에 문화생활 못한지도 오래된 것 같다. 비디오방에 가서 썩 괜찮은
비디오나 하나 봐야겠다.
<학생에 의한 형성에서 학생이 내몰리기까지> 3. 심야영업
1,2학년 때 느꼈던 녹두거리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밤새워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건 대학생의 특권인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누려라"는 지상과제였으며, 1차소주, 2차맥주를 거쳐 노래방서 잠깨고 비디오방을 거쳐
쑥스런 태양 아래 내던져지는 일이 흔했다. 남녀구분없이 층계참에 위치한 문고리 붙잡고 일을 봐야하는
공용화장실과, 집집마다 있는 뒷문으로 새벽녘에 빠져나오다 보면 발밑에 질척한 '그것'에도 불구하고. 멀리
연고대의 친구들과 놀다가도 자정을 넘겨서는 꼭 돌아올만큼 녹두거리의 심야영업은 큰 매력이 있었다. "그래도
서울대생이 술먹는데... 고시생이 스트레스 푸는데..."라는 이유로 관공서는 눈감아주었고, 언제부턴가 똑같은
패션의 십대들과 초미니의 아가씨, 분위기 험악한 아저씨들과 자주 마주치기 시작했다. 이제 자정 너머
녹두거리의 주인은 학생들이 아니다. 360여개의 빽빽이 들어찬 업소들을 지탱하는 돈의 80%는 이제 신사리에서
흘러든 십대들과 고시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집세는 턱없이 치솟고, 학생들을 주로 상대하는 집들은 하나둘씩
가게를 내놓고 떠난다. 그러면 우리는 떠나야만 하는가?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대학인의 공간> 4. 작전명령 1호 - "중심을 지켜라!"
서울대가 '그날이 오면'을 가지고 있다면 연세대에는 '오늘의 책'이 있다. 불과 얼마전 하늘같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한 '오늘의 책'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한동안 뜻있는 학생들과 선배들이 몰려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 신촌에 갈일이 있어 언제나처럼 <오늘의 책>을 찾아갔다. 옮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작 중심에서
밀려난 대학인의 공간을 찾아 가자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우리 학생들 역시 구석으로 밀려나기는 마찬가지다.
신촌은 오늘도 청춘남녀들로 북적거리지만, 우리들의 목소리는 그안에서 어쩐지 겉돌고만 있다. 스스로 중심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디가서 우리가 다리를 쉬며 책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오늘의 책>을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게속된다. 아직도 우리 마음의 지도에서 중심은 이곳이다.
<알다가도 모를 공간-그풀리지 않는 신비> 5. 공간이 필요하다-뭔지는 모른다?
얼마전 한 설문조사에서 '녹두거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문화공간'이었다. 술먹기엔 돈이 없거나 시간이 부족할 때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녹두거리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은 어떠한 문화공간이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차한잔 들고 괜찮은 미술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화랑? 마로니에 공원처럼 즉흥연기나 노래가 펼쳐지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공원? 수시로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벌어지는 라이브까페?
녹두거리에도 물론 몇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송년잔치와 알림판, 쉼터가 있는 그날 서점과 우리옷 선보이기 행사를 가진 두껍아, 매주 수요일 비누방울 혹성의 노래잔치가 펼쳐지는 태백산맥. 그러나 괜찮은 문화공간 하나 갖기위한 우리의 부대낌은 많이 삐걱거리고 있다. 정말로 궁금하다. 우리 녹두거리의 독특한 맛이 살이있는 공간-그 안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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