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러시아의 밤 외
서평
배반(背反)이냐 조반(造反)이냐?
베라 피그넬, 『러시아의 밤』, 형성사
김학철,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실천문학
다이 호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다섯수레
최형록
서론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중략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라고 시인은 ‘일제로부터의 해방(解放)’을 절규했다 1998년, 광복 5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경축행렬에 벅찬 가슴으로 나설 수 있을까? 해방의 뜨거운 감격이 아니라 방출(放出)의 참담함을 겪고 있고, 예감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청년・학생들의 가슴 속 ‘청운의 꿈'은 머리 속, ‘실업’이라는 먹장구름에 강박당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소한의 인간적 생존권을 그리고 청운의 꿈을 위협하는, 한국전쟁 이래 최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것은 용기, 개방적 과학정신, 그리고 ‘생명에의 존엄성’에 기초를 두는 윤리의식을 삶의 지도원리로 삼고 실천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실업은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만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그러하다. 실업이라는 ‘암(癌)적 존재’가 IMF 지배상황을 졸업(?)하고 시장의 자율성(?)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신(쉰?)’ 자유주의 정책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실업문제, 물가문제 등의 근원이 교환가치의 수요・공급의 교란에 있다는 것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진리인가? 우리의 감각적 경험으로는 해가 동터서 서녘으로 진다. 그러나 ‘과학’의 눈으로는 자전하는 태양을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것이 아닌가? 150여년 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격문(激文)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이곳 남한에서 여전히 절실하지 않은가?
필자는 오늘날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데 유익한 책 세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평의 방식으로는 저자의 관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해결방안을 주로 소개하면서 비평하는 방식, 독자의 관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해결방안과 비교하면서 비평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두 방식은 별개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이랄 수 있는데 필자는 상대적으로 후자의 방식으로 서평할 것이다.
러시아의 밤
어머니와의 만남이 단절된 지 2개월, 2년, 강산이 한번 변하는 세월, 나아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도 일어날 법한 20년의 세월이라면, 더욱이 강제로 그 30대, 40대의 활동가를, ‘현재를 저당잡히고 과거의 기억에 갇힌 채 미래를 상상할 수 밖에 없다면’ 당신은 어쩔 것안가?
「러시아의 밤」(형성사, 1986년판)의 저자 베라 피그넬은 그런 형극(荊棘)의 길을 선택했던 여성이었다. 그녀(들)의 밤이 있었기에 소련에서 ‘모스크바의 밤(일명 멋쟁이의 시대)’을 소련군 합창대가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Bolsheviks의 선배격인 ‘인민의 의지당’원이었고 이 책은 그녀(와 당원들)의 ‘헌신적 투쟁의 기록’이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 특히 러시아 국민의 다수인 농민의 비참한 생활상(49-50면)은 오늘날 한국과 다르며 그들의 정치조직관인 Substitutionism(79면)과 정치투쟁의 핵심방식으로서의 Terrorism(63-75면)은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서는 고려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그녀(들)의 ‘강철과 같은 의지’와 ‘헌신성’이다. 집행위원회의 규약(81면)에 따르면, 1) … 혁명을 위해서는 친형제와의 인연도, 개인적 동정도, 애정도, 우정도 잊는다. 2)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누구도 용서치 않으며 어떤 것도 애석해하지 않는다. 3) 사유재산을 갖지 않으며 … 4) 비밀결사에 전면적으로 헌신하고 … 다수의 의지에 따라 개인의지를 버린다.
이 부분의 정신은 「Docter Zivago」의 Bolshevik 장교(라라의 동창)에 계승된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D. Schostakovich가 교향곡 제 12번 ‘1917년’에서 역사의 여명을 말할 수 있는 토대의 일부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러시아 짜르 전제정치의 폭정과 농민의 비참함으로부터 비롯한 ‘지나친 정의감’ 一 過猶不及 ― 이었다. 하지만 ‘정의감’이라는 그들의 ‘윤리의식’은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지나친 정의감’은 이율배반적으로 테러리즘을 낳았는데, ‘정의感’은 ‘과학적 理性’과 ‘어깨동무’를 해야하는 것이다. 피그넬은 자신(들)의 노선에 대해서 이렇게 반성한다. “살인과 교수대는 청년들의 머리를 사로잡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인생의 경험이 적기 때문에 사물을 생각해도 아직 분명한 분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자신의 의지, 힘의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현상을 보고싶어한다. 당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테러행위 외에는 없었다.”(124면)
그녀(들)의 ‘정의感’이 실천에 있어서 덜 현명했을 뿐 그 근본에 있어서 결코 냉혈한 것이 아니었음은 “人生의 최후의 기쁨은 어머니였다.”(164면, 밑줄은 필자)는 고백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길을 선택했던 것은 내 의지였으며 후회란 있을 수 없었다. 후회는 없었지만 - 괴로움은 있었다. 의식 속에는 어머니만이, 단지 어머니만이 있어 어머니와 헤어지는 슬픔이 모든 것을 덮어 감추어 버렸다.”(165면) ‘정의感’의 원천, 혁명투쟁의 지도윤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극진한 마음’이다. ‘자모(慈母)의 마음’. 유한한 삶의 의미는 ‘慈悲(慈란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이요, 悲란 남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다.)로운 어머니’의 가치를 실천할 때 허무(虛無)를 넘어 무한(無限)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어머니의 慈悲心’은 고유명사로서의 특정한 어머니를 통해서, 동시에 그녀를 넘어서 생면부지인, 익명의, ‘보편적’ 존재로서의 어머니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협애한 인간중심주의(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적 혁명과 1859년 다윈의 혁명적 진화론으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집착)너머 보다 넓고 깊은 혁명적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난 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피그넬의 어머니는 19세기 러시아에만 있었던 것일까? “아들아, 이 에미의 말을 명심하여라. 다음에 적은 것을 날마다 정성들여 108번씩 외우면 네 그 다리의 상처가 꼭 아물 것이다. 부처님의 무량공덕(無量功德)을 믿어라 ―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97면)
이 정성어린 서신의 아들은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실천문학사, 1994년판)의 저자 김학철이다. 그는 항일무장독립투쟁을 전개했던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서 1941년 태항산 전투에서 다리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는데, 이 서신은 그가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4년간 복역중 받은 것이다. “나는 그 편지를 손에 든 채 독감 방 속에서 솟아오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나는 맑스주의자였다. 무신론자였다. 오직 과학만을 믿는 지성인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이승에서 잘 살아볼 희망이 없으니까 저승에 가서나 잘 살아보겠다고 불교를 믿었던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는 많은 불교도들이 이상적인 경제체제로서 사회주의적 경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승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독단 너머」, 파리, Albin Michel, 94년판, 32면) 우리 어머니 김쌍년이는 평범한 여자였다. 그러나 정직하고 근면한 여자였다. 이 세상에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보통여자가 절대 다수가 아닐까?…”(97면) 그의 어머니는 가없는 모성을 지닌 ‘慈母’였다.(특히 93-98면) 그런 어머니의 덕택이었을까? 그는 한여름 푸른 하늘 아래 은빛을 머금고 작은 돌멩이들을 어루만져주며 흐르는 시냇물 같은 심성이 깃든 투사, 유머가 넘치는 투사, 그런 한편 불굴의 투사로 다가온다. (필자가 한때 신입생들에게 권했던, 그의 「격정 시대」(풀빛, 1988년판)역시 양서이다. 모두 세 권인데 전편에 걸쳐 친근감을 주는 유머와 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투철한 맑스주의자 김학철은 ‘수양문제’와 관련해서 한때 “나는 자기의 노루꼬리만한 지식을 최종진리화 또는 최고진리화해가지고 걸핏하면 남을 타박하기를 좋아하는 성질이었다…”(139면) 필자는 앞서 피그넬이 지적했던 청년기의 조급성과 미숙함과 함께 이런 지적에 우리의 청년학생들이 유의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총련을 지지하든 좌파를 지지하든 ‘정의감’과 ‘개방적 과학의 정신’이 ‘긴장된 균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항상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감’에 기초한 ‘신념’과 ‘개방적 과학정신’은 不同而和인 것이다. 양자 사이가 부조화할 때 실천에 있어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비극적 결과가, E=mc²과 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맑스적 유물온의 모순론적 세계관에 있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생산의 사회화와 사적 전유의 모순은 양대 계급의 모순 대립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전례없이, 이전과 달리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영역은 생물학적으로 진화하고 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인간의 정신’ 문제이다. 설사 ‘정의감’과 ‘과학’으로 온갖 간난신고(限難辛苦)를 겪고 민중권력을 수립하여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였더라도 그것은 천리길에 있어서 첫걸음, 배 부를 수 없는 첫술밥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문화대혁명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현실과 쿠바・베트남의 현실을 보다 넓게 볼 때 생산수단의 국유화, 민중권력의 형해화를 여러가지 차원에서 내재적 발전동력의 부재 혹은 불충분, 그것을 더욱 악화시키는 차원에서의 계급투쟁의 압력으로만 이해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계급투쟁 의 역사였다’(계급투쟁적 역사관은 맑스로부터가 아니라 계몽주의적 부르주아 역사가들, 19세기 프랑스의 Guizot, Thierry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라고 했을 때, 그 역사에는 크로마뇽인이나 북경원인 더 거슬러 올라가 약 18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역사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계급이 형성되지 않았고 국가권력이 형성될 수 없었으며 사회적 잉여가 없었다고 보는 이 시기, 선사시대의 인간심성(心性)이 계급의식의 하부구조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과학적 맑스주의자, 김학철은 ‘文化’대혁명에서 ‘지나친 정의감’의 표적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1957년 ‘반우파 투쟁’으로부터 1980년 강청 등이 특별 법정에 서기까지 그의 집안은 ‘지옥살이’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가족들이 행방을 모르는 채, 그는 4년 7개월 동안이나 구금되었다.(264면) 문화대혁명(1966-1976)은 ‘專(specialization)’ 보다 ‘紅(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하면서 도농간의 불균형과 현대적 부문과 전통적 부문간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이러한 사태와 관련된 유소기-등소평파의 실용주의적(?) 당노선과 관료주의를 혁파한다는 명분으로 촉발된, 노선투 쟁이자 정권투쟁이었다. 모택동은 직접 1966년 5월 25일 북경대의 대자보를 통해서 홍위병(紅衛兵)’이 ‘사회주의적 교육노동집단’을 대체할 것을 학생들에게 선동했던 것이다. 김학철은 문화궁전에서의 ‘공판놀음’을, 나찌하에서 조작된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으로 체포된 지미트로프가 자기변호로써 무죄방면을 쟁취한 것과 비교하면서 자기 변호권이 박탈당하고 ‘아갈잡이’당한 것을 생생히 묘사한다.(272-275)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창시자라는 고리키도, 중국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주장(主將)이라는 노신도 공산당원이 아니었고 파금(巴金: 그의 작품 「家」(청람, 1985)에서는 질식할 것 같은 봉건중국과 그것을 타파하려는 청년들의 분투를 볼 수 있다.)이나 곽말약, 모순(茅眉) 역시 당대열 밖에서 창작활동으로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300면)”는 그의 지적 역시 인텔리겐챠와 혁명권력의 관계라는 긴장관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사람아, 아 사람아
김학철이 겪은 ‘지옥'같은 ‘지나친 정의감’을 호젠후는 1957년 대자보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령 적에 대해서라 할지라도 혁명에 위해를 미칠 염려가 없는 한에서는 혁명적 휴머니즘을 실행하는 법이다.”(53면) 호젠후는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다섯수레, 1992, 신영복 옮김)의 주인공이다. 다이 호우잉은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그것의 ‘지나친 정의감’과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휴머니즘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있다. ‘혁명적 휴머니즘’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일이 있다. 필자가 아는 빨치산 한 분. 봄의 미풍에 한들거리는 꽃들, 푸르디 푸른 하늘, 자유로이 비상하는 새들, 이런 것들과 함께 시시각각 부단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던 청년. 적과 동지만큼이나 뚜렷하고 깊은 계곡이 얼굴에 자리잡으면서 그는 그와 격전을 벌였던 군경들을 위해서 위령의 막대기를 지리산 어느 곳에 세웠다 ‘인간의 감정은 계급성을 가지는’ 것인가? 라고 호젠후는 묻는다.(159면)
호젠후의 의문은 이렇다. “나는 사회관계의 송화라는 개념만으로 인간을 해석하는 것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하네. 인간의 자연적 속성(생리적, 동물적 속성) 역시 인간성의 일부분으로서 이것도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 우리들이 자기의 동물성을 자가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이지.”(77-78면) 다이 호우잉은 “인간의 감정은 계급성을 갖는다.”라는 아버지 시류에 대해서 시왕의 입을 통해 이렇게 항변한다. “인간이 동물계에 그 근원을 두고있다는 사실이 이미, 인간이 수성(獸性)을 완전히 탈피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탈피가 어느 정도인가, 즉 수성과 인간성의 정도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98면) 그리고 호 젠후는 손 유에와 대화하면서 “…우리들은 봉건적인 경제적 등급을 소멸시킨 반면, 많은 정치적 등급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말았어. … 우리들의 아이는 교화대상이야. 아직 태어나기도 전부터 딱지가 붙는 거야._이것이 유물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23~124)
이상에서 필자는 세 권의 책을 ‘정의감’과 ‘개방적 과학정신’ 의 不同而和라는 관점에서 소개했다. ‘인생이란 이 세상에 잠시 있다가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는 것’(人生處一世 去若朝露晞, 조식의 “아우 백마왕에게” 중 일절. ‘중국역대시선집’, 돌베개, 1994년판, 기세춘, 신영복 역, 504~5면)이 아닐까?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상호관련성을 생각한다면, 필자가 생각하는 ‘유물론적 윤회론’을 생각한다면 삶의 의미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무한할 수 있는 것이다. 개개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직업이 무엇이냐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보편적 고통에 대해서 용기 있게 분투하면서 보편적인 윤리상태를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깊은 행복의 원천이 아닐까?
다이 호우잉이 제기한 문제는 이른바 “Nature vs. Nurture” 논쟁의 문제다. 그 해답은 생물학적 결정론 혹은 유전적 결정론 그리고 문화 결정론 혹은 경제 결정론, 이 양자의 환원론 (reductionism)적 사고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오늘날 복잡성(Complexity)이론과 혼돈(Chaos)이론 등의 접근방법, Merleau-Ponty의 현상학적 맑스주의의 방법, 그리고 불교적 생명론과 인식론 등을 통한 새로운 사고의 paradigm을 통해서 가능할 것 같다. 혁명의 근본문제, ‘인간의식의 변화’, ‘인간의 윤리의식의 제고’와 관련해서 현대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J. LeDoux는 정신에 있어서 감정과 인식의 관계에 대해서 인지(Cognition)의 비논리성과 감정의 논리성을 지적하면서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주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규명하고 있다. (그의 ‘The Emotional Brain’, 뉴욕, Simon & Shuster, 1996년판).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련을 비롯한 이른바 ‘이행기 국가들’에서 ‘새로운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창출하려고 무던히 애썼건만 실패하고만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획득형질의 유전불가성’이라는 생물학적 한계 내에서 어떻게 이제까지 혁명의 한계와 결함을 극복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하고 바로 그렇기에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양전자 방출 단층 사진 촬영술) 등의 첨단 기술을 동원한 인지과학이나 신경과학의 성과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선전선동으로 일시적으로 열정적 행동은 유발시킬 수 있을지언정 변혁으로의 지속적 동참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상식적인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확대과정은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에 기초한 ‘정의감’과 ‘개방적 과학정신’으로 용기있게 불의스런 현실을 타파해 나가는 과정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당신이 이제까지 희망되어 본 적이 없는 것을 희망(希望)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모든 이들을 위한 보편 윤리?’, P. P. Changeux편, 파리, Odile Jacob, 1997년판, 2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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