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그날불패, 신화창조〔Ⅰ〕
특집 2: 지방자치와 참여민주주의
그날불패, 신화창조〔Ⅰ〕
유정희 | 관악구 신림9동 구의원
약력
1963년 출생
춘천여자고등학교 졸업(82년)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졸업(86년)
(주)대우전자 생산직 노동자로 근무(86-87년)
서점 <그날이 오면>대표(90년) (현)
생활한복전문매장 <두껍아두껍아>대표(91년) (현)
살기좋은 신림9동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현)
삼성초등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현)
연세대학교 민주동문회 상임 운영위원(현)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선거홍보물을 만들기 위해 며칠씩 밤잠을 설치곤 했단 선거운동 초반기의 그때 그 광경이 머리속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당선에 대해서는 더욱더 자신할 수 없었던 그때, 밤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투명해지는 두 눈을 반짝이며 정책을, 슬로건을, 사진을 의논하던 그 밤들이 떠오른다.
아직, 당선이라고 하는 것이 무게로만 느껴지지 그다지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자기가 찍은 후보가 떨어지는 선거만을 치렀는데, 이번에 자기가 찍은 후보가 당선이 되어 너무 기쁘다”라는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새삼스레 당선의 기쁨을 느끼곤 한다.
Ⅰ. 출마결심을 하기까지
둘째 아이를 낳고 돌이 지나갈 무렵 나는 새로운 고민을 하나 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학부모가 되는데 교육운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운동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 당시 내 고민이었다. 그런데 이번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내세운 약속중 하나가 ‘교육환경개선’이었다. 정말 환상적인 결합이다. 그러다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지역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지역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의논하기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95년 겨울, 몹시 추운 어느날 나는 한 장의 초대장을 손에 들고 그 초대장에 그려져 있는 약도를 보며 문성터널 입구에 있는 동산교회를 찾았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이 동산교회 옆 건물 4층에 있는 <(사단법인)관악사회복지>라는 단체였고 이 날은 이 단체의 개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 3년 후 98년 벽두에 지방선거에 출마해보지 않겠냐는 관악지역 주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의 제의를 받았다.
그때부터 두 달간을 출마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며 보냈다. 첫 번째는 내가 구의원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 자신이 우리 사회 변혁의 중심에서 그 방향을 올곧게 제시하는 것과 그 방향 속에서 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주민자치를 실현하 고자 하는 의지와 자격이 충분한가 하는 점이었다.
두 번째의 고민은 당선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관악구 신림9동에서 10여년간 <그날이 오면>서점과 <두껍아두껍아>라는 생활한복매장을 남편과 함께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이 두 곳에서의 일을 통해 서울대 학생들과는 일반적인 신뢰 이상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97년 4월 15일 <그날> 침탈사건 때, 대표로 되어 있는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었다. 그때 서점앞에서 연일 항의집회가 열리고, 남영동 대공분실에 항의하러 갔다가 전원 연행되기도 하고 영치금 모금 운동과 여러가지 항의투쟁은 관악경찰서에게는 경악을 지역주민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 그렇지만 지역주민들과의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하였고 사는 동네, 또는 인근상가지역의 몇몇을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더구나 신림9동에는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센터나 주민조직도 없었다. 그렇지만 대개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이 일은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Ⅱ. 선거운동은 이렇게 하였다
황금같은 두 달간을 선택의 문제로 고민을 하는데 보내고 나니 어느덧 3월이었다. 이 즈음 지방선거가 6월 4일로 미뤄지게 되어 한달 더 준비기간이 늘어났구나 라고 안도하면서 같이 선거를 치러낼 운동원 및 사무장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운동원들은 기존의 서울대내의 지역자치를 지향하는 여러 조직과 지역 내에서 주민활동을 하는 단체들과 함께 힘을 모아 꾸려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사무장이 구해지지 않았다. 5월 초 선거를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우여곡절 끝에 사무장이 구해지고 선거준비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선거팀에서 가장 먼저 의논한 것이 선거 홍보물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선거 홍보물에는 후보의 이미지 그리고 정책이 들어 가는데 내가 직접 만나지 못하는 60% 이상의 주민들이 홍보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고 작업하였다. 사진찍기도 같이 병행하였는데, 본래 화장을 별로 안 하던 나는 사진 찍기로 한날 사진기사가 빈약한 나의 화장품을 보더니 같이 가자고 한 곳이 화장품가게였다. 그래서 기초적인 화장품 몇 개를 사고나서야 사진찍기를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정책, 슬로건 문제는 홍보물 발송 전날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하였다. 결과 선거 홍보물은 잘됐다는 평가가 나와고 주민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5월 19일 법정선거 시작일.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하였다. 오전에 개소식을 하고 오후 3시 홍보차량 치장을 하기 위해서 잠시 빌린 차를 내가 직접 운전하고 나갔다가 시내버스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그때의 아찔함! 다행히도 다친 사람이 없어서 별탈이 없었지만 이후부터는 정말 각별히 몸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운전경력 6년째 최초의 접촉사고였다.)
다음날부터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오전 6:30 〜 8;30 까지 : 출근하는 주민들께 인사
오전 10:00 〜 점심 시간 까지 : 후보를 만나고 싶어하는 주민들과 만나거나 개별 방문
오후 점심 〜 3:00 : 일정 정리와 휴식
오후 3:00 〜 6:00 : 동네 돌면서 주민들께 인사
오후 6:00 〜 9:00 : 퇴근인사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 후에는 반드시 그날의 평가와 다음날의 계획에 대하여 재점검을 하였다.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위 일정에 따라 전체적으로 잘 움직였다.
선거 운동원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마치 자기일처럼 열심히 운동하는 젊은 운동원들을 보고 감동받아서 표를 찍었다는 주민들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주었다.
그 중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의 자원봉사가 두드러졌었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나와 자매결연을 맺자고 할 정도 로 서로간의 유대와 친밀감이 각별해졌다. 재정은 전체적으로 돈안드는 선거를 치렀음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사무원들조차 무보수로 일을 하였다. 그리고 지역에서 후원해준 후원금, 기타의 후원금 어느정도의 후보의 부담으로 이루어졌다. 선거가 끝나자 마자 일부 언론에 최소 선거비용으로 누군가 600만원을 썼다고 보도되었는데 아마 나도 총금액이 그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등록을 마치고 홍보물이 선관위에서 각 가정으로 배부하고 나서부터는 주민들에게 다가서는 나의 이미지는 애당초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후보 유정희’ 라는 말보다 <그날이 오면> 서점을 10년간 운영하였다 하고 하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그대로 유정회라는 인물의 이미지 ― 깨끗하고 개혁적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열심히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 ― 가 그대로 전달이 되어 왔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민들은 새로운 정말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몰아 가면서 5월 31일 열린 후보 합동 연설회 날,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판세를 굳혀버리고 있었다. 다른 두 후보에 비해 확연히 비교되는 정책제시, 설득력 있는 대안,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이야기만 전달하고 끝낸 합동 연설회는 비록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250여명이었지만 입소문을 통해 대세를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보름동안의 기간에 허용되는 선거운동의 방식은
① 후보가 직접 한사람 한사람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발로 걷기 운동
② 각 가정으로 전달되는 홍보물 1종.
③ 골목유세라고 하는 개인연설 대담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새로운 후보가 주민들에게 자기를 알리는 데에는 제약이 너무 많아 아주 불리했다.
어쨌든 ②번을 빼고 ①번과 ③번을 골고루 배치하면서 선거운동 전반부에는 ①번을 강조하였고 후반부에는 ③번을 비중있게 하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또 나의 생각을 얘기 할 수 있는 기회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곳이 마을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서울대입구 전철역이었다. 이곳에서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타후보들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주민과의 토론의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선거운동기간동안 일곱 번을 그곳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했다. 흔히 우스개 이야기로 당선자는 아이들이 먼저 알아본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선거기간 중 아이들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서 인기가 높았다. 특히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잘 모르겠지만 길거리에서 나를 보면 유정희! 유정희!를 연호 하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투표일 2-3일 전부터는 나를 알아보는 주민들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였다. “유정희 씨가 당선될 거 같아요!” 라고 말이다.
선거는 정말 온 식구가 모두 제각각의 역할에 충실히 하며 온힘을 다하는 일종의 엄청난 노동집약적인 노동이다. 친정 아버지는 노인정을 돌며 운동하셨고. 친정 어머니는 시간나는 틈틈히 반찬 해주시고 밥 해주시고 시어머니는 아이들과 가사를 책임지시면서 동네에서 선거운동 하시고 아이들도 그 기간동안 별탈없이 잘 지내주었고, 남편은 후보가 유정희가 아니라 남편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림자 외조를 하였다. 다들 ‘그날 아저씨’라 부르는 남편은 “나는 서점을 지 킬 것이지만, 후보 혼자 구의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늘 함께 활동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고 결의를 밝히곤 했다. 남편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해야 할 일과 부족한 일을 지적하면서 선거팀을 앞장서서 이끌어 나갔다. 특히 투표 3일 전부터 보여준 막판 표몰이의 저력(괴력)은 선거운동원 모두를 감탄시켰다.
선거 운동원들 대개가 서울대 학생들이었지만 직접 뛰지는 않더라도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해준 학생들이 많이 있다. 선거 끝난후 당선 인사를 하는데 웬 하숙집 아주머니가 이야기해 주길 “집에 서울대 학생들이 10여명이 살고 있는데 각각 번갈아 가면서 유정희 찍으라고 얘기하더라” 면서 정말 깜짝 놀랬다고 하였다. 흔히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이 말은 틀린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연세 드신 할아버지부터 장년의 아주머니들까지도 여자가 하면 깨끗하다고 오히려 꼼꼼하게 할 수 있다고 내 손을 잡아 주셨다. 물론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은 젊은 30대의 학부모들로서 가장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 주었다. 선거에 나서면서 나의 생각은 설사 패배하더라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거운동 내내 나에게 희망을 걸고 박수를 보내주는 수많은 이들을 보면서 나 혼자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선거에 출마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당선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 라는 것이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6월 4일!
오후 8시부터 개표하여 즉시 부재자 투표의 개표가 시작되었다. 결과 10여표의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그리고 6월 5일 새벽 2시, 2등을 457표(투표자의 5%정도) 차이로 누르고 당당히 당선되었다.
Ⅲ. 주민과 함께 하는 의정활동
애초에 관악구에서 주민추대 형식으로 정당의 추천없이 출마한 후보는 3명이었다. 그중 1명이 깝게 낙선하고 두 명이 당선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터전이 되어야 할 지방의회에서도 정당정치가 굳게 뿌리내리고 있는 현상황에서 유일하게 관악구에서 2명의 의원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앞으로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들과 지역활동가와의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올바른 변혁의 입장에서 현명하게 지역현안에 대처하면서 지방자치, 주민자치를 실현시켜나가는데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주민과 함께하는 조직적인 의정활동! 의회개원식날 주민들이 의원들에게 꽃을 달아주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지역운동을 함께 할 일꾼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으로 구의원이 된 유정희입니다.
진보적이고 건강한 대학의 이념과 실천의 터전이 될 지역과의 연대 사업을 같이할 일꾼을 모집합니다. 서울대학교와 함께 있는 신림 9동에서 생활정치를 모범적으로 실현하려는 구의원, 유정희와 다양한 사업을 같이 합시다.
지역과 대학이 함께 숨쉬는 공간을 마련합시다
①구의원 사무실을 열려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②신림9동에 어린이, 청소년 전용의 도서관, 쉼터를 만들어 나갑시다.
③ 현재의 매스컴이나 언론 등은 사회 재교육을 담당하고 있지 못합니다. 진정한 사회재교육을 실현시키는 지역주민 교양강좌를 만들어 나갑시다.
④ 이외에도 많은 활동이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의 모범적인 모습을 전국적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 대상 :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님(함께하려는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 기간 : 7월 25일까지(그 후로도 가능합니다)
☆ 연락처 : 유정희 (884-8521, 011-23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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