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
깍지: 문화에 대한 좋은 생각들
영화이야기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
‘태평천국의 문’과 ‘록키 호러 픽쳐쇼’
김현정・국사학과 95
붉은색은 항상 주위로부터 자신을 구별해 내는 색이었다. 지배하는 자들에게 고결함의 상징이었고, 저항하는 이들에게 혁명을 부르는 피의 이미지였던 붉은색은 때로 제왕의 권위가 되었고 때로 수십 년이 지나도 포기하지 못할 깃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생명이 되었다. 박애의 상징이라고도 했다. 붉은 바탕이 선명한 이렌느 야곱의 머리칼을 지나 흔치 않은 삶의 넓이를 담아내는 공리의 얼굴에 이르면 붉은색은 오랜 신비가 되었고, 은밀한 성욕의 자극과 억압이 되어 수백의 천줄기로 황홀하게 펄럭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고정된 이미지와 낯익은 기호를 넘어, 지금 이 곳, 7월의 서울에 이르면 우리는 다시 두 개의 붉은색과 만나게 된다. 신비함도 고결함도 아니어서 차지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붉은색으로 메우지도 못하고, 비록 깃발로 세워졌으나 쉽게 ‘혁명의 깃발’, ‘저항의 깃발’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듯한 두 장의 포스터, 따라서 두 편의 영화, ‘록키 호러 픽쳐쇼’와 ‘태평천국의 문’을 우리는 만나고 있는 것이다. 검은색 위의 그로테스크한 붉은 입술,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목소리로 수많은 영화를 회고하며 노래하는 ‘록키 호러 픽처쇼’와 ‘천안문의 깃발은 붉은색이어야만 해’라고 동의하게 만드는, 얼핏, ‘랜드 앤 프리덤’을 연상하게 하는 ‘태평천국의 문’ 사이에는 사실 어떤 공통점도 없을지 모른다. 영화의 시작으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두고 이곳에 왔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두 영화 사이에 어떠한 공통의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다르다는 그 지점에서 두 영화에 대한 사유가 출발한다. ‘록키 호러 픽쳐쇼’와 ‘태평천국의 문’은 정말, 너무나 다르다.
한밤의 광란과 함께 하는 일탈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낯선 땅을 떠돌던 전설은 충분히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은밀하면서도 떠들썩한 한밤의 공동체, 이방인은 배척하는 토착 제의처럼 행해지던 노래와 춤과 프랑켄 박사의 심야 플로어쇼, 그곳에서 현실이 되었다던 상식의 파괴와 가치의 전복은 스스로 젊다고 그래서 저항적이라고 칭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매혹이었을 거다. 굳이 저항과 전복을 말하지 않더라도, 컬트의 팬과 열혈 영화광을 굳이 지목하지 않더라도, 영화보다 먼저 현실을 규정하기 시작한 모든 소문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하나의 유행 혹은 드러나지 않는 자부심이 될 만 했다. 그리고 변방과 음습한 지하에서 배타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던 그 영화는 20 년의 시간이 무색한 소란스러움으로 이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수많은 영화광들이 불법 비디오를 만날 때 또는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들을 때 반드시 물어 보는 질문 그대로 ‘완전 무삭제’임을 명시하며 심야와 지하의 비밀스러움이 한낮의 안온함으로 전화한 것이다. 오랜 꿈처럼 전해지던 ‘바로 그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상식적인 관객들에게 어쩌면 생각없는 야단법석일 수도 있고 어쩌면 버릇없는 파격일 수도 있을 ‘록키 호러 픽처쇼’는 춤과 공연의 컬트 현상에 기꺼이 참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심야의 관객들에겐 참으로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은 편리하게도 바로 몇 년 전부터 하나의 유행이 된 듯하니, ‘컬트’가 무엇인지 헷갈려 하던 이들도 이제는 컬트를 지목해 낼 수 있으니 ‘록키 호러 픽쳐쇼’는 참으로 적당한 때에 개봉된 셈이다. 부르주아적 가치를 희롱하고 60년대의 반문화에 향수의 노래를 보낸다는 이 영화는 그래서, 어떠한 불편함도 주지 않는다. 영화가 주는 파격, 그리고 관람 행위 자체가 주는 만족감을 즐기면 될 뿐,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누구도 위험해 보이지 않으며, 극장 안에서 누구도 배척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살해될 정도로 유난이었던 프랑켄 박사의 하룻밤이 어떻게 무삭제로 개봉될 수 있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지난해 4월,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를 기억하지 못한다. 20년을 경유하여 먼 길을 돌아 온 영화에 아로새기는 기억의 여백은 바로 1년 전, 슬픔이 아니라 분노로 터져 나온 눈물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태평천국의 문’은 그렇게, 무심한 시간을 견디지 못했고, 키노 프라우다, 시네마 베리때… 항상 진실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온 독립적인 다큐멘터리들이 그렇듯 이슈의 중심에서 벗어난 후에 손쉽게 잊혀졌다. 거대한 국가 권력이 표면적인 검열을 포기할 때, 국가 권력과 결함한 자본의 검열이 대기하고 있으리라는 사실의 예감은 쉬운 망각으로 더욱더 현실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 단 한 번, 땅에 내려 앉는다는 큰 새의 고단한 전설로 낯설어지는 아비의 건조한 슬픔,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간 그 전설을 확인하기 위해 바쳐진 찬사와 경외와 수많은 전투의 시간들은 ‘태평천국의 문’에게는 바쳐지지 못했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1년 후, 이곳에 돌아왔다. 광장에서의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노동자, 유혈극에의 도덕적 책임감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이들의 회고와 놓쳐버린 선택을 지나 영화는 아들을 잃고 모든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여인에게서 희망을 얘기하며 끝을 맺는다. ‘피의 일요일’ 이후 학생운동 지도자 차이링이 기대했던 민중봉기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냉정함으로 끝을 맺는 편이 훨씬 깔끔하고 냉정했을지 모르나, 그 작고 진부한 희망으로, 사람들이 웃는다. 작은 깃발을 함께 쥐고 마치 ‘지금, 나와 함께 가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 듯한 그들은, 웃고 있다. 가진 것이 없어도 함께 가자고 말하는 끈질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최건의 노래로, 지친 천안문은 때로 웃었고 때로 들떴으며 때로 생기있는 무질서가 되었다. 짧은 순간, 혁명의 기운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댜 ‘광장에서의 사망자는 없었다’는 중국 정부의 공언이 죽은 자에 대한 기억으로 조롱당하는 것처럼, 6년의 시간을 두고 시작된 ‘태평천국의 문’은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의 얼굴에 어리는 생생함으로 기억의 힘을 확인해 낸다. 그러나, 너무 늦게 도착한 이 영화는 ‘록키 호러 픽처쇼’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록키 호러 픽처쇼’를 보지 않고 썰렁한 ‘태평천국의 문’으로 향한다고 해서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며, ‘록키 호러 픽처쇼’의 개봉에 진심으로 반가위하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느낌보다 목격한 모든 사실 보다 먼저 당당한 말들이 지배하는 이 곳에서, 잊혀진 시간들이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많은 전투들, 무삭제와 상영불가 사이에 존재하는 자의적이고 오만한 기준, 그리고 이슈와 이슈 사이에서 정지해 버린 영화들이 품고 있는 시간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완전 무삭제’의 영화를 편안하게 즐기기에 이 곳은 너무나 불편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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