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24시 숨은그림찾기: 내가 찾는 세상, 흔히 볼 수 없지

깍지: 문화에 대한 좋은 생각들
녹두24시 숨은그림찾기

내가 찾는 세상, 흔히 볼 수 없지

김현주・경영 94, 총학생회 문화국


“여기서도 나는 고독하다,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외로워한다,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여기서도 벌어진다. 공간은 임자를 부르고, 사람은 깃들 곳을 찾아다닌다.”

일본영화를 보러갔다. 혹은, 심야공포영화 아니면 단편영화래도 좋다. 물론 일반 극장은 아닐 것이다. 붐비는 종로3가 그 어디쯤이 아니라, 어느 대학의 강당이라면 어떨까. 혹은 그렇게 그렇게 알려진 골목 안 작은 까페일 수도 있으리라. 자, 이제 정말로 영화를 보러갔다. 아, 왜 영화만 이야기하느냐고 말하시는 분, 물론 공연도 좋고 전시도 좋답니다. 어쨌든 우리는 문화상품을 소비하러 간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향유를 위해서, 적어도 다른 것이 살아있는 공간을 만나러 간 것이니까.

자, 그러면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묵직한 문을 밀어젖히면 역시 밀려드는 예의 어둠침침함. 뭔가 일어나 고 있는 듯한 분위기. 내부는 역시 뭐가 달라도 달라보인다. 벽 가득한 소품이라든가, 낡은 영화포스터라든가 레 코드 자켓들, 혹은 그래프티 비스무리한 그림같은 것.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만하면 쾌청, 그런데 어떤 사람 둘이 와 있을까. 저기 한 커플, 저쪽은 한 영화 하는 남자겠군. 또 저기는…

이제는 깨닫는다. 여기서도 나는 고독하다.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기대가 아니면 오지 않 을 것을, 이곳 역시 바깥과 마찬가지인데. 이곳 역시 외로워한다,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몇 군데를 빼고는 애초 에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소장품들을 기꺼이 내놓은 것은, 이 공간과 이곳에 터잡은 사람 역시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이 공간은 누구를 만났을려나. 세상의 모든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여기서도 벌어진다. 공간은 임자를 부르고, 사람은 깃들 곳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관계가 그러 하듯 함께 어우러져야 할 문화 역시도 생산과 향유란 엇갈리고 고립되기만 하는군. 언제까지 서로가 서로의 등만 보고 있을건지?

녹두거리로 돌아온다.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이곳을 다시 돌아보자. 여기에는 어떤 결핍이 존재하는가. 잠깐의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 사람들을 이끌만한 무엇을 가진 곳, 혹은 누구를 만나도 적절하지 않은 기분에 찾아갈 수 있는 장소? 녹두거리에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 작년의 설문조사 결과라는데. 묵은 과제물 처리하듯 의사가 밀린 상담자 처리하듯 우리, 대화의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볼까? 라이브공연이나 만화까페, 아니면 차 한잔과 함께 영화를 원하니? 태백산맥을 예로 들어볼까? 그건 아니라구. 그럼 더 우아하길 바라니? 아니면 같이 미쳐보길 원한다 구? 아니, 음악보다는 영화가 좋아. 심야영화를 보러가는 사람은 알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독한 걸 원치 않아. 그건 그래, 옆자리 관객의 침삼키는 소릴 들어보라구. 근데, 서울근교에 대부분의 알려진 문화공간, 그게 왜 실팬줄 알아? 그건 껍데기야, 이미 상품화되어 있다구. 거기 갈 땐 이미 볼거리를 원해, 뭔가 색다른 경험을 원한 다구. 그건 공연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색다르게 보여주길 원해. 처음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는 그런 빠라면 어때? 빠 문화는 우리 걸로는 아직 낯설잖아. 무슨 빠? 재즈빠, 레게빠. 칵테일빠? 선술집? 친구와도 대화가 공허한 세상인데, 그런 대화로 뭘 남겨, 그냥 안전하게 채팅이나 하지? 아냐, 진정한 얘기를 원해. 같은 소재를 원하는게 아니라, 말하자면, 지하철 같은 칸이 아니어도 좋다는 거지. 다른 탈것에 제각기 다른 속도래도 좋아. 아예 예정지가 다르다 해도 상관없어. 그러면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거지? 그렇게 큰걸 바라는 게 아니야. 서로가 서로에게 눈길주고 산다는 걸 느낄 수 있어야 그게 사는 거야.

8월부턴 심야영업이 합법화된다. 음반법에 이어 공연법, 식품위생법들도 많이 손질된단다. 다행히도 그 쪽은 갈 길로 가고 있나·보지. 녹두거리의 쪽문으로 빠져 나오던 칙칙한 경험도, 경찰 단속 툼으로 유유히 골목 안으로 사라지던 그 스릴도 없어진다.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학생들에게 친근한 가게들이다.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이 모래성온 무엇으로 버틸 건지가 두려운 거다. 그럼 남겨진 우리들은 뭘 하지? 이제야말로 온전히 녹두거 리를 우리 것으로 받아안아 봄직도 한데. 물론 모든 변화는 소리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 이제 숨은자리 아닌 ‘우리자리찾기’에 나서볼까 - 내 세상 찾아나서는 이런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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