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1998.5.29〜7.11

신간소개 1998.5.29〜7.11

 

살아남기: 여성, 생태학, 개발 반나다 시바, 강수영 옮김, 솔, 9천 5백원

과학과 발전이란 이름에 이끌린 ‘진보’라는 환상이 결국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서구 식민 세력과 자국의 지배층의 개발과 성장 논리에 파묻혀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인도의 여성을 포함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자연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이에 바탕이 되는 정신력과 강인한 힘에 주목하고 그들과 함께 한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복잡한 이롡거 논의들에 대한 지식보다도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겨 준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자연 생존의 기본 역할을 담당해온 여성, 시장 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아온 부족민들은 어느 순간, 정확히 말해 근대 과학과 개발 기획이 실행되면서 희생되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저자 자신이 10년 동안 인도 여성들의 환경 운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얻은 구체적 사례들은 “객관적 중립성을 띠는 듯한 과학과 개발이 사실은 근대 서구 가부장제의 특별한 기획이라는 은폐된 진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의 폭력적인 지배 패러다임에 대해 시바가 제시하는 대안은 분명하다. 생태 파괴를 극복하고 여성을 종속시키지 않는,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대안으로서 ‘여성적 원리’의 회복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성별을 초월한 대안이라는 것이 어떻게 여성성과 관계가 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철저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 여성성과 자연성을 공공연히 동의어로 취급하거나, 마치 모든 여성들이 이러한 여성성을 가지고 있는 듯이 표현 된 데에 대해서는 일리 있는 의심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경 운동이 인도와는 달리 대부분 “중간층의 여성”에 의해 이끌어지는 우리의 사회에서 “여성성”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상징적인 유추를 넘어서 얼마만큼 실천적인 테제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도 충분히 고민되어야 할 지점이다.

그러나 시바의 의견대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환원주의적 근대 과학’이란 맥락 속에서 여성들의 일이 생계 유지적인 일에만 머물렀다는 사실 - ‘남성주의적’이라 불리는 체제가 특정 영역을 여성에게 강요함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 고, 이리하여 주변화되어왔고, 지배적 패러다임 속에서 비가시적 영역으로 남아있는 여성의 영역이 이러한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원동력을 이끌어 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여성들의 삶이 곧 생명 보호이며, 따라서 대안적이라는 명제는 진실일 수 있다.

이 책은 근대적 기획으로서 개발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여성, 그리고 생태를 발견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에코페미니즘”이란 생소한 단어는 그것이 실천으로 현상될 때에 지닐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뜬구름 잡는 지적 유희이거나 혹은 중간 계급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제발, 에코페미니즘이 “근대화”의 신화의 거짓이 지긋지긋한, 그리고 “근대적 개발”의 역사 속에서 억눌리고 소외된 이들에게 진정한 무기로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언론정보 95 윤혜신

 

슬픈 열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한길사, 2만 5천원

‘슬픈 열대’, 얼핏 들으면 한편의 시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제목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구조주의의 창시자로 더 잘 알려진 유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저서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던 1937년에서 38년까지의 기간 중 브라질 내륙지방에 살고있던 네 원주민 부족인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에 관한 민족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이 책은 단순한 민족지에서는 볼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 개인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 그리고 그가 왜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하는 내용들이 지적 자서전의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적 내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레비-스트로스가 본 원주민 사회는 황페한 자연 속에서 결핍으로 인해 저주받은 곳이었다. 그곳의 자연은 풍요하지 못하며 원주민들은 생존의 한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더더구나 문명 - 기술, 질병, 상업주의적 이해 등 - 의 침투로 인해 그동안 존속시켜왔던 미묘한 균형이 깨뜨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원주민 사회에서의 체험관찰을 통해 그는 서구사회가 세계의 다른 나머지 부분에 대해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오만한 전통에 반기를 든다.

그에 의하면 이 세상에 우월한 사회란 없다. 벌거벗은 채 생활하고, 나무뿌리와 거미, 유충을 먹는 부족이라 할지라도, 우리 사회보다도 훨씬 만족스럽게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명인이 비난하는 식인습속 역시 그들에게는 영혼과 육신의 일체화를 중화, 종교의식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원주민 사회의 습속을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문명화된 서구사회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뛰어난 심미안과 묘사력으로 원주민 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한 「슬픈 열대」는 난해한 그의 다른 저서에 비해 우선 재미있다. ‘구조주의 = 레비-스트로스’의 도식 정도로 그를 알고있는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언론정보 95 박혜련

 

시화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경구 외, 솔, 6천 5백원

간척사업이 국토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냥 칭송되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 내는 인간의 힘과 기술에 모두가 꿈에 부풀었고, 인간의 힘이 드디어는 자연의 조건과 제약까지도 그 앞에 무릎꿇게 만든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그러한 오만의 결과가 되돌아 인간 자신은 물론 생태계 전반을 황폐화시키는 무시무시한 재앙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필자들은 시화지구 간척사업을 ‘사기꾼없는 거대한 사기’라고 일컫는다. 왜냐하면 사업을 추진했던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물론 결국은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바로 그 지역의 주민들까지도 간척사업에의 결과에 대해 추호의 회의가 없었을 뿐더러 개발의 이익에 대한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 있기만 했을 뿐 최소한 어떤 악의를 갖고 이러한 사태를 조장한 이는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척사업을 통해 생겨난 담수화된 시화호가 얼어붙으면서 농민들의 작물은 냉해에 시달려야 했고, 갯벌이 마르며 생겨난 미세한 소금가루가 바람에 날려 사람들은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고, 주변도시로부터 흘러든 생활하수와 폐수는 오래지 않아 5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조성한 시화호를 거대한 썩은 물구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개발과 환경파괴가 그 지역의 주민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문화인류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쓰여졌다. 물론 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부재했던 시대에 기획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자연환경과 지역주민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는 대규모 사업이 그 영향과 피해에 대한 신중한 검토나 배려없이 일방적으로 기획되고 시행되어 환경과 삶을 계속해서 파괴해 나간다는 것은 단지 환경문제가 이론적인 논의와 ㄷ마론 내의 문제, 혹은 그저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총체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의 문제’이고 ‘전체적인 문제’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책의 논의 중 흥미로운 대목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강요당한 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에 있어서 그것이 재산권의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적응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모든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추가로 요구될 것이나, 바로 그러한 측면이 무분별한 개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들의 생각이다.

 

공장이여 잘 있거라 루스 밀크맨, 이종인 옮김, 황금가지, 1만원

“고・용・안・정・쟁・취!” 최근의 노동자파업이나 시위들에 가보면 들을 수 있는 절절한 구호의 후렴구다.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공식적인 통계로 200만을 웃도는 실업자수에 계속되는 기업/산업구조조정으로 실업의 문제는 노동자-대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퇴출된 은행/기업들에 대한 고용승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공식발표를 하고 허울좋은 노사정위의 협상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고용문제를 도외시한 구조조정에 반대해 금융노련과 민주금융노련은 15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며 지난 3일 공기업민영화와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던 우리나라 경제는 이번에도 결국 노동자들을 배반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로서의 삶에 미래는 있는가?

제목대로 이 책은 그에 대해 부정적인 것같다. 이 책은 최근 부품공장의 파업과 구조조정의 문제로 공장폐쇄나 대규모 감원이 예상되고 있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대립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제조업의 급격한 이탈과 구조조정의 상황 속에서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삶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저자는 1973년 이후 대량생산 경제의 핵심이었던 뉴저지주 린든에 자리잡은 GM자동차조립공장과 그 노동자들을 추적한다.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현지조사와 인터뷰의 방법으로 GM과 UAW, 그리고 현지노조의 대립과 협상, 노동자와 관리자의 일상적인 마찰과 갈등, 그리고 1980년대 새로운 기술/기계설비를 도입하고 공장폐쇄 등을 하면서 병행된 명예퇴직제와 노동자참여프로그램 등의 진행과정이 서술된다. 고용불안정의 항시적 불안과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의 단조로운 작업과정, 무자비한 군대식의 규율, 비인간적인 감독형태 등에 대한 혐오증 때문에 명퇴를 선택한 사람들, 반면 재취업의 희박한 간으성과 높은 연공(年功)으로 먕퇴를 거부한 사람들 ― 직종분류의 간소화나 노동자참여프로그램 등의 새로운 노동조직방식도 남아 있는 그들에겐 요원할 뿐 여전한 일상적 모욕과 노조가 약화되어 더한 고통만 감수해야 했다. 다만 10년 정도 더 일할 수만 있다면 연금의 혜택을 받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공장이여 잘 있거라’하며 떠날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의 10%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 올해 차산업 종사자중 12만이 실직할 것이라는 보도는 기아자동차가 국제입찰을 통해 일괄매각될 것이고 당장 현대자동차의 3천 여명 해고 발표, 그에 대한 노조의 파업강행의 연이은 사태들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위 책의 사례에서와 같은 최소한의 고용안정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채 무조건 쫓아내려하고 그것이 또 우리 경제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들 한다. 그러면서 정주영-현대는 통일을 등에 업고 금강산개발한다고 하는 걸 보면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재건과 통일이라는 명목아래 노동자-대중의 임금과 생존권을 담보로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것은 아닌가. 이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그 어떤 것도 미래가 부정적일 것이다.

사진집단 선언 93 조동원

 

1998 지식인 리포트 현대사상, 민음사, 7천원

지식인사회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책의 문제의식 이다. 계간 현대사상 특별 증간호로 출판된 이 책에서는 과연 지식인이라는 존재, 지식인 사회,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들은 무엇일 수 있는가? 의 문제들에 대해 각 분야의 필자들의 글들을 모아 실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부는 우리 사회의 소위 ‘아웃사이더’ 지식인들의 좌담을 실었다. 고종석, 복거일, 김영민씨가 참여 한 이 좌담에서는 대학 의 체제순융화와 대학 밖 지식인의 소멸, 그로 말미암은 지식인과 현실의 괴리를 언급하며 ‘지식인은 동 서기 만큼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 사 상의 황폐화와 지식의 식민화로 인해 지식인 사회 내에서도 이데올로기와 생각이 분절화되고, 그들의 관심은 늘 물 건너’에 가 있으면서 동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해 는 평가와 기록조차 부재한 풍토를 넣았음을 지적한다. 대담자들은 문화대중주의의 추세에 맞서 지식인 고유의 자기반성성을 지탱하며 지금이야 말로 ‘지식인의 반란’ 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한다.

제2부는 인문학의 위기와 그 대안을 모색하는 글들을 모았다. 김찬호의 글에서 는 대학의 수치계 량주의 와 권위주의 문화를 지적하며 서양의 학문체계, 국가 권력, 자본의 힘 등 외부의 힘에 휘둘려 온 역사 속에서 우리 지식 사회의 객관성과 주관 성이 각각 확획 일적, 평면적 논리와 페쇄적, 편집적 매니아문화로 경도되었다고 주장 하며 ‘시민적 공공성’의 문화야말로 우리 지식사회를 살림 수 있는 대안이라고 이 야기한다. 이남호는 대학에 대해 ‘고루하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다’라는 대립되는 두가지 비판이 모두 너무 현실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며 인문학은 인간성을 용호하고 인류의 지적유산과 아름다움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시장논리와 무관하게 존 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최갑수는 분과화되고 고립된 기존의 전공중심 분 과학문체계에 대해 비판하며 그 쇄신의 방향으로 학문의 상관성을 확보하고, 영상・정보매체의 등장 등 지식생산방식과 주체화 양식의 변화를 인문학이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학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도 새롭고 참신한 제안들을 하고 있다. 또한 이진우는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인문학자들의 ‘고상한 목소리’들이 일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며, 그것들이 위기의 원인이라기 보다 결과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 원인이라면 인문학이 단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과학과 기술에 의한 인간의 식민지화가 전반화된 현실 속에서 ‘의미’가 사라지고 물질적 행복이 절대화되는 추세의 불가피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문제는 인문정신이 바로 이런 시대의 비판정신의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혹은 않는 풍토에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 필요한 것은 ‘학’에 목매다는 ‘고상한’ 지식인들이 아니라, 주체적 삶의 터전으로부터 의미와 방향설정의 지식을 생산하는 진정한 인문정신의 지식인이다.

제3부는 사회과학, 문화, 생태학 등 인문학 이외의 지식인과 지식사회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사회학의 관점에서 IMF사태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분석하고 학문적인 연구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김호기의 글과 사회과학의 시대였던 80년대와 문화과학의 시대였던 90년대는 반성적으로 돌아보며 90년대 사회과학의 나아갈 바를 타진하고 있는 신현준의 글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글이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실패했는가 한국정치연구회, 삼인, 9천 5백원

최근 IMF사태와 관련해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본서는 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한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타이(인도네시아와 타이를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범주에 둘 것인가는 본서에서도 언급되듯이 상당한 논란꺼리이지만) 등 각국이 IMF시대를 맞은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IMF라는 단어가 TV와 신문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며, 우리의 모든 일상을 지배한 지가 반년이 넘어감에도 아직 이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기만 하다. 현실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親IMF적,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지만,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갈피를 못잡아 가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논의의 분분함아 정권의 주도적인 재편전략에 대해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좀더 확실한 입장을 가친 ‘공격적인’ 논의를 기대했던 바와 달리 본 저서는 다분히 열거식이다. 한국의 현 위기에 대한 설명, 그리고 각국의 위기와 대응의 차이점 등에 대한 대략적 개괄과 이미 여러 곳에서 언급된 ‘재벌책임론’, ‘구조적 문제론’, ‘단기적 금융위기론’ 등을 열거해 놓고 있다. 그러나,현재의 위기가 동아시아 전체에서 함께 발생,전개되고 있고,세계 자본주의 동학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후자의 범위와 한국이라는 일국적인 차윈에서 주로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전자의,어떻게 보면 매개적인 범위라고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본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올까? 사실, 각 장마다 필자가 다르고 다루는 범위가 틀리기 때문에 본서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장과 결론을 찾기는 어렵지만, 마지막 장 「동아시아 경제 위기의 정치 동학」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하다.

본서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아시아’라는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아울러,국제경제질서라는 ‘보편성’에 편입하지 않을 수 없는 작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특수성을 모두 던져버리는 태도도 경계해야 하겠지만, 결국 한국사회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에 대한 사회의 민주적 통제라는 보편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보편성의 수입이 정치적 보편성의 수입을 가져다 줄지도 의문이지만,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이 ‘보편성’을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또한, 3부 1장 「국제 금융 자본과 IMF ‘관리’」에서도 밝히고 있둣이 IMF로 인한 경제의 구조조정은 발전된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질서재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서구 선진국들이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시대 동안 얻어 놓았던 민주적 사회통제나 기본적 민주권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다.그나마 민주화의 진천을 통해 이를 얻어나가는 과청 속에서 발생한 IMF위기는 이 모든 ‘당연한’ 권리들을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당당히 거부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대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이러한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지만,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흔들리는 분단체제 백낙청, 창작과비평사, 7천 5백원

정주영씨 일가가 ‘현대’의 자랑스런 깃발을 날리며 소떼들과 함께 판문점을 넘어가는 모습은 비록 취재가 제한되어 ‘우리쪽’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탓에 생생하지는 않았지만 ‘갈 수 없는 땅’을 고향으로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뉴스거리로, 두고두고 되풀이 되어 방송전파를 타고 있었다. 며칠 후에는 96년 가을 무렵을 닮은 ‘잠수함 사건’이 터지고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 ‘햇볕론’에 십자포화를 가하기 시작했다……학생회관 한 편에서는 모금함을 들고, 북녘의 동포를 돕기 위한 금요일 점심굶기 운동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소수의 학생들이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흘끔 쳐다보기만 할 뿐,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정주영과 소떼, 잠수함, 그리고 텅빈 모금함….

1998년 여름, 여전히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분단이라는 현실.

선거 때만 되면 변함없이 터지는 간첩사건은 공안당국만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데가 있었고, ‘때를 잘 맞춰’ 간첩을 내려보내는 북한에 대해 속절없이 원망을 보내던 사람들은 ‘분단체제’라는 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남북한이 각기 다른 ‘체제’를 가졌으면서도 둘이 교묘하게 얽혀 분단상황을 재생산하는 현실”쯤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분단체제란 말은, 민족문학진영의 영문학자가 제시하여 통일을 논하는 사회과학자들의 입에 이러쿵저러쿵 오르내리다가 어느 순간엔가 남북한의 현실을 설명하는 하나의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1998년. IMF 구제금융이라는 ‘6.25 이후의 최대국난’에 직면한 남한사회와 최악의 식량난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는 북한사회. 소 판 돈 70원을 소 떼 천마리로 불려낸 남한자본은 남한민중이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유람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고립된 ‘사회주의’ 북한경제가 자본주의의 품에 사뿐히 안길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햇볕론은 무시무시한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디고 살아남았고, 민간통일운동은 정부에 일찌감치 자리를 내주고 저멀리 나동그라져 있다.

보통명사가 돼 버린 분단체제란 말에 더해서, ‘흔들리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흔들리는 분단체제』는 이러한 다소 혼란스런 현실에 하나의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저자는 “IMF 사태가 우리 현실에 대해 얼마 전까지도 별다른 의문없이 통용되던 온갖 담론을 일거에 재검토의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분단체제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 보고 책을 펴냈다. 북쪽의 심각한 식량난과 남쪽의 경제위기는 분단체제가 굳건히 유지되던 상황에 맞춘 체제운영 및 발전모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데 따른 한층 본질적인 위기이고,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바 ‘흔들리는 분단체제’이다. 그러므로 분단체제는 흔들릴 지언정 ‘분단체제론’은 이제 한층 활발하게 논의되어 분단체제를 극복하는데 일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94년의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이 분단체제론의 개념 규정과 이를 둘러싼 논쟁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이에서 한발 더 나아가 분단체제론의 총체화・구체화를 시도하고 있다.

1부는 지난 97년 열렸던 안동대학교 한국학 국제학술대회 발표논문을 수정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와 IMF사태를 맞은 뒤 새로 집필한 〔IMF시대의 통일사업〕로 구성되어 있다. 2부는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 간행 이후 쓴 논문 아홉편으로 구성돼 있다. 크게 보아 1부에 분단체제론, 분단체제극복운동에 관한 저자의 견해가 집약돼 있으며, 2부에는 김일성 사망 직후 한반도 정세와 분단체제론, 분단체제극복과 생태학적 상상력, 독일과 한반도 통일에 관한 하버마스의 견해, 통일사상으로서의 송정산의 건국론 등 분단체제론을 둘러싼 논쟁 및 다방면에서의 접근을 통해 분단체제론이 구체화되어 있다.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양진영 사이에서 한 발 비껴나와 중도주의를 표명하는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은 94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좀 더 나아간 부분이라면 ‘복합국가론’과 ‘다국적 민족공동체’라는 통일 과정에의 구체적 구상을 내놓고 있다는 것과 노동운동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사회운동과 정부 기업의 역할까지 아울러 분단체제극복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점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이고 경직된’ 논의를 벗어난 ‘현실주의적이고 중도적인’노선이 세계체제변혁에 기여하면서 남북한 민중이 공히 잘 살 수 있는 통일한반도를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북으로 향하는 천 마리의 소 떼를 보면서, 금강산 개발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제법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처럼 달라진 통일환경에서 내놓은 ‘흔들리는 분단체제론’에 대해 ‘흔들리는’ 사회과학자들이 어떠한 평가를 할지가 궁금해진다.

사회교육 95 이정우

 

시대가 선비를 부른다 정옥자・금장태・이광표 외, 효형출판, 1만원

이 책은 정도전에서 박은식, 신채호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쟁쟁한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을 개략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민중혁명을 주창한 아나키스트였던 신채호는 선비정신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가? 사람들은 선비라는 말에 대해 조선시대, 고리타분, 금욕주의적인 생활, 예의범절, 당쟁을 일삼는 관료집단 등, 다소 모순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린다. 이에 대해 필자들은 선비에 대한 기존의 평가가 부당하며 ‘사회의 근본을 지탱하는 가치체계가 흔들리’는 이 시대의 상황이 ‘사회의 양심이자 지성이며 인격의 기준’인 선비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진보와 평등을 추구하는 근대적 가치의 담당자로서의 새로운 선비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진보는 과거를 알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과거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인 지금의 상황에서 선인들의 시대인식과 삶의 자세를 보편화시키려는 노력은 일단 반갑지만, 동시에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늘날 선비를 불러들여야 하는 이유가 매우 모호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인지, 선비정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지, 일부의 지성인들의 자세여야 하는지에 대해 필자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쇠퇴한 도덕 회복을 위해 선비정신을 되살리자는 주장처럼 들리는 대목도 있는 것은 그래서일까.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선인들의 삶에 대해 역사적으로 충실하게 다룬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욕망의 정복 페터 비트머, 홍준기・이승미 옮김, 한울아카데미, 1만 4천원

어려운 라깡읽기의 손쉬운 욕망의 길.

최근 지적 담론의 유행 - 유행이 나쁜 것은 아니다 - 의 중심에 서 있는 라깡이나 들뢰즈 등의 글쓰기는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려운 이유는 기존의 논의를 뒤집는 새로움에서 오는 낯설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용 자체가 난해할 수도 있다. 아마 두 사람의 담론은 둘 다일 것이다. 이런 글일수록 2차문헌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재미 있는 것은 이런 2차 문헌보다는 원전이 더 잘 팔린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2차 문헌이 매력적이질 못하거나 아니면 원전주의의 성실함일 수도 있고 지적 허영의 결과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2차문헌이 매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들 문헌 대부분 우리의 지적 담론 속에서의 해설이 아닌 원전과 같이 다른 나라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더욱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고 또 이를 급히 소개하다보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 때문에 우리는 ‘욕망의 전복’을 기대반 우려반 맞이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인이고 다분히 독일에서의 라깡 읽기 맥락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독일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 재미 있다고 한 것은 라깡과 같은 프랑스권이 아닌 지역에서의 해설서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더욱 낯설음의 원인일 수 있지만 우리같은 비프랑스권 지역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근한 텍스트일 수도 있다.

라깡 읽기의 2차 문헌은 최대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라깡 글쓰기의 맥락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이 시점에서 왜 라깡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첫 번째 맥락은 매우 만족스럽고 둘째는 좀 아쉬운 점이 있으나 이는 첫 번째 조건 속에서 어느 정도 충족되어 있다.

이 책은 라깡의 전후기 저작 모두를 포괄하여 ‘욕망’이란 핵심 문제설정을 중심으로 재구도화를 명쾌하게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2차 문헌으로서 더욱 돋보인다.

욕망의 발견 거울단계(2장)
담지자 상징계(3장)
핵심 주체(4장)
수사학 환유와 은유(5장)
실현 사랑과 성(6장)
교차 근친상간과 근친간 금지(7장)
상실 정신병(8장)
순회 네 가지 담론(9장)
전제 보로메우스의 매듭(10장)

그리고 욕망이란 문제설정이 분명한만큼 라깡의 난해한 글쓰기에 깊숙히 들어가 손쉽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라깡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이 더욱 난해하게 여기는 라깡 담론의 공식들을 설명한 ‘욕망의 순회’는 라깡은 어렵다는 기표를 오히려 쉽다는 기표로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욕망이란 단일한 문제설정은 프로이드, 구조주의 언어학, 정신병 이론 등 라깡의 생각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맥락에 대한 설명으로 복수화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라깡에 대한 비판 담론을 주석에서라도 적절히 수용했더라면 라깡을 잘 모르는 살마들이 라깡에 더욱 진득하게 접근하는 전략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깡을 해설하는 것이 단순히 라깡을 이해하자는 수준에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라깡을 읽고자하는 욕망을 홀대하는 것이다. 역자들의 자연스런 번역과 깔끔한 역주에 박수를 보내면서 개정판에선 단순한 옮긴이의 글이 아닌 풍부한 맥락의 글과 색인 따위의 독자에 대한 서비스가 보강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라깡 원전에 대한 제대로 된 번역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2차문헌 번역이 앞서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라깡으로 밥먹는 사람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슬옹 (연세대 강사, 국어학 전공)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글쓰기(와) 철학 김영민, 민음사, 9천원

철학자로서 우리 인문학에 대한 남다른 통찰과 비판을 해온 김영민(전주 한일신학대학 교수)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을 담은 새 책이다. 철학과 교수로서 문학비평을 해 온 그의 이력은 이 책에서 박완서와 시인 김승희의 글쓰기에 대한 독특한 비평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경계넘기(철학과 문학비평의)는 글쓰기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글쓰기를 통한 인문학의 위기넘기 전략으로 이어진다.

우선, 김영민은 글이란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요 껌데기에 불과하다는 ‘형식/내용’의 이분법을 거부한다. 즉, 글이란 텍스트 너머에 숨겨진 완결되고 깨끗한 진리임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인 상대주의나 해체를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에 의하면, 글쓰기는 불가능을 예감하면서도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임시변통물을 생산해내는 몸부림이며, 그 과정 자체가 성숙을 내포하고 있는 행위이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논문중심주의, 원전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논문’이라는 형식의 역사성, ‘원전’이라 불리우는 것의 구체적 역사성에 대한 인식만이 진정한 글쓰기 철학, 글쓰며 철학하기를 가능케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우리 학계의 논문쓰기 풍토는 삶과 유리된 폐쇄된 개념끼리의 소통회로이다. ‘글이 존재를, 존재가 글을 범람하는 글’, ‘무의식과 의식이 소통하는’ 꾸준한 과정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성숙을 지향하려면 우리의 글쓰기는 텍스트의 순수성에 대한 결벽증을 버리고 삶과 통풍되는 잡된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글쓰기는 머리중심주의에서 손가락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쓰는 행위 자체가 갖는 물질성이 우리의 존재에 침투해서 작용하는 성찰성에 주목하는 이 책은, 그러나 현란한 수사로 인해 읽기에는 그리 녹록치 않은 글이다.

언론정보 95 박혜련

 

누가 역사의 진실을 말했는가 크리스티안 마이어 외, 이온화, 푸른역사, 1만 5천원

우선 이 책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상당히 두꺼운 분량이면서 서른가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단 펼치고 나면 손에서 떨어지지 않을만큼 재미있다. 각 장이 전체의 흐름 속에서도 제나름의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는 이런 긴박감이 아쉬움일 수도 있겠지만.

‘법정세계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독일 헤센방속국에서 방송한 기획 ‘재판: 역사 속의 법과 정의’를 주제로 다양한 필자들이 각 시대를 대변하는 재판을 선정하여 서술한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역사 속의 재판인 소크라테스의 사형에서부터 20세기 자본과 정의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사건들을 포괄하고 있어 판례집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깝다. 그러나 해마다 법학개론을 신청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판관을 꿈꾸며 두꺼운 법전과 기본서를 메고 다닐 학우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질문들을 먼저 접할 것을 권하고 싶다. 어떠한 법철학 교과서보다도 현실적이면서 솔직한 질문을 이 책은 던지고 읽는 까닭이다.

‘법은 정말로 정의로울 수 있을까?’ 정의는 재판을 통해서 정말로 실현도리 수 있는가? ‘힘 없는 법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편저자, 우베 슐츠의 견해이다. 물론 여기서 펼쳐진 저자들의 서술이야말로 지극히 객관적이라고, 그러므로 공정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또한 독일인의 입장에서 서술된만큼 ‘기독교에 기반한 서구문화’가 서술의 바탕에 깔려있음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해묵은 질문인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부당하였는가를 생각해보라. 헌법은 국가와 생사를 같이하는 것이니 법이 체제를 위해 목숨을 바침은 당연하지 않은가. (당시의 민주체제 안에서 그의 사고는 체제전복적이었다!) 예수의 처형의 책임을 로마가 아닌 유태인에게로 넘긴 성서의 서술이 빚어낸 2천년간의 소수인종 박해는 또 어떠한가. 남자들만으로 판결했던 영아살해 미혼모의 사형선고는, 이제 이 땅에서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언제나 법은 보수반동주의자들의, 그리고 권력 쥔 자의 양날선 칼이 아니었던가?

법은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가 ― 이 질문은 정치가나 법조인에게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총학생회 문화국(경영 94) 김현주

 

상상하는 한국사 7: 역사의 희망과 희망의 역사 김정환, 푸른숲, 9천 8백원
바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2 김송달, 거름, 1만 3천원
한국사이야기 1-4 이이화, 한길사, 각 권 9천원

현재에 대한 조망이 절실하게 요구될 때, 역사는 다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한다. 이러한 뜻에서인지, 근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기술이 꽤 풍부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꺼번에 출간된 이 세 종류의 역사 이야기들 역시 서로 다른 시각에서 한국사를 다루고 있다.

7권, 근・현대 편인 「희망의 역사와 역사의 희망」을 끝으로 완간된 <상상하는 한국사>는 문인 김정환이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려는 시도를 잘 드러낸 역작이다. 고대의 이야기인 <신화와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한국 현대사의 서장인 일제 식민지 시대와 97년 대선까지를 다루면서 저자는 한반도의 국제성이 심화되어 가는 현재 시점을 이끌어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로 귀결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존의 시간・사건별 역사서 진행 방식에서 다소 자유로운 기술과, 사진 등의 풍부한 자료가 역사적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해줄 만한 책이다.

1권이 이미 출간된 바 있는 「바로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사」 2권은 1945년부터 1961년까지를 대상으로 하여 해방정국을 다시금 조명하고자 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우리 역사의 화두는 민족과 통일, 민중, 열정 속에 있다. 책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저자의 역사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족 평화통일의 단초를 열고 금기시했던 역사적 성역들을 들추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해당 시기의 역사를 민족반역자, 친일파, 부일세력, 간상모리배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고발되어야 하는 역사로 기술하고자 하며, 친일파의 뿌리와 해악 그 척결 과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저자의 사관이 매우 뚜렷이 부각되고는 있으나, 해방정국에 대한 보다 복합적인 문제의식을 포괄해내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다소 곡해될 가능성이 많은 격정적인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으나, 꼼꼼한 자료 기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편 이이화씨의 「한국사 이야기」는 민족의 기원에서부터 일제 식민지와 해방기까지의 역사를 전 24권으로 방대하게 다룰 예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1권-4권에서는 민족의 형성에서부터 삼국시대와 발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장구하고 풍요롭습니다.”로 시작되는 머리말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과 함께 해 온 역사 발굴・기술 작업에 대해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을 위해 유익하고 재미있는 우리 역사를 새롭게 써 보고자 합니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는 어느 영웅이나 지배집단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역사를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민중들의 삶 자체이기 때문에 민족사, 생활사, 민중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목에서처럼 한국사를 재미나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는 점할 수 없었던 쉽고 재미있고, 가까운 역사책이 될 것 같다. 또한 무엇보다도, 방대하고 소상히 이루어지는 작업부터가 매우 소중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국어교육 94 금현진

 

더불어 숲: 새로운 세기의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엽서 신영복, 중앙, 7천원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이 시대에는 참으로 많은 여행기가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열망은 또한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진행되기도 합니다. 문학기행, 문화사적기행, 미술사, 건축, 음악…특히 다채로운 사진과 도판을 겸비한 해외여행기가 서점판매대에서 우리를 손짓할 때 그 유혹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누구나 해봄직한 이런 여행기 한권쯤 더 나온대서 별다른 감흥이나 있을라구요.

다만 신영복, 그 이름 때문에 아름다운 이 작은 책을 펼쳐보았던 것이지요.

새삼스럽지만, 약력을 들춰봅니다. 1998년 사면, 복권… 그렇습니다. 선생은 장기수였지요. 0.7평, 그 작은 공간에서 20년을 보냈습니다. 어찌 바깥이 그립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세계여행이라, 그야말로 꿈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선생은 흥분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오히려 이전의 ‘사색’과 ‘나무야’에서 보여준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사색과 짙은 묵향은 제국의 현란한 풍광 속에서 더욱 깊어진 것도 같습니다. 선생은 시공을 넘나들고, 인간사 모든 갈등과 대립을 아프게 지켜보면서, 또한 마음의 심연에 일렁이는 파문을 다스리면서, 그 마음조각들을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도 친근한 힘찬 붓글씨만이 아니라 말이 아니어서 더 절실한 그림까지 더불어서 말이지요.

곧 8월 15일이 됩니다. 양심수의 사면, 복권이 다시금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선새으이 책을 만나니 더더욱 아직도 감방에 계신 양심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군요. 기존에 전향하지 않으면 사면대상에서 일절 제외시켰던 규정을 완화하여 준법서약서(?)만 받겠다는 정치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너 말장난과 거짓부렁이는 그만하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이제는 제발 자유를 되찾고 싶습니다.

선생의 여행은 계속될 모양입니다. 이제 다시금 조용히 그분의 여행을 지켜보기로 하지요. 물론 선생의 엽서를 기다리는 낙으로 살지는 않으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폭염에도 장마에도 세계 어느 마을에서나 이어질 것이기에.

총학생회 문화국(경영 94) 김현주

 

한국문학의 관계론적 이해 최유찬, 실천문학사, 1만 5천원

우리학계에서 장르론에 대한 논의는 조동일이 『한국 소설의 이론』에서 서정, 서사, 교술, 희곡의 네가지 갈래를 제시한 이후 다소간 소강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우선 장르론 고유의 딜레마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장르론이 분류를 위한 분류를 행하는 작업인지, 아니면, 이러한 논의를 통해 작품을 보다 생산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많은 연구자들이 장르론의 문제를 비껴가도록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한국문학의 관계론적 이해』는 장르론의 이러한 딜레마를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가능한 직접적으로 논의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가원의 『조선문학사』와 유협의 『문심조룡』, 그리고 조동일의 ‘이기론적 접근’에 영감을 받은 필자는 장르론의 딜레마가 결국 서구의 도구적 이성과 형식논리에서 비롯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관계되는 사물들이 서로 의존하고 보완하며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사고’를 통해야 장르론 고유의 가치가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장르’를 고정된 것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이때,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로 관련되거나 형상의 양태, 또는 생성의 연원이 유사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장르를 설정하고 유비적(analogy) 방법으로 그 문학현상을 고찰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작품의 실체를 상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본질에 대한 탐색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어떤 면에서 데리다나 마이클 라이언의 해체적 입장과 더 잘 부합하는 듯하다. 필자의 작업이 빛을 발하는 곳은 바로 『토지』를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이 구체화되는 부분이다. 이들 논의가 얼마나 과학적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지, 또한 책의 후반부에 소개된 리얼리즘적 논의를 통해 필자의 사고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살피는 것이 이 책의 백미가 될 것이다.

국어교육과 석사과정 조하연

 

박종철 평전 김태호・최인호, 박종철출판사, 8천원

그 많은 생명들이 스러져 갔으나, 오늘까지 기억되는 이름은 많지 않다. 불과 10 년, 20년 전의 일인데도 까마득한 과거의, 전혀 다른 세대의 일인 것처럼 잊혀져 간 이름들 그 속에 그래도 박종철의 이름은 오롯이 남아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은폐 조작 사건’. 그의 이름은 그렇게만 전해지고 있다. 김진균 교수는 박종철 고문 치사 은폐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45년 이후 줄곧 강화되어 온 ‘강압적인 안보 지배 체제’가 지탱할 수 없게 한 균열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다. ‘거대한 강압적 안보 지배 체제의 축대에 한 개의 돌이 빠져 내리는 형상’. 바로 그랬다. 87년을 꿰뚫고 일어난 박종철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 으로, 결국 80년대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변혁의 해로 기억되게 하는 아픈 계기였다.

여기에, 이제는 이름만 남아있는지도 모를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와, 그가 살다 간 우리 80년대의 이야기가 있다. 『박종철 평전』은 89년 <소나무>에서 출판되어, 많은 선배들의 손을 거쳐간 「그대 온몸 깃발 되어」를 박종철 출판사에서 수정・보완한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어린 시절과 1984년, 85년, 86년, 그리고 87년 마지막 투쟁까지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투사였던 박종철의 생애와, 그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다. 또한 그를 통해서 언더써클과 학생회 건설 시기인 80년대의 학생운동 풍토, 구체적 실천 모습 등이 그려지고 있기도 하다.

박종철은 1965년 4월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그리고 재수 시절을 거쳐 1984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입학하기까지 그는 신의롭고 부모를 거역할 줄 모르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사회 구조와 모순에 대한 인식과 정의감은 대학 입학 전부터 길러지고 있었다. 그가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계기는 1학년 봄, 당시 핵심적인 운동 구조였던 언더써클에 가입하면서부터였다. 그는 학내외에서의 숱한 탄압과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하루 치열한 투사로 성장해 갔다. 결국은 당시 대부분의 학생운동가가 그러했듯이 1986년 4월 청계피복노조가 주도한 가두 시위 도중 연행, 구속되어 3개월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그의 죽음은 그가 몸담았던 언더써클의 선배였던 박종운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 6.29 선언과 김세진 열사의 분신을 거쳐 경동적으로 고양된 87년 1월, 박종철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선배 박종운의 거처를 취조받으며 고문을 당하던 중 운동의 대의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문치사 의혹에 둘러싸인 한 젊은 죽음을 뚜렷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으로써 이름을 남긴 과거의 한 파편이 아니라 80년대 한국사회와, 겸허함과 치열함으로 그 모순의 담지자를 자임했던 학생운동, 90년대의 토양인 동시에 거울이 되어 줄 반성의 밑거름을 담고 있는 커다란 생애이다.

「그대 온몸 깃발 되어」를 서점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금, 「박종철 평전」의 출간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더 이상 열사의 이름을 묻지 않는 대학인들에게 날카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사수하라! 사수하라! 동지와 혁명의 대의를 사수하라! 이 몸 바쳐 우리 이긴다면……!’ 박종철 열사의 혈흔이 담긴 마지막 되뇌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국어교육 94 금현진

 

현대사회와 대중문화 강현두 편, 나남출판, 2만 2천원

대중문화에 관한 책이 적잖게 나와있지만, 딱히 교과서로 쓰일 만한 개론서나 이론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으로 엮어진, 다양한 저자들의 다양한 논의들을 담은 대중문화론에 관한 개론서라 할 만 하다. 대중문화의 역사, 대중예술론, 매스미디어론, 대중스타론, 이데올로기 논의 등이 각각의 장으로 체계적으로 묶여있고, 실린 글들의 수준도 고전적인 논의로부터 현대적인 텍스트 분석까지 고르게 선택되어 있어 대중문화에 관한 일반일들의 교양서로도 적합하다.(문화에 대한 논의는 난삽해지기 쉬운데, 실제로 많은 번역서들이 초심자가 읽고 이해하기에는 난삽한 경향을 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위시한 비판이론에서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론적 논의를 망라하고 있어 대중문화 연구이론의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있게 개괄하기에 적합하다. 마셜 맥루한, 엘빈 토플러, 스튜어트 홀, 아서 버거 등 독자적 이론적 색채를 띄고있는 권위있는 필자들의 대표적 글들을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언론정보 95 박혜련

 

소수문화들의 정치학 고길섶, 문화과학사, 4천 5백원

어느 일요일 저녁 친구의 호출을 받고 대학로로 간 일이 있다. 약속이 어긋나 그녀가 독립영화제를 보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마로니에 공원을 어슬렁거리며 마침 가지고 나온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한컨에선 그룹지은 젊은 친구들이 경쟁적으로 댄스를 선보이고 있고 반원형의 야외공연장에선 무명가수들의 자선공연이, 그리고 그 너머엔 밴드반주의 찬송가가 질세라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는 구석구석에 부랑자들이 죽은 듯 옹크려 자고 있거나 퀭한 눈을 부릅뜨고 아랑곳없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입추의 여지없이 메우고 있는 제각각의 사람들 물결에 압도당하며 도대체 이 모든 사람들을 여기에 모일 수 있게한 힘이 무얼까 궁금해졌다. 머리를 물들이고 화장발을 세운 한 쌍의 날나리가 너무도 진지하게 장구연습하는 모습에 렌즈를 들이댈 때 마침 친구의 호출이 왔다. 그리곤 나도 그녀와 함께 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책에 의하자면 그 날 밤의 대학로를 나는 ‘소수문화들의 리좀적 세계’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인가.

다소 생소한 저자의 ‘소수문화’ 개념은 기존의 ‘하위문화론’에 대한 비판 속에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지배문화의 안팎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시켜온 하위집단들의 특정한 문화양식을 연구하는 하위문화론은 저자가 보기에 여전히 근대적 조직이미지 - 수목모델과 위계적 이분법, 그리고 지배/저항의 단선적 구도에서의 저항이미지에 갇혀 있다. 관료조직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운 수목모델은 파시즘적 욕망의 조직이미지에 다름아니며 차별화와 배제를 내포한 위계적 이분법은 우리가 일상/담론에서 맞닥뜨리는 권력관계를 구획짓는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사회적 생산논리를 효과적으로 지배해왔다. 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저항이미지도 의식적인 행위로만 국한되어 인식되기 쉽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소수문화들에 리좀(뿌리가지)모델을 부여한다. 리좀모델은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같이 중심화/지배화의 경향없이 유동적인 접속과 이질성 그리고 차이들을 생산하는 복수성/생성의 원리로 움직인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앞에 놓여진 제도화된 삶의 방식들이 사회적 가치들을 획득하기 위한 성공의 길일지언정 꼭 그에 발맞출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가끔 그런 정해진 길에서의 탈주를 욕망하 며 뭔가 다르고(변이) 새로운 생성의 힘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그런 욕망들을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장애물들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영역들을 구축하고(자기조직화) 개별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세적이고 구체적인 실천들의 마주침 속에서 사회적 관계들을 변화/확대시켜갈 수도 있다. 이것이 곧 기존의 영토화된 삶의 방식과 계속해서 탈주하려는 개인들을 붙들어 매는 자본주의와 근대적 규율의 재영토화에 맞서 탈영토화하는 주체화의 과정이다. 이는 그저 저항과 탈출을 넘어서 스스로의 삶을 개방적으로(열린 체계),역능적으로 구성해가는 소수(문화)주체들의 횡단적 문화실천이다. 단일한 정체성을 거부하는 횡단적 주체들의 수직적 사회 관계망을 넘나드는 횡단성의 정치.

이렇게 소수문화들의 정치학의 지도를 그리는 저자는 너무 과도하게 현대프랑스 철학으로부터 이론/개념들을 빌려와 마치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그것들로 자신의 논의를 펼치는데 스스로도 언급한, ‘이론/개념으로부터 출발해서 문화현실을 거기에 복종시키려는 하는 것은 이론적 실천과는 무관한 이론주의적 발상’(『문화과학』12호, p153)의 혐의를 지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의도대로 ‘문화가 실천되는 현실지형에의 담론적 효과생산’(p149)을 위해서도 ‘역동적인 문화현장들의 연구 와 분석’, 즉 현장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찝찝함에 동감한다면 저자의 『문화비평과 미시정치』(문화과학사, 『그날에서 책읽기』 2호 참조)로 논의를 심화시켜보거나 『반문화』(창간호, 1998.5)의 몇가지 관련 글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소 고전이지만 폴 윌리스의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 도….

그 날 밤의 대학로를 진정 ‘소수문화들의 리좀적 세계’로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밝아오는 아침에 대학로의 소수화주체들이 다시 돌아갈 노동현장(공장 또는 사무실), 학교, 가정, 또는 그냥 그 자리인 대학로에 대한 저자의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보다 진지한 공부가 필요할 듯하다.

사진집단 <선언> 93 조동원

 

IMF와 한국사회 위기 논쟁 김성구 외, 문화과학사, 4천 5백원

김성구, 「경제위기와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에 관한 몇가지 쟁점에 대하여」
 김세균, 「IMF관리체제, 김대중정권, 그리고 노동운동」
 조희연, 「IMF 지원체제와 김대중정부하의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IMF관리체제와 김대중 정권의 성립이라는 조건 속에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첫 번째 논자인 김성구교수는 현시기 위기 정세의 평가와 위기 원인에 대한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위기의 원인이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이하, ‘국독자')의 축적위기라고 진단하고 따라서 신식민지 국독자를 지양하는 민주대안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김세균 교수는 김성구의 논의는 국독자보다는 오히려 종속성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는 IMF처방의 성격과 문제점, 경제위기에 대한 제반 견해들 및 김대중정권의 성격을 살핀다. IMF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공세에 생존권을 위한 민주노총의 적극적인 대응만이 현시기의 위기를 타개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임을 주장한다. 조희연은 한국사회가 60년 이후의 고도성장체제의 경제적 전환과 개발독재적 예외국가의 정치적 전환의 이중적 전환과정에 있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배층의 신자유주의적인 합리화에 대응하여 국가 및 제도정치를 ‘전방’에서 견인할 수 있는 인식과 자세를 갖추는 것이 사회운동의 과제라고 제시하고 있다.

위기의 원인과 대안에 대한 필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의 당면 위기를 인식하는데 유용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교육 95 이유진

 

시앙스포 총서
 1권 민주주의로 가는 길 기에르메, 임미경 옮김, 한울, 1만 4천원
 2권 세계화 올리비에 돌퓌스, 최예린 옮김, 한울, 1만 7천원
 3권 쿠데타와 공화정 모리스 아컬룽, 이봉지, 한울, 1만 4천원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 걸친 문제들을 프랑스 고등정치학교의 필진들이 명쾌하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생생한 이해와 비판을 제공한다. 첫 번째 ‘민주주의로 가는 길’의 저자는 공산주의체제가 붕괴한 이후 만병통치약으로 등장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는 거리를 두고,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민주화의 개념정의를 내린다. 다음으로 근대 민주주의체제의 성립과정을 살펴보고, 끝으로 민주화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장애가 수반되며, 민주주의를 향한 위태로운 시도의 성공이나 좌절에서 위정자들이 맡은 몫은 무엇인 가? 민주주의란 ‘수출’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민주주의체제의 정착과 연관되는 분석을 전개한다. 저자는 무분별한 낙관론이나 비관론에 휘말리지 않고 이러한 문제들을 차분히 살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의 이정표를 찾고자 한다.

두 번째 책 ‘세계화’에서는 공간적, 생태적, 문화적, 헤게모니적 관점 등을 통해 세계화의 여러 모습을 설명해냄으로써 세계화의 원리와 구체적 양상을 보다 잘 드러낸다. 그럼에도 여전한 지역과 지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나아가 범지구화에 따른 여러 가지 변화로 말미암아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대해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쿠데타와 공화정’에서는 프랑스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 쿠데타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그것이 현대인에게 가지는 의미를 모색하고 있다.

국어교육 95 이유진

 

욕망에서 연대성으로 이종영, 백의, 8천원

『지배양식과 주체양식』,『주체성의 이행』 등의 저서에서 일관되게 정신분석학과 역사유물론의 접목을 표방해온 이종영의 세 번째 저서 『욕망에서 연대성으로』가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기존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이 책은 특히 폴라니의 인류학, 짐멜의 화폐론 등에 기대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의 역사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작업이, 나아가 헤겔의 자기의식의 형이상학, 로티의 연대성 개념, 바디유의 주체이론, 그리고 라깡의 욕망이론 등에 대한 저자 나름의 독해에 기초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포섭되지 않는 내적 외부장소를 발굴하여 그로부터 ‘연대성’의 준거지점을 찾으려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저자에게 있어 ‘욕망’이란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기의식이고, 고립되어 존재하는 이 ‘욕망 으로서의 자기의식’의 만남이 바로 연대성이다. 그리고 연대성온 ‘악’에 대한 공통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악에 대한 공통인식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물음이 제기되는 지점에서 저자는 형이상학을 도입한다. “현실을 구조화하는 힘들을 객관적 실재로 포착하여 범주화”하기 위해 역사유물론은 형이상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있어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핵심적인 기제는 악 그 자체, 투명한 악이 아닌 불투명한 악, 즉 ‘선으로 전도된 악’이다. 그리고 이 선 밑에 숨겨진 객관적 실재로서의 악을 파악하기 위해서 역사유물론은 형이상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형이상학의 위험성을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즉 상징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식주체가 존재한다는 주체철학의 환상과 선/악의 대립을 자명한 불변의 진리로 간주하는 보편적 진리에의 의지를 경계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유물론과 정신분석학의 접목이라는 저자의 표방과는 달리 역사유물론을 형이상학의 지배적 전통에 복속시킬 위험성을 내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비판적인 독해의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권순모,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사회생태주의란 무엇인가: 녹색미래로 가는 길 머레이 북친, 박홍규 옮김, 1만 2천원

인간의 내분비계에 이상을 초래하는 환경호르몬이 일회용 포장용기에서 검출되고 환경호르몬 때문에 정자수가 감소하여 인간의 번식에 적절한 정자밀도에도 못미쳐 인간의 자연생식능력이 상실될 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예언까지 떠돌고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환경문제의 주범은 아주 자연스럽게 인간이 된다. 편리함을 위해서 일회용 용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인간. 그것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수식어도 없이 그저 한 생물학적 種으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사회의 권력문제나 착취의 문제를 간과한 이러한 인식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 바로 머레이 북친의 ‘사회 생태주의란 무엇인가’이다. 저자는 1부 ― 왜 이 책을 쓰는가? ― 에서 “<사회적> 비판과 <사회적> 변혁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생태주의만이, 자연, <그리고> 인류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저술의 이유를 밝힌다. 환경문제의 해결책이 그저 ‘인간이 문제의 주범’ 이며 인간이 자연에 갖는 ‘권력을 포기’하고 자연의 법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무비판적인 자연신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변혁>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버릇’은 사회내부의 인간 지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사회내부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자본주의, 동성애 혐오, 중앙집권 국가 등의 국가주의가 일소된다면 자연과 우리의 관계도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협소한 환경문제에 대한 관점과 해결책을 말하는 것을 넘어 보다 더 폭넓게 사회의 변혁과 지향에 대해 밝힌다.

이와 더불어 이 책을 읽는 이들은 환경문제를 현재의 경박한 생태주의 ― 생태주의가 경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태라는 말이면 마치 모든 환경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일컬음이다 ― 라는 협소한 관점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확장시킨 저자의 아나키즘에 취해볼 수 있을 것이다.

화학교육 94 정예현

 

선언 150년 이후 카갈리츠키 외, 카피레프트모임 편역, 이후출판사, 1만 1천원

맑스주의의 ‘리메이크’를 위한 요청들

자신들이 펴낸 책을 가지고 서평을 써대는 우스운 일도 없으리라. 그러나 책에서 담지 못했던 몇가지 뒷 얘기들을 전달할 수 있는 지면을 가질 기회라면 기꺼이 응할만한 일이다.

물론, 월드컵의 반에 반만큼의 주목도 받기 어려웠지만, 그 보다 한달 전 파리에서는 『공산당선언』의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제법 성황리에 개 최되었다. 5월 13일부터 나홀간 열린 이 대회의 주최측은 프랑스 공산당의 부설 연구소쯤되는 “Espices Marx(맑스의 공간)”라는 이름의 단체였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백여개의 발표문이 인터넷으로 모아졌고, 현장에는 천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자본주의에 대안은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인간해방인가”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맑스의 이 유명한 소책자을 둘러싼 의견을 나누었다 이 대회 말고도 많은 ‘기념’ 행사들이 각국에서 개최되었지만, 그 규모와 참여자의 범위를 볼 때, 이만한 학술대회도 흔치 않을 듯하다(자세한 스케치가 『길』 7월호에 이가진 기자의 글로 실려있다).

확실히 『선언』은 다시 읽히고 있는 것 같다. Verso 출판사는 에릭 홉스봄의 서문을 붙여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선명한 표지의 『선언』을 새로 펴냈다. <Monthly Review>를 발행하는 Merlin Press도 폴 스위지가 서문을 쓰고 엘렌 메익신즈 우드의 논문을 보태어 『선언』의 신판을 냈다. 한편 북미의 <Socialist Register> 이번 호 는 “오늘날의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Now)”을 주제로 하여 데이빗 하비 등의 논문을 싣고 있다. 이 책, 『선언 150년 이후』에 실린 레이즈/패니치, 샘 긴딘 등의 글 역시 이 <Socialist Review>에도 수록되었던 원고들이다.

이 책에 모아진 20여 편의 글들에는 어쩌면 맑스주의의 ‘새로운 전화(轉化)’나 발본적 변신 따위의 신기한 이야기는 없다. 예를 들어 리처드 레빈즈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식물의 메타포를 써서 설명한다. 즉, “사탕수수 녹병은 사탕수수 자체가 아니라 사탕수수가 걸리는 병이다 그리나 동시에, 그것은 사탕수수의 병이지 토마토의 병은 아니다.”결국 사회주의 자체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오류들을 분별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레빈즈 역시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운동이 그러한 왜곡에 왜 그렇게 취약한지를 깨달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 속에는 한편으로 보다 ‘교조적’이라고 느껴지는 주장들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맑스주의적 사고의 도입을 주장하는 칼라리/루치오의 논의까지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카갈리츠키가 러시아에서 젊은 가수들이 옛 소비에트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996년 히트음반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한 옛 노래들”을 예로 드는 것처럼, 이 책의 전체적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맑스주의에 대한 ‘리메이크(remake)’의 요청일 것이다.

그렇듯 『선언』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이 책의 여러 논자들이 지적하듯, 이 소책자의 구절들이 그대로 완전히 타당하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못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빛나는 통찰로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 부터 “…단결하라”까지 매 구절이 되울림을 갖지만, 예컨대 “모든 정체적(停滯的)인 것은 증발되어 버리고(All that is solid melts into the air),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라는 구절이 특히 그러할 것 같다. 마샬 버먼은 이 구절을 그의 책(『현대성의 경험: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 현대미학사)의 제목으로 따오면서, 맑스를 모더니티의 역동적 성격을 선취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한 바 있다.

모든 단단한 것이 자취없이 녹아 없어지고… 그렇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눈부신 생산력의 발전과 그 변혁의 속도가 모든 낡은 것을 날려버렸듯이, 그리하여 포드주의 타협과 복지국가를 날려버리고 마침내 베를린장벽까지 날려버렸듯이, 이제는 이 땅에서 ‘시민사회’도 ‘중진자본주의’도 모두 자취없이 녹아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97년의 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과 작년 연말 이후의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우리를 순식간에 국제적 운동의 맥락 속에, 그리고 『선언』의 맥락 속에 가져다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승에서 불러낸 마귀의 힘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마법사라는 맑스의 비유는, 이제 국경을 넘어 생산의 판로를 부단히 개척하다가 마침내 핫 머니들이 고삐를 뒤흔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앨런 우즈가 이 책의 말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나머지 지역들에서도 역시!”라고 ‘선언’적으로 결론짓고 있는 것이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도 그러한 정황 탓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맑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 편역작업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 역시 변명처럼 덧붙여야겠다. 시간에 쫓긴 탓도 있지만 당연히 그것은 언어능력과 주변 지식의 한계였다. 페미니즘을 다룬 글 3개가 한꺼번에 묶인 것 등도 다소 무리한 편집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남한에서, 그에 부응하는 연구작업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작업을 강제했고 또한 재촉했다. 80년대에 일었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상한’ 붐과 활발한 출핀/연구 활동과, 이후 분위기의 기이한 침잠은 이러한 지나가는 ‘껀수’를 통해서라도 다시 문 제제기되어야만 하리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지금 『선언』을 환기한다는 것, 오역과 직역을 감수하더라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기에 그렇다.

끝으로 『선언』은 원래 대중들을 위해 씌여진 팜플렛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레이즈와 패니치 는 <독일노동자교육협회>의 벽보를 인용하면서 그들의 글을 맺고 있다. “인간들은 지신들의 지적 능력을 계발함으로써만 자유와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저녁회의들은 교육에 바쳐진다. 첫 번째 날에는 영어를, 두 번째 날에는 지리를, … 여섯째 날에는 춤을, 그리고 일곱 번째 날에는 공산주의 정치를 가르친다”라고.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바꿔 볼 수 있으리라.

우러요일엔 해방전후사를, 화요일엔 민중가요와 록을, 수요일엔 벽그림을, 목요일엔 김수영과 김남주의 시를…

박대련 <카피레프트모임>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침묵하는 소수의 음향과 분노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9천원

도전적 역사 해석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세간을 놀 라게 해온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에세이이다. 여기에는 이전 집필에서보다 그 자신의 내면이 더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ilent majority’라는 개념이 사라졌다며, 마치 ‘정의는 이 곳에 있다’는 듯한 얼굴로 네거리를 활보하는 대중, 대세, 메이저에 반하는 사일런트 마이너리티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 특유의 참신한 에세이 기술이 흥미를 더하는 책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오연호, 해냄, 7천원

5.18 광주 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의 책임을 묻는 미 문화원 점거농성사건, 그 나라는 미국인가, 미제국주의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학생 시절의 진지한 고민이 이 책의 근간이다.

저자가 보기에 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군에게 전시 작전 지휘권을 빼앗긴 채 무상으로 국토를 내주고 있는 상황에서 저항운동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미국 바로알기는 하나의 싸움이다. 저자는 민족이 통일되고 우리가 더 이상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까지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교육문화 사회운동론: 사람・삶・되살림 2 정유성, 한울아카데미, 2만 5천원

말 그대로 새로운 교육문화를 꿈꾸며 그것을 사회운동으로 일구어내고자 하는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전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글판은 교육을 바꾸어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인 새로운 교육문화 사회운동의 바탕을 다지는 몇가지 생각이고, 둘째 글판은 이러한 바탕 위에 구체적으로 우리가 벌여나가야 할 새로운 교육문화 사회운동의 실천 공간을 살펴 본 것이다. 주민자치와 두밀리 폐교 반대운동 등에 대한 사례가 실려있다. 셋째 글판은 새로운 교육문화 사회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안교육의 이론 소개와 저자의 교실체험, 실험 등이 소개되어 있다.

 

TV를 위한 변명 강준만, 개마고원, 8천 5백원

TV에 대한 숱한 불만과 혹평에 대한 보다 진지한 평론집이다. 저자는 TV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일삼으면서도 TV에는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는 지식인과 저명인사들이 너무 많은 이중적인 TV문화를 비판한다. TV는 국가적 자원인데, 우리는 그것을 오락적인 통로로만 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선, TV를 낭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확산이 절실하며 이 책이 그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다시 한 번 강준만 교수의 방송을 위한 변명과 옹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책이다.

 

성과 속 M. 엘리아데, 한길사, 1만 2천원

이 책은 성(聖)과 속(俗)이라는 종교학적이고 본질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엘리아데가 말 하는 성과 속의 이론에서는 성(혹은 신이라고 볼 수도 있다)의 세계와 인간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책은 성의 여러 양태와 종교적 가치에 충만한 세계에 살고있는 인간의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종교사 입문서 구실을 할 수 있다.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사회’, ‘성과 속이 세계 안에 있는 두가지 존재 양식이라는 것’, ‘근대 세계에서의 성과 속’, ‘인간 실존, 성과 속의 관계’ 등 본질적인 원형에 다가가려는 시도가 부각된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구조변화와 과제 윤진호 외, 새날, 9천원

전체 제조업 생산의 약 10%를 담당하는 자동차 산업은 IMF 관리 이후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는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문제점과 구조변화의 방향 제시를 통해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자 한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전반적 현황검토와 구조 개편을 위한 과제 제시,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와 노동조건 검토 등이 주 내용이며, 궁극적으로는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21세기를 예비하는 자동차산업을 위한 과제제시가 이 책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다의 엄지 스티븐 제일 굴드, 세종서적, 1만원

『내추럴 히스토리』지 고정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인류의 과학적 기원에 대한 세심한 통찰력과 풍성한 지식이 돋보인다. 이 책은 생명의 기원에서 조르주 퀴미에의 뇌, 태어나기 전에 죽는 진드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광범한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 자신의 큰 관심사인 다윈의 사상과 그 영향에 중점을 두면서, 각 글들을 진화론에 집중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다윈의 ‘이 생명관에는 장엄한 무엇이 깃들여있다’는 말은 저자의 ‘진화하는 생명’이라는 생명관을 가리킨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 김영호, 두레, 1만 5천원

한국전쟁에 대한 재조명의 시도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속에서도, 한국인에 의해 쓰여진 한국전쟁 연구서는 드물다. 이 책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개된 냉전대결에서 소련이 세계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원조했다는 ‘스탈린의 롤백전략’을 통해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제 정치적 시각을 견지하고 일관되게 서술함으로써 한국전쟁의 거시적 전모를 냉엄히 조망하는 것이다.

 

왜 딸려! 구로노동자문학회 창립 10주년 기념시집, 갈무리, 5천원

실천하는 문학을 지향하며 창작모임과 연습교실, 문집발행 등의 활동을 활발히 벌여 온 <구로노동자문학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시집을 펴 냈다. 문학회 10년을 결산하는 자화상과도 같은 시집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숙을 하며 무료급식소의 긴 행렬을 이루는 노동자들에게 한 잔의 시원한 청량음료나 푸짐한 밥 한 그릇이 되지 못할 것임을 헤아리면서도 그동안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싸우면서 얻은 절실한 노래라는 생각으로, 문학적 가치와 함께 자료적 가치를 담으려고 고심하여 수천 편이나 되는 시들에서 70여편을 골라 엮는다.”

 

돈의 세계사 조너선 윌리엄스, 까치, 1만 2천원

주요 통화 전통들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지역의 돈의 형태, 제조기술, 목적, 문화적 역할을 제시한다. 유럽의 전통과 그 기원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이슬람, 인도, 그리고 중국, 아프리카와 태평양의 돈에 대해, 한마디로 돈의 역사, 돈의 세계사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돈에 대해 역사적 접근을 택했다 함은 돈 자체 뿐아니라,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그것으로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포함하는 것이다. 진정한 돈의 역사가 인간의 태도와 행동에 의존함이 부각된다. 풍성한 삽화와 전 세계의 역사적 통화의 소개가 책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기술문명에 대한 철학적 반성 한국철학회, 철학과 현실사, 1만원

97년 한국철학회 춘계발표회에서 “문화의 진보와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주제로 발표된 논문과 토론을 토대로 엮어진 책이다. 여기서는 정보통신기술을 비롯한 현대 기술이 가져올 여러 변화를 검토하고 있다. 삶의 새로운 영역이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통해 현대기술 문명의 또 다른 측면을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각 논문에 대한 논평이 덧붙여진 것이 장점이다.

 

가던 새 본다 한창훈, 창작과 비평사, 7천 5백원

젊은 작가 한창훈의 두 번째 소설집이 창작과 비평에서 나와다. <가던 새 본다>, <숭어>, <바람 아래>,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은사시나무 겨울> 등 그동안 문예지에 발표되었던 것들과 미발표작들이 담겨 있다. 민중의 삶을 빼어나게 형상화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의 이번 소설집도 걸쭉하고 강렬하다. 그리고 또 고단함이 배어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말하듯 오랜동안 삶의 원천을 불화에 두고 살아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란 제 상처를 만지고 노는 아이들처럼 기쁨보다는 슬픔을, 승리보다는 패배를 붙들고 뒹구는 존재일 것이다”라는 후기에 충분히 충실한 소설집이다.

 

문화의 진보에 대한 철학적 성찰 한국철학회, 철학과 현실사, 1만원

역시 한국철학회의 논문과 토론문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문화의 진보에 대한 다양한 시가에서의 논의를 담고 있다. 책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인 “기술문명의 발달이 문화의 진보에도 연결되는가”하는 물음은 혼돈된 오늘의 상황에서 의미있게 제기되고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다. 문화가 진보하는가, 진화하는가, 과학기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식과 도덕성의 진화는 어떤 것인가 등,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된다.

 

조선시대 화론연구 유홍준, 학고재, 1만 5천원

화론이란, 회화에 관한 이론이다. ‘화론’이라는 어휘가 독자들에게 생소한만큼, 화론은 “화론다운 화론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고 말해질만큼 왜소하게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화론’ 대신에 곧잘 ‘회화관’이라는 궁색한 표현이 사용되는데 할말이 있는 입장이다. 이 책은 한국화론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학문적 질문에 대한 한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랜 관심과 연구의 결과로서 조선 후기에서 한국화론의 가능성을 읽어내어 책으로 옮긴 것이다. 화론의 개념 정의에서 출발하고 있는 조선 후기 화론의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는, 비전공자들 일반에게도 홍미롭고 유익한 독서체험이 되어 줄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나무들 조명준, 우리교육, 6천원

<전교조, 그 ‘날카로운 첫키스’ 이후 십년간의 기억>이라는 부제가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게 전교조는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그러나 해직된 후에는 교육계에 엄존하는 여러 모순들이 괴로워 잠 못이루는 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잠들지 못하는 나무들’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전교조 합법화가 예고된 시점에서, 이 책을 통해 지난 10년 간의 전교조 해직교사들의 모습이 오롯이 그려진다. 거기서 이 책이 매듭지어진다면, 남은 세월은 전교조의 힘겨웠던 싸움이 희망의 교육을 안내하는 세월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리라.

 

도시와 사회이론 피터 손더스, 한울아카데미, 1만 2천원

공간환경과 그것의 사회학적 의미에 대한 탐구가 여기저기서 제기되어 와지만, 문화론적인 문제제기와 공간환경의 의미망에 대한 설정이 주가 되었을 뿐, 좀 더 전문적인 이론은 매우 일천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한국적 현실에 적합하면서도 독자가 특정 관점에 매몰되지 않도록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있어 적절한 시도가 될 것 같다. 도시를 핵심테마로 하여, 도시사회학의 수많은 주제와 과제들에 대한 주요이론을 정리한 폭넓은 교과서로 일독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문학의 담론 조남현, 문예출판사, 1만 3천원

서울대 국문과 조남현 교수가 1992년 이후에 쓴 평론 가운데서 26편을 추려 제1부 1990년대 문학론, 제2부 비평의 비평, 제3부 소설론, 제4부 시론으로 나누어 묶은 평론집. 제2부에서는 6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던 김현, 김윤식, 이상옥, 오생근, 김병익, 이재선 등 6명의 문학이론가들의 비평집 혹은 연구서를 대상으로 한 서평을 모아 놓았다. 제3부에서는 최일남, 서기원, 박완서 등 기성작가들의 작품세계와 신경숙, 김미진, 검연경 등 신진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했으며, 제4부에서는 황동규, 최승호 등의 신작시집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는 동물원에서 사냥을 한다
죽음, 아주 낮은 환상 염철 황영미 엮음, 김소진 윤영수 외, 윤컴, 각권 7천원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주제들, 예컨대 전쟁이나 인종, 신앙 같은 범인류적 쟁점부터 통일, 민주화같은 사회적 다른 이에게 주제는 물론이고, 몸, 섹스 등의 삶의 본태나 동물, 꽃 같은 미학적 소재, 악마, 천사 같은 상상의 세계 등등을 하나의 테마로 삼아 관련된 소설을 묶은 ‘테마문학’ 시리즈. 『나는 동물원에서 사냥을 한다』의 테마는 ‘동물’로 김소진 「원색생물학습도감」, 이순원 「말을 찾아서」, 전경린 「염소를 모는 여자」 등의 소설 등이 수록돼,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가라앉아 있다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동물에 관한 신화적 기억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죽음, 아주 낮은 환상』은 ‘자살’을 테마로 하여 윤영수 「모든 벽은 문이다」, 김영하 「나는 아름답다」, 구효서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 번」 등을 수록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은 인간 존재의 한계 상황이자 극점이라 전 제한 뒤 그런 면에서 자살은 불안하고 불확정적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겪는 고민과 갈등을 표현하는 현대 문학의 주요한 테마라고 주장한다.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첫째권: 선사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마트 C. 칸츠 외, 손세호 외 옮김, 소나무, 1만 2천원

역사는 영화처럼 극적이고 영화는 그런 역사를 소재로 삼는다. 역사와 영화는 이처럼 닮아 있다. 그런 데 이 책은 ‘헐리우드식’ 영화의 역사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쥬라기’부터 ‘닉슨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약 100여 편의 영화들에 나타난 역사적 현장 재현은 영화적 재미를 포함시키면서 동시에 역사적 진실을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상공간에 펼쳐지는 영화적 진실은 우리에게 역사의 그것을 오해하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과거와 현재의 긴장있는 대화를 시각적으로 가능하게 해준다. 문제는 역사에 개입하려는 현재적 욕망과 그것의 표현인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남겨진다. 역사를 이해하고 영화를 즐기는, 상호텍스트적인 역사-영화 탐구가 필요한 것이다.

 

신과학은 없다 상・하 강건일, 지성사, 상권 1만원, 하권 1만 3천원

현대 주류과학에서도 하나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UFO, 초능력, 기(氣)과학 등을 정면으로 비판한 ‘대중과학서’. 약물대새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러한 과학을 ‘뉴에이지 의사(疑似)과학’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과학은 미신이라고 주장한다.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한대수, 가서원, 7천 2백원

우리는 누구나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삶’이라는 예술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굳이 책으로 쓰는 거추장스러움은 마치 남들 앞에 자신을 발가벗겨 놓는 일이라 부끄럽고 괴롭기까지 하다. 여기 ‘<행복의 나라>를 향해 끝없이 걸어온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예술적인 삶을, 삶의 예술을 얘기한다. 시를 쓰고 노래를 하고, 또 사진을 찍으면서 삶을 닮은 예술둘을 동해 우리에게 우리의 삶은 ‘인생의 신기루’를 쫓을 망정 ‘행복의 나라’로 우악스럽게 걸어간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한대수, 70년대 대중문화의 표상 - 그 자체로도 저항이었던 그는 여전히 목마른 젊음이라고 느껴진다. 그를 통해 우리 삶이 시고 노래며 사진임을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될 바로 우리 자신의 예술작품임을, 향유하라

 

판화로 읽는 우리 시대의 詩 실천문학사, 1만 8천원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시집들을 중심으로 시들을 모아 그 주제들을 형상화한 판화가 함께한, 또 하나의 이미지와 텍스트가 만난 책이 나왔다. 우리에게 반향되는 감동은 그러나 텍스트 중심의 또는 이미지 중심의 어느 하나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체험과 삶의 언저리를 매만져주는 그 감동은 우리의 사고가 언어로 이루어지는 만큼 우리의 기억이 하나의 시각적 형상으로 떠올려지기 때문에 동시적이다. 판화를 읽으며 시를 보는 즐거움,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 어딘가에 아로새겨진 꿈의 단편들을 끄집어 내어 내 삶에 관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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