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탈근대문화정치와 문화연구
서평
비판과 생성의 탈근대적 문화정치
심광현, 『탈근대문화정치와 문화연구』, 문화과학사
고길섶 | 『문화과학』 편집위원
우리 사회에 있어서 90년대는 두 번의 ‘충격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한번은 90년대 초반의 좌파진영 혹은 맑스주의 위기이고, 다른 한번은 요새 겪고 있는 IMF 체제의 경제위기이다. 전자가 저항의 정치시각을 가지고 있 는 극소수 진보진영의 이론적-실천적 위기에 집중된 것이라면, 후자는 지배적 계급이익을 가지고 있는 극소수 지 배세력만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의 삶에 산재하는 위기이다. 그런데 전자, 즉 맑스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 난 새로운 대웅방식의 하나가 ‘문화정치적 실천'이었다. 그와 함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의 문화적 범람 속에서 대 중적으로 ‘문화시대를 맞이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문화시대도 동시 에 위기를 맞고 있댜 그러면 이에 대한 좌파의 대답온 무엇일까? ‘거품덩어리같은’ 문화시대와 문화정치를 마감/철회하고 다시 경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심광현 교수(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미학/문화이론)의 최근 저서 『탈근대문화정치와 문화연구』는 이 문제의 해결책들을 마련해나가는 데 발본적인 지침서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그의 논의들이 IMF 체제를 전제로 하거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두 종류의 위기는 결국 우리 삶과 그 삶의 변혁의 위기라는 점에서 밀접한 공통점을 내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광현 교수는 문화이론 전문지인 『문화과학』의 편집인으로서 90년대 진보적 문화담론의 생산을 주도해왔다. 알튀세르가 제창한 ‘이론적 실천' 테제가 「문화과학』의 중요한 출 발점이었던 것과 관련해서 심광현 교수 역시 ‘이론주의'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을 성 싶은데, 그를 이론주의자라고 지칭한다면 내가 보기에 커다란 오해임에 틀림없다. 그는 이론적/담론적 실천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비담론적 실천에 취향을 가지고 있고 실제적으로도 문화공학적 실천(각종 제도나 프로젝트의 진보적 프로그램 마련 등)에 몸을 지속적으로 투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이론, 정확히 말하여 이론들의 절합에 긴장된 투여를 멈추지 않는 것도 삶의 새로운 생성들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론적 실천을 “학문분과별로 정해진 관습적 문제에 답을 구하는 ‘문제풀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통해 실천적 공간을 개방해낼 수 있도록 기존의 문제들 사이에서 틈새를 벌리려는 과정”으로 정의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으면서도 관행적으로 자명화하는 가정과 전제 둘을 새롭게 검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사유와 실처 국으로 탈주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가 예술학, 미학, 철학,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과학철학 등에 관심의 폭을 확대해오면서 ‘위험하고 지리한 이론적 곡예를 거듭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어떤 거시적인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완성하려는 ‘터무니없는 야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에 있어서는 현실의 실천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이냐가 관심사이다. 그래서 그의 화두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문화 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 파악하고 새롭게 실천하려는 비판과 생성의 문화정치(또는 문화공학)이며, 그 문제설정들 은 어느 한 곳에 정박하지 않고 항상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심지어는 ‘진보’ 혹은 ‘좌파’의 고정된 정체성마저, 보수주의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보수화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다. 구좌파적 개념 과 이론틀로서는 더 이상 사회진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이다. 말하자면 ‘신좌파’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논리이고, 그 핵심에는 알튀세르와 들뢰즈/가따리의 사유가 자리잡고 있으며, 비트겐슈타인, 월러스틴, 푸코, 카프라, 료타르, 퍼스, 벤야민 등등이 가로질러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설프거나 외삽적인 절충이 아니라 친화성을 분명히 갖는 존재론, 인식론, 방법론들을 이론적으로 절합시키는 대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인식론적 장애물들을 발 본적으로 제거하려는 변증법적 긴장은 그의 글쓰기의 매력이자 재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 수사학에 그치자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맑스주의 혹은 좌파를 전화 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고실험들이다. 이것은 다시 ‘탈근대적 문화정치’로 요약된다. 여기에 진보의 개념이 내장되 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구태한 진보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해방의 담론과 새롭게 접속하는 문화사회적 전망을 따라간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층위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적 층위에서 적극적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댜 삶과 삶의 변혁의 위기가 극도로 초래되고 있는 이 시대에 더욱 문화정치를 강 조하는 것은, 문화가 경제의 잉여물 혹은 단순 소비물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과정이자 생활양식의 변형문제이 고, 이 시대 좌파적-대중적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지점으로 모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음 과 같이 말한다.
“경제는 언제나 문화경제이며 문화는 언제나 문화정치이며 정치는 언제나 정치경제이다”
심광현 교수의 이번 저서는 그 자신의 고백대로 한국사회의 성격변화와 관련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은 부족하지만, 발본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인 대안적 프로그램들을 창조해내는 데 유용한 지도가 될 것이다. 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폭넓은 이론들의 접속을 사유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의 ‘탈주자’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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