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다리 위의 국가, 한국

본선작-학부개인

아직 사다리 위의 국가, 한국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사회복지학과 한승목


세계 최대 규모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하고, AIG, 모건 스탠리, BOA(Bank of America) 등과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들도 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9월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의 경제 혼돈을 두고 혹자는 금융 불안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신자유주의의 파탄이라는 해석을 한다. 현재 미국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난 20여 년간 규제완화, 자유화로 일컫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구조적이고 체계적 위기의 성격을 가진다. 10여 년간의 만성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를 가능하게 했던 글로벌 불균형 그리고 노동유연화와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소득불균형, 새로운 금융환경에 의한 금융과 실물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이번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다. 미국 정부는 긴급 처방으로 구제금융과 부실자산의 매입으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보이지만, 기존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반이 전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니문은 끝이 났다. 신자유주의의 효율성을 맹신하고 그 틀에 입각하여 세계 시장의 규칙을 강요하였던 미국의 위신에 커다란 금이 가게 생겼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 미국의 자가당착(自家撞着)

선진국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이 책의 저자는 작금의 사태를 놓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예상된 결과였다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저자가 책을 통해 주지하는 바는 아니며, 저자의 이 책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또는 흑심으로 후발주자들에게 그들이 적용받고 있는 똑같은 질서와 규칙을 강요하는 선발주자들의 오만함에 대한 일갈이다. 실질적인 국경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전 세계가 단일 시장화 되어 가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선진국이라 불리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속을 채우기 위하여 개발도상국에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요하는 현 행태가 그들이 거쳐온 자국의 경제사와 비교하였을 때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방대한 사료와 참고 문헌을 통해 밝혀낸 현 선진국들의 초기 산업화 또는 경제 발전 과정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자유주의의 토양 즉, 규제 철폐, 엄격한 저작권 보호, 비교우위의 논리에 의한 자유무역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다. 현재 세계 시장의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 사이에 평균관세율은 최고치가 48퍼센트, 최저치가 고작 14퍼센트에 불과하였다. 근래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는 적절한 수준의 관세율은 최빈국은 최고 20퍼센트, 그보다 발전된 개발도상국들은 거의 0퍼센트임을 생각해 볼 때,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호가호위(狐假虎威), 오만함의 결과

선진국의 반열에도 끼지 못하고 후진국이라고도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책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WTO, Millenium Round, Washington Consensus 등 세계시장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재편․조정하려 하였던 선진국들의 단합이 노골적으로 표출될 때조차 우리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반작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항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수준은 이미 선진국이며 선진국의 입맛에 맞게 조정된 틀 속에서는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학자는 경제자유화에 대한 반대, 특히 국내적 반대는 지나친 기우이거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투명성과 효율성의 제고에 반대하는 일부 이익집단의 준동으로 일축한 바 있다. 결국 이러한 반대는 옳지 않은 것이므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자유화는 추구해야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며, 따라서 음모나 강요보다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우리나라가 경제자유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비유되는 경제자유화의 물결이라는 선진국 주도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는 그 물결 위에서 서핑하고 있다기보다는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97년 외환위기 타계를 위한 IMF의 구제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부터이다. 그 결과, 외환위기를 조기 졸업하였다고 자축하는 기쁨이 잠시 주어졌고, 고통스러운 재조정의 대가로 중소기업들과 중산층의 몰락, 비정규직 그리고 청년들에게 찍힌 88만원 세대라는 낙인이 부과되었다.

외압에 의해 심겨진 우리나라 근대체제의 맹아

현 선진국들이 그들의 정책과 제도를 개발도상국들에게 권고하는 것이 진정한 호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정책과 제도를 수용할 만한 토대가 부재한 상황에서 개도국이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주의를 통해 선진국들이 구가한 경제 발전의 혜택을 누리리라 예상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와 정책적인 토대뿐만 아니라 소유한 자본도 상대적으로 선진국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급격한 신자유주의의 배양으로 인해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처할 준비 시간도 없이 우리는 쏟아지는 사회문제들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외관상으로는 선진국이 제도와 체제를 수용하여 우리사회에 내재화 시킨 듯 보이나 외부의 충격이 빈번히 국내 위기사태로 이어지고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제도와 체제를 이 땅에 정착시켜야 할 초기 단계의 주체가 내가 아닌 타인이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근대화에 눈을 뜨고 미약하나마 시장경제적인 맹아를 키워내려 했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보다 먼저 같은 단계를 거친 선발주자 일본이라는 변수를 만나게 된다. 서구적인 근대화가 어려운 유교사회라는 토양이 일본이라는 외압에 의해 시장경제적인 체제와 근대적인 서구 제도들을 배양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선진국들이 장기간에 걸쳐 갖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통해 이루었던 제도들이 단기간에, 그것도 남이 주체가 되어 우리나라에 수용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주도하여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확립시킨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이익이 아닌 일본의 이익을 고려하여 설계되고 구축된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지금의 허약체질은 식민 지배를 받던 당시 타인의 개입에 의해 추진된 근대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선진국들의 체제 강요, 정당성 부재

선진국들이 과거 제국주의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행하였듯, 개발도상국들에게 노골적이고 공격적으로 체제, 제도 개혁에 간섭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수단들을 수행할 역량을 가지고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게 '바람직한 제도'를 권고하였으나 이러한 권고를 개발도상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집권핵심세력의 부패비리를 폭로하여 지배정권을 무력화시킨 다음 중도성향의 다른 정당으로 하여금 집권케 한 후 구조조정을 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방법은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방치함으로써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관철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적 위기발생을 구조조정의 전제로 삼아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전략은 세계 경제를 그들 선진국의 기업이 진출하기 쉽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진국의 음모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의 현 선진국들과 현 개발도상국들 사이의 발전 수준을 비교해 보면 (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가장 부유한 선진국들은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타이와 같은) 현재의 부유한 개발도상국들의 발전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핀란드부터 프랑스, 오스트리아에 이르는 대다수 선진국들은 여전히 (필리핀, 모로코, 인도네시아, 중국, 페루와 같은) 현재의 중간 소득 개발도상국들의 수준에 머물렀다. 심지어 제도 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초창기 현 선진국들이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는 현 개발도상국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제도 발전을 이루었는데, 예를 들면 1820년 영국은 현재의 인도보다 다소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도에 존재하는 보통선거권, 중앙은행, 소득세, 법제화된 유한 책임제도, '근대적' 파산법, 전문 관료제도 또는 실효성 있는 유가증권법 등 가장 기본적인 제도에 해당하는 것 중 대부분을 갖추지 못하였다. 당시 현 선진국들이 갖추고 있던 제도의 수준이 현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국제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들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직은 사다리 위에 있는 우리나라

이미 정상에 올라와 게임의 룰을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원하는 것은 게임의 판이 좀 더 커져서 그들에게 돌아올 배당금이 불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더 많은 국가들에게 게임에 참여할 것을 독려 혹은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주지했다시피 세계 시장이라는 게임 판을 구속하는 틀을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도 아니요, 개발도상국도 아니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선진국들이다. 전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규칙 아래에서 게임을 운영해나가야 하는 후발주자들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할 여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선발주자들이 그들에게 나름대로의 배려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러한 격차에서 주어지는 이익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비열한 행태까지 서슴치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개발을 진행 중이던 시기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던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제재하고 있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곧 선진국 합류를 바라보고 있는, 또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우리나라는 주연이 못되면 주연급 조연이라도 되어 보려고 목을 매는 듯하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지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여 우리가 여전히 정상을 향해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에 있는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이다. 결국,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아직 사다리에 채 오르지 못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사다리 위에 있는 국가에게도 호의적일 수 없다. 이를 인식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는 영미식의 제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단계 및 구체적인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여건을 감안하여 정확히 어떤 제도가 필요하거나 유용한지 진지하게 고찰한 후에 채택된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눈을 가리고 있는 근거 없는 선진국에 대한 맹신과 역사적 통념의 장막을 젖혀야 무사히 정상에 안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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