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변증법

본선작-일반개인

도시의 변증법

존 리더,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

생태조경학과 석사과정 박근현


들어가며

“로마의 쇠락은 무절제한 팽창이 불러온 자연적이고도 불가피한 결과였다. 번영이 무르익자 쇠퇴의 시기도 당겨졌다.…(중략)…우리는 로마제국이 왜 붕괴했는가를 묻는 대신 어떻게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가에 놀라워해야 마땅할 것이다.” (본문 111p에서 재인용)

도시는 그 탄생 이래로 도시의 성장과 몰락, 흥망성쇠를 반복해왔다. 수메르처럼 활짝 피었다가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 곳도 있고 로마처럼 한번 무너졌으나 새롭게 살아난 곳도 있다. 도시의 성장은 몰락의 씨앗을 이미 그 속에 품고 있었다. 존 리더의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은 역사 속의 도시들을 통해 우리에게 도시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원제 “CITIES”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류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거의 모든 ‘도시들’을 다룬다. 19세기 이후 도시는 급속도로 성장해 왔으며, 이전과 달리 쇠퇴의 과정을 겪지 않고 있다. 인간이 만든 유일한 창조물이자 그 역사가 8천여년에 불과한 ‘도시’는, 이제 전 인류의 절반이 거주하는 곳이 되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어판 제목처럼 ‘인류 최후의 고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내부의 갈등과 문제는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이로 인해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아마도 도시는 변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인류는 어떠한 태도로 도시를 대해야 할 것인가. 존 리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도시의 역사, 인류의 역사

책은 스무 챕터의 도시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기는 하나 대체로 연대기적 순서를 따르고 있다. 책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그리스 이전 시대로 도시의 탄생을 다루는 부분(1장~4장), 둘째,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서 근대 이전까지 도시의 성장을 다룬 부분(5장~8장), 셋째, 근대 대도시의 탄생과 각종 도시문제들을 다룬 부분(9장~18장), 마지막으로 현대와 미래의 도시에 관해 고찰하는 부분(19장~20장)이다.

책의 첫 부분이 다루는 도시의 탄생 요인은 이 책이 기존 도시사의 관점과 가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농업혁명과 도시 탄생에 대한 전통적인 학설인 ‘농업잉여설’을 부정하면서 ‘도시기여설’을 주장한다. 농업혁명의 결과로 농부들이 도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 장인들, 제조업자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를 형성했고, 그들의 경제적 생존, 특히 식량 공급을 위해 ‘농업혁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도시인들의 수요로 생겨난 농업혁명은 예술품, 거울, 벽화 등의 생산을 촉발시켜 문화혁명을 동반하였다.

‘도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지역의 도시들이 식량공급, 전쟁 등의 문제로 쇠퇴하면서, 서양 문명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도시국가가 탄생한다. 도시국가는 로마의 탄생으로 정점에 이른다. 저자가 묘사하는 당시 도시의 모습은 오늘날의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시민들을 위한 거대한 곡물 공급 시스템, 로마에서 도시와 농업 간의 기생 및 착취 관계, 도시로의 인구 유입으로 생기는 도시 문제 등을 묘사할 때는 흡사 우리의 도시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도시관은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데, 그것은 저자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그동안 상층계급에 집중하고 왕족과 정복자의 존재만을 강조하는 역사관에 의해서 도시를 살펴보았기 때문이다.(60p)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21세기의 도시들이 표방하는 ‘도시국가(City state)’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중세는 군주의 수도와 상인의 도시 간의 경쟁 혹은 상호작용의 시기였다. 저자는 군주의 수도로 로마, 마드리드, 그리고 오늘날의 워싱턴 D.C를 예로 들고, 상인의 도시로는 런던, 암스테르담, 그리고 오늘날의 뉴욕을 그 예로 들어 두 도시 유형을 비교․분석하며, 특히 절대정권으로 인해 도시의 성장이 저해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의 도시들’에서 더욱 힘이 실린다.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문명의 연속성을 유지해온 나라이다. 진시황 이후 '하나의 나라'라는 관념 아래에 세계관, 도덕관념, 문자(표의문자), 건축양식, 도시설계 등은 크게 변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원동력이었던 황제의 전제권력이, ‘도시’의 성장에 있어서는 악조건으로 작용하여 이윽고 중국의 상인들이 동남아시아 도시들로 도망가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러한 ‘탈출 사건’만 없었더라면 산업혁명이 중국에서 먼저 발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세 도시를 경제와 종교 간의 관계로 규정짓는 한편, 저자는 근대 도시를 수많은 도시문제(특히 대도시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와 서민들의 대치 관계로 설명한다. 고대 도시에서부터 가장 중요했던 식량 공급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가장 심각한 도시문제 중 하나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식량 공급을 ‘무료배급’으로 실시하였는데 도시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해 오히려 이 제도가 도시의 쇠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다. 이후 도시 지배자들은 식량 문제를 ‘상인’들에게 맡겨 왔다. 상인의 식량 공급이 도시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도시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빈민들은 늘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근대 대도시의 성장이 낳은 또 다른 문제는 ‘주택부족’ 문제이다. 도시의 슬럼가는 늘 기반시설의 부재를 경험해 왔으며, 정치인들의 관심 대상에 있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도시미화운동(City Beautiful Movement)과 각종 개혁주의 운동들로 인해 도시 슬럼가에 관심이 집중되기는 하였으나, 결국 이 역시 도시 미관을 위해 슬럼가를 ‘철거’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 주택문제를 해결할 만한 실효성 있는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저자는 베를린 도시계획, 스웨덴 도시계획 등 다양한 시도와 좌절을 예로 들며, 도시 문제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을 동시에 담고자 한다.

책의 마지막 장('우리는 지구를 너무 혹사시키고 있다')은 저자의 도시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앞에서 살펴본 도시의 역사들에서도, 통계가 보여주는 객관적 사실에서도 도시의 미래는 비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긍정적 사고'와 '노력'이다. 지금껏 인류가 그래온 것처럼, 어렵고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다. 특히 도시의 지속을 위해서 무엇보다 생태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저자는 도시숲에의 관심과 투자, 도시-시골의 생태적 불균형 해소 등을 주장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

“당신들은 손님이 온다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감추는가?”(283p)

여기서 장애를 가진 아이는 도시의 슬럼가를 말한다. 근대 대도시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무시해 온 반면, 현대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들은 이 아이를 감추려고 집(도시)에서 쫓아낸다. 손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도시의 슬럼가는 도시의 산업화와 동시에 생겨나서 전 세계 모든 도시에 존재해 왔다. 저자는 이러한 슬럼가의 역사를 날카롭게 고찰한다.

19세기 말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도시미화운동'은 슬럼가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시미화운동의 대표적 도시인 시카고와 몇몇 제국의 식민지들에서 빈민들의 식량과 주택문제보다 도시미관과 질서를 더 중요시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대규모 달동네 철거 작업이 벌어졌던 1988년의 서울을 기억할 것이다. 달동네 주민들은 용역업체를 앞세운 일방적인 철거에 반발했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아무 힘이 없었다. 이러한 역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도시 미화를 위해 상인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청계천과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 사업, 원주민 재정착률이 8.8%밖에 되지 않는 난곡 재개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21세기에도 도시의 '장애를 가진 아이'- 혹은 '난장이'-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경제적 ‘편의주의’와 도시의 변증법

저자는 도시 변화의 기본을 ‘경제적 요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이 책의 시작인 농업혁명에서부터 고대와 중세 도시들,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도시들의 흥망성쇠에 있어서 그 기저에 깔려있다. 도시에 있어서 경제적 요인은 크게 ‘식량문제’와 ‘주택문제’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농업잉여설'을 부정하면서 주장하는 '도시기여설'은 도시의 탄생에 있어서 정치적, 종교적 요인보다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로마에서부터 18세기 런던에 이르기까지 과거 도시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문제거리가 ‘곡물의 배급’이었던 점(5장,9장), 독일 베를린이 1차 대전에서 패배했던 주된 원인이 식량 공급 문제에 있었다는 점(10장)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의 역사는 ‘먹을 것’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근대 도시 변화와 관하여 ‘편의주의’의 승리를 자주 언급하였다. 도시민들의 삶 개선과 이상적인 도시계획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도들이 ‘상업적 편의주의’에 막혀서 좌절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양상은 주택문제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주택문제에 있어서 부동산 소유주와 개발업자들의 이익이 대상 도시에 사는 수많은 시민들의 생계와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가질 때, 도시의 지배자 혹은 관리자들은 결과적으로 개발업자들의 손을 들어주어 왔다. 예외적인 사례로 스웨덴 스톡홀름의 사회민주주의적 도시계획(모든 시민에게 주택공급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주택공급량의 한계와 우파 정치세력의 공격 등으로 인해 결국 ‘상업적 편의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도시의 흥망성쇠를 ‘경제적 요인’에서 찾는 태도는 맑스주의 유물론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맑스는 하부구조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인류 역사와 사회 체제를 바꾸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봉건제의 등장, 자본주의의 등장 등이 모두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서 진행되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군주의 수도와 상인의 도시를 상세히 비교하고(8장), 중국의 한계를 지적하면서(6장) 이러한 관점을 더욱 뒷받침하였다.

도시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은 도시의 '변증법'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책 전체에 걸쳐서 다뤄진 도시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변증법의 법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변증법에 따르면, 현존하는 모든 것은 그 내부에서 또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적 힘들의 충돌 때문에 발전한다. 저자는 수메르 도시의 쇠퇴를 '엔트로피의 증가'(77p)라는 다소 애매한 용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유물론적 변증법에 의해 보다 잘 설명될 수 있다. 당시 인류 최대의 도시였던 수메르는 바로 그 성장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였다.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을 앞지르고, 토양의 염화가 심각해짐에 따라 쇠퇴의 길을 밟은 것이다. 전 유럽으로 그 세력을 팽창한 로마 역시, 바로 그 '팽창'의 결과로 쇠퇴하고 만다. 또한 저자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책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시피, '프랑스 대혁명'은 몇몇 영웅에 의해 발생된 것이 아니라 봉건제 자체가 갖는 모순(농촌의 군주와 도시 부르주아의 공존, 영주와 농노의 대립)이 낳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도시를 바라보는 의미 있는 틀로써 ‘변증법’의 의의를 다시금 파악할 수 있다.

나오며

『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은 역사 속 수많은 도시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알려주고,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던져 준다. 도시는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야 한다.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생태적 불안감을 드러내었다. 런던의 존립을 위해 런던 120배의 토지가, 벤쿠버를 위해 그 200배에 달하는 토지가 필요한 현실에서, 도시 숲과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매우 중요하다.

도시의 경제적 측면 역시 변화의 매스를 들이대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도시가 상인에 의해서 생겨나고 성장해왔지만, 오늘날 도시에 사는 대다수는 상인이 아니다. 때문에 심각해져가는 도시의 경제적 양극화와 이로 인한 갈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변증법’은 도시라는 공간 뿐 아니라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에도 적용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도시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도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시와 자본주의 내․외부에 존재하는 대립과 충돌들을 이해하고, 보다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겠다. 도시가 영원하리라는 환상을 버리자. 도시가 ‘인류 최후의 고향’이 되리라는 무조건적인 낙관론은 인류와 지구를 더욱 병들게 할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