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대화

학부개인 장려상

꿈의 대화

리영희, 『대화』

신동욱


내가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했던 곳은 뜻밖에도 군대 도서관이었다. 그 전까지 리영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뜻밖에 군대에서 그 분의 책을 보니 호기심에 얼른 집어 들었던 것 같다. 그 책의 이름은 '스핑크스의 코'였는데, 선생님이 독서 후에 독후감을 쓰셨던 것처럼 나도 그 책을 읽고 이런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리영희 선생님의 삶을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말과 행동이 일치한, 언행일치한 삶을 사신 분. 정말 닮고 싶은 그 분의 삶을 접할 수 있는 책.

그 후 강만준 교수가 쓴 '한국사의 길잡이 리영희'를 읽고 간접으로나마 그 분의 삶과 생각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 전환시대의 논리와 같은 책을 읽고 느꼈을 감동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 또한 그 분의 글과 삶에서 큰 감동을 느꼈고, 내 마음의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추석 귀성길에 선생님의 대담집인 '대화'를 들고 버스에 올라 책을 펴들었다. 자신이 이 상황에 처했을 때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저자의 코멘트을 곱씹으며, 선생님의 삶의 궤적과 사상을 천천히 뒤따라 가보았다. 책 중간중간에 나의 가치판단을 대입해보며 스스로 적용해 보는 일은 퍽 재미난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순간 옆에 있던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선생님이 나의 옆에 앉아계셨다. 난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나 : 리영희 선생님 아니십니까? 존경하는 선생님을 곁에서 보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선생님: 나도 자네처럼 젊은 학생과 이야기를 하게 되니 기분 좋은걸. 허허.

나 :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선생님의 삶이 마치 우리 현대사 그 자체 같습니다.

선생님 : 그랬지, 참 파란만장한 시간이었어. 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그들의 교육을 받고 자랐어. 6 ․ 25, 4 ․ 19, 박정희의 쿠데타와 군사정권의 장기독재.. 그 모든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지. 솔직히 자네와 같이 이 시대에 태어나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열매를 먹고 있는 세대를 보면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허허.

나 : 대한민국이 그나마 이 정도라도 발전하고 나아진 것은 오로지 선생님과 같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덕분인 것 같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어요.

선생님 : 아니야, 나도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고 봐준다면 고맙지.

나 : 선생님의 군에서의 경험이 참 많은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구요. 선생님은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시고 생사의 앞길에도 여러 번 계셨잖아요. 게다가 7년간이나 복무를 하셨다니.. 저도 나름대로 군에서 고생하고,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경험에 비하면 새발의 피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 : 참 힘든 시기였지.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건 썩을 대로 썩은 군조직의 실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한다는 거였어. 거창 양민학살사건과 같은 어마어마한 범죄나 수많은 부패 ․ 비리 사건과 같이 자기의 탐욕을 위해 사람의 생명마저도 너무나 쉽게 저버리는 모습은 날 분개하게 만들었었지. 자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군대가 오히려 자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탈하고 빼앗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모습이었어.

나 : 저는 진주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었는데, 그 때에 비해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에는 물론 예전처럼 식량을 빼돌리거나, 월급을 빼돌리는 일은 없어졌지만, 병사들을 위한 예산을 전용하여, 사령관이 자기 집에 홈씨어터를 들인다든가, 모든 장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복지금으로 매일같이 만찬을 한다든가, 그런 사례를 듣거나 본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 군대는 그 본질적인 속성상 변할 수가 없어. 조직이 만들어진 자체가 폭력성에 기반하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그 특성상 썩을 수밖에 없지. 난 50여 년 전에 군생활을 했지만 지금도 군대가 싫어. 그 끔찍한 곳에 7년 동안이나 잡혀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곳에서, 몇 가지 인생의 교훈들을 깨달았던 건 참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나 : 전투가 끝나면 종교지도자들이 와서 국군의 승리를 칭송하고, 공산인민군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하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저는 모태신앙인 기독교인입니다만, 선생님의 일관된 기독교 비판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게 사실입니다. 사실, 선생님의 말씀을 인정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수님은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하실 만큼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셨는데, 지금의 기독교는 자기와 같은 무리라고 생각되는 편만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소위 6․25를 겪은 세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핍박을 당하고 쫓기듯 내려왔던 아픈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도 과연 같은 상황에서 그들처럼 저주하고 극단적으로 배격하셨을까요. 그 분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까지 짊어지는 사랑을 보이셨는데요.

선생님 : 난 예수가 가르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매우 높이 평가해. 그런 의미에서 난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기독교의 신자는 아니야. 어느 사상이고 종교든, 유일사상과 절대주의만큼 무섭고 두려운 것은 없어.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형제들 모두에 대한 차별 없는 정의가 아니라, 오로지 기독교 교회 일방적 이해관계에서 출발하는 정의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또 배척당했는가. 굳이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을 들먹일 것도 없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부시의 정권도 하나님의 정의를 들먹이며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는가.

나 : 전 솔직히 그 전쟁을 보며 마음아파하시고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찬미하되 마음은 떠났다고 탄식하시는 구절이 있지요. 그래도, 선생님께서 언급하셨던 장일순 선생과 같은 분이 계셨음이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됩니다. 조금씩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야겠지요.

선생님 : 자네에게 기독교를 믿지 말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 자네의 생각과 사상, 종교관 또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군.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 독선을 멀리하게. 모든 이를 사랑했던 예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해요.

나 : 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선생님은 외신기자를 오래 하셨는데요.

선생님 : 제대 후 합동통신사에 들어갔지. 외신기자를 하면서 국제정세에 대한 상당한 안목을 기를 수가 있었어. 비록 국내의 상황은 숨막힐 것만 같았지만,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변혁의 소용돌이에 난 흥분하고 감격했었어. 베트남민족의 경이로운 민족해방투쟁, 인간다운 삶을 찾으려는 중국공산당의 혁명, 오랫동안 착취받고 신음하던 소위 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운동. 한낱 역사의 객체에 지나지 않았던 민중과 인민들이 비로소 역사의 주체가 되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감격스러웠거든. 이것들을 보며 난 희망을 다시 새겼고, 썩을대로 썩은 이승만 정권과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치하를 버텨내는 원동력이 되었지. 난 이것들을 그냥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저히 연구하고 분석하였어. 나의 저서와 논문들은 모두 이러한 노력의 결과들이야.

나 : 선생님의 뛰어난 저작들은 시대정신 뿐 아니라, 철저히 연구하는 자세에서 나오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 진심으로 본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선생님의 책도 있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잡힌 시각입니다. 어느 한쪽에 경도되거나 매도하지 않으시거든요. 아까 절대주의의 위험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실을 근거하여 말씀하십니다. 지금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또 언론을 보면 근거도 불분명한 막연한 사실을 내세우며 정제되지 않은 주장을 마구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지금 우리국민들이 상당히 혼란에 빠져 있고, 여론이 분열되어 있는 것에는 그들의 책임이 상당하지 않은가 보여 지거든요. 사실 '반공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주의'로서 대접받는 다는 사실도 따지고 보면 참 이상한 일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주체적인 생각이나, 주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를 반대하는 것이 전부인 것에 과연 '주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요?

선생님 : 자유주의란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자유롭게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위 '자유민주주의자'라는 자들이 보안법을 만들어 다른 사상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억압하고, 전향을 강요하여 몇 십년이나 감옥에서 썩게 만드는 건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정말 몰상식적인 작태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이 당연하게 용인되어 왔어요. 반공이라는 고약한 우상이지. 그 우상만 내세우면 모든 부정의가 합리화되었다고. 내가 수 십년 동안 노력하고 작업했던 건 우리를 지배하는 바로 그 우상을 깨버리기 위한 것이었어.

나 : 선생님은 그로 인해 '의식화의 원흉'으로 낙인찍히시고 많은 고초도 겪으십니다.

선생님 :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지.

나 : 고난 가운데 자신의 신념이 꺾이고 마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보았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신념을 지키시고 저희 세대에 하나의 사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실 말만 앞서는 지식인들은 찾아보기 쉽지만 실천으로서 증명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거든요. 선생님, 선생님의 균형 잡힌 시각은 민족주의에 대한 의견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민족주의라는 것에 조금은 회의를 품는 입장인데요. 사실 민족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이미 신화처럼 변질되지 않았나 싶거든요. 신성한 권위를 가지고, 집단성을 이루는 것이지요. 민족주의는 내부의 결속을 위해 외부의 타자를 설정할 때에만 힘을 가집니다. 거기에서 억압성과 같은 수많은 부작용이 나오지요. 전 이제는 민족주의를 끊임없이 상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 글쎄, 난 민족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자네 말처럼 편협한 민족 중심주의는 부정하지. 자기 민족에 대한 극단적 숭배사상이나 배타주의적 허물에 빠지는 걸 경계해. 그런 민족관은 나아가 히틀러의 아리아 민족 순결주의와 같은 사이비 신앙화마저 결과화할 수 있거든. 게다가 개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지만 집단은 결코 그렇지 않아요. 개체로서의 인간과 집단 속에서의 인간은 큰 차이가 있다고.

나 : 선생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전 그래서 마음 같아선 민족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궁극적인 방향으로 옳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건 아무래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결코 민족을 절대적인 우상으로 보는 시각은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와 같은 집단도 마찬가지이겠고요.

선생님 : 민족의 해체라. 그것 참 과격한 주장인걸. 허허. 난 오히려 노신의 민족개조론을 한번 조명해보고 싶어. 그는 중국민족이 자신의 내면적 결점을 직시하도록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케 하려고 했지. 중화사상과 한족 우월주의 또는 타민족 열등관에 빠져 '자기만족'의 꿈을 꾸고 있던 중국을 흔들어 깨웠던 거야. 열등감에 빠져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틀린 점이 그것이라고. 끊임없는 자기 민족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해. 우리가 남에 대해 비판하더라도 우리 또한 스스로에 대해 반성할 수 있어야지. 가령 베트남전쟁 참전과 민간인 학살 등을 말이야. 그래야 우리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지 않겠나. 또한 노력이 있을 때 비록 거듭된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에 올 실패를 조금씩 경감시키는 지혜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우리 사회도 그렇게 조금씩 변화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난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라고 할 수 있겠군.

나 : 결국은 인간의 이기심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를 보호받고 싶은 욕망,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우리 편'이라는 집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민족이라는 집단도 그 한 형태일 테고요. 선생님께서는 자기희생적인 사회주의의 몰락을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속성에서 착안하셨는데요. 상당히 옳은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 인간의 이기심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물질적 생산을 극대화시켜 부를 생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회주의라는 항생제가 필요한 것이지. 사회주의적 요소가 없는 자본주의는 부패나 인간소외 같은 온갖 질병을 낳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난 현재로서는, 북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가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적절히 조합된 형태 말일세. 나는 장차 있을 남북한의 통일도 서로의 장점을 절반씩 가미한 '체제수렴적 통일'이 되길 바래요.

나 : 선생님의 삶은 현대사의 전개와 그 궤적을 죽 같이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최전선에 서 계셨습니다.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하신 것에서부터 한겨레신문의 창간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그 치열한 삶을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을 다 하며 사신 선생님의 모습에도 큰 감명을 받지만, 물러날 때를 생각하시고 조용히 관조의 삶으로 나아가시는 모습에서는 그 겸손함에 숙연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러한 선생님의 삶의 자세를 정말 본받고 싶습니다.

선생님 : 이제 난 나이도 있고, 조용히 살고 싶어요.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옛 성인이 말씀하셨지. 예전에 비해 우리 대중의 인식도 급진전했고, 우리 후학의 역량도 놀라울 만큼 커졌어. 이제 자네와 같은 새로운 세대에게 그 역할을 맡겨야지. 지금까지의 나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느낀 게 있다면 자네의 삶에도 적용해 보기를 바래요. 자네 삶의 환경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도 훨씬 어려운 악조건을 견뎌왔어. 중요한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인 것 같아.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워지고 모든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보겠노라는 포부를 가져보라구.

선생님이 이 책을 통해 던져주신 메시지는 선생님과의 꿈의 대화가 끝마치는 시간까지도 계속 내 가슴속에, 그리고 머릿속에서 맴돌고,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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