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새로운 질서

본선작-일반개인

중국의 새로운 질서: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의 전환

왕 후이,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김용재


1. 용의 飛上과 그 裏面

중국의 소위 '신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왕 후이는 오래 전부터 개혁개방정책의 함의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왔다. 중국정부와 인민들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시장화의 각종 병폐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직시하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모든 문제는 마오쩌둥이 남기고 간 불쾌한 기억과 중국적 전통의 책임으로 미뤄버린 채, 시장경제와 세계화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만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78년 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루어진 전통적 사회주의로부터의 단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혁이 보여주었던 전제적인 요소로부터 탈피하기 위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통적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긍정적 측면마저도 함께 사장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긍정적 측면이란 전통적 사회주의가 가졌던 '반현대성적 성격'을 의미한다. 전통적 사회주의는 오늘날 중국정부가 추구하는 실용적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화를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였지만 현대화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실용적 사회주의의 경우 바로 이러한 '반현대성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화의 달성가능성은 높아가나 그 병폐 또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왕 후이가 전통적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개방의 성과를 부정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실용적 사회주의가 결여하고 있는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부작용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적으로는 체제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국제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히 용의 飛上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한 행보이다. 그러나 내재적인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급속한 경제성장을 정치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만한 시민사회의 성숙과 정부기관의 민주적 개혁이 부진하다는 측면에서 일부 학자들의 경우 중국경제의 지속가능성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왕 후이는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 개혁개방정책과 신자유주의의 출현

왕 후이의 논의는 오늘날 중국의 지도부가 망각하고 있는, 그러나 사회주의적 현대화운동이 끊임없이 마주해온 모순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현대화'란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등이 낙후한 상태에서 선진상태로 이행,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사회주의적 현대화의 개념은 기술적인 지표나 체제의 수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론적 역사관을 의미하며, 자신의 사회적 실천을 이러한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모순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는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서구의 현대화과정이 노정한 부정적인 결과물들을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왕 후이는 이러한 모순을 염두에 두고서 현대화를 추구한 대표적 인물로 루쉰과 마오쩌둥을 꼽고 있다. 반면 오늘날 중국의 지도부는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자본주의 현대성 자체에 내재하는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표와 함께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왕 후이는 1989년의 사회운동이 사상계에 미친 영향을 통해 논거를 제시한다. 1989년의 사회운동을 비판의 첫 화두로 삼는 까닭은 바로 이 운동이 신자유주의 논리가 구체적으로 출현하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학생과 지식인, 도시에 거주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이 운동은 지난 수년간 진행되어온 개혁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들의 요구는 개혁과정의 공정성 보장, 감독강화, 국가기구, 관리투기매매 반대, 특권계급반대, 물가의 안정, 사회보장의 요구,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부패 반대 등으로 결코 과격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지도부와 자신들의 지대추구(rent-seeking)에 가해질 제한을 두려워한 '세력'이 천안문 사태를 이끌어내고 만다. 그 과정에서 건전한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정당한 요구는 과거로의 회귀를 부르짖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으며,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적 체제정당화에 더 이상 기댈 수 없어진 정부와 보다 급진적 사유화를 바라는 '세력'들이 구체화시킨 논리가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왕 후이의 견해이다.

여기서 정부와 함께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는 '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관해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다. 마치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부르주아'를 연상시키는 이들은 1985년부터 본격화된 도시지역에 대한 개혁의 산물이라고 한다.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되었지만 84년까지의 개혁은 인민공사의 해체 등 농촌지역에 집중되었던 반면, 85년부터는 시장기제가 도입되면서 국가가 통제하던 사회자원을 분산, 전환시키는 광범위한 개혁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계층이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시장기제의 도입이 실제로는 권리와 이익의 이양을 의미하였고, 이러한 개혁이 민주적 감독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엄청난 양의 국가자산이 소수의 경제이익으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부패와 정경유착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왕 후이는 시장기제의 도입이라는 개혁의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중국이 동구에서와 같은 혼란 없이 순조롭게 전환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시장을 서서히 자극함과 동시에 독점성을 상대적으로 억제한 것이 주효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정경밀착의 이익분배과정에 있어 충분한 합법성이 부여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해야 할 필요성을 안겨주었고, 그로 인해 하나의 강고한 이데올로기로 부상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빈부격차와 불평등, 환경오염 등 현재의 어려움들은 모두 과도기의 현상일 뿐이므로 이를 잘 견뎌낸다면, 경제성장은 물론이요, 시민사회의 형성과 정치적 민주화까지도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어려움들은 오히려 마오쩌둥의 사회주의와 중국의 전통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오늘날의 지도부가 추구하고 있는 실용적 사회주의는 그 대안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3. 탈-전통적 사회주의, 그리고 제3의 모색

왕 후이는 역사적 분석을 통해 상기의 주장에 대하여 반박하고 있다. 여러 문제들이 현대화과정 자체에서 생겨나고 있으며, 작금의 문화적, 도덕적 위기를 더 이상 전통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다음 그림과 같은 신계몽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가 현실정치의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기 마오쩌둥 시기 1978~1989 90년대 오늘날
사상 신계몽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념 전통적 사회주의 공상적 사회주의 실용적 사회주의
실용적 사회주의

중국적 맥락에서의 신계몽주의란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을 추구함으로써 총체적인 국가개혁에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한 사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실험을 비판하는 데에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국가가 추진하는 사회변혁이 시장화과정을 경유하여 세계화를 향해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 사회주의가 가졌던 현대성을 은폐하고 봉건의 이미지를 씌워버리는 과정을 동반하였으며, 현대화과정 자체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위기에 대해서는 무기력을 드러내고 말았다. 또한 아직도 계몽주의를 견지하는 일부 인문학자들은 자본화되어가는 현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두고 추상적인 인문정신의 위기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는 서구와 중국의 고전주의철학으로 되돌아가 궁극적 가치와 윤리관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귀결되고, 결국에는 문제를 개인이 편하게 몸과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도덕적 실천차원으로 한정시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신계몽주의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화의 이름으로 욕망의 생산과 재생산을 인민의 요구인 것처럼 만들어내고, 시장화과정에서 자본의 제약을 받는 사회형태를 중성적이고,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현실'인 것처럼 해석하기 때문이다. 시장화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묘사할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관방이데올로기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반면, 지식인들의 비판은 희화화되는 것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여타 국가들을 사례로 연구된 민주화이론들 의도치 않게 위 조류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서구의 여러 선진국들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의 민주화 과정에 관한 이 여러 이론들은 시민사회의 형성 내지 시민사회의 능력향상을 민주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형성은 시장의 자유화와 경제성장에 맞물려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장의 자유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 역시 점차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민주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앞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왕 후이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적 맥락에서의 민주화 과정과 주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민주화는 요원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시민사회가 민주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 우선 시민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계층으로 손꼽히는, 시장화 개혁을 통해 탄생한 자본가계급에게는 민주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 사이에는 복잡한 부패의 고리가 형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권위와 통제에 힘입어 자신들의 부를 더욱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은 결코 국가로부터 독립된 자연적 영역으로 생성되어, 자유롭게 기능하고 있지 않으며, 국가의 강고한 능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에 하버마스 식의 '공공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가 국가-사회 사이에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왕 후이는 시민사회의 형성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거대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츠이 지위안 등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보통공민의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혼합제도(국가-엘리트-대중의 3층구조)의 구상'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개인의 자주성과 정치적 참여능력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민주적 감독체계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국가와 이익집단 사이의 동맹을 제어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둘째, 왕 후이는 이러한 대안의 모색을 위해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지식인들은 지금보다 좀 더 복잡한 논의 모델을 개발하여 사회문제를 검토해야 하며, 사회적, 정치적 비판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폭넓은 세계적 관계 속에서 보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정치경제 관계를 건립할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여 체제적 차원의 부패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만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4. 이상과 현실, 그 경계선에서

왕 후이의 주장은 민주화의 실현을 논하고 있지만 현재의 실용적 사회주의의 목표, 즉 현대화의 달성에 만족하지 말고 전통적 사회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반현대성적 성격'을 살려내서 실현하자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래야만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기원, 즉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 환경오염의 문제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서 있든 간에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입장에 따라 참고 기다리면 해결될 성격의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뭔가 근본적인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와 실용적 사회주의에 대한 왕 후이의 비판이 얼마나 정당한지, 왕 후이가 제시하는 대안들이 어느 정도의 실현가능성을 가지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 사회주의 실용적 사회주의 왕 후이의 모색
시기 구분 마오쩌둥 시대 개혁개방 시대 오늘날
경제적 현대화(①) 관심
결과 달성 못함 달성 ?
반현대성 문제(②) 관심
결과 최소한의 평등실현 불평등 심화 ?
민주주의 실현(③) 관심
결과 우상화된 독재 독재 ?

이 표는 경제적 현대화, 반현대성 문제 그리고 민주주의 실현에 관한 관심과 그 달성 여부라는 측면에서 전통적 사회주의와 실용적 사회주의 그리고 왕 후이의 모색을 비교한 것이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왕 후이의 모색은 개혁개방을 통해 달성한 ①은 물론이고 하단의 두 가지 목표 또한 동시에 달성하려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론적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가능한 주장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세 가지 문제의 해결이 동시에 추진되어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지식인의 아우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모색을 현실화할 주체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왕 후이의 주장에서 중요한 두 주체는 지식인과 민중이다. 지식인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적, 정치적 비판의 공간을 확보함으로써 변화를 추동해야 하는 존재이며, 민중은 그러한 변화의 결과로써 마련된 정치체제 하에서 역할을 다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두 주체 모두 사실상 그러한 능력과 의지가 불충분함을 인정하고 있다. "90년대 중국의 지식인사회는 새로운 적응방식을 찾으려 노력하는 가운데 무소부재로 퍼진 상업문화 속에서 자신들이 더 이상 문화적 영웅도 가치의 창조자로 아니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면서 흩어져 갔다", “민중들이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 미디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여전히 통제당하고 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 후이는 "사회적 실천 속에 담긴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 더욱더 관심을 갖고 민간사회의 재생능력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나아가 중국이 현대성을 추구한 역사적 조건과 방식을 다시금 검토하여 중국 문제를 세계적 역사 시야에서 고려하는 것이 긴박한 이론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진정 뭔가 바꾸길 원한다면 어떻게 지식인과 민중을 변화시킬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그가 그토록 비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넘어서서 자본가들, 권력엘리트 사이의 강고한 동맹을 깰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본 비판은 왕 후이가 추구하는 목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민주주의 발전에 관한 인식이 일본의 현대정치사상에서 큰 함의를 가졌듯이 왕 후이의 理想 역시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문제시하는 현재의 많은 '반현대성적 문제'를 그가 지목하는 문제의 근원들, 즉 실용주의적 사회주의 정책과 거기서 이익을 얻고 있는 자본가-관료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지울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고, 검증불가능한 근거만을 나열하고 있기에 설득력의 한계마저 느껴지기에 아쉽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저자의 국가에 대한 의존성이다. 왕 후이는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정책방향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비판하고, 그들이 행사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통제력 역시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개혁방안을 제도적 차원의 개혁에서만 찾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중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다. 당 지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인민들의 지지 또한 강고한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도부의 권력독점 자체가 문제의 근원인 상황에서 ‘보통 공민’의 정치참여를 보장해달라는 것은 해결책으로서 충분하지 못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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