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위하여
학부개인 2등
다시,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위하여
김순천 외,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후마니타스, 2008년)
사회대 언론학부 꼼반 김일환
안녕하세요.
여러 사람에게 편지를 써 보았지만, 제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고 아마도 저를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는 이번이 난생 처음이네요. (아! 초등학생 시절에 군인 ‘아저씨’께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그림엽서를 보낸 적은 있으니, 처음은 아닐 수도 있겠지요) 오직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 글을 받아 읽으실 분이 ‘파란색 스머프 티’를 입고 계셨던 많은 사람 중 한 분이라는 것밖에는 없어요. 적어도 편지를 쓰려면 받는 사람이 요즘 어떤 얼굴을 하고 다니는지, 무슨 생각을 가슴에 묻고 있는지, 이야기할 때 한숨은 몇 번이나 쉬는지 정도는 지레짐작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결국 이 글도 받는 사람의 기분과 처지는 아랑곳 않고, 내 감정과 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꼴이 되지 않을까 지레 겁이 납니다.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작년 여름 강남 뉴코아 매장 앞에서 처음으로 스머프 티셔츠를 보았고, 올 해에는 거리에서 겨우 두어 번 마주쳤으니 저를 기억해주시길 바란다는 건 아마 저만의 염치없는 욕심이겠죠. 그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발자국 물러서서 안타까운 눈으로 당신의 싸움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을 뿐인데요.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행동은 거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의 작은 동참이, 저에게 앞으로도 좀체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겨주었다는 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 흔적에 의지해서 좀처럼 써지지 않는 편지를 이렇게 붙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잔잔한 호수같이 출렁임 없는 삶을 살아온 제가 어떤 일에 대해서 그토록 화를 내보았던, 그리고 그 화를 오랫동안 깊게 품었던 적은 작년 여름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렇게 된 데에는, 이랜드 기업의 이야기 그리고 박성수 사장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다니던 교회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어조로 말입니다. 교회의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랜드 기업은 항상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환원해왔다. 또 하루 업무 시작 전에 사장 이하 모든 종업원이 모여서 기도를 드린다. 박성수 사장의 이러한 신앙심이 결국엔 이랜드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도하며 노력하면 주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로 끝맺는 진부하기 짝이없는 이야기...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성공’과 ‘복’이 더 많은 부와 같은 말은 결코 아닐 겁니다. 더구나 타인과 나의 ‘관계’를 배제한 말도 아니구요. 그런데 이 땅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철저한 희생 위에 쌓아올린 ‘선행’과 ‘성공’에 초월자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고, 모두가 그것을 본받을 것을 당부하는 코미디같은 풍경이라니요. 물론 목사님은 항상 이랜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성경 말씀으로 설교를 하더라도 항상 비슷한 결론으로 끝맺곤 하셨지요. “성취하라! 그분이 도우시리라!” 7월 1일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이런 설교와 교회 분위기는 저에게는 참기 힘든 고역이었어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의 법안이 시행되고, 당신이 여전히 파란색 스머프 티를 입고 계산대를 막아선 그날 이후에도 말이에요.
당신은 저에게 분명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흰 종이 위 검은 활자에서 보던 ‘비정규직’의 사전적 정의가 도대체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칼날이 비정규직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는가에 대해 온몸으로 말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싸움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우리의 말과 생각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말과 생각이 뿌리박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어야만 한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용하는 말들 속에 얼마나 비뚤어진 생각들이 들어가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어요.
제가 배우는 사회학에서는 당신의 직업을 ‘서비스직 노동자’라고 불러요. 서비스. 우리말로 ‘공헌, 봉사, 도움이 됨’ 정도의 말이 되겠죠. 우리가 서비스를 찾을 때는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러 갔을 때에요. 그 돈 몇 장 가진 것이 대단한 권력이라도 되는 양 우쭐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무시하지 않기를, 내가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쩔쩔매며 성의 있게 응대해주기를 기대해요. 그리고 그 요구가 충분히 받아들여질 때 ‘서비스가 좋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인터뷰에서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태도’라고 했어요.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지하공간에서 얼굴경련이 일어나도록 받는 웃음 훈련과, 입술이 붉어야 치아가 하얗게 보인다며 억지로 칠해주는 빨간색 립스틱이 심한 모멸감을 안겨주었다고. 쉴 새 없이 몰려들며 조금만 계산이 늦어도 화를 내는 고객 때문에 화장실에 가지 못해 생기는 방광염. 몸 하나 겨우 들어갈 계산대에서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하는 바람에 생긴 하지정맥류. 어쩌면 우리가 매번 물건을 살 때마다 원했던 ‘서비스’는 당신이 감내해야 했던 모든 인간적인 모멸감과 고통을 대가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지요.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불한 돈과 그 대가로 받은 ‘서비스’에는 모든 신경을 곤두새우면서, 정작 그 이면에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당신의 고통에는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했었나요. 그러면서 ‘더 많은 서비스’를, 나를 왕으로서 대접해주기를 요구하였을 나를 보며, 당신이 느꼈을 감정을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요. 인간의 구체적 삶 속에서 유용하게 쓰인다는 ‘실용’이란 말은 냉혹한 돈벌이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노동자가 일할 수 있을 때 일하며 시간을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노동의 유연성’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저보다 당신이 훨씬 더 잘 아실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의 머릿속 사고에서 사람의 얼굴을 지워내며 살고 있나요. ‘처음처럼’ 소주 상표의 글씨를 쓴 신영복 교수님은 어떤 글에서, “고향에서 숙모님이 보내주신 대추 한 되를 앞에 놓고 숙모님의 모습과 고향의 산천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지만 수퍼에서 구입한 사과 한 개를 손에 들고 과수원을 연상하기는 어렵”다고 쓰셨는데, 우리 눈 앞에서 말없이 바코드를 찍고 있었던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또 박성수 사장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축구 선수 한 명의 하지정맥류는 그 개인의 불굴의 의지의 징표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지만, 당신과 당신이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동일한 증상은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영역 밖으로 추방되었었지요. 그리고 당신이 그 모든 고통과 부당한 대우에 대해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 ㅡ정확히 당신이 매일매일 일하던 곳ㅡ 에서 큰 소리로 외쳤을 때 세상은 냉혹했어요. ‘노사자율’을 외치던 정부는 불이 나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지하 셔터를 용접해버렸고, 음식물과 의료진의 출입조차도 허용하지 않더니 결국엔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당신들의 목소리를 또 다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냈어요.
인터뷰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스스로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했습니다. 정부도 이랜드 기업도, 심지어 노조나 진보언론에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파업과 점거농성 당시의 미묘한 감정들을. 그리고 이후에 조금씩 변해가는 마음상태에 대해서도. 읽다가 한편으론 너무 속 쓰리면서도, 좀처럼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구절도 있었어요.
“그런데 또 단점이 있어요. 노동운동을 하다 보니까 감정이 없어져요. 아름다운 걸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고 좋은 음악이 듣고 싶다던가 하는 그런 거요. 비 내리면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던가 하는 감정이…… 정서가 메마른다고 할까. 그런데 요즘엔 욕이 막 나와요. 사 측에서 회유 전화 오면 ‘xx하고 자빠졌네, 이 xx들. 노사화합 웃기고 앉아 있네’ 그런 말 먼저 나오고. 지금은 덜하지만 구사대 폭력이 있을 때나 억울하고 매 맞을 때 나 자신의 방어라고나 할까, 스트레스 때문에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어요. 내가 점점 격하게 변해요.”
아... 어디서 이런 솔직한 이야길 들어볼 수 있었을까요! 정확한 패턴과 한정된 단어로 꾸려지는 무대 위 발언은 물론이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듣지 못하던 말을 너무 쉽게 술술 하셨어요. 왠지 모를 속 시원한 느낌은, 제가 주위 사람들에 쉽게 하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 주셨기 때문일까요? 전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항상 이런 말들을 들으며 자랐어요. ‘네 이웃을 사랑하세요’ ‘항상 선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별다른 굴곡 없이 자랐기 때문일까요, 이 가르침들이 제 삶에 큰 갈등으로 다가왔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신이 작년부터 겪어온 일들은 나에게 또 다른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미워해야 것을 미워해라’ ‘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미워하는 법부터 배워라’라는 굉장히 모순적인 말을요.
사랑하라는 절대적인 명령과, 미워할 것을 미워해야 한다는 당면한 진실.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야할 아름답고 따뜻한 것들과,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하기 위해 감내해야 할 또 다른 감정들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추스르는 일은 저에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둘은 남이 보기엔 ㅡ특히 저와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들ㅡ 물론이고, 제가 볼 때도 가끔씩 모순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거든요. 올해 학교 안에서 제가 맡은 여러 일들을 하면서, 스스로 품은 답답함과 분노에 갇혀서 허우적대었던 때가 가끔씩 있었어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가깝게 지냈던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때, 어쩌면 당신이 말했던 것처럼 나도 흑백논리도 세상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그런 논리의 단순명쾌함에 힘입어 나를 좀 더 앞으로, 좀 더 앞으로 밀고 나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의 인터뷰를 계속 읽으면서, 그 모든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무엇이 당신을 계속해서 투쟁의 장소에 남아있게 해주었는지, 그 힘의 실체를 찾아보려 노력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을 말 그대로 “내 팽개치고” 전기세를 내지 못해 중학생 아들이 촛불을 켜고 숙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년 넘게 싸움이 이어지며 이젠 희망 또한 일년 전만큼 밝지 않은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미 ‘돈 몇 푼 더 받으려는 노조의 이기주의’를 탓하는 목소리가 근거없는 악담이라는 것을 당신이 처한 상황 자체가 말해주고 있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억울함과 분노 때문입니까. 매장에서의 인간적인 멸시와 차별에, 물대포에, 몽둥이에 치일대로 치여 남은 것이 악 밖에 없기 때문입니까.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로 그것만으로는 일 년 넘게 수없이 반복된 당신의 결단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전에 일하던 곳인 계산대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계산원의 일은 임금이 적고 일이 고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좌우에서 삑삑- 하며 하루 종일 듣게 되는 바코드 소리를 하루종일 들어야 합니다. 그뿐입니까. 친절하게도 빨간색 립스틱을 직접 칠해주는 점장이 존재하고, 회사 사람이 고객으로 가장하고 실시하는 모니터링제도가 당신이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같은 계산원이면서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거나 직군이 나뉘어져 있어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질시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장소가 바로 당신이 일했던 계산대였습니다.
마치 마술과 같이 당신이 그 계산대를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했을 때에, 그 공간은 분절된 노동을 넘어서는 공통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바뀌었어요. 일하는 시간에 앉지 못하도록 좁게 설계된 계산대는 스티로폼을 깔고 함께 잠을 자거나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공간으로 변했고, 그곳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상대방이 처한 위치와 주 수입, 경제적 상황, 집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 등등 사소한 일들까지 공유할 수 있었다고 당신은 이야기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찝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계산대 사이사이를 고립시켜왔던 벽을 무너뜨리고 옆 사람을 바라보았던 경험, 그리고 “바퀴벌레같이 징그럽게 몰려오는” 전경들에 의해 계산대를 뺏기지 않으려고 함께 팔짱을 끼고 울면서 들었던 생각. 그것을 당신은 ‘동지애’라는 조금은 거친 말로 표현하셨지요.
그때를 잊지 못해서였는지, 당신은 “이기든 지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회사랑 집 밖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어떤게 시민의식이고 사회를 올바르게 봐야지 제대로 살 수 있는 거라는 걸 느끼”고 그것을 싸움의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사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갓 학교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파업을 계속하고 있는 KTX여승무원 민세원씨가 “노예처럼 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라고 한 말이 떠올라서요. 설사 이 싸움에서 이겨서 원래의 계산원 직으로 되돌아갔을 때에, 예전같이 일할 수 있을까... 아마도 큰 변함이 없을 노동조건을 모멸감 없이, 자기원망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히려 여태의 경험이 더 큰 가시가 되어 자기자신을 찔러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먼발치에서라도 다시 만날 때에, 당신이 홈플러스 점원복을 입고 있을지, 아니면 그때에도 파란색 스머프 티셔츠를 입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길을 걷고 계실수도 있겠지요. 어떤 길에 되었건 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갈 당신의 인생을 최대한 소리높여, 무조건 응원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골치 아픈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을지, 아니면 나만의 일을 꾸리며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을지. 그때에 아무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응원하기 위해선, 우선은 제가 파묻혀있는 대책 없는 답답함에서 조금은 벗어야 하겠지요. 마치 당신이 방향없는 분노에 파묻히지 않았듯이.
쓸데없이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느라, 변변히 응원도 못해드렸네요. 일년이 넘게 이어진 당신의 싸움은 저에게 분명 절망과 분노를, 그리고 때론 지독한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만큼의 희망 또한 동시에 저에게 준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세상 가장 작은 사람들이 일년이 넘게 골리앗과 같은 거인과 맞서 당당할 수 있었음을, 그래서 나의 왜소함 또한 긍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꼭 이기시라는 말도 이젠 제 욕심에서 나온 말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꼭 이기셔야 해요.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위하여! 앞으로 추운 날들 항상 몸조심 마음조심 하셔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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