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염병, 생태계 보호를 넘어 전염병의 정치경제학으로
본선작-학부개인
환경전염병, 생태계 보호를 넘어 전염병의 정치경제학으로
마크 제롬 월터스 지음, 이한음 옮김,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
원중희
1. 들어가며
전염병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전염병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에이즈나 SARS, 에볼라 바이러스 등의 무섭고 끔찍한 것들을 연상시키지만, 원래 전염병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 책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을 읽고 난 후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다. 사실 우리가 떠올리는 거의 모든 전염병들은, 저자의 명명법에 따르면 ‘Ecodemic(이하 환경전염병으로 표기)’이다. ‘환경전염병’이란 “생태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새로운 전염병”(15)으로 정의된다. 조금 어렵다. 기존에 존재하던 ‘전염병’과 새로운 ‘환경전염병’은 뭐가 다르다는 걸까? 일단은 둘의 차이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전염병 자체에 대한 간단한 생물학적 지식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자가 배고프면 먹이를 먹는 것처럼, 병원균pathogen들도 배고프면 먹이를 먹는다. 다만 둘 사이의 차이점은 사자는 자신보다 작은 생물을 ‘밖에서부터’ 먹는데 반해, 병원균들은 자신보다 큰 생물을 ‘안에서부터’ 먹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자가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해서 얼룩말을 멸종시키는 것이 아니듯이, 병원균들도 자신의 숙주들을 학살하지 않는다. 이 둘의 행위는 전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사자와 병원균 모두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스스로 필요한 만큼의 먹이를 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질문이 다시 생긴다. 그렇다면 5,000만 명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나, 1984년부터 10년에 걸쳐 영국에서 100만 마리의 소를 죽인 광우병도 그런 정상적인 과정의 일부에 포함될 수 있을까?
2. ‘Ecodemic(환경전염병)’이란?
‘환경전염병’이란 개념은 여기서 등장한다. 생태계가 조화로운 균형을 이룰 때에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전염병, 인간이 자연환경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발생한 전염병, 그 자체로 생태계의 균열을 증명하는 전염병이 바로 환경전염병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서운 전염병들은 환경전염병들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표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6가지 환경 전염병 - 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 DT104, 라임병, 한타 바이러스, 웨스트 나일 뇌염 - 을 통해, 인간의 활동으로 야기된 생태계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 연계라는 큰 틀에서 전염병을 사고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질병과 인간을 적대적으로 보는 기존의 사고를 넘어서서 상생의 길을 찾는 데에 유효한 인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가 해결책을 제시함에 있어서,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식의 관념적인 결론에 그치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논지를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폭로한 정치 · 경제적 관계들은 그의 결론에서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에 나는 6가지 환경전염병 중 몇 가지를 검토하여, 저자의 주장이 주요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저자가 미치지 못한 부분은 어디인지를 각각 드러내고자 한다.
3. 라임병과 한타 바이러스 - 저자의 주장과 관련하여
저자가 제시하는 자연과 인간의 통합적인 관점은 라임병과 한타 바이러스의 예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들은 환경 파괴로 대표되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변하면서 생긴 환경전염병들이다.
라임병의 경우, 이를 일으키는 세균은 오랜 기간 미국에서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은 채로 살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숲이 이 세균과 인간의 자연적인 경계선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이 파괴되고 그 속에 인간들이 살아가게 됨에 따라 인간들은 라임병 매개체인 진드기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병을 유발하는 세포나 바이러스는 ‘원래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타 바이러스 또한, 이전부터 때때로 존재하던 질병이,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번지게 된 사례이다. 한타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발생쥐개체군은 비가 많이 내릴수록 개체수가 늘어난다. 그런데 페루 해안에서 발생한 엘니뇨가 뉴멕시코 주의 강수량 상승에 영향을 미쳐 그곳에서 한타 바이러스의 증식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 두 지역의 거리는 무려 수천 킬로미터에 달한다.
숲의 파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파괴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불러온다. 생태계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상호 연계되어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생태계에는 인류가 밝혀내지 못한 미생물들이 무수히 많다. 약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성인 인간의 몸속에는 세포 수의 10배에 해당하는 미생물들이 사는데, 과학자들은 아직 이들도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 이럴진대 어떤 야생동물의 어떤 미생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인간에게 병을 옮길지는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박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최선의 방법은 자연적인 경계선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존하는 것 뿐”(11)이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건강과 자연계의 운명이 떼어질 수 없다”(173)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러한 환경전염병은 계속해서 출현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저자의 포괄적인 관점은 전염병을 생태계의 큰 틀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4. 전염병의 정치경제학으로
하지만 환경전염병을 발생시킨 원인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관점을 넘어서는 다른 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광우병과 살모넬라 DT104, 에이즈 등의 예를 통해, 저자가 그러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해결책을 제시함에 있어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광우병
광우병은 프리온 단백질을 가진 양들을 동물사료로 만들어 소에게 먹이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사료를 먹임으로써, 인위적으로 육식동물로 만들어버리는 과정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종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과정이 나타났는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깊숙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물사료의 원료는 양을 도축할 때 버려지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아서 동물사료로 만들어 팔면 이윤을 창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광우병의 발병과 원인 추적 과정 전체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서술 방법은 ‘경고’에 가깝다. “전례 없이 전염병이 그물처럼 사방을 뒤덮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60)와 같은 언급이 그 예이다. 그가 이미 밝혀놓은 집약 농업 체계의 이윤 창출 메커니즘이 직접적인 광우병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분석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2) 살모넬라 DT104
이 같은 예는 살모넬라 DT104에 대한 분석에도 나타난다. 살모넬라균은 항생제에 노출되어도 몇몇은 반드시 살아남아 내성을 지니게 된다. 새로운 항생제를 투여할 때마다 살모넬라는 또다시 새로운 내성을 가지고 나타난다. 살모넬라 DT104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게 된 살모넬라균의 한 종류이다. 이러한 살모넬라균의 존재 때문에 항생제 사용 여부를 둘러싸고 제약 업계와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대립하게 된다.
이 책에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이어진 이들의 대립 과정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 대한 서술은 무척 흥미롭다. 살모넬라균이 살모넬라 DT104로 변모하는 과정이 제약업계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약업계는 계속해서 새로운 항생제가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FDA는 항생제의 계속적인 사용으로 인해 내성을 지닌 세균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번에도 “약물 내성 살모넬라가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전염병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117)라는 식의 경고로 마무리하고 있다. 책의 결론에서는 “항생제를 덜 쓰면 치료가 불가능한 세균 감염 질환들이 쇄도하는 것을 막”(212)을 수 있다는 어쩌면 당연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살모넬라균의 예를 통해 항생제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제약 회사와의 이해관계에 얽혀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이해관계에 맞서 어떤 방법으로 항생제 사용을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 없이, 다시금 도덕적인 선언만 반복하는 것이다.
(3) 에이즈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적인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이하 에이즈로 약칭)의 예를 보자. 에이즈의 감염과 전파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에이즈는 침팬지의 몸 안에 있는 원숭이면역결핍바이러스(SIV)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이 바이러스를 가진 원숭이의 피와 체액과의 접촉을 피하면 최초 감염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콩고 분지나 사하라와 접한 지역 등지에서 야생동물 사냥은 그곳 사람들의 주요한 생계 수단이라는 것, 그리고 원숭이를 먹는 것이 단백질을 보충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에이즈 확산이 특히 심각한 아프리카 7개국은 평균 수명이 40세도 안 되고, 에이즈 감염률이 가장 높은 보츠와나의 경우 성인의 에이즈 감염률이 38.8%에 이른다. 단순히 아프리카가 바이러스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AIDS의 확산은 제국주의적 질서라고 부를 수 있는, 자본주의적 질서가 세계적으로 퍼지는 과정에서 생긴 세계의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자 또한 “인간에게 새로운 형태의 에이즈 바이러스를 안겨줄 수 있는 야생동물고기의 소비를 과연 줄일 수 있을까?”(212)라고 묻지만, 그가 에이즈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감상적이다. 아프리카 가봉의 야생동물 시장을 묘사하면서, 그는 씁쓸히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다.
6. 나가며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적인 구도를 넘어서야 한다고, 인간은 홀로 선 종이 아니라 자연 속의 수많은 종들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저자가 보여주는 여섯 가지 전염병의 예시는 그 근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이 늘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는 충분히 보았다. 전염병들이 폭로하는 사실들은 지금 지구 전체의 순환적인 생태계의 고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들이다. 그리고 이대로 갈 경우, 어떠한 의료 기술도 정복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질병이 언제라도 출현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고한다.
그런데 저자의 이런 작업은 은연중에 환경 외의 많은 문제들을 건드린다. 그가 폭로한 사실은, 전염병의 발생과 관련된 환경 변화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정치 · 경제적 삶과 깊숙이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림벌채, 현대의 집약 농업, 지구 기후 변화 등은 단순히 환경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발 물러나, “생태계 전체를 복원하고 보호해야 한다”(212)는 다소 복고적인 결론으로 돌아선다. 이처럼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결론은 저자가 이미 폭로해 놓은 사실들에 비하면 너무 부족하다. 오히려 여기서 더 밀고 나가, 각각의 전염병들과 관련된 정치 · 경제적 문제들을 보다 정면에서 마주하고 문제제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이런 복고적인 결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저자가 환경 문제를 대하는 방식 때문이다. 저자는 선악의 구도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악이고, 생태계 속에서 조화로운 삶을 회복하는 것은 선이다. 자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니라는 당연한 ‘진실’ 아래에서 자연을 회복하는 것은 ‘당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인류가 더욱 많은 전염병들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그에게는 충분한 해결책이다. 환경에 변화를 야기하는 인간의 행동들의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함은 그에게 사고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선악의 구도만으로는 지금 당면한 문제를 돌파해낼 수 없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생태계 복원이 지상과제이다!’라는 선언은, 세계의 자본주의 구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전염병에 노출되며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저자는 AIDS의 예에서 이런 점을 부각시켜놓고도, 이것을 효과적으로 자신의 시각으로 녹여내지 못했다. 질병은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넘어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도들과도 얽혀 있다. 전염병을 유발하는 수많은 병원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도 지금 우리가 처한 조건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에서 시작해야 한다.
저자가 제시한 여섯 가지 질병의 각각의 의미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내었더라면, 그의 새로운 개념어인 ‘Ecodemic'은 더 새롭고 파괴적인 용어가 되지 않았을까? ’환경전염병‘이라는 번역어는 단순히 환경과 전염병과의 관계만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Ecodemic'이라는 말이 앞서 말한 것들을 포함했다면, 번역어 자체는 물론, 그 파괴력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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