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의 상대론에의 비유
학부개인 3등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의 상대론에의 비유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물리학부 05학번 김지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 대한 남미의 대문호 보르헤스의 평가 : '러시아적 인간 영혼을 가장 깊이 파헤친 심리 소설'은 그것이 대작에 대한 문학적 칭송인 만큼 누구에게도 이견이 없으리라 믿는다. 소설은 욕정과 사랑, 갈등과 존경 혐오 등의 감정위에 친부 살해라는 치명적 사건을 축으로 두고, 한편으론 조시마 장로 이반 혹은 알료사와 이반의 대결 등이 형성하는 사상적, 철학적 대결의 축을 형성하면서 격한 긴장감과 조화 속에 집중력 있게 소설을 진행해 나간다.
이 와중에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은 제각기 개성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성격을 형성하며 소설의 다 성악적인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데 이는, 비유클리드의 공간 중, 리만 공간 속에서 제각기의 속도로 궤도를 타고 운동하는 그런 인물들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소설 속의 정신적 세계를 상대론의 비유클리드적 우주에 비유해서 소설의 정신적, 사상적 모습을 묘사해보고자 할 것이고, 또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사상도 이반의 사상을 통해 다루어 보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소설 전체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친부 살해 사건이나 미챠 표도르 스메르쟈코프 등은 따로 다루지 않을 것이며, 오직 전체적인 정신 세계의 이미지에만 집중해보도록 할 것이다.
(여기서 묘사하는 우주론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우주론이 아닌 하나의 비유에 불과함을 주지 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상대론의 비유 1. 공간의 비유
일단의 이미지는 이러하다. 광활하게 휘어진 우주의 중심부에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그리스도 혹은 성서라는 질량 점(정확히는 반질량이다. 이 부분엔 사실 커다란 착각이 있었다..:) )이 있다. 그리고 그 점을 중심으로 휘어진 공간 속엔 무신론의 사상이 블랙홀처럼 놓여 있으며 또한 인간의 육체적 욕망들도 각기 다른 크기의 질량으로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이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의 영향력 안에서 단일한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때 가장 큰 질량 점인 그리스도의 사상과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질량 점, 무신론의 영향력에 우주의 곡률은 일정하게 양으로 유지되어 타원면과 같은 굽은 모양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나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한점으로 붕괴되지는 않은 채 조화로운 우주를 형성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의 저서 탐구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세계를 평행선이 무한원점에서 교차하는 공리계라고 하며 이 무한원점을 그리스도에 연결시키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비록 그리스도가 중심부에 자리를 잡아 모든 사상들이 그의 영향력을 받을지라도, 그것에서 모든 것들이 교차하며 붕괴하지는 않는다. 즉, 소설 속 대부분의 토론이 성서를 매개로 하고 있을 지라도 모든 인물들이 성서로 붕괴되어 자신의 사상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우주는 조화롭게 유지되는 것이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이러한 우주 속에서 각기 다른 궤도를 따라 자신만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때의 우주는 단순히 평평한 우주로 영원히 멀어질 수 있는 그런 무한한 그런 시공이 아니라 사상의 질량 점들 의해 거대한 구면처럼 휘어져 소설 내의 통일성을 보존해주는 닫힌계의 정신적 우주이다. 따라서 이 세계 내의 존재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기 다른 질량 점으로부터 발생하여 그 주위를 선회하면서 전체 우주의 형성에 필연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질량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중력파의 양자 즉 중력자가 존재해야 하듯, 소설 속에선 사상의 질량 점으로부터 발생한 인물들이 필요해, 그들이 그만의 대화를 통해 각자의 근저에 있는 사상을 전달하면서 다른 질량 점들과의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또, 자신이 발생한 질량 점의 위치를 각인시키며 전체 우주의 모습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한편으론 사상의 질량 점들은 이러한 상호 과정 속에서 서로의 중력장을 끊임없이 유지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도스토예프스키적 우주를 형성하게 된다. 즉 이 질량 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전 우주적인 정신적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 즉, 중력자들은 특정한 한점으로 붕괴하지는 않은 채 영원히 자신만의 궤도에서 특정한 속도로 운동할 수 있다. 이때, 질량 점들의 영향 속에 휘어진 시공간의 중력장은 바로 소설 외부의 독자에게도 힘을 미쳐, 독자는 첫째로는 물질적인 소설책을 통해 둘째로는 소설 내부의 전달입자인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그의 곡선을 따라 소설 속 정신의 우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상대론의 비유 2. 시간의 비유
한편, 이러한 비유는 소설 속의 시간과도 관계될 수 있다. 소설 속에선 빠르고 열정적이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이 전개되는 말하자면 혼돈스럽고 혼란스러운 도스토예프스키적 특유의 시간을 가지는데, 대표적으로 제 5편의 찬과 반에서 이반의 대심문관 부분이나 7편 알료사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시간을 바흐찐은 카니발적 (탄생-죽음 청년-노년 위-아래 긍정-부정 등의 이항대립을 내포하고 통일 시킨다.)이라 부르는데, 그 역시 이러한 소설 속 시간을 ‘비유클리드적’ 개념에 연결시킨다.
더 엄밀히 말하면 카니발화된 시간이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독자역인 예술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가 내부의 깊은 의미를 묘사해낸 문지방 위나 광장에서의 사건 또는 라스꼴니코프 므이시킨 스따브로긴 이반 까라마조프와 같은 주인공들은 일상적인 생물학적 역사적 시간으로는 명확히 밝혀낼 수가 없다. … 즉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비유클리드적’ 개념을 요구했던 것이다. (가라타니 코오진, 송태욱 역,「탐구」(새물결 1998) pp . 177.)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세계는 한 시스템 내부 관측자의 타(他) 시스템에 대한 시간 측정이 시스템 사이의 상대속도에 의존하는 성질을 가지며 일반 상대성이론에서는 지구와 같이 질량이 큰 물체 근처의 시간은 그 밖의 시간에 비해 느리게 가는 효과가 있음을 알려주는데, 소설에 드러난 시간의 왜곡도 이러한 비유로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 즉,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운동하며 또 질량 점과의 거리도 각자 다르다는 점으로부터 서로가 개개인의 다른 시간을 가지고 또 그것을 자신의 속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용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즉, 한 인물이 사상의 질량 점과 얼마나 가까워 졌는가에 따라서 혹은 그의 정신적인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에 따라서 (타 시스템에서 봤을 때의) 그의 시간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심문관에서 이반이 그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나, 알료사가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 그리스도의 사상과 점차로 깨달아 가는 부분에 보이는 시간이 느려지는 효과도 점차로 질량 점과 가까워지면서 혹은 그의 정열의 정도가 점차 강열해 지면서 (혹은 빨라지면서) 그의 시간 또한 느리게 가는 물리적 현상에 비유하는 할 수 있는 것이다. - 물론 이때의 시간은 인물들 자신이 속한 세계 내의 현실적 시간인 동시에 관측자 (혹은 독자)의 입장에서 보는 인물들의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자가 소설 속에 몰입할수록 그의 사상적 질량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또 주인공들과의 정열의 정도(혹은 속도)와도 가까워져서 독자의 정신적 시간의 흐름도 외부 물리적 세계에 비해 느리게 흘러가게 된다. 즉 독자가 한참을 몰입했다고 생각하고 잠시 휴식을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현실의 시간은 그리 많이 흘러가 있지는 않은 것이다. -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개념을 소설의 내부에서 살펴보면 인물들의 심리적 혹은 정신적 차원에서의 시간 개념인 동시에 물리적 차원의 시간과도 상응한다. 예를 들어, 7장 알료사 편의 알료사의 내면적 경험의 부분은 심리적 차원에서 확대된 시간으로 생각하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겠지만 제 5편의 찬과 반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확대는 소설 내부의 물리적 시간의 느려짐으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3장 형제의 접근부터 시작해 5장 대심문관까지는 범우사 번역판으로 약 60페이지에 달하는 부분으로 필자가 소리 내어 읽어 보았을 때, 약간 빠르게 읽는다 하더라도 한 페이지 당 약 1분 45초 정도, 전체 60페이지에는 약 10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게 된다. 이때. 이 부분들의 거의 전부가 이반의 혼자의 말임을 생각해보면, 결국 이반은 혼자서 빠른 소리로 1시간 30분 이상 동안 쉬지 않고 장광설을 늘여놓은 셈인데 이는 알료사의 하루를 생각해 볼 때 실현 불가능할 정도의 긴 시간이다. 즉, 알료사의 하루는 굉장이 응축되어 있어서 이반과의 대화가 그토록 길어지는 것은 물리적 의미에서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반과의 만남을 가지는 시간이 알료사에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긴 시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의 하루 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일단, 알료사의 경로를 살펴보도록 한다.
수도사원에서 기상(오전 5시~6시??)→ 아버지 집(8시~??)→ 아이들과의 만남(12시??) →호흘라코바 부인 집→ 이등대위 집 → 호흘리코바 부인 집 → 스메르쟈코프와의 만남 → 이반과의 만남(2시~??) → 다시 수도원으로 복귀 →조시마 장로 제사 준비 (오후 3시)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그 경로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다. 알료사는 조시마 장로의 병중으로 인해 이른 아침 수도원에서 눈을 뜨게 된다.
이른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알료사는 일어나야 했다. 장로가 눈을 뜬 것이다.(상권 pp. 265)
이러한 표현에서 볼 때, 이때의 시간은 약 새벽 5~6시 쯤으로 추측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날이 밝기도 전에’라는 표현으로부터 날이 밝기 전이긴 하나 너무 이른 새벽은 아닌 그쯤의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알료사는 잠에서 일어나 수도원에서 몇 가지의 활동을 한 후 아버지를 찾아가는 경로를 밟는다. 그가 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마르파가 문을 열어주며 이반은 이미 두 시간 전에 외출했고 아버지는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반이 아침 일찍 나갔다는 점과 표도르가 모닝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생각해 볼 때 이때의 시간이 오전 8시보다 더 이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때를 약 8~9시 정도로 보겠다. 그런데 다음에 바로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는 조그만 다리 앞에 한 덩어리가 되어 모여 있는 국민 학생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홉 살에서 열두 살까지로 보이는 어린 애들이었다. 모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어서 등에 란도셀을 맨 아이가 있는가 하면,(상권 pp. 287)
이부분의 시간이 약간 모호하다. 시간이 띄워져있는 까닭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도원에서 활동하고 아버지 집에서 아침을 보내고 온 알료사가 어느새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의 등교시간으로 생각해 볼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 가지의 가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 그가 아버지의 집에서 오랜 시간동안 휴식을 취하고 왔거나 둘째, 학교가 무슨 특별한 일로 아이들을 일찍 하교시켰거나 혹은 러시아 초등학교는 학생들을 원래 일찍 하교시키거나 하는 그런 가정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알료사의 경로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고 이 모든 일을 오후 3시까지는 마쳐야 한다는 점으로부터 여기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일찍 하교시켰다는 가정만을 따르도록 하겠다. 이때의 시간을 대략 12시쯤으로 잡는다.
이제 그는 호흘리코바 부인 댁에 도착하고 리자와의 잠깐의 대화 이후 카테리나와 이반 형을 만나서 대화를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카테리나의 부탁을 받고 오제르나야 거리를 거쳐 이등대위의 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이때 아이들을 만난 이후 이등대위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은 걷는 시간은 무시 한다 쳐도 적어도 1시간 이상은 잡아야 할 것이다. 호흘리코바 집에서는 범우사 본으로 약 25쪽의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데, 거의가 카테리나 알료사 리자 그리고 이반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음을 고려할 때, 짧게 잡아도 한 페이지 당 2분 30초를 잡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여기서는 짧게 1시간만을 잡겠다. 그러면 이제 벌써 12시를 지나 1시가 되었다. 조시마 장로 제사 시간인 3시 전까지는 많아도 2시간 안팎밖엔 남지 않았다. 그는 집을 나와 바로 이등대위를 찾아 간다. 그런데 그가 이등대위 집을 가기위해 오제르나야 거리에서 드리트리의 방을 거치는 장면에서 시장기를 느껴 빵을 먹는 부분이 있다.
알료사는 드미트리 형이 사는 뒷길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으므로 아까 아버지한테서 얻어온 빵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먹으며 걸었다. (상권. pp. 320)
즉 우리의 추측에 따르면, 이때의 시간은 대략 1시쯤이므로 여기의 표현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오후 1시쯤이 되서 시장기를 느낀다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여기까지의 시간은 물리적 의미에서 그럭저럭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할일이 많은 사람이다. 곧 그는 이등대위의 집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그와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 부분은 소설로 약 15p에 할당되는 부분으로 거의가 알료사와 대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빠르게 대화를 이끌어간다고 쳐서 페이지 당 2분을 잡더라도 약 30분 이상은 걸리게 된다. 따라서 벌써 시간은 1시 30분이다. 역시 이동시간을 없애고 그를 재빠르게 다음 장소로 보내면 호흘리코바 부인 댁을 거쳐서 스메르쟈코프를 만나고 결국엔 이반에 있는 장소 즉 374p 제 5편 3장 형제의 접근에 이르게 되기까지 아무리 빨리 잡더라도 최소한 2시는 되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호흘리코바 부인 댁에서 역시 리자와 대화를 하고 그 사이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최소 30분 이상은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꾹꾹 압축해 온 시간이 벌써 2시이다. 남은 것은 이제 이반과의 대화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반과의 대화는 소설의 분량에 비교해 보았을 때, 최소한 1시간 30분 이상은 잡아야 한다. 그것도 이반이 말을 한번도 끊지 않고 그 장광설을 놓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때, 그는 이반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수도원에 도착해 조시마 장로의 임종을 지켜보고( 임종의 순간 조시마는 자신의 젊음과 삶의 윤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한다. 따라서 그 순간만으로도 최소한 2~30분은 잡아야 한다. ) 그의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 그때의 시간은 오후 3시이다.
그러나 오후 세 시경에는 그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부정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 소식은 순식간에 암자 전체에 퍼져 모든 참배객들에게 알려졌고 (중권. pp. 81)
그렇다. 이는 물리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시간이다. 알료사가 아무리 빠르게 뛰어다닌다고 하더라도 성립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알료사의 하루 일과인 것이다. 결국 그와 이반과의 대화 시간은 물리적으로 길게 늘여진 시간이라고 볼 수밖엔 없다. 즉, 그에게 시간은 보통의 시간(혹은 고유시간)이 아니라 느리게 가는 시간(사실 이 부분이 약간 애매할 수 있는 부분인데, 느리게 가는 시간이란 소설 내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비해 인물들의 대화가 일어나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인물들이 좀 더 사상의 질량 가까이서 대화를 하고 대화가 끝난 후에 질량 외부로 나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인물들의 정신이 사상의 핵심과 가까워지면서 혹은 열정의 정도가 높아지면서(혹은 속도가 빨라지면서) 소설 내부의 물리적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게 되고 이를 통해 소설에 몰입한 독자의 심리적 시간 또한 확장되어 느리고 또 집중력 있게 흘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반의 대화라는 전달입자를 통해 그의 확장된 시간의 우주로 흘러들어가게 된 독자는 기존에 체험하지 못했던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결론
지금까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의 정신적 세계를 상대론의 우주에 비유해 보면서 소설 내의 사상적 지위들과 시간의 느려짐을 알아보았다. 이 소설은 처음에 언급했듯이 심리적으로나 내용면, 형식적 측면에서 굉장히 많은 특징들을 가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 짧은 지면상으로는 일말이라도 다루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애초엔 사상적 특징들을 상대론에 비유해서 하나하나 늘여놓은 것이 목표였음에도 필자의 능력으론 불가능 하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결국엔 전체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는 데만 그치고 말았는데 그 역시 잘 되었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니 말이다. 필자의 생각엔 이처럼 광범위한 소설은 앞으로도 계속 다시 읽어져야 하고 그러면서 좀더 완전한 이해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소설을 다시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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