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새로운 역사를 희망하다
본선작-학부개인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새로운 역사를 희망하다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심리학과 김경민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권위로서의 역사
영국의 역사학자인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한 바 있다. 역사가 과서 사실에만 입각하여 쓰여 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역사를 서술하는 사람의 관점까지도 포함한다는 의미와 함께 카의 정의는 국내외 대부분의 역사 교과서 첫 페이지에 등장한다. 이는 그만큼 카의 정의가 일반인의 역사 인식에 보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역사 인식과는 달리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직접 경험하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기보다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권위라고 해야 더욱 타당한 경우가 있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 국가와 민족은 사회의 개별적인 구성원 각자의 합보다 더 큰 존재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서 과도한 충성과 애국심을 강요받고, 때로는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권위와 힘을 지닌 존재가 활동해 온 바를 기록한 것을 우리 사회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과거의 권위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권위가 반발하는 목소리를 잠재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사회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여 과거라고 믿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물론 역사가 언제나 이처럼 권위적이라는 단언에는 문제점이 있다. ‘언제나’ 라는 단정 자체가 독단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권위로서의 역사 다른 편에는 과거 사실을 끊임없이 재평가함으로써 억울한 과거를 위로하고 잘못된 과거를 단죄하기도 하는 역사가 존재한다. 역사가 지니는 이러한 긍정적인 힘을 우리는 종종 목도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만을 근거로 하여 역사가 억울한 과거를 감추고 잘못된 과거를 합리화하는 부정적인 힘 역시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역사의 이러한 부정적인 속성의 이면에는 개별적인 사회 구성원을 압도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권력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다. 역사는 모순 된 두 가지 힘을 모두 갖고 있다.
노마 필드(Norma Field)는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에서 역사의 부정적인 힘에 저항하는 세 명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오끼나와의 슈퍼마켓 주인인 찌바나 쇼오이찌는 자신의 고장에서 열린 국민체육대회에서 일본 국기를 태워버려 재판을 받았다. 그는 일본 국기가 역사의 잘못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끼나와에서는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많은 주민들이 죽었으며, 이들은 비단 미군 폭격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만행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쇼오이찌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러하였기에 전쟁이 끝난 직후에도 전쟁 책임이 있는 천황이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었다. 일본 국기를 불태운 것은 그러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나까야 야쓰꼬는 근무하던 중에 순직한 자신의 남편이 자위대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그를 신사에 봉헌한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였다. 그녀가 이러한 재판을 청구한 배경에는 그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도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배경은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일본의 상황이었다. 정교분리는 2차대전 이후 제정된 일본 신헌법에 명기된 사항이나 이것이 실제로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결국 야쓰꼬 부인이 재판을 청구한 피고는 이러한 잘못된 역사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나가사끼의 시장 모또시마 히또시이다. 그는 천황 가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국화의 타부’를 깨고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하여 일본 사회에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모또시마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계열 정당인 자민당의 공천을 받아 시장이 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이러한 발언으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인 이득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에 몰렸다. 그러나 모또시마에게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일은 잘못된 역사에 대한 반성이었다. 역사의 부정(不正)성을 부정(不定)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노마 필드의 저서에서 앞서 소개되는 두 사람과 나가사끼 시장 모또시마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습이다.
권위로서의 역사는 이들의 노력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들이 역사에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역사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시련을 주었다. 찌바나 쇼오이찌가 저항하는 역사는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권한에 의하여 다시 쓰여 진 역사였다. 여기에 대한 저항은 개인에게는 그 자체로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는 일본 보수파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으며, 국가에서는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세력보다 더욱 쇼오이찌 개인에게 시련을 준 것은 그의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쇼오이찌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자신의 신념을 펼쳐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본인에게는 화합을 깨뜨리면 사회적인 배척을 받는 화(和)의 정신이 있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쇼오이찌의 일본 국기 소각 사건은 그야말로 반사회적인 사건이었다. 쇼오이찌의 부모는 아들의 반사회적 행동에 책임을 느끼고 근신하였다.
나까야 부인 역시 이러한 시련을 겪었다. 그녀가 위협과 협박의 편지와 엽서들에 시달린 것은 당연하였고, 그의 아들 나까야 타카하루조차 그녀에게 힘이 되지 못한 채 오히려 소송을 진행 중인 자신의 어머니를 원망하였다. 노마 필드가 인터뷰를 할 당시 아들의 원망은 원망을 넘어서 무관심의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 - 그는 친척들을 (소송에) 끌어들이지만 않으면 어머니가 법정에 제소하는 일에 반대할 의사가 없다고 노마 필드에게 말하였다 -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까야 부인이 느꼈을 상심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권위로서의 역사에 저항하는 일은 저항하는 개별 주체에게 혹독한 시련을 의미하는 것이다.
권위로서의 역사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권위로서의 역사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를 노마 필드는 앞선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시한다. 역사에 대한 저항은 과거 사실에 대한 진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쇼오이찌는 2차대전 당시 집단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찬미되었던 슈우단 지께즈의 실상이 이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찌비찌리 동굴 안에서 죽은 오끼나와 사람들은 미군 포로가 되는 것을 치욕적으로 여겨 자살한 것이 아니라 황국신민으로서의 정체감을 부여하였던 일본의 정신 교육과 동굴 안에서 같이 있었던 일본 군인의 만행에 의하여 타살된 것이었다. 노마 필드는 이를 강제적 집단자살이라는 용어로 바꿔서 지칭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사실상의 타살을 의미한다. 집단자살과 강제적 집단자살은 같은 죽음이라도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둘은 공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후자가 진실임을 쇼오이찌는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과거에 대한 비판적인 정신을 결여한 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러한 진실은 영원히 묻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과거 사실에 대한 진실을 인식하는 일은 그 자체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어진다. 쇼오이찌의 노력에 찌비찌리 동굴의 일을 숨겨오던 유족들은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기념비를 만들어 그들을 기억하기에 이른다. 이는 과거 역사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한 반성의 의미와 더불어 현재의 삶에서 이러한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념비를 만들기 전과 후의 오끼나와 사람들의 삶은 현격하게 구분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과거 재인식은 일본 국기와 국가를 오끼나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것으로 인정하는데 거부하도록 만드는 동인이었다. 일본 국기와 국가는 오끼나와 사람들에게 단순히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한다는 의미였다. 게이트볼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사교댄스를 배우기 시작한 어머니가 죄책감으로 집에 칩거하는 모습을 자식으로서 고통스럽게 지켜보게 되었더라도 쇼오이찌가 자신의 신념대로 기존의 역사에 저항하기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나까야 부인의 재판을 헌신적으로 돕는 우라베 부인 역시 과거로부터 새로운 현재 인식을 얻은 경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군으로 만주에서 행한 일을 알게 된 이후부터 자신이 역사의 희생자인 것만이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식은 우라베 부인의 현재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나까야 부인의 재판은 장장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겹게 진행되었으나 우라베 부인이 그 시간 동안 변함없이 부인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마련된 새로운 현실 인식에서 기인하였다.
새로운 현실 인식에서 마련된 역사에 대한 저항은 개인의 저항으로서만 끝나지 않았다. 이는 또 다른 개인의 동의를 구하고 새로운 행동을 촉발하는 요인으로서 작동하였다. 나가사끼의 시장 모또시마에게 보내진 3700여 통 이상의 편지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이다. 노마 필드는 코미찌쇼보오에서 펴낸 <편지>의 내용 다수를 재인용하며 소개하고 있다. 저서의 상당부분을 할애하며 노마필드가 소개하고 있는 이 편지들은 천황의 잘못을 말한 모또시마의 용기에 대한 지지와 함께 이미 이를 알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담고 있다. 진실 된 역사 인식과 역사의 부정적인 힘에 대한 저항이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역사의 더 많은 부분을 새롭게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개별 구성원들의 연대를 통해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모또시마 시장에게 보내진 편지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권위로서의 역사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로서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것은 역사가 사회 개별 구성원들에게 지니는 의미이다. 모또시마가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었던 발언과 관련하여 일본의 보수파 단체들은 시장에게 발언 취소를 요구하였다. 이 때 모또시마는 발언의 철회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발언의 철회는 곧 자신의 신념을 철회하는 것이므로 자기 신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의지 표명의 언급일 수 있겠다. 노마 필드는 죽음이 정치적인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도하였던 신문 보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도 또한 한 가지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이를 발언이 담고 있는 내용 그 자체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발언의 철회를 모또시마는 자신의 개체적 죽음과 동일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발언의 철회는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인정은 개체적 죽음과 동일시될 정도로 자신의 존재의미를 상실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진실 된 과거 인식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인 것이다. 역사는 개별 구성원에게 이와 같이 존재론적인 의미까지도 지니는 것이다.
개인사와 개인사의 만남 - 역사적 희망의 가능성
역사가 개별 주체에게 존재론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노마 필드가 개인사 서술을 주류 역사 서술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주류 역사와는 달리 개인사는 권위와는 거리가 있다. 권위는 보편적인 것인데, 개인사가 담고 있는 개별 사회 구성원의 경험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런데 주관적이라는 성격 때문에 개인사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각자에게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자신에게 있어서 개인사는 부정하지 못할 진실인 것이다. 개인사의 이러한 특징은 역사가 개별 주체에게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과 상통한다.
또한 개인사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개인사와 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노마 필드는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 사람과 직접적인 대면 접촉만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서 이들과 만난다. 세 사람을 직접 만나는 가운데서 노마 필드는 끊임없이 자신의 개인사를 떠올린다. 기독교도인 나까야 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이 순종이 아닌 미국계 혼혈임을 보여주는 얄미운 표시로서 기독교를 떠올린다. 모또시마 시장을 만나기위해서 나가사끼로 가는 길에서는 고도 경제 성장 과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파괴된 자신의 이모님을 떠올리며, 로드니 M 데이비스 호 사건이 언급될 때는 그 사건을 처음으로 접하였던 자신의 소녀 시절을 떠올린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자신과 과거의 어느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아는 순간 그 사람과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저자는 자신의 개인사를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개인사와 접합시킴으로써 어떠한 신체적 접촉보다 더욱 친밀한 만남을 이뤄내고 있다. 개인사와 개인사가 만나는 장에서 쇼오이찌와 나까야 부인, 모또시마는 더 이상 남이 아니라 노마 필드의 삶 자체로 들어오게 된다. 개인사와 개인사의 만남은 어떤 개별적 실체들의 만남보다도 더한 친밀성과 유대를 갖고 있는 것이다. 노마 필드는 이러한 개인사 간의 만남을 자신의 외할머니를 예로 들어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북쪽 변두리 태생으로 더위에 약하신 외할머니가 오끼나와 구경을 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끼나와는 그 고통과 너그러움을 통하여 할머니의 상상력 속에 뿌리를 내린다.”(본문 121쪽에서 인용)
부정한 역사에 대한 저항에 다른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개인사들의 만남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상상력에 뿌리 내린 개인사는 본래 뿌리박고 있던 개인사와 만나면서 한층 새로워질 것이다. 이때 역사는 한층 풍성한 의미와 선명한 진실을 담아낸다. 또한 역사는 무한히 긍정적 에너지로 진실을 만들어내고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아무리 잘 쓰여 진 역사책에서도 이룩하지 못할 성과인 것이다.
이러한 개인사들 간의 활발한 교류가 역사의 부정적인 힘을 몰아낼 것이라고 노마 필드는 기대하는 것 같다. 주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 세 명의 개인사와 저자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서 일본의 전후 역사를 이야기하는 의도는 여기에 있다. 개인사는 결코 부족한 역사가 아니다. 노마 필드에게 이는 기존 역사의 부정적인 속성을 타파하는 새로운 역사임과 동시에 주류 역사보다 더욱 주류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역사이다. 저자가 쇼오이찌의 저항을 소개하며 그가 겪었던 종류의 수난이 비단 오키나와만의 특징이 아니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노마 필드는 이것이 나가사끼와 히로시마를 비롯하여 전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역사라고 언급하고 있다. 쇼오이찌 개인의 역사와 그의 저항 그리고 시련은 비단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전 일본인의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 H. 카의 정의인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는 노마 필드의 방식으로 새롭게 바꿔볼 수 있겠다. 그녀는 역사가 개인사와 개인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가 사회 안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권위로서의 역사는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권위가 사라진 역사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 억울한 역사는 감춤 없이 위로하고 잘못된 과거는 변명 없이 단죄한다.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노마 필드가 희망하는 바는 이러한 역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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