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라는 Rhetoric이 떳떳하려면

새내기부문 3등작

국민의 대표라는 Rhetoric이 떳떳하려면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원하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1945년의 8 ․ 15 해방만큼이나 뚜렷하게 1987년 여름의 민주화에 대한 ‘집단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한 집단의 기억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의 일관된 인식은 그때의 민주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과 같은 “최소강령적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때 그 사람들의 義氣를 고맙게 생각하고 기억하려는, 긍정적인 인식일 터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그때의 기억에 대하여 작금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큰 괴리와 모순을 느끼게 한다. 나날이 낮아져만 가는 투표율과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 현상, 소득 분위 격차의 심화와 지방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수도권에 대한 초집중화, 그 속에서도 끝내 그 뿌리를 뽑지 못하고 한국인의 인식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지역주의의 망령들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자리할 입추의 여지조차 용납지 않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덜 민주적인 사회, 꿈꾸는 청년으로 하여금 “헌법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는데, 현실은 ….”이라는 푸념과 좌절을 하게 만드는 사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껍데기만 남은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 추궁은 흔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위정자들에게 집중된다. 그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일 터이지만, 그것은 민주화 이후의 위정자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구사하는 자기변호의 Rhetoric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집권 초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잡고 있었던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현행 헌법의 前文에도 나오는 “祖國의 民主改革”과는 상당한 거리를 느끼는 정치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될 뿐이다. 만약 두 민주 정부가 보다 비상한 의지를 가졌다면 재벌구조는 상당히 합리적이며 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관료 체제는 지금보다 더 민주적으로 개혁될 수 있었을 것이고, 노사관계도 보다 민주적으로 재편될 수 있었을 터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절차적인 기제만 남아 있는 최소강령적 민주주의에만 머무르는 형해화된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행(혹자는 이를 내포적 심화라고 하기도 한다.)하기 위해서는 형해화된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요인에 대한 분석이 필연적으로 요구될 것이다. 최장집 著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민주주의 형해화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그를 개선할 방안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는 일제의 패망으로 찾아온 해방에 따라서, 그리고 그 해방과 같이, 놀랄 만큼, 갑작스레 우리들 곁으로 불쑥 찾아왔다고 평한다. 解放이라는 말처럼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억압적 강권들이 사리진 상황은 사회계약론에서 말하는 자연 상태와 같이, (비록 결과적으로 외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어쩌면 우리의 의지대로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할 수도 있는 열린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냉전의 도래와 함께 남한의 정치 지향에서 좌파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되었다. 1946년 ‘10월 폭동’으로 박헌영 세력이 불법화되고, 혜화동 로터리의 저격으로 남북한 모든 정치 세력과 논의할 수 있었던 여운형이 비명에 간 것이 이승만과 미군정의 동맹관계를 부활, 곧 1945년 가을 정국을 부활시키는 始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시된 5 ․ 10 총선거에서는 다수의 거부 운동이 존재했지만 국가의 강제력 동원에 따른 “경이로운” 95%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결국 “이념적으로 협애한 정당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8년 선거에서부터는 종전 선거와는 달리, 무소속 당선자가 줄어들고 자유당과 민주당의 “보수적 양당 체제”가 정착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보수적 양당 체제 속에서의 야당은 권위주의 정부의 “충성스러운 야당”에 불과했다.

이후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행정력의 동원과 부정선거를 통해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던 이승만 정권과는 달리 정부 조직의 창건에서 상당한 근대성을 보여주었고,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또한 그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련의 경제 성장 정책과 그 결과는 곧 그들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 경제기획원으로 대표되는 경제 관료 조직과 중앙정보부로 대표되는 국가 안보 기구는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면서 국가 자체를 병영과 같이,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 하에 “進軍”할 수 있도록 역량을 조직화하는 데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와 같은 군산복합체 모델(어쩌면 박정희의 만주에서의 경험에서 기인했으리라 생각된다.), 발전주의와 군사주의의 결합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절실히 요구되던 脫빈곤과 원조 의존 경제로부터의 탈피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경제적 성과에 대한 그러한 긍정적인 평가가 결코 72년의 維新의 논리를 합리화해주지 않는다.

유신체제와 연장된 유신으로서의 전두환 정권 이후 한국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서구 사회의 근대화를 이루어낸 부르주아로 대치될 수 있는 한국의 재벌이 정권과 동맹자적 입지에 선 대신,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 특히 학생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87년 그날의 민주 헌법 쟁취로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어디까지나 우리가 말하는 87년 민주화는 기성 정치인들 사이에서 “논의된” 결과물로서의 헌법 개정일 뿐이었다. 비록 시민과 학생 대중의 힘으로써 민주헌법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1958년 이래 이어진 보수적 양당 체제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 지형에서 진정한 좌파는 소거된 채 남아있다고 평가된다.

그나마 존재하는 기존 정당들조차 냉전 반공 체제의 유산으로서 존재하는, 전근대적인 향리주의의 한국판인 지역주의의 망령을 통해 그들의 지지 시장을 형성하려 할 뿐, 사회의 다원적 이익을 반영하는 데에는 큰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성장한 거대 언론기업의 권력과의 유착 현상은 가장 현실과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할 언론을 기득권 세력 중의 기득권 세력으로 귀결시켰고 이는 종전과 같은 민주주의의 형해화를 부추길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자가 力說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방안은 보수적 양당 독점 체제의 해소이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필자는 사회의 다원적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회의원 선출 제도의 개선을 꾀하는데, All or Nothing의 단순다수제가 아닌 결선투표제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기반하고 있는 지역주의 자체가 실재했던 지역 간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앙 정치 엘리트 간 경쟁에서 조작되고 이용된 것이라는 점에 착안할 때, 보수적 양당 독점을 깨기 위해 지역 간 화해와 협력을 백번 한다고 해도 無用일 터이기 때문이다. 곧, 지역주의 타파로 보수적 양당 독점 체제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양당 독점 체제 해소를 통해서만,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기해질 때에 지난 60여 년간 한국 정치 지형에서 소거되어 있었던 좌파 정당이나, 혹은 다원화를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소외되었던 다양한 사회계층의 목소리를 제도권 내로 還流시켜줄 군소 정당의 제도권 진입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보수 독점 양당 체제의 경직성에 유연성의 新風을 불어넣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언론 대기업의 보수화와 기득권 대변과 관련해서, 본인은 이미 언론 대기업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판단한다. SNS를 비롯한 고도로 발달한 정보통신기술의 영향력에 힘입어 시민사회 내부 자체에서 이미 많은 정보가 유통 ․ 생산되고 있으며 ‘나는 꼼수다’라는 라디오 방송이 수천만 회의 다운로드 횟수를 자랑하는 등, 언론이라는 말이 ‘말이나 글로 자기 사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이라는 뜻이 많다면 더 이상 언론 대기업의 여론 독점은 유효한 명제가 아닐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모습들이 일정 수준 젊은 층의 투표 참여 확대와 활발한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인은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데모 공화국”이라는 汚名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몹시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시위와 집회에 담긴 뜻이 제 아무리 의롭고 합당하다고 하더라도, 머리띠를 두르고 삭발 의식을 행하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의 일부 데모에서 비롯된 ‘데모 공화국’이라는 국제적인 이미지는 國威의 失墜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불의를 보고도 참는 民度가 낮은 국민들이 아닌 이상, 우리 국민들이 하나 같이 다혈질적이지 않는 이상 거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터이다.

그러한 모습들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의회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막연한 비판이 아니다. 보수적 양당 독점 체제는 기성 정치인들로 하여금 좋든 싫든, 그 구조상의 한계로 인하여 다원화된 지금의 대한민국이 토해내는 다원적인 목소리를 다 담아내기에는 힘들다. 그 그릇이 몹시도 작고 이념적 지향이 크게 편향되어 있어, 제도권 내부에 반영되지 못한 사회적 목소리들은 광장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몹시도 극단화된 형태일 터이다. 의회에 대하여 사회적 목소리들에 대한 대표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나 시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의무와 당연함의 영역이며, 오히려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권력에 대한 견제를 미덕으로 삼아야 할 민주시민이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의 마지노선일 뿐이다.

본인은 굳이 내몰리고 있는 국민들을 멀리서 찾을 이유가 없는 듯하여 가슴이 아프다. 용산 철거민들은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다고 말했다. 경찰의 주장이 맞다면,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주변에 화재가 발생했고, 주변 질서에 심대한 장애를 초래했다. 또한 단순히 법의 잣대만을 갖다 댄다면 철거민들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 화염병과 각종 인화물질, 쇠파이프, 골프공, 새총, 염산병을 가지고 올라갔다는 그들의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보려던 선량한 시민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일부에서 그들을 ‘열사’라고 표현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은 어떤 측면에서 현실 정치의 왜곡된 정치 지형으로 인한 피해자이지, 결코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이 아니다. 그들을 열사라 하는 것은 지나친 높임으로 도리어 그들의 본의를 왜곡할 뿐이다.)

만약 진작에 ‘권리금’의 법적 보장을 통해 철거민들의 입장이 의회 제도권 내에 반영되었더라면, 지난 2009년 1월의 용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살기 위해 망루 위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 직장과 가정을 떠나 광장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가장 바랐던 것,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말뿐인 제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들을 대표하고 대변해 줄 “국민의 대표”가 아니었을까.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 국가이자, 법치주의 국가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선거에 민의를 반영시켜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가 법을 제정하여 民과 法이 共治하는 것이 우리 헌법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 기성 정치권이 좌파 정당의 부재와 함께 다원적 이익을 대변할 군소정당의 부재로 인하여 국민들을 억지로 광장으로, 국가 공권력에게 닫힘의 비극을 당할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껍데기만 남은 민주주의, 경쟁적인 자유 선거가 늘 실시되지만 대안이 없는 정당 체제 속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보수적 양당 독점 체제를 깨기 위하여 필자가 제시한 여러 방법이 유효할 지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지난 60여 년간 비어 있었던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 좌파 정당이 확실히 제도권에 자리잡고, 동시에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군소정당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것은 또한 국민의 대표라는 그들의 명예롭고 호화로운 직함에 대한 수사가 정당해지는 길이며, 더 이상 가정과 직장을 지키기 위해,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광장으로, 생존을 위해 인화물질이 가능한 망루로 나아가야만 하는 逆說의 비극을 겪는 국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길이기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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