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고발, 사회주의에 대한 통쾌한 방어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고발, 사회주의에 대한 통쾌한 방어

리오 휴버먼, 『휴버먼의 자본론』

김명환


이 책은 한국에서 부활했다. 한국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한 1987년에 한국에서 출판되어 꽤 읽혔으나 1991년 소련이 몰락하고 노동자운동이 정치적 방향타를 상실한 이후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새로운 흐름이 싹트기 시작하자 그 기운을 받고 부활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사회주의 서적의 역사는 곧 노동자계급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선언]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부활했지만 아직까지는 노동자나 진보적 학생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의 부활은 앞으로 노동자계급 운동이 고양되고, 사회주의 사상이 널리 보급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나는 이 점을 노동자 및 학생들과 이 책으로 토론하면서 거듭 확신할 수 있었다.

쉽고 재미있다

한 번도 사회주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한 노동자들이나 학생들도 이 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이다.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본 활동가라면 내용이 올바르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쉽고 재미있는 책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와 학생들이 어려운 책을 읽은 다음, 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 적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달랐다. 노동자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쉽다”, “재미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다. 휴버먼은 “이 책에서 글을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쓰려고 애썼다”고 했는데, 그는 이 점에서 분명히 성공했다. 맨 앞에 나오듯이 여러 사람들이 글을 쉽게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휴버먼 스스로가 어려서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노조 교육선전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노동자들 속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쉽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보다 이 책이 훨씬 쉽고 재미있기에 자본주의의 본질과 사회주의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부담 없이 이 책을 권할 수 있다.

근거가 풍부하다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근거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인물과 자료에서 인용한 문구들이 많은데, 이처럼 객관적 자료에 기초해서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에 주장의 설득력이 높다. 또한 휴버먼은 일부러 “이용한 자료 대부분은 자본주의를 100% 지지하는 당국 - 저명한 비(非)마르크스주의 출판물 또는 정부 기록물 - 에서 인용”했다고 하는데, 자본가계급의 입까지 빌어 자본주의의 실체를 날카롭게 드러내기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마르크스는 평생에 걸쳐 정치경제학을 연구해서 어마어마한 인용을 포함하는 [자본론]을 작성했다. 이런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휴버먼도 오랫동안 수집해온 귀중하고, 뛰어난 자료를 활용해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휴버먼이 기울였을 엄청난 노력의 결실을 이 책을 읽으며 만끽할 수 있다.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주제별로 잘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계급, 축적, 독점, 분배, 공황, 전쟁, 국가, 정의, 계획, 자유 등 주제별로 짜임새 있게 작성됐다. 따라서 책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어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책(소설이든 교양도서든)들에 비해 한두 가지 주제만 읽고도 토론할 수 있어서 좋다. 책 읽기에 익숙하지 않고, 두꺼운 책에 부담을 느끼는 노동자들 및 독서세미나에 참여하려는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면 좋을 것이다.

주장이 명쾌하다

이 책의 네 번째 장점은 주장이 매우 명쾌하다는 것이다. 책 전반에서 명쾌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지만, 특히 ‘몇 가지 질문’ 편에서는 명쾌한 주장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자본가들이 자본으로 갖고 있는 ‘생산수단’과 ‘자본가’는 구분해야 한다. 토지, 광산, 원료, 기계 그리고 공장 등 생산수단 없이는 한 사회가 작동할 수 없다. 이들은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단지 이것들을 소유하고 있을 뿐인 자본가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니다.” “자본가 없이는 일을 해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낫들이 한 사람 소유로 되어 있지 않으면 풀을 베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이다.”(303쪽)

자본(생산수단)과 자본가를 구분하고, 낫에 비유해 펼치는 주장이 매우 날카롭고 명쾌하다!

“사회주의는 사적 재산 몰수를 의미하는가? 사적 재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집, 자동차, 라디오, 세탁기, 음식, 의복, 가구, 책 등이다. 이는 사적인 향유를 위해 사용되는 순전히 개인적인 소비재다. 이와 달리 순전히 개인적인 게 아닌 사적 재산이 있다. [공장, 기계, 원료, 토지 등] 생산수단의 형태를 지닌 재산이다. 사회주의는 첫 번째 종류의 사적 재산, 예컨대 당신의 옷 한 벌을 몰수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번째 종류의 사적 재산, 예컨대 옷을 만들어내는 공장을 몰수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소수로부터 생산수단의 형태를 띤 사적 재산을 몰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다수를 위한, 소비수단의 형태를 띤 사적 재산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노동자들 자신이 생산했으면서도 이윤의 형태로 빼앗겼던 재산이 사회주의에서는 그들의 차지가 됨에 따라 더 많은 사적 재산, 더 많은 옷, 더 많은 가구, 더 많은 음식, 더 많은 영화 티켓을 살 수 있게 된다. 사용과 향유를 위한 사적 재산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를 위한 사적 재산은 없어진다. 그게 사회주의다.”(318-319쪽)

사적 재산의 2가지 형태, 즉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사회주의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사라지지만, 개인의 생활은 더 풍족해진다는 점을 촌철살인의 논리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한 방식[이기주의적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다른[공동체주의적] 행동은 불가능하다고 가정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소유욕이 많고, 인간의 동기는 이기적인 탐욕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이라고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이를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곧바로 결론짓는다. 따라서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경쟁적인 투쟁 이외에 다른 것에 바탕을 둔 사회를 구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중략)자기 자신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욕망을 채울 때 인간은 ‘자기 관심’을 보인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자기관심은 이기심과 다르다. 자기 관심은 본인의 욕망 충족이다. 이기심은 ‘타인의 희생 위에서’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중략)자기 관심은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의 일부다. 이기심은 후천적으로 획득된, 특정한 문화 형태 일부다. 사회주의는 자기 관심을 없앨 수도 없고, 없애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회주의는 자기 이익을 키우는, 탐욕스럽게 움켜쥐려는 행동 방식을 없앨 수 있고,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332-334쪽)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이기적 속성을 모든 인류의 보편적 속성으로 둔갑시키는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지적한 대목도 뛰어나지만, 인류학자의 주장을 적절히 활용해 ‘자기관심’과 ‘이기심’을 아주 정확하게 구분한 대목이 매우 훌륭하다.

“자본가들에게 익숙한 그런 종류의 자유가,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복지보다 그들 자신의 복지를 우위에 두는 자유를 반대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그들의 자유를 반대한다. 그것은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유를 반대한다. 하지만 자본가 이외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실질적인 자유를 의미한다.(중략)양치기가 양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늑대를 쫓아버린다. 양은 양치기를 ‘해방자’로 여기며 감사를 표시한다. 똑같은 행위에 대해 늑대는 양치기를 ‘자유의 파괴자’로 비난한다.(중략)양과 늑대가 자유라는 단어의 정의에서 합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게 명백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와 자본가들은 해방과 자유라는 단어의 정의에서 합의를 이룰 수 없다.”(356-357쪽)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의 최고봉인 프랑스대혁명의 슬로건은 자유, 평등, 박애였다. 하지만 이제 그 슬로건은 낡아버렸다. 이제는 ‘누구의 자유인가’, ‘어느 계급의 어떤 평등인가’를 얘기해야 한다. 양과 늑대의 비유는 이 점을 놀랍도록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인간이 원래 이기적인데 협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가 가능하겠는가, 사적 재산을 폐지하는 것은 개인 노력의 산물을 빼앗고 획일적 통제를 하려는 것 아닌가, 경쟁이 없다면 사람들이 노력하겠는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지금도 많은 노동자나 학생들이 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가나 정부 관료, 보수 언론인, 반동적 교수들이 사회주의를 쉼 없이 비난하며 노동자와 학생들을 세뇌시킨 탓이 크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비난 및 질문에 매우 효과적으로 답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그동안 궁금해서 질문했던 내용이 여기에 그대로 들어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사회주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많은 노동자와 학생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휴버먼한테 직접 듣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계급투쟁은 발명품이 아니다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그 소유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정반대로 어긋난다. 자본가들에게는 재산이 최우선이며, 인간은 두 번째 관심사다. 노동자들에게는 인간, 즉 그 자신이 첫 번째이며, 재산은 두 번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계급 사이에 갈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양쪽의 관계가 그와 달랐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계급투쟁은 선동가들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들이 계급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원자를 ‘발견’한 과학자더러 원자를 ‘발명’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것이다.”(20-21쪽)

이 대목을 읽은 어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 말의 논리적 뜻은 물론 사회적 뜻도 금새 알아차렸다. 왜냐면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 현대차 사측이 거의 날마다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정치투쟁’을, 즉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을 조장한다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2011년 한진중공업 파업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한 노동자와 학생들도 모두 이 말의 현실적 의미를 아주 생생하게 이해할 것이다.

자본주의 현실 고발의 무기

책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철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옳고 그름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와 함께 옳은 내용이라면 그것을 오늘날의 현실에, 특히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점을 노동자,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직접 자본가와 노동자의 연봉 격차를 계산해보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2006년에 연봉 41억원과 주식배당금 314억원을 받았다. 2010년 연봉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0년 주식배당금으로 399억원을 받았다. 2006년 연봉 41억원과 2010년 주식배당금 399억원을 합하면 정몽구는 2010년에 대략 440억원을 벌어들였다. 440억원은 얼마나 큰 돈일까? 가령 어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봉이 2,200만원이라고 한다면, 440억원은 그 노동자 연봉의 2천배가 된다. 시급으로 치면 500만원이다. 자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24시간 내내 시간당 500만원씩을 주머니에 채워 넣는 것이다. 1분당 약 8만 3천원을 벌고, 1초당 1,388원을 번다.

1929년 미국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간 연봉격차가 매우 컸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읽으며 놀랐던 노동자도, 한국에서 지금 그 격차가 어떤지를 알고는 입이 쩍 벌어진다.

일상생활에서도 노동자와 자본가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1급 자본가들은 3000만원 상당의 황금 욕조와 황금 수도꼭지가 달린 세면대, 이탈리아제 초호화 대리석, 개인 수영장, 초고급 개인 사우나 등이 있는 100평 안팎의 수십억 펜트하우스에서 산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면서 폭등하는 전‧월세에 신음한다. 자기 아파트를 갖고 있더라도 구매할 때 진 엄청난 빚 때문에 그것은 ‘빚더미 괴물’이나 다름없다.

하루10시간 주야맞교대로 일하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30대가 40대로, 40대가 50대로 보일 정도로 피부가 시들어가고 있고, 평균수명이 ‘13년이나 단축’된다. 그러나 대자본가들이나 부르주아 정치인들, 1류 연예인들은 연회비가 1억원인 피부과에 다니며 40대, 50대인데도 20~30대처럼 탱탱한 피부를 유지한다.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1억 원 피부과 출입’ 논란이 일었을 때 트위터에는 “나 후보에게 대학 등록금 1000만 원에 벌벌 떠는 우리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눈물 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수많은 트위터리안이 이 글에 공감하며 리트윗했다.

이렇게 현실의 모순에 분노하는 젊은이나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또는 활동가들이 그런 젊은이나 노동자들에게 이 책의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면, 많은 젊은이와 노동자들이 나경원의 문제를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가계급 일반의 문제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얼마나 심각하며 왜 자본가세상을 뒤엎어야 하는지를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옥의 티

이 책은 대단히 훌륭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먼저 이 책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스탈린주의 요소가 있다. 옮긴이가 ‘계획’과 ‘몇 가지 질문’ 장에서 원래 원서에 있던 소비에트 연방에 관한 대목을 뺐지만,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옹호하는 대목이 여전히 있다.

340-341쪽을 보면 소련에 자유가 없고, 인민들의 시민권적 자유는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적대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전복시키려고 끊임없이 위협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부르주아 반혁명이 이루어져 소련을 더 이상 노동자국가로 볼 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외부의 위협을 핑계로 내부의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노동자의)자유와 양립할 수 있다’는 휴버먼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1917년 10월 혁명 직후에는 군대를 완전히 민주화했고, 공무원은 언제든 소환, 파면할 수 있었으며, 은행과 기업을 국유화했고,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를 활짝 꽃피운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스탈린의 가짜 사회주의가 노동자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을 뿐이다.

최상의 입문서

위에서 지적한 약점이 있지만 그것은 ‘옥의 티’일 뿐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입문서로서 최상에 속한다. 자본주의 모순이 나날이 깊어질수록, 공황과 실업, 전쟁과 파시즘의 기운이 높아갈수록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동자민중의 열망과 투쟁이 더욱 거세지는 시대가 올 것이다. [휴버먼의 자본론]이 그런 시대를 준비하고, 열어젖히는 데 사상적으로 톡톡히 한몫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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