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가니』에 드러난 성폭력 피해자-가해자의 전형성 비판
일반부문 1등작
소설 『도가니』에 드러난 성폭력 피해자-가해자의 전형성 비판
공지영, 『도가니』
오정민
1. 나쁜 소설 『도가니』
『도가니』(이하 도가니)는 가공의 도시 무진의 장애인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도가니에서는 성폭력의 발생과 해결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애인 성폭력, 아동 성폭력, 성폭력 해결 과정에서의 2차 피해의 문제, 피해아동의 진술에 대한 증명력의 판단문제, 강간죄의 구성요건 중 항거불능의 문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 문제, 친고죄 폐지 논쟁,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치유 문제 등 그간 여성계에서 주장해온 중요한 쟁점들이 총망라되어있다. 이 쟁점들은 사건이 전개되고 해결되는 과정 곳곳마다 등장하여,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의 장애물로서 묘사되고 있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며 장애물들을 만날 것이며, 이 장애물들의 높은 벽을 느끼고, 이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도가니는 매우 친절하며, 사려 깊고, 실천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실제로 도가니는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도가니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화는 소설이 되고, 소설은 영화가 되었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읽었고, 인화학교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화학교 사건의 끔찍함에 분노하며, 진실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앞 다투어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자성을 촉구했다. 국회에서는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서는 항거불능 요건의 삭제,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소위 도가니 법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도가니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선 형식적으로는 영상화된 매체가 가지는 파급력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영상화된 사회문제가 이슈화 되는 것도 아니며, 영상화 되지 않은 성폭력 문제도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정확하지 않은 분석이다. 오히려 최근에 큰 이슈가 되었던 아동성폭력 사건인 조두순, 김수철 사건이 이슈화되고 현실을 변화시켰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소설, 영화, 언론, 대중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일련의 성폭력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그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가니의 힘은 도가니의 선정성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조두순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도, 그 범죄의 끔찍함과 잔혹함, 그리고 피해자가 입은 실제적인 피해의 심각성 때문이었다. 처음 이 문제가 공론화될 때의 언론의 보도와 사람들의 관심은 대부분 사건의 선정적인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는 도가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각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가, 우리 바로 옆에서 실제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그 선정성을 증폭시킨 매체가 되었을 뿐이다.
도가니의 선정성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수용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하겠지만 도가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형화시킴으로써 그 선정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피해자는 전형적인 ‘피해자’가 되었고, 가해자는 전형적인 ‘가해자’가 되었다. 이러한 전형적인 피해자-가해자의 구도 속에서 성폭력이 발생했고, 이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이 전략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전형화의 전략이 성폭력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도가니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형화 하는 양상을 살펴 본 후, 전형화가 어떤 관점에 입각해서 이루어졌던 것인지를 분석할 것이다. 나아가 도가니의 전형화를 통해 우리 사회는 성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도가니가 현실의 변화에 어떤 실천적 함의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도가니가 가진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성폭력의 방지와 해결에 보다 바람직한 인식적, 실천적 지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2. 『도가니』에 나타난 성폭력 피해자의 전형화
(1) 전형화와 피해자화
전형화란 단순화되고 일반화된 기호로서 특정 집단이나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구분 짓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떤 대상이나 사태의 모든 측면을 인식할 수는 없으므로, 이를 단순화하고 구조화하여 이해한다. 이러한 단순화, 구조화는 주로 대상끼리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에 근거해서 이루어지만, 이 바탕에는 대상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사회적인 맥락과 특정한 관점이 작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상을 전형화하고 추출된 ‘전형성’을 개별적인 대상에 덧씌움으로써, 대상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형화는 전형화 된 지표 이외의 다른 특성과 맥락은 사상시키는 위험을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또한 전형화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대상이나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역할에 복무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가니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전형화 시키고 있는가? 우선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를 ‘피해자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신상명세서를 살펴보았다.
이름 : 전민수 청각장애 2급, 가족사항 : 부 지적장애 1급/ 모 청각장애 2급, 지적장애2급 동생 전영수 청각장애 2급, 지적장애 3급 .... 이름 : 진유리 청각장애 2급, 지적장애 3급의 중복장애, 가족사항 : 부 청각장애2급, 지적장애 3급 모 행불, 할머니가 실질적 보호자... 이름 : 김연두 청각장애 2급 ... 최근 사업실패와 부의 숙환으로 중1때부터 기숙사 입소...”
독자는 신상명세서를 통해 처음으로 피해자 아동들을 접하게 된다. 피해 아동들은 청각장애인이며, 부모에게도 장애가 있거나 병환이 있는 등 극단적으로 가정환경이 열악하다. 도가니는 이들에 대해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 귀먹어 태어난 토끼, 팔 잘린 원숭이’ 등의 묘사와 ‘결핍’, ‘불우’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들을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로 규정짓고 있다. 도가니는 그 뒤에도 신상명세서를 다시 등장시킴으로써 이들의 ‘결핍, 불우’를 재확인하고 강화하고 있다.
피해자를 전형화 하는 요소들은, 실제 현실에서 피해자가 ‘피해자’로 포섭되고 보호되는 영역을 설정하는데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성폭력 범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의 피해자는 피해자다운 특성을 갖추어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우선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나약하고 소극적인 존재이어야 한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우리 사회에서 지켜줄 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순결하고 깨끗해야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죽을힘을 다해 저항해야 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아파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피해자는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불쌍’해야만 한다.
이처럼 피해자를 ‘피해자화’하는 방식은 도가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가니에서 피해자를 피해자화 하는 범주는 ‘여성’, ‘아동’, ‘장애’에 대한 것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 중 ‘여성’과 ‘아동’에 대한 전형화를 함께 살펴보고, ‘장애’에 대한 전형화는 따로 분석하기로 한다.
(2) ‘여성’, ‘아동’의 전형화
도가니에서는 성폭력 피해자 여성의 성적 매력이나 성숙성을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이 아이는 지적장애 3급, 유치원생 정도의 인지능력을 지닌 중복장애아였다. 보통 볼 수 있는 다른 소녀들에 비하면 체구가 작은 편인데도 그애의 성숙한 가슴이 새삼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연두는 귀염성 있는 아이고, 어쩌면 변태적 성욕을 가진 성인에게 충분히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연두의 통통한 뺨이 빵을 먹을때마다 볼록거렸다. 뺨은 복숭앗빛이고 검은 머리는 윤이 나고 숱이 많았다. 눈동자는 맑고 키는 다른 또래들보다 약간 컸다. 교복치마 아래로 드러난 두 다리는 고무인형의 것처럼 탱탱하게 뻗어 있었다.”
또한 피해 여성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천사 같은” 특징을 가진 것으로 서술된다.
“살구의 솜털, 연초록, 봄날의 장미꽃잎, 아침이슬, 보슬비, 초봄의 나비날개, 그리고 엷은 홍차향기 같은 것 그런 싱그러운 소녀에게 일어난 일들을 잠시 상상하자 그녀는 순간 아찔해졌는데...”
“유리를 천사 같다고 생각한 것을 떠올렸다”
성폭력의 피해자 중 오직 여자아이들에 대해서만 이러한 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자아이에 대해서는 성적인 성숙도나, 매력에 대해 언급하는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주된 표지들과 더불어 ‘아동’이라는 상징성을 강화하는 표현도 발견된다.
“한손으로도 들릴 만큼 작은, 새처럼 가벼운 이 여자아이”
“새처럼 작은 아이들이 노골적인 야만 앞에서 겪었을 공포”
우리가 도가니를 통해 알게 되는 성폭력의 피해자는 “결핍되고 불우하지만, 순수하고 천사 같은 성정을 가졌으며, 남다른 성적 매력을 갖고 있는 여자아이”이다. 독자들은 성에 무지한, 천사 같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성폭력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분노할 것이다. 즉 도가니에서는 전형화를 통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운 요소를 부각하고 강조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성폭력이 가해졌을 때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를 유발케 하는 극적인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전형화의 긍정적인 기능은 이 정도에서 멈춘다. 오히려 도가니 식의 전형화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전형화는 대상이나 사태의 특정한 측면만을 포착한다. 전형성은 대상의 경계를 구획하는 틀로서 작용하여, 포섭과 동시에 배제를 일으킨다. 피해자의 전형성만을 피해자의 전부로서 인식하는 경우, 전형성의 지표에서 이탈한 성폭력사건의 피해자는 ‘피해자’로서의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된다.
보다 정확히 이유를 따지자면, ‘전형화’ 자체만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 전형화는 인간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형화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관점 아래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전형성의 요소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전형화가 이루어지더라도 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전형화가 이루어진다면, 실제 보호받아야 할 성폭력의 피해자도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도가니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전형화 하는 방식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도가니는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설명하는 방식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다. 현실에서 잘못된 전형화가 발생하는 과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는 대법원 판례이다. 도가니의 등장인물들 역시 법정투쟁의 승리를 주된 목표로 삼았던 바, 대법원 판례의 태도를 분석하는 것은 논의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법관의 경험칙에 의거한 합리적 판단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제3자적 위치에서 가능하다고 기대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경험칙에 의거한 법관의 합리적인 판단에는 사회적인 맥락과 입장이 반영됩니다.”
법관의 판단은 객관적이라고 기대되나, 법관의 판단 속에는 그 법관이 속한 사회적인 맥락과 입장이 일정 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다. 법관 개인이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의 여부는 실제 사건 해결 과정에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겠으나, 보다 근본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법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법원의 판결로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수준일 것이다.
우선 과거의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자. 피해자가 강간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창문 밖으로 투신하여 상해/사망에 이른 사실관계가 유사한 두 사건에서, 대법원은 한 사건은 강간치사죄가 성립함을 인정했고, 다른 사건에서는 강간치상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점이라면 피해자가 처녀인지, 유부녀인지의 여부였다. 앞의 판결문에서는 ‘아직 아무런 성경험이 없는 처녀의 몸이었던 점’이라고 설시하며 강간치사죄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했고, 뒤의 판결문은 유부녀인 점을 보아 강간치상죄의 예견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여성의 순결성을 중요하게 여기던 당시에는 ‘처녀’라는 특성이 예견가능성의 인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또 다른 판결들을 비교해보자. 99도519, 2000도1253, 2000도1914 판결에서 대법원은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한다. 반면 96고합448판결에서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서의 폭행, 협박이 가해진 정도가 위 세 사건들보다 심했음에도,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로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거나 학생이고, 피고인이 전과를 가졌으며, 피해자와 피고인이 잘 알지 못하는 관계였던 세 개의 사건과 달리, 마지막 사건의 피해자가 “4개월 정도를 사귀어온 관계”였고 사귀는 동안 피고인과 “1주일에 2회 내지 3회 성관계를 가져왔”으며, “주점을 경영하는” 술집여자였다는 점이었다.
즉 대법원은 피해자에게 성매매 경험이 있거나, 피해자의 품행이 문란하거나 그럴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우에는 강간죄의 유죄성립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입장에서는 무릇 피해자라면 처녀이거나 품행이 단정하다는 등의 특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성매매 경험이 있거나, 술집 주인이거나 하는 표지들은 대법원이 예정하고 있는 피해자의 범주에서 일탈해 있으므로, 이들은 피해자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만일 피해자를 규정짓는 이러한 표지들이 불합리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합리함은 도가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도가니에 등장하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불우하고 결핍되어 있지만, 착하고 순수하며, 성적 매력이 있고, 성에 대해 무지하며 성 경험이 없다. 도가니는 이러한 서술을 반복함으로써 피해자를 특정 이미지로 전형화하고 강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전형화가 성폭력의 사회적인 인식과 해결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대법원의 판결이 그 직접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도가니의 주인공들이 법정투쟁에서 패배한 원인을 단순히 판사의 보수성에만 귀착시킬 수만은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아동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장애아동 성폭력에 대해 항거불능 조항이 삭제되는 것으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 사건의 본질적인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윤상 소장의 인터뷰를 인용해본다.
“아동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언론이나 여론의 추이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도 역시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정책 당국자들과의 회의에서 현장 활동가로 제안한 상당수 제안들이 정책으로 나왔을 때 13세 미만 아동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놀랍다. 문제는, 똑같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아동성폭력엔 뜨겁게 공분하고 염려하면서도 성인성폭력에 대해선 너무나 싸늘한 이분법적인 태도다.”
“아동성폭력 전문화? 전혀 반대할 이유 없다. 문제는 다양한 관심과 접근이다. 아동은 성적으로 하얀 도화지 같은 존재고, 성인 여성은 꽃뱀이고 유혹자인가. 성폭력 사건 재판을 참관하면 도대체 이 재판이 가해자 재판인지 피해자 재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성인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심이 너무 짙다. 이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 향후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법은 하나의 툴이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도가니로 인해 야기된 성폭력 범죄의 논의대상은 대부분 장애인, 아동 성폭력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장애인, 아동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고 처벌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논의는 도가니에서 제시된 전형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가니는 피해자를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재단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다양한 맥락에 위치해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논의를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 ‘장애’의 전형화
도가니에 등장하는 성폭력의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모두 장애인이라는 것이다. 도가니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어떤 전형성을 부여하고 있을까?
“그런데... 지적장애아를 성폭력했다면...그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도가니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비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보다 더 나쁘고 끔찍한 범죄로 보고 있는 듯하다. 지적장애가 있어 중복된 장애를 가진 경우는 ‘차원이 다른’ 정도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발톱 없이 태어난 사자, 다리 없이 태어난 사슴, 귀먹어 태어난 토끼, 팔 잘린 원숭이’와 함께 장애가 불쌍한 것, 결핍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 외에도 앞서 지적한 내용 중, 장애아동이 ‘천사’같다는 서술은 도가니에서 ‘장애’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도가니에서 나타나는 장애인에 대한 전형화는 앞서 여성/아동에 대한 전형화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도가니는 장애인의 피해자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이들을 ‘피해자화’하고 있다. 피해자화는 장애인에게 ‘결핍’, ‘천사’등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극적으로 돋보이게 하여 성폭력피해를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만든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고, 이렇게 불쌍한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한 가해자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의 주체성이 삭제된, 철저하게 비(非)장애중심적, 혹은 반(反)장애적인 시각일 뿐이다. 비장애중심적인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선 장애를 가진 이들은 불쌍하고,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착한 천사와 같은 존재이다. 세상에는 나쁜 장애인, 이기적인 장애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고, 따라서 비장애인들은 사랑과 도덕심을 발휘하여 이들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장애는 결코 ‘동정’, ‘시혜’, ‘착함’, ‘순수함’등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연결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들의 동정과 시혜의 적합한 대상이 되도록, 어딘가 결핍되고 부족하며 불쌍한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 장애인은 주체의 자리에서 박탈당하며, ‘장애’에 붙어 다니는 이 전형성의 표지들은 장애인 개인의 다양함을 질식시킨다. 장애라는 특성이 어떤 한 사람의 성격이나, 행복과 불행의 여부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전형화는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표지를 개개의 장애인에게 뒤집어씌우고, 이를 강요하고 있다. 결국 비장애인 중심적인 시각에서 장애를 전형화하려는 시도는 장애인에게 특정한 표지―대개는 불행한 장애가 있음에도, 착하고 순수한―를 획일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도가니를 들여다보자. 실제로 도가니에서 장애인들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적인 인물은 비장애인이다. 이들은 ‘수화’를 매개로 농인들과 소통함으로써 성폭력 문제를 세상에 알린다. 성폭력 문제를 인지했던 것은 아이들에게 선의를 갖고 있었던 주인공 남성이며,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린 것도 비장애인들이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은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가진 비장애인들에 의해서 해결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도가니에서 사태를 인지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질 수 있고, 이를 실제로 해결해 나가는 주체는 오직 비장애인일 뿐이었다. 농인들은 수화를 할 수 있는 비장애인의 선의가 없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들은 어리고, 나약하다. 장애 아동 중 하나가 학교를 탈출해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려던 주체적인 시도는 무력했을 뿐이었다. 이들이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폭력 경험을 비장애인 앞에서 수화로 이야기했을 때뿐이었다.
비장애인 중심적인 시각에서 장애를 구성하고 전형화 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김형수는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라는 글에서, 비장애인 중심적인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전형화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에 따른 차별과 소외 징벌은 오히려 사랑과 희생, 봉사 그리고 때로는 인간애라는 것으로 보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가면을 만들면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과 권력으로 가해진다.”
“장애인에 대해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곧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 의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해악을 끼치는 존재임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의 도덕적 파시즘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만들어버렸다. 늘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사랑과 이해를 받아야 하는 존재, 고마워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존재, 장애인은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한다. 자기 존엄을 거부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자애인, 차별과 억압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당연시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 나의 모습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의해 대상화, 전형화 됨으로써 동시에 비주체화 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사랑과 사명감의 엘리트주의’가 강화될수록, 장애인이 주체의 지위에서 박탈되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형수는 결국 장애인이 해방되는 전략은 ‘나쁜’ 장애인이 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이는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서 각인된 장애인의 전형성을 파괴하는 일이며, 장애인을 주체화하려는 근본적인 시도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 발화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은 결코 ‘천사’, ‘순수한’ 존재로서만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장애인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장애라는 특성 하나만으로 질식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3. 『도가니』에 나타난 성폭력 가해자의 전형화
피해자의 전형성이 구성되는 맥락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만큼,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전형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가 있어야 발생하는 것임은 당연하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재단하고 재구성하여 피해자를 전형화 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가해자 역시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전형화 함으로써 성폭력 피해의 본질적인 부분을 은폐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때문에 도가니에서 가해자의 전형성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도가니가 보여주는 성폭력의 모습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전체적인 구도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앞서 피해자들을 ‘순수함’, ‘천사’ 등으로 전형화 했다면, 가해자는 필연적으로 ‘악마’이거나 ‘악독한’ 이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도가니에서 성폭력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의 주변인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녀의 찢어진 눈이 그와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뜻밖에도 분노로 이글거렸고 얼핏 청승스러워도 보였다”
“오만한 어깨, 경멸어린 시선, 벗어진 머리 아래의 갸름한 흰 얼굴은 얇은 입술 때문에 차갑고 잔인해 보이는 인상이긴 했다.”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평생을 소왕국의 왕자처럼 지낸 이런 종류의 인간들”
“그 쥐새끼 같은 눈을 가진 생활지도교사”
“덥고 소름끼치는 열기 같은 것이었다. 놀라 돌아보니 오십대 중반 정도의 진한 화장의 여자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도가니에서 가해자들은 보통 사람에 비해 탐욕스럽고 악독하며,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예순이 다 돼가는 교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중학교 이학년의 말 못하는 소녀를 성폭력하려했다는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애학원 설립자의 아들인 교장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여자를 살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변태적 성욕을 가진 성인에게 충분히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도가니가 보여주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전형화는 실제로 성폭력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이나 구조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오히려 성폭력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서술이다. 문화평론가 이택광이 적절히 지적하는 것처럼, 성폭력의 문제는 결코 ‘변태’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사회에서 특별히 악한 성정을 가졌거나, 변태적인 성욕을 가졌거나, 혹은 자신의 성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이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폭력은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위치한 권력관계의 낙차에서 발생한다. 대부분 성폭력이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성폭력은 성차별적 섹슈얼리티와 연결되어 있는 한편 다른 사회적 권력 관계와도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남성-여성, 아버지-딸, 교사-학생, 직장상사-부하직원, 군대의 상관-부하(남성 간의 성폭력), 비장애인-장애인 등 성폭력이 일어나는 양상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해자는 권력관계의 틀 내에서 피해자를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성폭력을 가한다. 피해자가 이에 저항하거나 쉽사리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러한 점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전체 성폭력 사건의 83%가 지인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성폭력 문제의 본질은 성적 충동이나 변태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권력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도가니에서도 성폭력 피해자 학생들과 폭력의 가해자 사이의 권력관계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피해 학생들은 장애인이며,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성도 있었으며, 아동이었고, 학교의 학생이었다. 가해자는 비장애인이며, 남성이었고, 성인이었으며, 학교의 교사였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가하고, 욕설을 하였다. 이러한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도가니의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가니에서는 이러한 권력관계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폭로하고, 이러한 구조의 원인과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밝혀냈어야 했다. 그러나 도가니는 이러한 설명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오직 가해자 개인의 성정이나, 왜곡된 성적 취향, 성 충동으로 성폭력의 원인을 설명하려다 보니, 결국은 ‘변태’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성폭력이 발생하는 권력관계의 본질을 밝혀내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의 암묵적 공모 따위로 설명함으로써 타격의 대상을 잘못 설정하고 말았다.
남성의 성적 충동이나, 가해자의 이상 성벽으로 성폭력을 설명하려는 관점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놓인 성적 권력관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의 구조를 은폐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성적 충동이나 이상 성벽은 '개인'의 성 충동이기 때문에, 성폭력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고 만다. 따라서 도가니에 등장하는 가해자 개인이나, 기득권 세력의 공모만이 분노와 변화의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이러한 광경은 2010년 아동성폭력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조두순 사건, 김수철 사건이 공론화되고 수용되던 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애초 변화의 촉매제였던 도가니가 보여줄 수 있는 성폭력의 모습이, 조두순, 김수철 사건에서 볼 수 있었던 성폭력에 대한 피상적인 인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성폭력에 대한 예방, 처벌 방안마저 동일했다. 일련의 아동성폭력이 공론화 된 이후, 성폭력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강력한 형사 처벌주의가 제시되었다. 성폭력범죄의 형량을 대폭 강화하고,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열람할 수 있게 하며,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하고, 약물로 가해자의 변태적 성욕을 제거하는 등의 입법안이 순식간에 통과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법안이 제정, 개정된 기저에는, 성폭력의 가해자가 ‘자신의 성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변태’라는 왜곡된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도가니에서 가해자를 비열하고 악랄한 존재, 변태적이고 롤리타 증후군을 가진 존재 따위로 전형화 하는 시도는, 성폭력 사건의 본질적인 발생 원인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오히려 도가니에서 수행하는 가해자의 전형화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성폭력을 설명하던 방식 그대로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가해자에 대한 위와 같은 방식의 전형화는 가해자 개인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사회에서 분리해냄으로써, 기존의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별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동한다. 대중들은 일상적인 성차별 구도 하에서 가해자에 대한 광신적인 비난을 퍼부으며, 자신의 정상성에 안주하고 성별 권력관계의 구조에는 무지하거나 침묵한다. 따라서 도가니에서 진정으로 폭로해야 할 대상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사회적, 성별 권력관계의 구조였다. 또한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던 가해자들이, 약자의 지위에 놓여 있는 피해자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폭력을 가할 수 있었던 맥락을 소설 속에 명확하게 담아냈어야만 했다.
4. 마무리하며
논의를 정리하자면, 도가니는 피해자들을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피해자들을 불쌍하지만, 순수하며, 수동적인 존재로 전형화 하고 있다. 동시에 성폭력의 가해자들을 사악하고 비열한 변태로서 전형화 한다. 남성중심적 언어를 통한 전형화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복잡다양한 맥락을 사상시키고, 오직 피해자로서의 수동성, 가해자로서의 변태성만을 강조한다. 전형화는 성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기성의 편견과 통념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며, 이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 피해자에게는 피해자의 표지를 강요함으로써 피해자를 억압하며, 가해자는 변태로 만들어 사회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처럼 도가니는 현재의 싸움에는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나, 성폭력의 근절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타격함에 있어서는 무력하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뿐이다. 인화학교 사건을 고발하고 성폭력과 싸우려는 작가의 작은 실천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서술이 필요했다. 문제의 본질은 변태성욕자가 아니고, 기성세력의 권력형 비리가 아니다. 성폭력 문제의 본질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권력관계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도가니를 보고 분노하는 사람들조차도 성별권력관계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환기시켜야 했다. ‘여성’, ‘장애’, ‘아동’이라는 피해자의 특성을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전형화 시킬 것이 아니라, 이 특성들이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는지, 그리고 그 관계의 맥락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가니는 이러한 지점에 대한 성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단지 성폭력을 선정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을 뿐, 성폭력에 대한 어떠한 인식적, 실천적 진전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가니는 나쁜 소설이다. 물론 도가니로 인해 도가니의 실제 모델이 된 인화학교가 문을 닫고, 가해자들이 뒤늦게나마 현실적인 처벌을 받고, 아동성폭력에 대한 입법이 제정, 개정된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제2, 제3의 인화학교 사태나 성폭력 사건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제2, 제3의 도가니가 언제까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인가? 성폭력 피해가 얼마나 더 선정적이고 더 자극적이어야 대중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 할 수 있을까? 또 언제까지 강인호가 등장하고, 서인혜가 등장하여 그들의 선의와 희생으로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인가?
결국 도가니는 잘못된 전형화를 통해 타격의 대상을 잘못 설정함으로서, 도덕주의적 해결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비장애인 남성의 선의와 영웅적 노력에 의해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고, 비장애인들의 개인적인 희생을 통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는 식의 줄거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예방과 처벌이 개인들의 도덕심과 선의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폭력 범죄가 여성과 남성의 성적 권력관계의 차이에서 발생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속도는 느리지만 성폭력 문제의 예방과 해결에 있어 올바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