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한국을 계몽시킨 실천적 성자
새내기부문 1등작
전태일, 한국을 계몽시킨 실천적 성자
조영래, 『전태일 평전』
정준혁
≪전태일 평전≫. 어두운 세상의 첫 촛불이 되어 점차 세상을 밝혀나갈 불빛들의 시초가 되고 있는 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 아직 세상이 완전히 밝아지지는 않았지만, 전태일의 죽음은 아무도 불합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나서지 않고 세상이 불합리한 줄도 모르던 사람이 절대 다수이던 때에 선구자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자신에게도 인권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서구사회에서 말하는 ‘계몽’이, 대한민국에서는 전태일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서구의 계몽은 루소나 로크와 같은 지식인들의 생각이 다수 민중들에게 전해져 일어났다면, 한국의 계몽은 가난한 청년 노동자의 실천적인 희생으로 민중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전태일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지는 중대한 역할을 알 수 있다. 서양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근대와 전근대로 나누는 기준을 ‘계몽’으로 삼았듯이, 전태일의 희생은 한국의 역사를 근대로 이끌어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전태일 이전의 시대에는 권위주의적인 군사 정치의 결과 민중들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종하며 살았다. 전태일 자신도 평화시장에 취직한 초기에는 열악한 노동현실과 기업주의 물질주의적 태도에 분노하였지만, 그럼에도 ‘주인의 공을 갚기 위하여’ 일하였다. 기업주를 ‘다수 노동자를 고용하여 돈을 주는 은혜로운 존재’로 여기었던 것이다. 이러하듯 우리나라의 민중들에게는 노예사상이 머릿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태일의 희생 이후, 다수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노예사상은 분쇄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이 그러한 비참함을 겪지 않아도 될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민중은 기존의 억압적 정치체제에 저항하여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투쟁한다. 민중은 전태일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한 것이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태일이 몸에 불을 지른 후 쓰러져 힘겹게 외친 말. 이 말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태일의 희생 이후 민중은 그가 원한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싸워 왔다.
하지만 전태일의 희생 이후 4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노동자들은 기업주의 이윤 확대에 비하여 적은 보수를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나앉는 것을 매일 걱정하여야 한다. 각종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음에도 그 피해에 비하여 터무니없는 보상을 해 주며, 심지어 한 대기업의 반도체공장에서는 백혈병이 발생하여 젊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음에도 회사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여 보상을 일절 해 주지 않았다. 부산의 한 조선소 노동자는 성실하게 일한 결과 회사에 1000억 원 대의 영업이익을 안기어 주었지만, 그 대가로 그는 해고를 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동료 수 천 명이 ‘회사의 경영난’을 이유로 대량 해고되었다. 이러한 2011년의 사회 현실은, 아직 전태일이 분신한 후 4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태일이 목숨을 바치어가며 그토록 갈망하던 사회는 오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슬프게,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태일 평전≫에서 드러나는 전태일은 어떤 사람인가? 전태일은 자신을 희생하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한,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이었다. 청년 전태일은 자신이 매우 가난하였음에도 어린 시다들을 더 걱정하여,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 주며 자신은 2시간동안 걸어서 퇴근하였다. 결국 시다들을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빌미가 되어 직장에서 해고되었음에도, 전태일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전태일 자신도 비참한 생활을 살았음에도 자신보다는 고통 받는 노동자들 때문에 항상 마음 아파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한 목숨을 바치었다. 스물 셋의 젊은 청년. 평화시장에 인간 중심적인 공장을 지어 노동자를 위한 작업환경을 모두 갖추어놓고도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음을 사회에 증명하겠다던 당찬 포부를 가진 그는 이웃을 위하여 희생하였다. 우리는 전태일의 이러한 모습에서 성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웃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자신을 희생하여 인류의 죄를 씻어내듯,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각종 질병을 얻으며 장시간 일하고, 푼돈의 대우를 받는 직공들을 사랑하였고 이웃의 노동자들을 사랑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끝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사랑을 실천하였다. 전태일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분단의 결과 사회주의 사상의 모든 것을 배척하게 된 우익 국가에서, ‘노동’과 ‘민중’, ‘운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만 해도 ‘빨갱이’로 매도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최초로 노동운동의 필요성에 대하여 자각하고 이를 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인류애를 희생으로서 실천한 동시에 민중을 계몽시키고, 가난한 노동자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깨달은 선지자, 그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하여 죽음도 불사한 선행자라는 점에서 ‘한국의 성자’로 불리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전태일이 신이나 소설 속의 전형적인 인물과 같이, 성자와 같이 ‘선(善)’만을 가진 것만을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면 전태일에게도 미미하게나마 ‘악(惡)’이 있다는 것인데, 이 악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오히려 평전을 읽는 독자와 전태일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전태일도 신이 아닌 인간이구나’하는 생각을 가지도록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태일은 독자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간다. 전태일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서울의 집을 뛰쳐나와 무작정 부산으로 향하였다가, 기차를 잘못 타 영천으로 가게 된다. 그 곳의 공원에서 그는 한 새댁이 아이들을 위하여 깎아 놓은 사과를 몰래 먹고, 새댁이 떨어뜨렸을 것 같은 100원짜리 지폐더미를 주워 밥과 열차표를 해결한다. 필자는 1부 <어린 시절>에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성인과도 같은 전태일의 이미지 때문이었던지, ‘아무리 극한적인 상황이더라도 전태일이 돈을 줍거나 사과를 빼앗지는 않겠지’하고 너무도 순진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지독하게 가난하여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기에, 양배추 속고갱이를 보고 바닷물에 뛰어들어 익사할 수도 있었던 그였다. 얼마나 상황이 답답하였으면 홀로 거리를 나서 한 푼 두 푼 모으려고 하였겠는가. 사실 어린 시절 전태일의 행적은 악이라고 볼 수도 없고, 악이라고 하기에도 그가 이후에 보여준 인류애에 비하면 바닷물 위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 행적은 전태일에게도 악한 면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한 전태일도 어쩔 수 없었을 만큼 당시 가출하였던 그의 경제적 여력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전태일 평전≫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전태일 평전≫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외치며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는 역사적 사실을 교과서나 기타 역사책에서 살피어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전태일 평전≫을 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1970년 11월 13일에 평화시장에서 일어났던 일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날 있었던 일을 아는 정도의 지식만으로는 그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 그가 생전에 행하였던 실천적인 행동과 불우한 인생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을 직접 읽어본 사람으로부터 그 내용을 들기만 하면 그의 사상이나 행동이나 인생은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알 수는 있으나 느낄 수는 없다’고 본다. ≪전태일 평전≫에는, 교과서나 역사책이나 교사의 가르침 등 다른 수단으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격정적인 감성이 있다. 필자는 1부 <어린 시절>에서 전태일의 불우한 과거에 연민을 느끼었고, 2부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에서 기업주 개인의 탐욕으로 인한 극단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분노하였다. 3부 <바보회의 조직>에서는 힘겹게 일하는 노동자를 위하여 ‘바보회’를 조직하는 모습에서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하였고, 41년이 지난 후 그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필자에게까지 그 열정이 전해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전태일이 노동자를 위하여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며 계몽하는 모습에서, 비록 전태일이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에게서 ‘실천적 지성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4부 <전태일 사상>에서는 전태일이 스스로 각성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삶에서 죽음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보는 것과 같은 묘한 긴장감을 가졌다. 5부 <1970년 11월 13일>에서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이기 전에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상대로 설문지를 돌리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며, 기자들과 만나는 것과 같은 노력이 드러났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그러한 노력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초인적인 경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나하나의 노력이 좌절되는 과정에서 전태일이 죽음에 조금씩 근접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웠고 애가 탔다. 그리고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휘발유를 준비하여 죽음을 대비할 때, 속으로 안 된다는 말을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결국 전태일은 목숨을 잃고, 필자는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끌어오는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렇듯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 다른 수단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고귀한 감정을 체험할 수 있는데,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전태일이 느꼈을 법한 긴장감을 공유하면서 그에 대한 연민이나 존경심, 안타까움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전태일 평전≫이 단순히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태일의 삶에 대한 저자 조영래 변호사의 태도가 글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과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서울법대를 다녔음에도 권력에 저항하고 민중의 편에 서서 싸우며, 평생을 민주화에 바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바라본 전태일은 자신에게 큰 감회를 안겨준 사람, 살아있어 한평생 함께 투쟁하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먼저 가서 아쉬운 사람, 민중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려서 그들의 권리의식을 깨우쳐야 할 뜻을 공유하고 계승해야 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저자가 쓴 ≪전태일 평전≫은 저자의 안타까움과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 삶에 대한 감동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또한 이 책은 여느 법대생들의 저서와 같이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이 책이 가난 때문에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민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태일 평전≫은 문장 구성이 상당히 간결하며, 전태일의 짧은 삶이 어린 시절과 평화시장 노동자 시절, 바보회를 조직하던 때, 사상이 변화하던 때, 삼동친목회를 조직하고 결국 분신하던 때로 체계적으로 구분되어 서술되어 있다. 이는 ≪전태일 평전≫이 다수 민중들에게 읽혀지고, 책을 읽은 민중들이 각성하여 전태일의 뜻을 계승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 그의 삶을 바라보고 현재를 바라본다. 분명 경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지금, 전태일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앞에서 언급하였듯 여전히 노동자들은 고통 받고 있으며,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은 곱지 않다. 모두 경제성장이라는 논리 때문에 억압받고 있다. 전태일이 살았던 시절 전태일을 비롯한 재단사와 시다공, 또 다른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초저임금을 받으며 살아간 결과 우리가 오늘날의 경제수준을 누릴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곧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자가 희생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태일은 비록 자본금이 부족하여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지만,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고도 기업이윤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이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면 그 당시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폭발적인 경제 성장의 결과물은 대부분 누구에게 분배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상황의 모순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아가는 희한한 상황. 이것이 이상한 서커스장의 곰들이 그 불합리함을 인식하고 투쟁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전태일은, 그 불합리함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태운, 바보처럼 우직한 곰이었다. 그리고 그의 뜻은 ≪전태일 평전≫을 통하여 죽음으로도 막지 못하고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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