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성찰, 진정한 마음의 소통
새내기부문 2등작
끊임없는 성찰, 진정한 마음의 소통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서울대학교 장현진
초등학교 때 내 필통 안에는 '일본 펜'이 단 한 자루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일본 문구용품들이 인기를 끌던 무렵, 내가 아무리 알록달록한 펜들을 좋아한다고 해도 독도를 뺏어 간,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펜을 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적 선악구도로 세상을 재단하던 그 시절, 일본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악'이었다. 그러나 중 1때 보게 된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전시관의 '사람그림자'는 나의 '악'에 대한 신념에 최초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핵 폭풍을 직격으로 맞은 나머지, 문지방에 서 있던 사람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 돌에 거뭇거뭇한 자국만 남은 '사람그림자'는 도대체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는 일본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겨나게 했다. 분명 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를 식민지배 한 국가는 '일본'인데, 저렇게 처참한 그림자로 남은 원폭 희생자, 즉 일본 사람, 아니 일본에 살고 있던 사람도 똑같이 '일본'이라 통칭된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던 어린 학생들이 등교 도중 원폭 투하로 인한 뜨거운 열을 견디다 못해 강물로 뛰어들어 숨진 것을 추모하기 위한 비석, 또 평화공원 한 구석에 너무나 초라하게 자리잡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기념비를 바라보며 의문은 점점 커져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일본 '국민', 그리고 일본 '주민'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보통은 이들을 모두 포괄해 넓은 범주에서 '일본'이라 통칭한다. 그러나 서경식은 이러한 태도가 국민주의에 의해 진실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첫째, 전쟁에 참가한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는 윤리적 정당화의 논리이다. 병사 개인은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었고 다정한 남편이었다며 이들은 가족과 고향을 지키고 싶어 싸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 국가'이지 그 병사 개인이 아니다.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병사 개인이 전쟁에 참여한 사실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 정책으로 진행된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병사 '개인'과 '국가'는 같은 층위에서 논의해야 할 주체가 아니다.
두 번째는 '일본이 전쟁 가해자지만 동시에 원폭 피해자라는 논리'이다. 이 명제에서 주어는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단어에는 국가, 국민, 주민 등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다양한 층위의 의미들이 혼재되어 있다. 전쟁의 가해자는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실행하던 일본 '국가'였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또한 그곳에는 일본 국민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며 노동력 보충을 위해 징용이라는 이름으로 끌려가거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까지 밀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조선인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일본의 논리에서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두 생략되며 오직 일본이라는 국가만이 남게 된다. 이는 국가, 민족, 개인을 무조건 등식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은 '전 세계에 유일한 피폭국가'라는 일종의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일본이 피해자라면, 가해자 또한 분명히 존재할 텐데 일본은 사건의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피해만을 강조한다. 국가가 나서서 전쟁 피해를 이야기함으로써 전쟁을 기억하는 주체는 국가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 기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국가 주도의 신화에는 국가의 국민만이 등장한다. 국민주의적 사고방식에 의해 전쟁과 관련된 모든 서사는 '일본'이라는 국가로 기억되므로 일본 국민과 함께 똑같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조선인 3만 명은 잊혀지는 것이다.
서경식은 국민주의적 서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국가의 대다수 사람들이 국민이기에 '국민'이라 무심코 등치시킬 뿐 그 곳에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제국주의자도 있었고, 전쟁에 참전중인 군인도 있었겠지만 그 동시에 친구와 손잡고 학교에 가는 초등학생도 있었고 또 재일조선인도 있었다. 물론 전쟁을 기억하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역사의 뼈아픈 교훈으로 삼겠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를 국가주의적으로 이용하는 태도이다. 실제로 히로시마 역사공원 내에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 희생자들의 목소리만 가득할 뿐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과 결과의 사후처리에 대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정말 올바르게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담은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 아닐까? 국가주의적으로 이용되는 신화와 서사,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이런 문제가 세계 역사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발점이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3만 명이나 죽어갔지만 공원 한 켠 초라한 기념비로 남은 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일까. 재일조선인의 역사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됨에 따라 모든 조선인이 일본국 신민, 즉 일본 국적 보유자가 되었다. 1945년까지 이어진 식민 지배 속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하였고, 또 1939년부터 일본의 노동력 동원 정책에 의해 약 70만 명이 징용으로 일본에 강제 이주 당했다. 일본의 패전 당시, 230만 명 정도의 조선인이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한반도로 돌아왔지만 60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되었다. 이들이 재일조선인의 시작이다.
일본은 전후 헌법을 만들면서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주체를 '국민'으로 규정하였다. 혈통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적법과 연관 지어 국민을 혈통적 의미에서의 '일본인'이라 보며 모두를 일본인이라는 단일민족국가 안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 조선인은 '국민'의 범주에서 소외되어 사실상 난민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소수민족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정책을 고수하며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일본 국적을 취득할 것을 거부한 사람들은 외국인 등록을 해야 했다. 혼란스러운 한반도의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지역적 의미에서의 '조선'국적이 되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이 수교하며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조국과 고국, 모국이 지리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이 개념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개념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조국은 조상의 출신지를 말하며 고국은 본인이 태어난 고향이다. 모국은 국민으로 귀속된, 국적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조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반(半)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이며 고국과 모국 또한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에게 조국은 지리적 의미에서의 '조선'이며 고국은 일본이고, 모국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재일조선인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가까운 과거에,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도 조국과 고국, 그리고 모국이 일치하지 않는 일을 경험했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조국은 조선이었고 고국은 일본이 지배하는 한반도 즉 일본, 모국은 일본이었다. 즉, '모국'이라는 것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이다'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의 국민은 국적을 갖는 사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민'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신청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법적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새터민, 이주노동자들,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 취급 받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까지. 우리와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 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
몽골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녀는 한국에 일하러 온 몽골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몽골 국적을 가졌다. 그러나 태어나서부터 줄곧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터라 한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오히려 몽골어는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모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기에 몽골으로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되었고, 소녀도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상의 출신지인 조국으로 돌아간 소녀는 몽골어를 잘 하지 못해 적응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학교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고 한다. 몽골 소녀뿐만이 아니다. 부모의 국적을 취득할 수 없는 난민 신청자의 자녀들은 한국의 국적을 취득할 수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무국적의 상태이며 8살이 되어서도 학교에 갈 수 없고, 병원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적 개념이 수많은 아픔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국가주의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은 눈감은 채 '다문화'를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가치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하지만 이는 소수를 배제한 다수에 의한 '다문화'이다. 다문화라는 이름 하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발생한다. 이주 아동들이 한국에서 편리하게 살아가도록 돕겠다는 미명 하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지만 그들에게 모어를 배울 기회를 배제한 채 모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칠 경우 이는 일방적인 '동화'의 요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동화시켜놓고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로 차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다수의 편의를 위한 동화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그들의 편의를 위해'라는 말로 포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현실에서 누리고 있는 여러 권리들이 근대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이 권리들이 '국가', '국적'을 전제로 한 일종의 특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을 '코리언 재패니즈'(한국계 일본인)이라 규정하는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金城一紀)의 소설 『GO』의 등장인물 정일은 일본 사립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스기하라를 매국노라고 이지메하는 조선학교 선생을 향해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악을 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민등록번호, 여권, 사회보험 등으로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나라, 즉 국가는 자연적인 개념이 아닌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스기하라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자친구에게 거절당한다. 여자친구는 '아빠가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피가 더럽다고 했다'고 하며 스기하라에게 거리를 둔다. 스기하라는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하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돈을 주고 조총련과 민단 간부를 매수해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바꾼 스기하라 자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는 '부모가 일본 사람이라면 일본 사람이겠지'라는 스기하라의 말에 '뿌리'는 얼마든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고 말하며, 결국 순수한 혈통의 '일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한다. 논리적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 사쿠라이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스기하라를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사쿠라이의 논리에서는 일본 '국적'을 갖지 않았고, 일본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일본 '사람'이 아닌 스기하라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소설에서 스기하라가 아버지에게 노르웨인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노르웨이에 가서, 노르웨이 사람이 될 거고, 노르웨이 말 배워서, 더러운 일본 말 잊어버릴 거야. 이제 넌더리가 나. 그래서…” 같은 책, p. 97. 라며 스기하라는 국적, 뿌리 등에 얽매이는 사회를 떠나고 싶어한다. 이러한 스기하라에게 아버지는 “노 소이 코레아노, 노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나는 조선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라며 스페인 사람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준다. 이론적으로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언어를 벗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스기하라는 '재일'의 권리를 위해 공부하고 활동하자고 제안한 미야모토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는 '더 이상 국가 같은 것에 새롭게 편입되거나 농락당하거나 구속당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아버지의 저 말을 되뇌인다. 스기하라에게 '국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단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떠다니'고 있는 그 자신이다.
소설의 결말, 사쿠라이는 스기하라에게 되돌아온다. 스기하라는 자신을 찾아온 사쿠라이를 바라보며 국가의 편의대로 사람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런 스기하라에게 사쿠라이는 “이제 스기하라가 어떤 나라 사람이든 상관 안 해. 때로 내게 날아와서 나를 쏘아봐주면, 일본 말을 할 줄 몰라도 상관없어. 스기하라처럼 날기도 하고 쏘아볼 수도 있는 사람, 아무데도 없는걸 뭐.” 같은 책, p. 238. 라고 한다. 결국 마음을 움직인 것은 민족(뿌리), 국가, 국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랑이다.
세상을 대할 때 무심코 다수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가 쉽다. 모두가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데도 단지 다수라는 이유로 해석에서의 권위를 가지며, 우위에 서서 소수자들의 현실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가치판단을 한다. 소수자의 감정 조차도 다수자에 의해 해석된다. 둘 사이의 교류는 다양성, 다문화라는 미명 하에 동화시도만이 소소하게 존재하며,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몇 달 전, 이주아동들의 공부방에 동화책을 선물해 주기 위해 거리에서 모금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홍보를 위한 손 팻말 구호를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아이들'이라고 정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구호가 동화(同化)를 주장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진다. 베트남어를 모어로 하는 어린이가 꼭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억지로 읽는 한국어 동화책보다 엄마에게서 듣는 베트남 동화(童話)가 그 어린이에게는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내가 그 어린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면 보다 나은 구호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성찰이 없는 피상적 관심은 다수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쿠라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어떤 주장과 논리보다 진심으로 쿵쿵 뛰는 그녀의 심장이었다. 다수자들이 쌓은 공고한 성벽에서 내려와 진정한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만이 그 어떤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고 부초같이 떠다니는 스기하라, 벚꽃과 동백꽃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이름을 지닌 사쿠라이 츠바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소수자들이 공존하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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