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방향성, 그리고 한계
일반부문 3등작
환경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방향성, 그리고 한계
폴 먹가, 『녹색은 적색이다』
사회 惡반 08학번 정수환
환경 문제는 전(全) 지구적인 수준에서 다양한 층위로 나타나고 있다. 환경 문제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 전체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전혀 살지 않는 지역도 거기에 예외가 되지 못한다. 히말라야의 고산 대는 기록을 추구하는 상업적 등반이 남긴 쓰레기가 문제가 되고 있고, 남극의 하늘은 엷어진 오존층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제 환경 문제에서 안전한 성역이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또한 환경 문제는 범위 면에서도 매우 다양하다. 언급한 문제들 외에도 핵폐기물, 이상 기후 현상, 생물종의 멸종, 지구 온난화, 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 다양한 문제들이 인간과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당장 최근의 4대강 사업이라는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과밀한 도시 지역 중 하나임과 동시에 가장 공기 오염이 심한 도시 중 하나이다.
환경 문제는 또한 우리의 피부로도 느껴지는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적 이슈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으로는 도시의 스모그를 보며 불쾌해하며, 코로는 폐수와 산업 폐기물로 썩어가는 강의 냄새를 견디지 못해 한다. 당장 미시적으로는 매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에,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중의 의지와 열정도 크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이명박의 그 어떤 실책들보다 4대강 사업이 크게 비판받고 있는 모습을 상기하자.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중적으로 ‘올바르며 선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중요한 과제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의지와 열정은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되고 있다. 환경 문제의 원인은 산업 부문과 자본주의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현대의 환경 운동은 이 점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러한 운동은 오히려 환경 문제를 악화시킨다. 기업들은 녹색 세탁을 통해 자사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환경 문제를 은폐하며, 책임을 각 개인에게로 환원시킨다. 그러나 책임은 각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게 있을 수밖에 없으며, 녹색 상업은 이윤을 얻으려는 기업의 새로운 수단이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 방책일 수 없다.
이처럼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지 못하는 환경 운동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대중의 의지와 열정은 오히려 스스로와 환경을 해치는 역효과를 빚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환경 문제의 근원에 대한 올바른 분석과, 이를 토대로 수립되는 해결 전략이다. 모두가 환경을 이야기하는 시기인 지금, 오히려 환경을 향한 짙은 자본주의의 스모그 속에서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 사회에, 그리고 현대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을 제시하는 것은 작금의 시대적, 사회적 의무이자 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폴 먹가의 책 『녹색은 적색이다』는 가히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먹가는 150페이지도 되지 않는 이 짧은 책 속에서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 중 두 가지를 골라 올바른 분석과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는 놓치기 쉬운, 그리고 자본의 선전 속에서 오해하기 쉬운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환경 문제를 위해선 자본주의의 철폐가 필요하다는, 그리고 가장 올바른 녹색은 적색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서평에서는 먹가의 주장과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책의 아쉬운 점을 지적한 후 앞으로 더 행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자 한다.
먹가는 이 책에서 두 가지의 환경문제를 골라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 온난화와 유전자 조작 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이하 ‘GMO’)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는 현재 환경 문제들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각국의 정상들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준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교토의정서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교토의정서가 만들어지고 10년이 지난 현재에도, 지구 온난화 문제의 해결은 너무나도 요원해 보인다. 미국은 비준을 거부하여 국제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것에 너무나도 무감각하며, 각국도 탄소를 크게 감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누구도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하지 않는 듯 하다. 왜인가?
먹가는 문제의 원인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옳게 분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를 야기한 것은 화석 연료를 이용하여 이윤을 얻는 초국적 대기업들, 그리고 그들이 창출한 탄소 경제이다. BP나 셸과 같은 에너지 자본이나 거대 자동차 자본들과 같은 기업들은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의 이미지를 녹색으로 만들 필요성은 느끼기에, 그 광고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지만, 환경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탄소를 급진적으로 감축해야 하지만, 이것은 각 기업의 이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될 것이며, 기업과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탄소를 계속해서 배출하는 자본주의 경제는 그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全) 지구적인 규모에서의 기후 변동은 지금까지 구동해왔던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를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 민중의 피해도 클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문제의 해결을 외면할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먹가가 이야기하듯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먹가의 GMO에 대한 논의도 눈여겨 볼만하다. 자본이 이윤을 위하여 자연을 실질적으로 포섭하면서, 자본은 자연을 변형시켰다. GMO는 그러한 변형된 자본의 일면을 보여준다. GMO는 가장 전(前) 자본주의적 부문 중 하나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농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초국적 자본에 종속시킨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새로운 이윤 공급처를 확보한다.
그러나 현재 GMO의 악영향은 제대로 예측 혹은 통제되지 않은 상태이다. GMO로 인하여 농부들은 살충제 중독에 걸리고 있으며, GMO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새로운 알레르기에 걸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유전자의 영향은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며, 그것이 언제 어떻게 환경에, 그리고 인간에 파괴적인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작물이나 가축에 살충제나 항생제 등에 대한 내성을 주었다가 그것이 인간에게 해로운 박테리아에게로 옮겨갈 수도 있다.
이처럼 GMO 역시 자연과 인간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 본 지구 온난화가 거시적이고 전(全) 지구적인 차원에서 그러하다면, GMO는 미시적인 유전자의 차원에서 토대를 파괴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다양한 층위의 저항이 일어나고 있지만, 자본과 기업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과거에 존재했던 규제를 철폐하고,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확실하게 파괴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자본주의 체제는 점점 스스로를 가능케 했던 토대를 파괴해 나간다. 환경 문제는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먹가는 지구 온난화와 GMO라는 주제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체제를,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모습을 잘 드러낸다.
3장인 <인류와 환경>은 이러한 면을 정리하고 일반화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먹가는 먼저 이스터 섬이나 마야와 같이 과거에 멸망한 문명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국지적 파괴의 위험성을 이야기한 후, 자본주의에서의 더욱 큰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이전의 문명들이 국지적인 파괴를 일으켰다면, 자본주의에서는 전(全) 세계적인 차원에서 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의를 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하에서 환경 문제는 더욱 심화된 위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그러나 이 부분은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먼저, 먹가가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와 환경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엄밀하지 못하다. 먹가는 자본주의 하에서 환경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새로운 경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서 논의하고 분석했다기보다는 선언적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책을 꼼꼼히 읽어도 “왜 자본주의 하에서 환경 문제가 심화되는가?”에 대한 일반적 원리를 찾아내긴 힘들다. 이는 환경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변혁을 주장하는 책에서는 큰 아쉬움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리 지구 온난화나 GMO 문제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따라서 자본의 이해 자체를 해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의한다고 해도, 그것을 일반화시켜 이야기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한계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와 환경 사이의 관계가 엄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3장의 내용은 또 다른 오해를 낳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먹가는 3장에서 마야나 이스터 섬 등 과거의 멸망한 문명들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먹가는 여기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거 사회의 경향을 보존하면서도 또 새로운 경향을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 새로운 경향에 대한 논의가 엄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환경 문제의 차이점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사회에 발생한 환경 문제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환경 문제를 유사한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유도할 수 있다. 현대 사회 속에서의 ‘자본주의적 환경 문제’를 과거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인간 사회 일반의 환경 문제’로 오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환경 문제는 자본주의 하에서 양적, 질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자본을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자연을 형식적 및 실질적으로 포섭해 가는 사회에서의 환경 문제와 전(前)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 문제는 당연히 원인과 결과 측면에서 매우 상이하다. 그러나 책에서는 이를 언급하고 있지만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먹가의 주장을 쉽게 이해하고 그것이 올바르다고 납득하기 힘들다. 이러한 점은 『녹색은 적색이다』의 치명적 약점이라고 생각된다. 보다 엄밀한 논의를 전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녹색은 적색이다』는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저작이다. 먹가는 책 속에서 환경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향에 대한 올바른, 그리고 의미 있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모두가 환경을 이야기하지만 환경을 올바르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드문 시대이다. 혹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인하는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확대, 즉 탄소 배출권이나 오염세 등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혹자는 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 개인의 다른 소비 선택을 강조하고, 이를 다시 녹색 상업의 도구로 삼아 환경 문제를 새롭게 심화시킨다. 이런 현실 속에서 먹가는 올바른 문제 인식과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먹가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으로 노동자 계급을 주목한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속에서 착취되는 것과 함께, 각종 산업병이나 환경 문제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이다. 또한 GMO와 같은 자본이 자연을 변형하여 만든 상품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착취와 함께, 자본의 자연에 대한 착취에 의해서도 이중으로 고통 받는다. 그런 그들이기에 오히려 문제 해결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먹가의 논의는 옳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초국적인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초국적인 수준의 투쟁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에게서 생산의 통제권을 가져올 때, 환경 문제는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의와 함께, 먹가의 책은 녹색과 적색의 동맹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과제를 책 그 자체로 제기한다. 그것은 앞에서 먹가의 한계로 논한 부분이다. 먹가의 책은 녹색과 적색의 동맹을 위한 이론적 논증이나, 자본주의와 환경의 관계에 대한 엄밀한 논의가 부족하다. 이는 먹가 개인의 한계라기보다는 생태주의와 사회주의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녹색과 적색의 동맹을 위한 분석과 논증은 아직 시작 단계이며, 이를 발전시켜 보다 올바른 인식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점에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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