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날을 꿈꿔봅니다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창시절을 보내는 날을 꿈꿔봅니다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핀란드 교육혁명』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이경환
2008년 촛불시위를 보며 품었던 생각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을 한 번 연구해보자는 것이었다. 일제고사 반대, 0교시 폐지 등을 외치며 신자유주의적 경쟁교육에 억압받고 있던 이들이 내뿜었던 잠재된 에너지는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불씨의 역할을 했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의 약간 옛날식 사고를 가진 대학생이었는데, 이 신인류(新人類)를 보고 이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세력이 될 것이란 확신감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으로 보였다. 너무나 발랄했고, 너무나 진취적이었던 그 청소년들의 모습과 경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대학생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문득 우리 세대가 저 시절에 다른 교육을 받았더라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여름,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한창이었다. 나는 주경복 선본에서 자원 봉사하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자원 봉사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전교조 선생님 한 분께서 정책 설명을 해주시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분께서는 수준별 분반 수업이 교육적으로 큰 효과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잘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를 섞는 것이 더 학습 성취가 높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들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잘하는 애들은 명문대 진학반으로 편성하고 못하는 애들은 수업이나 방해 안 하게 따로 분리해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수업을 하게 되면 이미 배운 내용들이어서 질문이 나오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수준을 높이면 교과 과정을 넘어서게 되지요.”
나는 이 부분에 큰 관심이 생겨서 실제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놀랍게도 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평준화 교육이 결코 수월성 교육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고의 교육 선진국이자, OECD의 학력 평가인 피사(PISA)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나라인 핀란드는 교육의 평등성과 수월성을 모두 실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도대체 핀란드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기에 이러한 교육의 천국을 이룩한 것일까? 북유럽 교육제도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핀란드 교육혁명』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핀란드 교육혁명』이란 책은 지난 2009년 1월, 참교육연구소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의 39명이 핀란드를 탐방하고 온 기록과 관련한 연구 논문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일고 있는데 그만큼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대안모델을 모색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필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으로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유아시절부터 우리와 너무 다른 시스템에서 살고 있는 이 나라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많다보니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등 내용구성이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핀란드 교육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논문까지 함께 수록된 이 책은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교육제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 출신의 핀란드 교포의 목소리를 많이 실어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고, 함께 수록된 수많은 사진들을 통해 실제 교육현장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 무척 좋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유아교육이었다. 예비학교(Pre-school)에서는 놀이중심의 무상보육 시스템이자 무상교육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체의 선행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사회적 책무성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며,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놀이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핀란드의 교사들과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연환경에서 뛰어 놀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영하 15도 까지는 밖에서 논다. 그 이하가 되면 안에서 논다. 하루에 두 번 밖에 나간다. 낮잠도 밖에서 잔다. 겨울에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유모차에 태워 밖에서 재운다. ...(중략)... 밖에서 재우면 머리도 좋아지고 참을성도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핀란드 아이들은 자신의 놀이에 집중하며 자연환경의 변화를 몸으로 배워간다. 춥고 겨울이 긴 나라이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장화와 우비를 입히고 반드시 밖에서 놀도록 배려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핸드폰 회사인 노키아가 처음에는 고무장화를 만드는 기업이었다고 하니 핀란드인의 우비와 장화사랑은 세계제일이라 할만하다. 아이들에게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미리 언어 교육을 시키지도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한 시간이 걸리는데 미리 배워놓은 친구는 5분이면 풀어버린다. 그러니 나머지 시간에는 친구를 괴롭히고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선행학습이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렇듯 무리한 선행학습으로 유치원 시절부터 학원을 다니며 조기 영어 교육, 영재성 개발 등에 몰두하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면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나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핀란드 교육의 특기할 점 중 하나는 치밀하게 설계된 학교 건물이다. 방문단이 한국의 대학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 핀란드의 학교시설은 매우 민주적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의 학교가 속된 말로 교도소로 불리는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투명한 유리로 설계된 홀과 권위주의를 느낄 수 없는 교장실, 각 종 과목별로 구성된 수업교실과 회랑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학교를 구성하고 있다. 화장실에는 학생이 직접 만든 설치미술이 있어 작은 곳 하나하나 학생들과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핀란드의 학교는 ‘무학년제’로 학생의 수준에 맞춰 학습 커리큘럼을 설정하고 이를 책임 있게 지도한다고 한다. 핀란드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표준화된 교육과 평가방식을 가진 영미식 교육모델에 익숙한 우리에게 특성화된 개별적 교육은 그야말로 낯선 개념이지만, 21세기에는 이러한 창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모두 알고 있다.
이 책은 충실하게 방문자로서 바라본 핀란드의 혁신적인 교육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러한 교육제도를 어떻게 한국의 현실에게 맞게 구성하고 지향해갈까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어느 교육학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단순히 모델을 이식한다고 해서 성공적으로 제도가 정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모델의 밑바탕에 있는 문화적 맥락을 깊이 고려하지 않으면 교육개혁은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이는 이 책의 저자들이 핀란드의 교육자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령, 핀란드 모델의 성공은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게 하자는 강한 평등성을 요구하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권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적인 정책에서 살펴야 한다. 교육장관이 20년 이상 오래 재임하면서 지속적인 리더십을 구축한 점은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우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어오는 등 좌우를 아우르는 교육 철학이 구축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핀란드에서는 교육철학에 대한 강한 합의가 이루어져있어 교육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정치형태 또한 합의정치가 발달하여 여러 정당들이 비슷한 이념지향에 따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등,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다양한 계급을 비례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핀란드가 이러한 협동과 평등성에 기반한 교육시스템을 운영해왔던 것은 아니다.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던 핀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급격한 산업화를 겪게 되었다. 이미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던 다른 국가와 달리 핀란드는 교육의 영역을 새롭게 팽창시켜야 하는 상황이 있어서 개혁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여기에 68년도의 유럽의 혁명적 분위기와 맞물려 핀란드는 기존의 교육제도의 전통을 잘 유지하면서도 매우 평등적인 교육제도를 구축하게 된다. 여기서 핀란드의 합의모델이 장점을 발휘하는데 교원단체를 설득하는 과정 등이 매우 합리적이다. 가령 의회의 교육 개혁안에 대해 반발이 있는 경우 급하게 안을 처리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의 질을 높이면서 그들이 더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핀란드와 한국은 유사한 점도 많다. 가령 두 국가 모두 피사(PISA)에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 교육의 현실이 암울한 상황에서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등 - 핀란드와 맥락은 다르지만 - 양 국가 모두 교사들의 열정이 높은 편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교사들이 상대적으로 존경을 받는 편이란 점도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시도를 핀란드 사례를 연구해보며 시작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제도에 앞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인식 전환과 참다운 교육철학의 정립이다.
한국의 경우 진보적인 사람들이든, 보수적인 사람들이든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유명 모 야당의 국회의원의 딸이 외고를 나왔다거나,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은 이제 식상해진지 오래이다. 진보적인 학부모들은 자녀를 입시지옥에 밀어 넣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느끼지 않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 양자 모두 자녀에 대한 강한 교육적 열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어린이 잡지인『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좌파성향의 지식인 김규항 씨가 지적했듯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 우리 안의 ‘이명박’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한국에서 교육의 희망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의 사교육은 이러한 학부모들의 거대한 욕망에 기생해서 유지되는 거대한 시장이다. 우리는 전일적인 평가에 의한 서열세우기에 익숙해져있고 남을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것에만 너무나 집착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부모마저도 그러한 이상은 일단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 해도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경쟁주의 논리가 얼마나 깊숙이 우리 안에 내면화되어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사교육 팽창의 주역은 80년대 민주화를 자기 손으로 이루어냈던 386세대란 점이다. 386세대의 자녀들은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며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이 촛불시위에서 무엇을 기득권층에게 요구했었는지 우리들은 곰곰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 판이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지만 한국과 핀란드는 피사(PISA)가 인정하는 최고의 학력강국이다. 우리는 엄청난 학습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 성과를 이뤘고, 핀란드는 우리보다 공부하는 시간도 짧고 시험도 적은데 그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핀란드에서는 학교들이 학력격차가 심하지 않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고르게 상위권의 성적을 낸다. 한국은 1등 대학부터 꼴지 대학까지 순위가 매겨져 있고 중등교육에서도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 등 귀족학교가 출현하는 조건임을 생각해보면 양 국의 차이는 단순한 제도의 차이가 아닌 철학의 차이임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이제 인식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를 루저(Loser)로 전락시키는 야만적인 레이스에 대한 미련을 잠시 접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몸도 마음도 병들어 갈 것임에 틀림없다. 대신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더 많이 상상해보고 논의해봐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철학을 형성할 수 있다. 더 나아가자면,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교육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새 교육철학이 넓게 공감대를 형성할 때 한국형 대안 교육제도는 본격적으로 논의가 될 수 있다.
높은 교육열과 관심에 비추어볼 때 한국에서 앞으로 더욱 교육의 시장화, 경쟁화는 가속되면서도 동시에 대안모델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대안의 모색의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경쟁력 1위이자, 최고의 학업성취를 보이고 있는 핀란드 모델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지구 건너편이긴 하지만 우리와는 분명 다른 원리로 운영되고 있는 교육제도가 실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핀란드 모델은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많은 영감을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런 식의 교육도 가능하구나라고 한 번 접하고 만다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는 책이겠지만,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이 책은 무엇보다도 불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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