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내기부문 3등작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두식, 『불멸의 신성가족: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오은교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이 있다. 흔히 선한 사람들을 가리켜 비유하는 말로 사회적 제제와 감시가 없어도 공공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란 뜻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소한 수식에서 다른 의미의 인간형을 본다. 바로 법을 인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즉, 모르기 때문에 법 없이 살게된 사람들이다. 나를 포함한 주변 대다수의 대학생 친구들이 그러하며 적극적인 의지나 특별한 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내 무식이 특기를 발휘하게 되는 분야인 법과 그것을 둘러싼 법조계 세상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꿰어야 할까. 자칭 이류 법학자인 저자 김두식은 법과의 소통을 일찌감치 포기하려는 나에게 대한민국 사법 씨스템과 그것과 관계해 있는 다양한 층계에 속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책은 마치 신세계의 가이드북 같다.

사법하면 떠오르는 인상들을 두서없이 나열해본다면, '부패하다. 치사하다.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와 같은 불신의 태도와 막연히 '무섭다. 비싸다. 모른다.'와 같은 무관심한 태도로 나뉘어 진다. 보통 두 가지 모두가 복합적으로 얽혀 사법 씨스템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사법에 의해 구체적 피해를 경험한 전자의 경우도 후자 경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법 자체가 워낙 미지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부사정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세계에 던져지는 것(47p)'이다. 그렇게 법과 법조인은 시민의 친구가 되지 못했다. 극소수의 수재들만이 신성가족(저자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을 통칭하여 마르크스-엥겔스의 저작 제목을 따 신성가족이라고 부른다.) 대열에 합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 여겨졌으며, 고시 통과 이후에 그들은 더욱 더 우리 곁에서 총총히 멀어져만 갔다. '법원에 앉아서 결정을 기다릴 때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일단 가슴이 쿵쾅쿵쾅거리면서 조마조마해(70p)'진다는 한 진술자의 말은 시민과 법관이 엄격한 상하관계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 같은 시민의 공포는 판검사가 특별히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도 생기며 이는 판검사들이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 즉, 소수의 엘리트들로만 구성된 세계의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나는 이 엄명한 구분 짓기가 누구에 인해 자행된 것인지 자못 궁금해져 왔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는 당연하게, 어려운 진입장벽을 통과한 소수의 사람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의 결과라고만 치부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구체적 피해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법 씨스템이 부패했다는 시민의 확신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묻는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들'이라고 그들이 먼저 우리를 규정해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를 타자화 시켜온 것인지. 예로부터,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 출세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오래된 인식이다. 사법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인식을 소화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진 브레인을 탑재한 운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잔혹한 세상과 엄격한 부모는 운이 좋은 사람에게도, 운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하나같이 똑같은 정언명령을 던졌다. 공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이렇게 어려서부터 경쟁을 내면화한 우리 모두는 성적에 따라 줄을 섰으며 더러는 승리하고 더러는 패했다. 사회가 우선으로 쳐주는 것이 우연히도 자신의 장기와 맞아떨어지는 운 좋은 사람들이 최종 승리의 열매를 맞보게 되면서 대다수의 경쟁자들은 영락없는 루져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패배감과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이 열패감과 질투가 신성가족과 시민을 갈라놓는 선을 명확히한 점도 없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자 변상환 교수는 사법시험을 두고 “오로지 자기 욕망 하나에 의해서, 수년에 걸쳐서 자기를 채찍질해서 결국 거머쥔 합격증이니까 저는 그것 자체가 인간성의 파괴, 어던 조직적인 파괴의 과정(221p)”라고 말한다. 신성가족의 임원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불굴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를 갖게 되기 때문에 사회 속에 계급적 게토를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법학자 손기병교수는 이 양극화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머리 좋다고 해서 더 많이 밀어줘야 된다는 그 발상부터 깨지 않으면 양극화는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메리토크라시의 표본이 뭐냐면 지금 사법시험(222p)”이라고 지적한다. 신성가족들의 각성, 그리고 시민들의 각성은 메리토크라시와 같은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전제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시민들이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주로 '돈', '청탁'과 관련한 예민한 부분에서 증폭될 수 밖에 없다. 법에 무지한 한 시민이 특별한 사건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쉽게 법에 호소 할 수 없는 것은 큰 액수의 목돈을 불확실함 속에서 지출 해야하는 재판의 기본적인 특성 때문이다. 법원이라는 권위적인 첨탑에 가까이 하기에 필요한 지원군은 돈 혹은 인맥일 것인데 이 책에서 참고한 통계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85.8%의 시민들은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단 한명도 없(80p)'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민이 인맥을 통해 재판 진행의 수월함과 결과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돈이라는 요술방망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법조계 내부에서는 정말 거액의 봉투가 노골적으로 오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을까? 정말 그럴까? 저자의 결론부터 말하자만 정답은 '아니다'이다. 1997년과 1999년 의정부와 대전에서 관료출신(전직 판검사) 변호사들에게부터 금품을 수수한 법조계 비리 사건 이후로 돈이 노골적으로 오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관계'이다. 돈에 의한 청탁만이 화근이 아니였던 것이다. 이 책의 압권은 이러한 '신성가족의 대인관계 정치'를 다룬 제 2장 <큰돈, 푼돈, 거절 할 수 없는 돈>이다.

저자가 돈에 붙인 수식 '거절 할 수 없는'은 법조계 내부의 조직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관직을 떠나 개업한 이른바 전관 변호사들이 과거의 인맥을 이용하여 현직 판검사에게 돈을 건네준다. 이 상황에서 전현직 판검사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셔왔던(특히 판사는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직장 상사가 건네주는 돈을 거절 할 수 없게 된다. 놀랍게도 '돈 받는 게 특권이 아니라 돈 주는 게 오히려 특권(91p)'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비 혹은 용돈 등의 명목으로 건네지는 돈은 '그 많고 적음을 떠나 언제나 관계와 연결(91p)'되어 있다. 바로 이 거절 할 수 없는 돈은 거절 할 수 없는 관계가 만들어 낸 일종의 분비물인 셈이다. 이 책에는 사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거절했다가 오히려 어려움을 겪게 된 현직 검사의 사례가 나온다. “돈을 거절했다가 평판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죠. 자기를 모욕 줬잖아요. 우리나라 사회는 그런 거거든요. 같이 안 먹으면 나랑 같은 편이 아니란 뜻이거든요.(100p)” 현직 판검사들은 전관 변호사들이 더 이상 직장상사 혹은 동료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모셔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우정을 빙자한 인맥 예우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이 신성가족 구성원들의 가족애를 더욱 공고히 해준다는 사실이다. 돈보다 문제인 것이 바로 이 관계이다. 그들은 관계에 복종하고 '거절 할 수 있는 용기'를 포기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출세 길의 장애 요소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결론부에서 저자는 신성가족들이 관계의 '원만함'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를 버려야 한다는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러나 일부썩은 사과의 문제는 그 사과만의 문제는 아니듯이 구성원 개인의 각성 또한 혼자만의 각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책으로 보인다.

최근들어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인사들의 불의한 발언에 대해 시민들은 '공감능력부족'을 그 문제로 지적하는데 이는 신성가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특권층 계층의 사람이 일반 시민들의 구체적 상황과 고통을 이해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상황에서 그 모든 토대를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들, 혹은 지금까지 저질렀던 과오 위에서 새 시작을 하든, 다시금 그 세상 속에 들어오는 인물들은 예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계층의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토대를 바꾸는 것보다 신성가족 구성원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가장 뻔하지만 가장 정직한 해법이다. 법조인 혹은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에 대한 심도있는 교육과 이를 실천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만이 신성가족 내부 근저에 깔려있는 부패함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방법일 것이다.

'공감능력부족'에 대해 고민해보며 신성가족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법조계 공직자와 일반 시민의 '청렴함의 기준'이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공직자에게는 엄격할 정도의 청렴함을 미덕으로 요구하는 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대 할 수 있는 성과나 작은 보상마저도 거절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공직자의 자세라고 본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게도 공정한 잣대를 세울 수 있는 정직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엄격한 청렴함을 지키기 위해선 용기 있는 희생이 필요하다. 술자리, 골프 등의 친목담합을 목적으로 한 만남을 피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피한다가 아니라 '완전히' 피해야 한다. 물론 이를 실천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 틀림없다. 성과와 상관없이 관계에 의해 능력이 평가 받는 것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관계 때문에 받은 불이익으로 자아실현의 길이 좌절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공직자는 국민들의 대표라는 사실이다. 본인의 목적이 국민의 목적과 부합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자에게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 할 줄 아는 희생정신이 요구된다. 높은 자리가 명예인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임을 명예로 삼을 줄 알아야 아는 것이 바로 공직자의 윤리이다.

이 책에는 브로커, 결혼시장 등과 같이 내부인이 아니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소개한다. 우리는 책을 읽어 갈수록 고통스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된다. 최악의 상황일 때 시민들이 감지하는 최악의 분노 또한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 내부가 앓고 있는 치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놓음으로써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신성가족의 내부 결집력을 강화시킨데에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무지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판검사의 '거절 할 수 없는 용기'가 필요한만큼 시민의 '감시하는 용기' 또한 절실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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