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하는, 그러나 몰라도 된다고 하는
새내기부문 예선통과작
알아야 하는, 그러나 몰라도 된다고 하는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정재웅
최무영 교수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강의한 ‘물리학의 개념과 역사’ 의 강의록을 편집하여 만들어진 이 책은, 처음 강의의 목적인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소개해주는 것에서 그 대상을 일반인들에게로 확장하고 있다.
총 8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에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고찰하고, 2부에서 물리학의 기본 분야를 설명한 후에,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의 물리학의 이론을 설명한다. 4부에서는 혼돈의 개념을 설명하고, 5부에서는 통계역학의 기본 원리와 자유도에 관련된 내용을 소개한다. 6부의 내용은 고등학교 지구과학2 천문분야의 내용과 거의 같고, 7부에서는 복잡계를 소개하면서 기본적인 생물학, 그리고 물리학과 생물학의 관계를 설명한다. 8부에서는 현대 사회에 과학이 미치는 영향과 그 반대로 과학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서 책을 맺는다.
이 책이 과연 일반 사람들에게 적합한 책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책의 곳곳에서 수식이 등장한다. 물론 서론에서 저자는 수식이 어려우면 건너뛰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였지만, 실제 책 내용에서는 수식을 건너뛰면 상당한 부분의 내용을 누락하는 셈이 된다. 가령 고전 전자기이론을 설명한 부분에서 저자는 많은 내용을 맥스웰 방정식들을 늘어놓고 해석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또한 수식을 빼고 읽는다 하더라도 쉽지 않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상당한 수준의 수리적, 논리적 추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이 담긴 양동이를 돌릴 때 수면이 가운데가 낮아지는 것은 중력에서 구심력으로 쓰인 성분을 뺀 나머지 알짜힘에 수직이 되도록 수면이 형성되기 때문이라는 말을 이해하기가 쉬운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론의 설명에 있어서 저자는 힘의 평형관계를 매우 빈번히 쓰고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 이과에서 배우는 물리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게 책을 읽을 때 어렵지 않게 읽힐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을 설명해주려는 의도인데 고전 역학, 전자기학과 더불어 현대 물리까지 모두 다루려니 어쩔 수 없이 난이도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어려운 용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현대물리를 설명하면서 나오는 기계론, 기술결정론, 논리실증주의 등의 용어가 아니더라도, 책 내용 전반에 걸쳐 교부철학, 도구적 합리성, 변증법 등의 어려운 말이 많이 사용되어 어느 정도의 언어적 지식이나 사회적 교양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 면에서보면 이 책은 자연과학, 특히 물리를 전공할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물리학자가 되길 꿈꾸며 대학교에 입학한 물리학도들이 신입생때 배우는 고전역학, 고전전자기학 등의 분야들은 이미 수세기 전에 연구가 끝난 분야들이다. 또한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우는 양자역학 등도 그 의미를 생각할 기회 없이 식으로, 응용으로 배우게 된다. 이들이 진정 갖는 의미를 성찰하기엔 부족하다. 물리학도들이 물리학자들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현대 물리학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물리학의 개념과 역사’는 진정 그들이 필수로 들어야하는 교양과목이 되어야하지 않았을까.
무리하게 한글용어를 써서 더 어려운 감도 있다. 물론 한글용어의 사용을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직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기존의 용어들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한글용어를 도입하였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수학이나 과학에서 계수, 광자, 대류, 적외선, 복사 등을 배운 사람도 곁수, 빛알, 엇흐름, 넘보라살, 내비침이라는 용어들을 보면 처음에는 약간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천문분야에서, 빨강장다리별(적색거성), 하양잔별(백색왜성), 별송이(성단), 손님별(초신성), 어둠별구름(암흑성운), 검정구멍(블랙홀) 등 대부분의 용어가 순우리말으로 이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기존용어로 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혼란을 줄 수 있다. 정작 내용의 난이도는 배운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용어는 새로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 지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지적할 것은 분명히 책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일부분의 천문학을 제외하면) 물리학과, 물리학과 타 과학과의 관계인데, 1부와 8부에서는 내용을 전체 과학으로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가끔 보인다. 물론 그 내용이 물리학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도 성립하는 내용이지만, 본문의 내용이 물리학을 다루는데, 굳이 일반화하여 물리학의 성격을 전체 과학의 성격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저자가 책의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등장시켜서 개념을 성찰해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에셔나 마그리트 등 독특한 화가들의 그림뿐 아니라 피카소의 그림이나 바흐의 곡 등을 등장시키면서 은유를 하여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다. 딱딱하게만 여겼던 물리학이 예술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 어려운 개념이 직관적으로 무슨 뜻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여러 분야의 내용의 연계를 보여준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현재 교육과정의 문제를 언급하며 특히 문과와 이과가 분리된 현재의 교육과정이 넓은 분야에 걸친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키워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수긍이 되는 말이다. 충분히 쉽게 쓰여지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은 분명히 물리학 여러 분야에 걸친 전반적인 소개와 개념의 설명이다. 이런 것이 일반인에게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러셀이나 데카르트 등, 수학이나 과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분야에 대해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과거 2차세계대전 동안 레이더를 개발했던 미국의 래디에이션 연구소, 래드랩은 전시 5년동안 SCR-584와 같은 지대공 레이더나 ASV레이더처럼 비행기에서 배나 잠수함을 탐지하는 레이더를 개발했고, 이것들은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 여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결은 바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협동연구였다. 레드랩은 연구원들은 전공별로가 아니라 레이더의 부품별로, 마그네트론 연구실, 변조기 연구실, 수신기 연구실 등으로 연구실을 분리했다. 이 연구실 내에서 서로 다른 전공지식을 소유한 과학기술자들이 책상을 맞대고 소통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곧 놀라운 성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하나의 전공지식만으로는 매우 제한된 일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무능한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여러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때부터 문과와 이과를 갈라서 교육하는 현재 우리 교육은 여러 분야를 접할 기회를 막고 일찌감치부터 가지를 자른다. 그런 교육을 받고 대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이 또 갑자기 다른 분야의 수업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 대학생들은 학점에 매우 연연하기 때문에 고등학교때 기초를 쌓고 온 학생들보다 학점을 잘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수강을 하는 것부터 겁을 내게 한다. 특히 인문계학생이 이공계쪽 지식은 거의 배우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학의 경우 필수 교양과목을 개설해서 듣도록 하는데 문제는 이공계과목은 많지 않다는 것과 또 인문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공계쪽 교양과목을 들어야할 부담을 적게 지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교양이라고 하면 도스트프예스키, 플라톤 등의 인문계쪽 교양만 생각하고 맥스웰방정식, 패러데이의 법칙등은 어려운 과학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전공쪽 과목만 듣다보면 지식은 점점 전문화가 되고 그 폭이 좁아진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멀리 보는 조감을 지니게 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과 이과를 나누어 교육하는 교육과정부터 개편해서 많은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해야한다. 대학도 교양과목에 대해서는 Pass/Fail 등의 학점 부담이 적은 과목으로 개설하는 등으로 여러 분야를 접할 수 있게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과학은 과학자들이 공부하는 것이지 교양이 아니라는 인식을 철폐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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