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의거 40주년을 즈음하여, 우리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고민
새내기부문 2등작
전태일 의거 40주년을 즈음하여, 우리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고민
조영래, 『전태일 평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계열 김덕환
부푼 기대와 청운의 꿈을 가지고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생활하게 된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들을 보게 되었지만, 전태일 평전만큼 나에게 ‘임팩트’ 있던 책도 있었나 싶다. 전태일은 근현대사 수업이나 관련된 책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노동운동가이고,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고 외친 그의 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전태일 열사는 작년까지 근현대사 수능을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저 ‘연도’였다. 1970년에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건. 그 사실을 내 머릿속의 연표에 입력하는 데에만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그가 만든 ‘바보회’ 정도도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아 암기했다. 이 연도라도 혹시 기억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나마 입시가 끝나고 밀려온 엄청난 해방감과 함께 그 머릿속의 ‘연도’는 지워졌고, 그 덕분에 나는 올해가 전태일 열사 항거 40주년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전태일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가 어떤 생각을 했던 사람인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서는 별 의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단지 그의 희생이 그 당시의 처절한 노동현실에 대한 고발의 역할을 했으며, 지금의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정도의 ‘교과서적이고’ ‘무미건조한’ 생각만 했을 뿐이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별로 바뀐 것은 없었다. 입학 전 부모님과 친척 분들이 마련한 서울대 입학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회대는 학생회나 운동권 선배들의 전통이 강한데, 거기에 너무 빠지면 곤란하다고 말씀하시는 ‘훈화’도 들었던 나였다. 그렇지만 2010학번으로서 내가 보고 느낀 사회대는 별로 어른들이 걱정하셔야 할 곳은 아니었다. ‘진보의 요람’ 이라고 하는 사회대학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도 없었다. 학교 여기저기 자보가 붙어있지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소수다. 오히려 선배들은 작년 전공진입의 가공할 만한 학점커트라인과 그 학과 진입에 성공했다는 자랑스러운 성공담을 이야기해주면서 학점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중간고사, 각종 과제, 기말고사를 위해서 준비하고 공부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였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보다는 ‘읽어야 할’ 책들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전태일 평전도 처음에는 굳이 구분하자면 ‘읽어야 할’ 책이었던 것 같다. 같은 학회에 속해 있는 선배들이 함께 세미나를 하자면서 읽게 한 책이기 때문이다. 당시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공부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기였고, 다른 ‘읽어야 할’ 책이 굉장히 많았다. 이 책들을 읽는 것은 학점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전태일 평전도 이러한 ‘읽어야 할’책들 중 하나였다면, 그리고 유한한 시간을 지닌 상황에서 최대의 효용을 끌어내야하는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으로서의 판단에서라면 전태일 평전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마냥 ‘읽어야 할’책만은 아니었다. 왠지 이 책은 ‘읽고 싶은’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대학의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하는 책 중 하나가 전태일 평전이라고 한다. 그 만큼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꼭 접해야 할 뛰어난 사상을 담은 글이리라.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핑계로 전태일 열사에 대해 더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자책에 의해서라도 이 책은 읽고 싶었다. 더군다나 올해가 전태일 열사 항거 4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해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역사적 의무감도 나에게 부여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전태일 평전의 첫 장을 넘겼다.
조영래 씨의 전태일 평전은 저자 자신도 학생운동가,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던 분이기 때문인지 전태일 열사의 생애와 사상을 생생하게 복원해 놓았다. 이렇게 탁월하게 복원된 전 열사의 삶은 나로 하여금 전 열사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내가 신봉하는 종교이기도 한 기독교의 신자들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의미의 영어 문장의 약자인 “WWJD”(What Would Jesus Do)를 기억하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고민한다. 전태일 열사는 이러한 종교적 차원까지는 갈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살아가는 대학생들, 또 굳이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20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전태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물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할 만한 사람이 없는 사회라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잊고 기억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주에 마석의 모란공원을 다녀와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곳에는 전태일 열사, 박종철 열사같이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투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잊게 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글과 선언들을 읽으면서, 그들의 의분, 그 어떠한 종교보다도 깊다는 거룩한 분노와 비장감을 느꼈다. 거기에는 한창 학업에 열을 올리며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노동자들, 그리고 민족의 앞날과 통일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지식인들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묻혀있었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들은 그 당시로 보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말 그대로 하나의 ‘꿈’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에 의해서 역사는 끊임없이 한 발씩 한 발씩 진보해 온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사는 더 나은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할 때, 그들에 대한 존경은 의무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의 것이 된다.
전태일 열사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그것도 ‘찢어지게’ 가난했다. 책에서 “밑바닥 인생”이라고 한 표현은 결코 그에게 있어서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는 불우한 가정형편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로부터 가출과 방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는 지나친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여 가출하기도 하였고, 꼭 받고 싶은 학교 교육을 반대하시는 아버지에게 그때만큼은 순종할 수 없어 고학을 하고자 가출하기도 하였다. 그의 사랑하는 동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방황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체념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부유한 환경”이 자신을 거부하는 현실에 대하여 처절한 절망을 하기도 하였다. 현실의 고통이 운명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머무르지 않았다. “현실과 타협”할 줄 알고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거세된 노예”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또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고난의 길을 자초하고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바보”로서의 삶을 택했다. 그는 그의 고된 삶에서 자신이 “살아 있는 인간”임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서로간의 사랑”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보았다. 그는 정의롭고 당당하게 살았다. 이러한 인간애와 사회개혁에 대한 사명감이 그가 후에 수천만의 횃불이 타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작은 촛불이 되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책의 앞에 나와 있는 여러 전태일의 사진들을 보면 사실 그에게서 투쟁적인 모습이나 과격한 면모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의 순수한 영혼과, 잔잔한 평온함이 느껴진다. 그가 짓고 있는 수줍은 미소와 그가 분신 시 몸을 감쌌던 불길의 잔혹함은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가! 그는 사회의 강자에게는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결연한 의지로 맞서 싸웠지만, 약자들에게는 매우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상에서의 대인관계에서 인간미 있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착실하고 일 잘하는 노동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가족을 위해서 재단사로 일하기는 했지만, 시다들을 착취하는 다른 재단사와는 달랐다. 다른 재단사들은 밑에 있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에서의 특권을 행사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전태일은 쉬는 시간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시다들과 노동자들을 보면서 연민을 느꼈다. 오히려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그들이 “기계의 톱니바퀴”가 된 현실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도록 헌신했다.
물론 전태일 자신도 “박제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에 쳐해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시간이 될 때 잠깐뿐”이었던 노동현실에서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일기에서 “동심을 버리고 현실에 충실하라”고 하며 자신을 다그치기도 하였다. 성실하고 자신의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던 전태일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혹했다. 고용주는 자신의 성실성을 이용할 뿐이었고, 노동자들의 환경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찾아간 근로감독관의 태도는 냉담했다. 오히려 그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이러한 차가운 현실 속에서 점차 의식이 성장해 갔다. 그가 미덕으로 알고 있었던 ‘착실’, ‘겸손’, ‘온건’, ‘성실’, ‘적응성’은 사회 주류층에서 기득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비주류 인생들을 길들이기 위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자각했다. 그는 점차 노예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개안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만 더 참고 견뎌서 더 나은 위치로 갈 수 있었다. 현실에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다수의 재단사들과는 달리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내 힘으로 바꾸어보자”고 하였다. “어떤 어려움이 다기더라도 기어이 해보자”고 하며 자신을 독려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결심은 마침내는 1970년 11월 13일의 분신으로 이어졌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그의 외침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나약한 지식인의 외침도 아니었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관료나 잘나가는 정치인들에게서 나온 외침도 아니었다. 이 외침은 그가 살아온 인생과 함께 우리 사회에 퍼져나갔다. 그의 처절한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나온 외침은 사람들에게 그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외침은 당시 노동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는 “전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저명한 혁명가들의 외침보다도 더 그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그의 외침은 1980년대의 치열했던 투쟁의 현장에 함께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시대를 생각해보자. 지금의 노동여건은 어떠한가. 인권은 잘 보장되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그 본래의 의미를 잘 구현하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태일이 살던 시대보다는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이야기한다.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 등은 현재에는 다소 과격한 성격의 것이나 옛 것에 대한 향수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지식인들은 과거 급진적이었던 자신의 사상을 이젠 전향하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는 필연적이며, 인류의 역사는 최고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역사의 종언이란 더 이상의 진보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사회에는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지켜져야만 했던 그 ‘무엇’같은 시대적 과제가 없는가. 만약 있다고 답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진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진보가 무의미하다고 하며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역사의 ‘종언’을 넘어서 역사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은 아닌가.
어느 사회에나 기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있고, 그것을 변혁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세력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들이 꼭 기득권의 수호를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이야기들을 한다. 진보세력은 냉엄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바꾸기 힘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은 다듬어지지 않고 실현되기에 어려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주의자들은 이를 철없고 순진한,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넋두리라고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 현실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인간을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횡포에 대해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에 대해 일갈(一喝)하였다. 현실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같은 위치에 서서 현실을 보지만, 그들은 1도의 각도 차를 가지고 서 있다. 현재는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 차이가 매우 미미해 보이지만, 먼 훗날 그들이 서 있을 위치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일제 강점의 시대에는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횡포에 저항하는 ‘무모한’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고, 군 독재시대의 공포정치에 저항한 ‘무모한’ 민주열사들이 있었고, 사용자들이 밥줄을 틀어쥐고 가족의 생계를 협박하는 상황에서 저항했던 ‘무모한’ 노동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불가능 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하였다. 바보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바로 그들 덕분에, 그리고 그들이 했던 ‘바보 같은’ 생각 덕분에 지금 우리들은 그들이 바라고 꿈꾸었던, 그리고 기어코 만들어 낸 ‘진보된’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방학 때 친하게 지내는 형이 대학생으로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하며 준 홍세화씨의 『생각의 좌표』를 읽었다. 그는 “불온한 생각”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불온한 생각이 사회에 대한 저항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판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의무인 것이다. 1980년대는 투쟁의 시대였다. 또 사회과학의 시대이기도 하였다.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를 해결해보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대와 책들을 ‘옳게’ 읽고, 저마다의 작은 욕망을 위해 읽지 않기 위해서 독서와 토론을 하였다. 그리하여 철옹성 같았던 독재의 시기는 끝내 마치고 민주화의 열망은 실현되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무엇’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하루하루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에 그저 방어적으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전태일 열사도 한 때 그랬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민중가요 중에 “끝나지 않은 노래”가 있다. 가사 중 “우린 너무 그저 사는 일에 익숙해지고 함께 불렀던 그 노래는 기억조차 없구나”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이 서른에 우리”라는 곡에서는 “저 거친 들녘의 노래와 고운 나리꽃의 향기”를, 또 “빈 가슴마다 울려나던 참된 그리움의 북소리‘를 나이 서른에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나온다. 우리가 그저 사는 일에 익숙해지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시대를 ’무엇‘의 시대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행동하는 지성‘을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태일이 보여주었듯이 ’행동하는 지성‘을 살 수 있는 용기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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