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존을 위한 도전을 논하다
새내기부문 예선통과작
여성 생존을 위한 도전을 논하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 유엘림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적 모든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여성주의, 즉 페미니즘은 그 의도와는 달리 여성들의 유용한 무기로서 간주되어 왔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철학인데, 왜 여성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저자의 비탄처럼, 그 동안 사회는 여성의 목소리를 남성들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행위로만 판단, '남자도 힘들다', '여성 부는 있는데 남성부는 없지 않느냐' 라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해왔다. 화합의 노력이 엉뚱하게도 갈등의 골만 깊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하에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남성에게 피해의식을 가진, 여성의 약함을 무기 삼아 사회에 대항하는 존재로 폄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즘의 도전>은 페미니즘을 둘러싼 사회의 끝없는 논쟁에 출구를 제시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와 갈등을 조심스럽게 분석하며 페미니즘은 저항 운동이 아닌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임을 반복적으로 밝힌다. 작가는 그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참 뜻을 말하는 동시에, 현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차별과 무의식적으로 산재된 차별(책에서는 억압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을 극복해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그 당위성을 2, 3부에서는 여성 차별의 현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제목이 풍기는 저항적인 분위기와달리, 책 속의 저자는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이다.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제시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녀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여 자신의 발언이 여성과 남성의 논쟁에 새로운 발화점이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 그래서인지 책은 주로 객관적인 여성차별 현실을 제시한 후 이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개진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보여주며 페미니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여성들의 인식변화를 촉구하는데, 여기서는 작가의 편견해소에 대한 노력과, 여성억압 현실을 보여주는 세 가지 사회문제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자세히 논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먹고 살만한 중산층 여성들의 운동” 이라는 일반적 편견에 대해, 정희진은 이는 여성이 '어머니'이거나 '창녀' 밖에 될 수 없다고 여기는 남성 주체들의 무의식적 사고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즉, 중산층 여성은 곧 지식인 여성을 의미하는데, 중산층 여성의 운동을 부정함으로써 동시에 지식인 여성을 부정하고 오직 피해자로서의 여성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조차 여성에 대한 차별임을 눈치챈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게다가 저자는 여성의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의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편견에 대해,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라며 일축하고 있다. 여성참여를 비하하려는 목적을 가진 편견을 비판하기에는 완벽한 답변이다. '다른 목소리를 듣는다'는 구절은 즉,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현 사회에서 여성주의 역시 하나의 목소리로 존중해 달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이 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여성이기주의'라고 오해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조금 부족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서, 군가산점제와 같은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 군가산점 폐지=페미니즘 과 같은 편견마저 해결할 수 있는 더 넓은 범위의 답변이 필요하지 않았나 한다. 덮어놓고 여성주의자들을 비난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만, 페미니즘을 둘러싼 편견을 종식시키는 것이 여성주의자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과 동일시 하는 대신 페미니즘의 의의를 보다 부각시키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여성주의를 인정해달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넘어서서, 사소한 편견이라도 정정하여 페미니즘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하는 여성주의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2004년 '위안부 누드'에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에 대한 작가의 분석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 현실을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사회는 '위안부'누드에 대해 민족적 수치라고 분개하며 당사자들을 비난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여성누드에는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사회를 보여준다. 민족주의에 반하는 누드에 반대한 것이지, 포르노/누드 산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화를 통해 사회가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포르노산업, 즉 여성을 상품화시켜 억압하는 사회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광고, 디자인, TV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여성이 상품화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성 아이돌 산업, 드라마의 주제 등 여성 억압의 현실이라고비판할 수 있는 소재는 많으나, 그것들 자체로 사회 전체가 여성을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있는 현실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부누드 일화를 제시하며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여성억압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였다. 성매매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여자들도 원해서 하는 일 아니냐 라는 남성들의 반발이 예상되며 논쟁이 계속될 여지가 다분하다. 어찌되었던 간에, 남성들은 여성들을 억압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위안부누드 사건에 대한 정희진의 날카로운 분석은 남성들에게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여성 억압의 문제가,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아닌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2부에서, 장애남성들이 성매매 방지법 시행은 그들의 '성을 살 권리'를 침해한다며 논쟁하는 부분이 나온다. 비장애인 남성이 누려온 성폭력, 즉 성매매가 불합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폐지하는 것이 장애 남성들에게 차별이라며 반발한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만, 그들의 주장도 나름 논리적이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3가지 이유를 들며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그녀는 장애인의 권리를 생각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언급하며, 평등의 의미를 재확인한다. 필자는 이에 대해 작가와 의견을 같이 하며, 나아가 평등의 정의를 재조명한 논리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장애남성들이 주장하는 평등을 양성평등에 비유하자면, “양성평등은 여성도 남성이 저질러 왔던 살인, 전쟁, 폭력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작가는 밝힌다. 비 장애 남성에 비해 장애 남성들이 약자라면, 그래서 성매매 방지법이 약자를 차별한다고 반대하는 것이라면 '남성'자체에 대해 약자인 '여성'의 권리는 애초부터 계산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들이 말하는 '상대적'이라는 수식어는 왜 남성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독자들을 대변하듯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후반부로 가서 저자는 지금까지도많은 논란거리를 야기하는 성매매를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남성들의 입장,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까지 치우침 없이 고려하며 여성주의자의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시각에 대한 고려들이 그녀의 견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성이 성 산업에 종사하는 것은, 그녀가 가난해서라기보다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난하지 않은 여성도 인신매매에 의해 성 판매 여성이 된다. 성매매는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의 문제인 것이다.”라는 구절은 성매매가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던 간에 본질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의견을 명확히 보여준다. 생계를 위해 성매매에 찬성하는 여성들이나, 성욕은 본능이므로 성매매를 함으로써 강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 중심 사고를 벗어나 근본적으로 성매매 문제는 성차별의 문제임을 확고히 하여 그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들의 권리만큼 주장하자는 것이었다. 오천 년 넘게 유지되어온 남성위주의 관념 하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그야말로여성이기주의, 시대착오적 목소리로 매도될 가능성이 많았으며, 또 실제로 많은 편견들을 양산하며 매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작가가 '남성을 깨우치는데' 별 관심 없다고 말한 것처럼, 여성이 사회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지 사회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 남성들에 대한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 자신들에 대한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여성들은 그녀들조차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무수한 여성 억압의 고리들이 아직도 사회 도처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그 밑거름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깨달음을, 남성들에게는 되돌아봄의 기회를 주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자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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