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폴 그루그만, 《불황의 경제학》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서평: 폴 그루그만, 『불황의 경제학』

서정삼


Ⅰ. 序

우리가 살아가려면 필요한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있고, 보통 이러한 것들이 희소성이 있어 교환을 하게 되고 ‘교환가치’라는 개념이 생긴다는 것이 경제원론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은 ‘본질가치’와 다른 개념이고 두 가지는 일치할 수도, 상이할 수도 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 본질가치와 교환가치가 왜 다른지 그 정확한 mechanism 규명과,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를 때 어떤 방향으로 가치재평가(revaluation)를 이루게 될지 하는 점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P. Krugman은 둘 다 정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밝혔듯 사태를 분석하고 그 깨달음을 알려주려는 태도인 것 같다. 더구나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실마리조차 잡기가 매우 힘들다.

Ⅱ. 첫 번째 문제에 대한 규명

어쩌면 그는 이것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것의 논의 실익이 크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전 경제학에서 ‘가치’에 대한 연구를 해왔고 그에 따라 노동가치설, 한계효용설 등 이론이 생겨났지만 M. Walras는 일반균형이론을 이야기하며 상대가격체계를 가정했다. 이를 테면 연필이 500원, 펜이 1,000원 할 때 왜 연필과 펜은 각각 그러한 가격을 지니게 되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필보다 펜이 두 배 더 비싸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연필은 펜의 절반 가격으로서 이렇게 양 방향으로 비율을 생각해 보며 가치의 경중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2장부터 4장까지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사례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일본, 태국 등 동남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이러한 위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금융위기’다. 물론 저자는 이렇게 단언하고 있지는 않으나 1930년대 미국의 공황에서부터 이러한 경제위기 국가들의 모습 속에서 어떠한 ‘경고’를 발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왜 서로 공통점도 없고 지리적으로 인접하지도 않은 나라들에서 이러한 경제위기는 터지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피한 채 여러 각도에서 답을 모색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외환보유고 고갈과 통화가치 하락, 중앙은행의 개입과 이자율 상승, 뱅크런(bank-run)과 해외 투기자본의 움직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중간 중간에 나오는 가설에 대한 반례를 제시하면서 가설의 부당함을 증명한다. 가령 한국의 IMF 사태에 대해 그것이 이른바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즉 재벌 경영체제의 문제면서 한계였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저자는 오히려 한국에서 재벌 경영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를 발전시켜온 원동력이라고 평가하고 중요한 것은 만약 그것이 문제였다고 하더라도 왜 하필 1997년이었으며, 어떻게 해서 태국같이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가 한국의 경제를 뒤흔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헤지 펀드(hedge fund)들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금융시장의 규모가 이미 매우 컸던 상태며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이 음모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성격이 아닐 것이라고 진단한다. 오히려 그러한 진단을 논증하면서 설명하는 헤지 펀드의 수익 창출 구조―short position, 즉 주식 공매도나 long position, 즉 주식 매입 후 차익 실현―를 통해 위기 국가들의 공통점으로 생산물 시장의 문제가 아닌 외환시장, 더 나아가 화폐와 금융시장의 문제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P. Krugman이 말하지 않은 것이 바로 ‘왜 그토록 많은 나라들이 달러(dollar)를 보유하려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달러를 통화로 쓰는 국가의 시민이라 그런 것일까. 자연스럽게 상술했던 본질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이에 대한 첫 번째 문제는 비켜가고 있다. 왜 교환가치는 본질가치와 다를 수 있을까.

저자의 논리는 단순하다. 어떠한 이유로든 달러에 대한 수요는 있으며 달러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넘쳐나게 되는 자국통화의 가치는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이 때 국가(정확히 하자면 중앙은행)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달러로 자국통화를 사들이며 통화가치를 유지하는 방법과, 어느 정도 통화가치의 하락을 인정하고 이자율을 인상하여 자국 통화의 유통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명시했듯 어느 쪽으로든 자국의 경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전자를 행하면 외국으로부터 수입에 차질이 생기고, 후자를 행하면 저성장과 고실업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때 첫 번째 방법은 외환보유고의 고갈을 의미하게 되고, 결국 국가는 백기를 들고 두 번째 방법을 취하게 되며 외국으로부터 달러를 차환 받아 공급한다는 이야기로서 우리나라의 1990년대 말 상황과 같다. 요컨대 달러에 대한 수요가 있는 이상 달러 공급은 계속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자국통화로 매긴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는 달러에 의해 평가받게 되고 그 힘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잃는 순간 위기는 찾아온다.

Ⅲ. 두 번째 문제에 대한 규명

어쩌면 달러와 다른 통화 사이의 줄다리기는 두 번째 문제에 대한 답을 더 잘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저자의 금융지식을 접하기 전에 통화의 신용창조(credit creation)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현대의 통화제도는 과거와 같이 어느 상품에 종속된 가치평가제도가 아니다. ‘금 1온스에 몇 파운드’라는 식의 기준이 없다. 자연스럽게 통화증발(增發)의 유혹이 생긴다. 이때 무한정 통화를 발행하면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일어나고 화폐의 가치는 떨어진다. 이것은 물물교환의 시대를 의미하게 되며, 이것을 피하기 위해 적당한 만큼―즉, 화폐를 수요하는 정도만큼―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사용하는 개념이 신용창조다. 중앙은행이 최초로 찍어낸 돈을 본원통화(monetary base)라 하는데 본원통화는 금융기관에 들어가게 되고, 금융기관은 투자자들에게 본원통화를 기초로 대출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대출액을 기초로 투자를 하고, 임금․지대․이자 등의 형태로 배당을 하며, 각 경제주체가 받게 되는 이러한 배당은 다시 은행으로 예금형태로 들어가고 은행은 그 돈을 기초로 다시 대출에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그 가정으로 고객들이 은행에 예금한 돈을 어느 날 동시적으로 찾아가지 않음을 전제한다. 만약 이러한 전제가 무너지면 고객들이 은행에 몰려 인출을 요구하는 뱅크런에 직면하게 되며 은행이 평소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지 않은 이상 도산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면 그 은행을 지원 또는 투자한 다른 금융기관의 도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러한 연쇄도산과 뱅크런은 금융의 역할―자금을 대부해주고 회수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고 투자자의 투자는 줄거나 멈추며, 임금․지대․이자 역시 줄거나 멈춘다. 대량실업을 피할 수 없으며 금융의 역할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만 계속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대의 신용창조에 기반한 화폐경제제도에서 중앙은행이 최초로 찍어낸 돈인 본원통화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이 융통하면서 새롭게 창조되는 통화량의 규모가 본원통화에 비할 바 없이 크며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신용창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통화량의 대대적 감축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곧 물가하락, 디플레이션(deflation)을 뜻하게 된다.

8장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각 나라, 각 시대를 관통하는 경제위기의 본질은 화폐를 제외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와, 화폐가치 사이의 대립구도가 되어 왔으며, 화폐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져도(인플레이션의 문제), 지나치게 올라도(디플레이션) 문제라는 것이다. 요컨대 신용창조에 기반한 현대의 화폐경제에서 은행의 신용창조가 마비되면 경제위기, 더 나아가 공황이 찾아왔으며, 이것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Ⅳ. 다시 두 가지 질문 속으로

P. Krugman의 경고는 이 시점에서 빛을 발한다. IMF 사태 때 한국에 대한 금융지원처럼, 멕시코 경제위기 때 미국의 달러지원처럼 위와 같은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금 지원은 일종의 비상약 같은 것으로서 책의 도입부에서 가정한 카피톨힐(Capitolhill)의 아기양육 쿠폰(coupon)제도를 비유하여 설명한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외출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아기를 맡긴다면 아이를 맡게 된 부모에게 이 곳에서 발행하는 쿠폰을 주어야 하고, 거꾸로 아이를 맡는 가정은 맡기는 가정으로부터 쿠폰을 받는 체제다. 이 때 만약 어떤 이유로든 모든 가정이 쿠폰 저축에 나서고 쿠폰 소비가 없다면 역설적으로 쿠폰을 얻을 수 없어 쿠폰 저축에 실패한다. 누군가 쿠폰을 소비할 사람이 있다 해도 자기 수중에 쿠폰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므로 쿠폰 소비가 어렵다. 이 때 취할 방법은 쿠폰을 더 발행하여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쿠폰 수요량 이상의 쿠폰 공급을 하게 되면 쿠폰의 가치는 떨어지고 부모들은 쿠폰 보유보다는 기꺼이 쿠폰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적절한 통화발행과 그것에 대한 규제를 이야기 한다.

8장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 은행의 역사를 설명한다. 금본위제 시대에 금 세공인들이 다른 사람의 금을 대신 보관해 주는 것에서부터 은행의 시초라고 얘기한다. 이때 세공인들은 자기가 보관한 금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부하면서 일정한 이자를 얻는 것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상술했던 뱅크런과 같이 어느 날 자기에게 금을 맡긴 모든 사람이 한 번에 찾아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문제는 자산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경제 내에 적당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때가 아니라 그 반대로 신용이 수축하고 자금융통이 어려워질 때다.

1913년 FRB의 탄생과 1933년에 제정한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은 신용이 수축할 때 금융기관의 부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게 되는지를 겪고 나타난 노력들이다. 특히 후자는 은행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나누어 투자은행은 예금을 받지 않도록 규제하였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규제책이 있음으로 해서 그 후 70여 년간 미국에서 큰 공황b없이 지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규제책이 없어지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최근 2008년의 금융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한다. 경매방식채권인 ARS(Auction-Rate Securities)는 1984년 Lehman Brothers가 고안하였다고 한다. 장기채권으로서, 경매가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에 근거를 둔 이러한 방식은 금융위기가 현실로 부각되자 돈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하고 곧 이 회사의 파산에 영향을 끼쳤다. 베어스턴스(Bear Sterns)의 파산과 최대 보험회사 AIG에 대한 사실상의 국유화 조치는 모두 2008년의 금융위기를 보여주는 커다란 사건이었음과 동시에 금융에 대한 규제책이 약해지고 이제 경기순환(business cycle)에 대한 우리의 적응이 완벽해졌다고 오만해 할 때 과거처럼 나타난 패턴이었다는 것이다.

P. Krugman은 결코 시장주의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시장을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다만 위에서 예를 든 카피톨힐의 ‘불황’같은 사태가 현실 경제에서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에 대비해서 적절한 지원과, 그러한 지원이 끝나고 난 후에 강한 규제책을 마련하여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Ⅴ. 結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서평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앞에서 생각했던 질문의 답은 역시나 명확하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오히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연필과 펜의 정확한 가격이 아닌 것처럼, 화폐가치가 어떻게 되며 재화나 서비스의 ‘정확한’ 가치가 어떻게 되는지가 아닌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름과 내림이라는 자연의 순리라고나 해야 할까. 어쩌면 작은 생각을 한 번 해본다. 2010년 10월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900선을 밟기도 하였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그러한 類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을 기대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겸손함을 얻었다고 해야 하나. 세상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야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갖는 것이 부질없다.

저자는 10장에서 ‘이제 불황의 경제학(depression economics)을 얘기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황은 오지 않을 것이며’라고도 한다. 글쎄. 두 가지 말이 조금 엇갈리는 것을 느끼면서 어쩌면 공황이 오지 않으리란 것은 저자의 희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결론이 그것에 대비하고 지원과 규제책을 쓰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다만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밀턴 프리드먼(M. Friedman)의 명제에 대해 ‘공짜 점심은 있을 수 있으며 다만 그것에 손을 뻗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과거의 낡은 생각이 결국 문제며, 이해(understanding)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다른 책들에서 읽었던 ‘경제는 정치와 분리해서 논할 수 없다’는 저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늘 교환을 통해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부분이다. 화폐를 포함한 재화의 가치, 그리고 서비스의 가치도 사실 숫자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모두 동의한 숫자. 그리고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숫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살맛나고 인간다운 세상이 되려면 우리는 또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것을 할 수 없을까. 저자가 새롭게 주는 숙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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