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 서서 읽다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문턱에 서서 읽다

오수연, 『황금지붕』

이린


그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팔레스타인에서는 시위와 전투가 줄을 이었다. 민간인을 상대로도, 군인들을 상대로도, 불꽃과 연기는 거침없이 피어올랐다. 연인을 잃어, ‘총 맞은 것처럼’ 아프다는 그 노래가 유행할 때, 그곳에서는 포화에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누구는 총을 맞고 죽어 가는데, 누구는 하지도 않은 실연을 떠 올리며 노래방에서 총 맞은 것처럼, 노래를 불러대는 꼴은 가관이었다. 하지만 나의 불만은 퍼져 나가지 않는 볼멘소리로 남을 뿐이었다. 더러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동안, 싸움이 끊이지 않은 것만큼이나 그 노래는 끊이지 않고 들려 왔다. 티브이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거리의 상점들에서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 노래가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할 즈음, 빠른 유행은 조금씩 그 노래를 뒤로 하기 시작했다.

이런 책이 있었음을 그 때 알았더라면, 그래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나마 마음에 위안쯤은 되었을까. 이런 책이 있음을, 이런 책을 쓰는 사람 뿐 아니라 읽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음을, 그래서 한국에도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 노래를 흘려보낼 수 있었을까.

그 노래가 잊혀지고, 그 가수가 또 새로운 노래를 들고 나와 인기를 얻고, 그러고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나는 오수연의 《황금지붕》을 알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 작가가 직접 가서 보고 온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하루하루 살아가며 어느덧 나에게서도 조금은 잊혀진, 그 전쟁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황금지붕》을 읽기 전 나는 먼저 박완서의 《그 때 그 산은 거기 있었을까》를 생각했다. 전쟁을 겪은 이의 이야기, 전쟁을 겪은 여성의 이야기, 어쩌면 책을 읽는 내가 더 답답하고 아파질 만큼 담담했던 그 이야기를 생각했다. 또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도 좋을까,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웠다.

당사자의 이야기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책을 펼쳤다. 더 끔찍해서 괴로울 이야기, 하지만 남의 상상과 남의 입을 통해서 전해져야 하기에 얼마간은 거짓일 이야기를 읽기는 두려웠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오수연의 《황금지붕》은 구호 활동인지 반전 활동인지를 떠난 외부인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지에 가 있는 그들조차도 답은 알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수수께끼는 더 오묘해졌다. 종이접기 하듯 일 년 전 오른쪽이 왼쪽으로 구부러져 현재 시끄러운 거리에 겹쳐졌다. 일 년 전과 현재가,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를 무리하게 잡아당겼다. 실외에서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마이크를 곡 쥔 기자들, 실내에서 서가를 배경으로 강한 조명 때문에 땀을 흘리는 전문가들은 과거를 예언했다. … 어느 날 화면 안과 밖이 겹쳐졌다.(<문>)

나는 거리에서 책을 읽었다. 얼마 전 새로 지은 관공서 앞, 종종 이런저런 집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길게 이어진 나무 의자 위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딸애의 과제를 위해 솔방울을 줍는 엄마와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꺼 두었던 전화기를 켜는 노부부, 발길질로 비둘기를 쫓는 대학생들과 과제를 위해 회의를 하는 초등학생들. 그들의 발걸음과 뒤척임, 그네들 전화기의 진동이 의자를 통해 내게도 느껴졌다.

수많은 이들과 수많은 차들이 교차했다. 책 속의 인물들이 이미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길을 잃은 것은 나였을 것이다. <문>에서 전쟁은, 피나 죽음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을 통해 드러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땅이 줄어들었다. 최고급 양탄자를 무식하게 세탁기에 처넣어 돌린 것처럼,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연거푸 그런 것처럼 쑥쑥 줄어들었다. … 시간은 거꾸로 흘러갔다. 탈 것은 자동차에서 말로 당나귀로, 물은 집 안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지하수에서 두레박으로 푸는 우물물로, 저장탱크에 반년씩 묵히는 빗물로 퇴행했다.(<문>)

나는 문턱에 있었다. 첫 소설인 <문>을 지나 다음 글들로 차례차례 넘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들어가지 못한 채 어중띠게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동안, 아니, 방향을 알지 못하게 되는 동안, 나는 나의 시간을 멈추어 두었다. 저절로 멈춘 것은 아니다. 멈추어도 아무 탈 없는 시간이었기에, 잠시 접어 둔 것일 뿐. 나는 안전한 곳에 있었다. 전쟁의 포화로부터가 아니라, 갖은 종류의 양심의 가책들로부터 말이다.

대학 입시를 위해 논술 학원에 다니는 무렵, 나는 손쉽게 빤한 대답들을 뱉어댔다. 파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면접관 자리에서 짐짓 위엄을 배는 강사에게 나는 전쟁에 반대하지만 약소국으로서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비전투 군인으로 간다면 좋을 것입니다, 고민 없이 대답했다. 대학에 와서 처음 전쟁에 대해 고민한 후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무도 읽지 않는 자보 몇 장을 붙인 것과 경찰조차 신경 쓰지 않는 집회에 몇 번 나간 것이 전부였다.

우린 너무 비참해. 너는 외국인이라 이런 말 못하겠지만, 나는 이 나라 사람이니까 말할 수 있어. 우린 너무 비참해!
그것들은 벼락처럼 우리한테 차례로 떨어졌어.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길>)

멈춘 시간에 몸을 숨기고 문턱 참에서 망설이는 내게 책 속의 인물들은 말했다. 말을 건넸다, 기보다는 말을 토했다, 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나는 여전히 밖에 있었다. 안에 있는 이들의 시공은 여전히 뒤틀렸다.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손전등을 전지를 아끼려고 끄고 담배를 피우는 녀석의 성냥마저 떨어져 암흑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소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보는 것은 눈꺼풀을 뜨나 감으나 똑같은 눈이 아니라 뼈였다. 몸속의 뼈가 징징 울리며 몸 밖으로부터 자기 몸을, 동굴 밖에서 동굴 안을, 땅 위에서 땅 속을, 하늘에서 땅을, 어딘지 알 수 없는 데서 모든 장소를 대단한 주의력으로 관찰했다. J는 자신의 동공과 콧구멍과 입마저 덩달아 자꾸만 늘어나 팔다리의 범위는 물론 방보다 커지는 것 같았다.(<소리>)

뒤틀린 시공 속에서 길을 잃은, 외부인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일행은 많이 찔렸다. 그들도 남 못잖게 술을 마셔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가능하면 생색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한국에서 알아줄 만한 국제 단체에 끼어보고자 그 회의에도 가서 앉아 있던 탓이었다. (<길>)

그들을 욕하거나 비웃을 자격은 내게도, 그리고 책 속에도 없었다. 뒤틀린 시공 속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힘에 의해 뒤틀리어 방향을 잃는다 한들, 시계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시간은 여전히 흐를 것이다.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잠을 자고 또 누군가 비록 잠깐이라 할지라도 삶을 즐기고 또 누군가는 욕심을 낼 것이다. 그것의 끝에는 결국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뿐만 아니라 박과 맺을 계약보다 돈을 더 받아내리라고 혼자 꿍꿍이를 한 티가 역력히 났다. 박의 가방 속에 든 모든 돈은 물론 리안과 김의 가방 속 돈도 다 자기 돈이라는 듯이, 그는 몸을 틀어 양팔을 쫙 벌리고 이쪽저쪽 어깨를 기울이면서 셋의 가방 앞을 가로막았다.(<길>)

――하긴 저 사람들은 저렇게 뛰는데. 여긴 정말 딴 세상이야. 핫 둘, 핫 둘.아랫배로부터 뜨듯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에 그녀는 즐거워져서, 호숫가를 도는달리기 대열에 조그맣게 구령을 붙였다. 한결같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저 혼자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사람들의 허벅지가 하얗게 빛났다.(<꽃비>)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에 앉히고 무릎에 담요를 덮어 주고는, 나더러 드러누워 잠이나 더 자라고 했다. 두 손을 모아 얼굴 옆에 대고 고개를 기울여서 잠자는 시늉을 했다. 놀랍게도 어린 세 딸은 가끔 눈을 뜨고 칭얼거리기는 하지만, 정말 드러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 최소한 나는 이 가족들에게 삼층의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다는 확신을 주어, 이들을 안심시켜야 했다.(<황금지붕>)

뒤틀린 시간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지붕 위에서 나는 보았지. 기울어진 지붕들. 모두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인 몸뚱아리로 성벽을 지키러 갔기 때문에. 지붕 위는 텅 비어 있더군. 누구나 제 기울어진 지붕을 지키려면 온 세상을 지켜야 했어.”
“어떻게?”
칼릴라가 속삭였습니다.
“그래서 독재자가 나쁘다는 거지.”
딤다는 의연하게 말했으나 꼬리가 서서히 처졌습니다.(<재칼과 바다의 장>)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 사람들이 또 도와주겠다고 와요. 전쟁을 막겠다고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러고 싶어도 못 하고, 아무리 죽고 고생하도 전쟁의 피해자지 반대자가 되지 못해요.”(<길>)

마지막 글까지를 다 읽고서도, 나는 여전히 문턱에 있었다. 이제는 그것이 내가 들어가기를 망설이기 때문인지, 그곳이 나를 거부하기 때문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갔다.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문턱에 한 발을 걸친 채, 어중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나무 의자는 여전히 흔들렸다. 도로는 시끄러웠다.

여기는 어디의 동서남북도 아니고, 어디로부터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여기에는 전진도 후퇴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기지개도 켰다.(다시, <문>)

내가 겨우 문턱에서 나온 것은, 우습게도 책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 덕분이었다.

2004년 초 논란 끝에 국익을 위해 한국군이 미군의 연합군으로 이라크에 갔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라크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의 원리는 실은 간단했다. 여기 있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저기 있는 저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는 것. 여기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저기 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작가의 말)

이야기는 끝났지만,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 속에서 시공은 여전히 뒤틀려 있었다. 작가는 무슨 마음으로 ‘국익을 위해’라고 썼을까. 무슨 마음으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이라고 썼을까.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내게는 의심할 자격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문턱에서 책장을 넘겼을 뿐인 사람이므로. 나는 끝내 발을 들여 놓지 못했으므로. 재칼들의 대화가 머리 속을 울렸다.

“이번엔 달라!”
“뭐가?”
“내가. 이 말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너는 상상도 못할 거야. 하지만 대단원이 있으면 그 전에 위기가, 위기 전에 전재가, 전개 전에 발단이 있었던 것 아니냐. 괴로워도 누군가는 이 언어도단의 사태를 수습하여 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재칼과 바다의 장>)

재칼들은 또 외쳤다,

“대지에!”(<재칼과 바다의 장>)

나는 책을 덮었고,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의자는 여전히 옆 사람들의 대화를 내게 전했고, 뒤통수는 자동차들의 소음으로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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