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 일기를 읽고

새내기부문 예선통과작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 일기를 읽고

안수찬, 『4천원 인생』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김예나


워킹푸어(working poor).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다. 극도의 노동을 통해서도 빈곤의 나락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빈곤의 쳇바퀴에서 하루하루 맴돌고 있을 뿐이다. '성실함은 부의 원천'이라는 과거의 신화는 어느덧 퇴색되어 버렸고, 위정자가 빈곤층을 달래는 수단이자 자본가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선전문구로써만 유효할 뿐이다. 경제력이 계급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러한 근로빈곤층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이다. 매스컴에서는 근로빈곤층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만, 통계로 전해지는 그들은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그들은 숫자로서 존재할 뿐이고, 숫자로서 증명될 뿐이다. 사회는 숫자 이외의 그들의 모습에 대해 무관심하며 무지하다. 그러나 근로빈곤층을 인식하게 해주는 몇 가지 단서가 존재한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의 유연화를 위해 양산된 '비정규직'이 이들을 규정하는 신원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정규직에 비해서 열악한 대우로 고통을 받고, 언제 해고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다는 것. 시급 4110원의 최저생계비가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라는 것. 그리고 천 원짜리 4장으로는 배추 1포기도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라는 것. 우리들의 상식선에서도 쉽사리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빈곤선에서 헐떡이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 저축은 엄두도 못내는 '4천원 인생'의 본질에 다가가지는 못했다.

《4천원 인생》은 주간지 『한겨레21』기자들이 시급 4천원의 한 달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체험한 르포르타주이다. 임 지선, 안 수찬, 진 종휘, 임 인택 4명의 기자가 각각 4가지 분야로 나누어 비정규직 노동을 직접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이들의 기록은 병렬적이지만, 한가지의 공통된 정서로 집약된다. 바로 불안.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1 감자탕 노동일기
-파블로프의 개, 식당 아줌마

임지선 기자는 소위 '식당 아줌마'가 되어 갈빗집과 감자탕 집에서 일하게 된다. 식당 아줌마의 정체성은 파블로프의 개로 명명된다. 일에 쫓기어 거의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급 4000원에 12시간의 갈빗집에서의 끊임없는 노동은 눈물겹다. "불과 1시간 사이에 화장실 청소부터 후식 요쿠르트까지 준비했다는" 기자의 회고는 식당노동의 강도를 실감케 해준다, 또한 기자는 150평의 넓은 홀을 갖춘 감자탕 집에서 '혼자' 서빙을 보는 고역을 치른다. 식당 아줌마를 고용한 사장의 착취 또한 대단한데, 노동자에게 가외의 노동을 시키며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석 달 동안 휴가를 단 하루도 내어주지 않는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어야 한다."라는 근로 기준법 제 55조는 사문화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사장에게 감히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생계의 수단을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히 종속되어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 한편, 고객만족을 위한 돌봄 노동과 감정 노동 또한 고역이다. 돈을 지불했으니 정당하다는 논리 하에서, 그들의 여성성은 팔려나간다. 고객들은 식당 아줌마가 고기를 굽고 볶음밥을 볶아주는 것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든지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로 만족 시켜주기를 원한다. 일부 고객들은 식당 아줌마를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데, 식당 아줌마들 중 1/4이 고객에게 강제적인 성추행 등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2006년 한국여성 연구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식당 아줌마들은 어머니로써, 아내로써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식당 아줌마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데, 가사노동까지 도맡는다. 고된 노동의 끝에 그들을 맞아들이는 것은 또, 노동이다.

"식당 아줌마는 "여성"노동자다. 권력관계로 보자면 '사장'아래다. 서비스업의 특성상 '손님' 밑에 자리한다.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지배를 받는다. 세 가지 영역에서 모두 식당 아줌마는 최하층이다. 식당의 일상에서는 이 '3중 구조'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식당 아줌마의 지위에 대한 위 언급은 무수히 많은 식당 아줌마들의 어려운 처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

2 히치하이커 노동일기
-부유하는 마트 노동자

안수찬 기자는 대형마트의 양념육 판매사원이 되어 일한다. 기자는 8시간 동안 영업 방침에 따라 서서 고기를 구워 판매하게 된다. 고기를 구우며 판매용 멘트를 외치는 판매사원은 아무도 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치부 된다. 마트에서 일하며, 기자는 대형마트의 '무한경쟁'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마트는 점포를 제조회사에 세놓고, 제조회사는 중간업자들(파견·용역업자)에게 점포 운영권을 입찰한다. 운영을 맡은 중간업자들은 비정규직을 고용하거나 이벤트 업체와 계약을 맺어 판촉 요원을 고용해 제품을 판매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들은 마트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중간업자들에게 간접 고용되는 것이다. 마트는 이 때 "경쟁"의 논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데, 점포끼리의 경쟁을 유발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석 달 간 판매실적이 가장 저조한 제조회사를 퇴출시키는 것이다.. 이 때, 제조회사가 퇴출되면 간접 고용된 노동자들도 자연스럽게 일자리를 잃게 된다. 마트 노동자는 마트 안의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영영 마트를 떠나게 된다. 그러한 상황을 모면하고자, 노동자는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판매실적을 높이려고 고군분투한다.

이윤의 20%인 세를 내어 점포를 운영하는 중간업자나 그 밑에 고용된 노동자 모두 대형 마트의 이윤 창출을 위한 기제 아래서 늘 약자이며 패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겨 임금을 주고, 점포가 내야 하는 수수료도 인하하고, 대형마트가 좀 덜 벌면 된다."라는 기자의 이상은 현실에 압도당할 뿐이다.

3 ‘불법 사람’ 노동일기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실태

진종휘 기자는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폭로했다. 기자는 마석 가구 공단에 취직하게 되는데, 그 노동의 강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었다. 가구의 원재료인 합판과 완성된 가구를 하루에 몇 차례씩 들어 나르고, 야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또한 가구공장의 환경은 굉장히 열악한데, 가구의 톱밥 먼지와 도장할 때 나오는 페인트 분진. 화학 약품 등으로 실내가 뿌옇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는, 노동의 고통과 열악한 환경보다 출입국관리 사무소의 기습적인 단속이 더 감당하기 힘들다. 한 외국인 노동자는 단속의 두려움을 피해 약 15년 간 감금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인력 수입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은 지금가지 단 한 차례도 사면을 한 적이 없다.…(중략)…단속 자체가 선택적이라는 점에서는 반인간적인 악취까지 난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미등록 외국인 수가 조금 는다 싶으면 단속을 하고, 많이 줄었다 싶으면 그냥 놔둔다. '수요 관리'를 하는 셈이다. 경찰과 법무부가 마음먹으면 수색영장과 긴급 보호서를 발급받아 마석가구공단은 물론 안산과 포천의 미등록 외국인 대부분을 잡아가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공단 사람들이 반발하고 관련 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적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적 논리에 좌우하여 후진국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은 단속 뿐 만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미등록이라는 미명 하에 임금 차별을 겪는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는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가지도 못해 기초적인 복지가 충족되지 않고 있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가족을 꾸려 아이를 갖더라도 속인주의에 기반한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할 수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는 복지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4 ‘9번 기계’ 노동일기
-단순 반복 공정 노동자

마지막으로 난로 제작 라인에서의 임인택 기자의 체험이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노동자들은 보람도 사회적 자존감도 없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한다. 라인은 인간을 개의치 않고 굴러가고, 반복적인 동작을 강제한다. 노동자들은 특정 신체를 반복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늘 통증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하루도 못 버티고 공장 문을 나서는 이가 많다. 또한 라인 반장이 파견 노동자들의 잔업을 통제하게 되는데 이를 거부한 파견 노동자들은 다른 일감을 찾아 떠나간다. 따라서 공장의 인력 변동이 심하다. 그런데, 인력이 빠져도 나머지 노동자들이 목표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남은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진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단가 후려치기 등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합리를 탓한다. 그러면서도 강요되는 손해분을 제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위의 지적처럼 기업은 사회적 약자에게 항상 그 부담을 전가하며 사회적 약자인 근로빈곤계층을 착취해 손해를 최소하려 하는 것이다. 또한노동자의 기업은 초기 잔업수당을 최소화는 한편, 노동자가 하루만 결근해도 임금을 무지막지 하게 깎는 등의 불합리한 착취를 자행한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러한 착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부담을 달게 받은 이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생활이 아닌 생존, 부유가 아닌 충족을 원한다." 하루 벌어 생활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착취조차 달콤한 것이다.

또한 이 중소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자들의 침묵을 강요한다. 이는 마치 테일러가 노동을 통제하여 작업 능률을 높인 것에 비견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옆의 동료를 미워하게 만드는데 까지 나아간다.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동료의 작업 호흡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노동자는 자연스럽게 짜증이 나며 옆의 동료를 탓하기 마련이다. 이는 노동자들의 유대를 일소하고를 노동자 개개인을 철저히 파편화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감은 찾아볼 수 없다.

기자들의 워킹푸어 체험 수기는 그 자체로도 놀라웠다. 면면들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식당 아줌마들의 모습, 대형마트의 판매사원은 늘 마주치는 익숙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노동이 당연해서 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노동이 낯선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서 철저히 타자화 되었기 때문이리라. 모든 현상에는 자본주의적 경쟁의 논리가 숨어 있다. 대부분 비정규직 근로빈곤층들은 대체로 학업 수준이 낮다. 단적인 예로, 식당 아줌마의 학력은 고졸이 80%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마트 판매원의 학력은 주로 고졸, 지방이나 수도권 2년제 대학에 한정되어 있었다. 근로빈곤층은 어떻게 보면 학벌이라는 경쟁에서 일차적으로 탈락한 이들이다. 일차적 경쟁에서 합격자와 탈락자는 철저히 분리 되었고, 경쟁은 합격자에게는 오만을, 탈락자에게는 체념을 훈육했다. 그렇기에 탈락자인 비정규직 근로 빈곤층은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혹은 착각하는) 축에게 철저히 타자화 되어있고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기자들의 태도에서 타자화된 노동자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힘든 노동을 견뎌야 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기자들은 내가 가짜 노동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진짜 노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자신의 신분이 그들과는 다르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쾌감, 우월의식의 표출된 결과이다. 또한 어느 기자는 인력 회사를 방문한 인사팀 과장이 직접 직원을 뽑아 채용 할 때, 당연히 똑똑한 자신이 채택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듯했다. 기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완전한 동질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근로빈곤층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고 연민을 갖는 단계, 여기서 만족하고 멈추어서는 안 된다. 4천원 인생이 만연한 사회는 결코 건강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근로빈곤계층을 타자화하는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완전한 통합, 연대로 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근로빈곤계층과의 연대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의 동인인 ‘경쟁’하에서 모두가 승리할 수 없고, 경쟁 하에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들은 모두 연대해야 한다.

4천원 인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그들의 노동 조건을 나와 무관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이러한 당연한 생각들이 연대의 출발점이다. 근로빈곤층에 대한 관심은 사회 구성원의 인권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향상된 인권 감수성은 근로빈곤층의 노동 환경과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가령 근로빈곤층을 위한 출근버스가 제공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휴식을 취할 공간이 생길 수도 있다. 법적으로 그들의 휴일을 보장해 줄 수 있고, 불합리한 야근에 저항할 권리를 줄 수도 있다. 이러한 근로빈곤층의 복지 확대는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본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 빈곤층은 아직 사회적 약자이다. 우리의 가족이며 친구이며 혹은 이웃인 그들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을 때까지, 착취에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저항 능력과 그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진정한 연민은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때, 우리는 그들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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