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혁명을 꿈꾸는 〈나〉와 〈우리〉의 20대를 바라며
3등상
사랑과 혁명을 꿈꾸는 〈나〉와 〈우리〉의 20대를 바라며
〈그의 20대〉를 읽고
사회학과대 하노이
_ 책과 만나기까지 : 그들이 호명하는 지금의 20대, 연애하며 배 굶는 불쌍한 청춘들? (연애하라, 경쟁하라!)
내가 <그의 20대>란 책을 만나게 된 계기는, 칼럼 속에서였고, 드라마와 뉴스 덕분이었다. 나는 어느 시기에는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그 중에는 올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경성스캔들>이란 드라마가 있다. 1930년대 경성을 무대로 ‘비장한 항일 무장 투쟁사와 경쾌 발랄한 청춘 로맨스의 조합(드라마 <경성스캔들> 홈페이지의 기획의도에서 발췌. 주소는 http://www.kbs.co.kr/drama/seoulscandal/about/plan/index.html)’을 보여주고 싶다던 이 드라마는 네 사람의 ‘청춘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독립운동을 하던 형의 죽음으로 시대에 냉소하며 살던 데카당스 청년이 독립운동을 하는 강한 신여성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의 아픔은 시대의 아픔이 되고, 연적을 향했던 분노가 공적(일제)을 향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사랑이 조국을 향한 사랑이 되어(위와 같음)’ 조선의 항일 무장 투사가 되어 간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오늘날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엿볼 수 있을까,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 시대와 함께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극 중의 생기 있는 발랄함과 웃음의 코믹적 요소들은, 극 중반부터 ‘갑작스럽고 빠른’ 비극적 전개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듯 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중심이 되는 ‘남녀의 사랑’과 ‘혁명을 필요로 하는 시대’의 조합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듯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었고, 성역할분업과 이성애중심적 원리를 통한 근대적인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를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이 드라마가 현대 트렌디드라마의 일종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마지막 회에서는 “먼저 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이 땅에서 마음껏 연애하고, 마음껏 행복하십시오”라는 문구로 끝을 맺음으로써 씁쓸함을 더했다. ‘사랑은 혁명의 가장 강력한 각성제이며, 연애는 지상 최고의 위대한 혁명 전술(위와 같음)’임을 보여주고 싶다던 드라마에서의 사랑과 혁명의 애매한 수단과 목적 관계는, 낭만적 사랑이 시대와 무관한 영원한 수단이자 목적으로 바뀌어 혼자 남음으로써, 2007년 한국에서 ‘우리’가 쟁취해야 할 것은 이미 사라졌으니 수단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확실히 나는, 그맘때쯤에 나이를 막론하고 사랑제일주의로 뭉쳐 연애 권하는 미디어에 이골이 나있었다. 깊게 빠져서 좋아했던 드라마일수록 실망도 컸다. 1년이란 시간차는 있지만 서울방송의 <연애시대>를 보고 나서도 그랬다. 사람의 내면을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심리묘사나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있다가도, 그 가슴 짠한 감동으로 내가 한 행동이라고는 드라마에서 줄기차게 등장하는 유명한 도넛가게에서 드라마 속 배우들이 먹던 신상품을 사먹는 것뿐이었다. 배우들이 나이대가 나보다 십 여 년 정도 많아서 멀기도 했기만, “어른들에게 연애는 장래희망”(연애시대 9회 중 주인공 동진(감우성 역)의 대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그날 나는 다시 꿈꾸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진의 대사에 나오듯 내일과 미래에 대한 희망, 기대보다는 지금 이나마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를 통해 힘을 얻는다는 것은, 과장된 허구인 동시에, 사적 영역에서 재생산을 담당해야 한다는 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연애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거늘!)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의 ‘웰메이드 드라마’이자 시청률도 20%를 웃돌던 문화방송의 <커피프린스 1호점> 역시 푸욱 빠졌었지만, 그 드라마는 '어른'이 없는 하나의 동화 같은 세계였다(매거진t, 2007년 8월 28일 기사, <[INTERVIEW] 이윤정 감독, “유치해도 진심이면 가는 거다”> 참조). 이 세계를 유지시키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유치함과 시련도 문제 되지 않는 세상. 유아적 감정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세상. 사랑으로 성장하되, 어른이 되지 않는 이 세계는, 하나의 판타지로 만든 완벽한 세계여서 그 속에서의 리얼리티는 보장되지만, 현실의 여러 조건들은 잘라내어져 있다. 이윤정 PD가 어느 인터뷰에서 옮긴 김창완 씨의 말에는, "철들기는 되게 쉽다, 철 안 들고 살기 어렵다"(위와 동일한 기사, 물음과 대답은 다음과 같다. “매거진t: <태릉 선수촌>을 보고는 이 감독이 사람의 성장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보고나니 왜 우리가 꼭 성장해야 하지? 라고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이윤정: 김창완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철들기는 되게 쉽다, 철 안 들고 살기 어렵다고. (웃음)")라는 게 있었다. 나는 이 세계가 불가능한 세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연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이 김창완 씨의 말처럼 현실에서 의식적으로 '철 듦'을 극복하려 하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세상을 살면서 '순수'할 수 있다는 게 특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디어에서 그나마 다사다난한 세상을 고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령층은 주로 30대, 그리고 여성인 것 같다. 외모로 결혼시장에서 차별받는 삼순이로 시작하여 직장에서건 연애문제에서건 막돼먹어서 살아가는 영애 씨와, 잘못된 남자 선택을 되돌리려 온갖 애를 써야 하는 오수정,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출판사에서 직장 일을 하는 난희의 모습까지. 어느 덧 미디어에서는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이 트렌드 같다. 비록 어떻게든 상대 남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여성들의 일(그리고 감정)의 성과가 좌지우지되는 건 비슷하지만 말이다. 그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여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은 모두 자신이 '청춘'은 지났음을 인정한다. 그럼, ‘청춘로맨스물’에 아닌 방식으로는 오늘날의 20대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재현되는가.
언론에서는 공시족(공시족(公試族), [명사]<사회>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 <신어, 2005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수록된 단어이다)과 고시족이 많은 세대, 아니면, 최근에 등장한 '88만원 세대'가 내가 속한 20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명한 것 같다. 부모 돈으로 편안하게 공부만 하면서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는 세대. 혹은 돈은 많이 들여서 공부시켜놨지만 취업은 못하거나, 해봤자 열악한 노동조건과 미래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일 확률이 높은 세대. 사회에는 무관심하면서 자기개발에는 무엇보다 열심인(열심이어야만 살아남는) 세대. 20대 스스로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 역시, 여성이나 계급 정체성이 아닌 연령대로 나를 정체화해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비어있는 공간 속에서, 미디어에서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사랑이 청춘의 특권인 것처럼 요구 - 어른이 되면 조건이 문제시 되는 ‘결혼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므로 - 하는 한편, 서점에는 ‘재태크와 내 집 마련, 주식 등에 미치라’는 명령과 ‘여자의 인생과 부자의 가능성은 20대에 결정 된다’는 협박조의 20대 타겟의 처세술 서적이 넘쳐난다.
여러 모로 내 연령대에 고민하던 어느 날 문화평론가 정여울 씨가 드라마 <경성 스캔들>에 대해 쓴 칼럼을 읽게 되었다(월간 드라마틱 2007년 9월호, 정여울의 드라마 이야기, <청춘의 눈부신 특권과 의무에 관한 드라마 <경성스캔들> - 혁명이 있어 그 사랑은 아름다웠노라>). 칼럼에서 정여울 씨는 자신이 기대하고 꿈꾸던 20대의 이미지는 언제나 사랑과 혁명이었고 그것이야말로 20대의, 젊음 혹은 청춘의, 눈부신 특권이자 뜨거운 의무가 아니었나 하는 마음을 드라마를 보고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막 30대가 되었다고 하는 정여울 씨는 칼럼에서 <그의 20대>를 소개했다. 자신이 20대에 가장 아꼈던 책 중 하나이면서, 이 책 또한 사랑과 혁명이란 키워드로 쓰였다고 했다. 나는 정여울 씨가 이야기한 사랑과 혁명 이미지에 대해서는 끄덕끄덕 공감했지만, 앞서 밝혔듯이 드라마 <경성스캔들>에서 사랑과 혁명이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융합되어 그려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키워드로 쓰였다고 소개한 책은 궁금해졌다. 내가 직접 나의 20대의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_ 10년 전 <그의 20대>와,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20대’의 조우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우연히 칼럼에서 읽은 <그의 20대>를 떠올리고 빌려버렸다. 각각의 인물이 분리된 한 편을 구성하기에 목차에서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골라 읽을 수 있었다. 맨 먼저 여성인물들부터 찾아 읽었고, '들어본 이름'들을 몇몇 읽다가, 각 국의 공산주의 사상가/혁명가들을 시대 순으로 읽고, 남은 한국 사람들을 시대 순으로 읽어나갔다. 박종철님 편은 가장 나중에 읽고 싶어서 미뤄두었다.
내가 읽은 <그의 20대>는, 정여울 씨의 소개처럼 사랑과 혁명이 전면적인 키워드는 아닌 것 같았다(아마도 정여울 씨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나 혁명이 의미 차이가 있는 것일 게다). 오히려 키워드는, 기존의 혁명 이미지로 그리는 시대와 개인의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20대를 전후하여 시대와 직면하게 되고 신념이 형성되는 과정 중에 있거나, 형성된 신념으로 행동한다. 이때의 신념이 반드시 혁명과 연결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신이 사는 시대를 보이는 그대로 그것만을 믿지 않으며, '진실'을 찾으려 하고 결국 현실과 현실 속의 자신에게서 진실을 구할 방법을 찾아내고 행동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 거리를 두어 세상의 모순을 발견하고 의식적으로 현실에 개입했던 사람들이었다. 영화로, 작곡으로, 노래로, 연극으로, 판화로, 소설로, 시로, 이론으로, 총으로, 때론 물질적 성공으로, 자기의 신념을 구체화한 사람들의 20대 이야기였다. 책의 서술은 각 인물들을 신화화하지 않고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인물의 삶 전체에 대한 글쓴이와 해당 신문사, 출판사의 가치판단과 의견이 배제된 것은 아닌 듯 했지만, 되도록 각 인물의 20대에 초점을 두어 덤덤하게 서술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나와 너무나 멀어서 내가 차마 올려다보기도 힘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 여겨지기 보다는, 바로 지금의 내가 20대라는 공통점으로 그들을 보다 가깝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20대에 겪는 고뇌와 좌절과 방황, 냉소는 천재나 위인들의 생에 양념이나 미사여구 같은 느낌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와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쉬엄쉬엄 읽어야 했다. 그랬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이 아팠고 무거웠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20대의 김순남이 일본에서 한국 최초로 서양 음악을 배우고 있을 때, 윤이상은 음악가의 꿈을 접고 총을 들었었다.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같아도, 레논이 물질적 성공을 포기하고 자기를 찾으려 할 때 켈리는 성공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같은 의사 공부를 하던 게바라는 총을 들었고, 루쉰은 펜을 들었다. 고다르와 브레히트는 기성의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을 하고, 전태일님은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20대에, 과연 나는 어떤 시대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자, 무서워졌고 진지해졌다. 책을 읽을 장소를 찾아다니는 동안, 평소 가던 커피숍이 문을 닫아서 외국계 커피 체인점에 들어가서 책을 꺼내 들자 왜 그리 마음이 불편하던지, 이내 나와 버렸다.
작년에 학교에 있는 박종철열사비 앞에서 나와 이십 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 사람이란 걸 알았었다. 올해는 87년이 20년 지난해이고, <그의 20대>가 출판 된지 10년이 지난해이고, 내가 박종철과 같은 나이인 스물 셋이 된 해다. 97년에 20대를 보내던 사람들이 쓴 책을, 10년이 지나 20대인 내가 읽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책의 서술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다.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겠지만.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지금 내가 사는 세상, 지금의 나에 대해서 물어야 했다.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책에서 그리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20대를 보내는 사람들을 생각해봤을 때, 문득 KTX 승무원 언니들이 생각났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2004년에 꿈의 고속철도 KTX가 개통했는데, 내 친한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내게 ‘고속철도 승무원이 공무원’이라며, 자신의 오랜 꿈인 항공사 승무원 시험과 함께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해 말, 새마을호 승무원들이 대량으로 계약 해지되고 정규직 쟁취를 위한 투쟁을 하는데 참여하면서, 나는 오래 동안 내 친구를 생각했다. 그리고 2년 뒤, 고속열차 승무원들이 새마을호 승무원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으로 -철도공사에 계약직으로 고용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 ‘파견직’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친구를 떠올렸다.
2007년 여름에 승무원들은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 기간 중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려던 나는, 당일 날에 항공사 승무원 면접시험을 치른 친구와 서울역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집회 같은 데 나가냐”는 친구의 물음에, 단식농성을 하는 천막을 가리키며 “사실은 오늘 간다”고 대답하며 고속열차 승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3년 만에 함께 나누었다.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이 자기에게 맞아 너무 좋다는 내 친구는, 내게 조용하게 이야기했다. “학원에서 면접시험 준비할 때, 파업에 대해서도 미리 답을 준비해두라고 해. 답은 정해져 있어. 고객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는 결코 하면 안 된다고......” 새벽 같이 일어나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시험을 치르느라 고단함이 감춰지지 않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나는 말했다. “그래. 면접인데 뭘. 붙고 놔야 파업이든 뭐든 생각해보지. 일단은 붙여 달라 그래.”라고.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이었다.
만만치 않은 경쟁률을 뚫고, 꿈을 가지고 입사한 첫 직장에서 겪은 사회의 진실, 모순을, 언니들은 외면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행동하고 있었다. 같은 사회에서, 멀지 않은 나이의 사람들이 행동하는 데, 나 역시 참여하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부족하고, 더 가까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까지나 지금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함부로 말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나는 언니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애정,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잘못한 게 없기에 연행하려는 경찰들 앞에서는 눈물을 꾹 참았다던 언니들(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지음, 노동만화네트워크 그림,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엮음, <KTX 여승무원 문집 - 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갈무리, 2006, 20-21쪽 참조)은 문화제에서 동료의 편지를 읽고 들으며 펑펑 울었다. “여기 남은 사랑하는 동기, 후배들과 끝까지 함께”(위의 책, 50쪽)하고 싶어 했다. “힘이 들어, 몸이 아파서, 집안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농성장을 떠나 있는 동지들을 오히려 걱정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우리 동지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위의 책, 92쪽)고 기억했다. 문화제에서 빠지지 않았던 편지 읽는 순서의 분위기나, 문집에서 엿볼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무척 부러웠고, 나까지도 힘이 날 것만 같았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은, 사회에서 약자의 도덕적 의무로 미화, 신화화하여 말하는 사랑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서 이야기를 듣거나, 가정폭력상담사례를 접할 때, 사랑이란 이름을 통한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다. 문제는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인가 아닌가의 여부가 아니라, 폭력이다. 하지만 사회는, 법은, 여론은 한 쪽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해주어온 역사가 훨씬 더 오래되었다. 사적 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사랑싸움으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묵인, 방조, 조장되던 시대는 오늘날에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문화적 차원에서는 덜 성숙한 것 같다. 나 혼자 겪는 것 같아 말 못했던 이야기들이, 모여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공개적으로 발화되기 시작한 시간들은 그리 오래지 않다. 사적 영역은 낭만적 사랑으로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는 개인들의 의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내가 책에 대한 정여울 씨의 감상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책에서 ‘사랑’이란 키워드를 직접적으로 발견하지 못한 것은, 어쩐지 책에서는 한 사람과 공적 영역과의 관계 - 혁명에의 신념 - 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봐르 편에서 보봐르는 사르트르를 통해, 여성에서 ‘인간’으로 세상에 속할 수 있되 개인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고, 레논 편에서 오노 요꼬는 “레논의 생각을 진전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주는”(<그의 시대> 76쪽) 사람으로만 간단히 묘사된다. 요꼬와 레논의 사랑이 가지는 의미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시위 방법”(위와 같음)이 잘 맞았다는 것 정도로만 묘사된다. 다른 인물들의 서술에서는 신화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과 상충되면서, 끝까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 자율적인 근대적 주체로 묘사되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여울 씨처럼 사랑과 혁명이 분리 불가능한 이중주의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혁명은 서로에게 섞여 들어, 서로를 통해 의미를 갖는다. 사랑을 꿈꾼다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의 혁명에 대한 의지이고, 혁명을 꿈꾼다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사랑에 대한 의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쓰는 것이 여기에 이미 오염된 이미지로 인해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근대에는 생산과 재생산 활동에 의한 필요의 공간과 자유의 활동 공간으로 대별되었던 이전의 공사 영역의 구분 대신 여성의 재생산 활동 공간과 남성의 생산 및 자유의 활동 공간으로 경계가 재편되면서, 공사 구분이 젠더적 구분이 되었다는 비판이 있고, 이런 공사 구분의 개념적 변화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제도에서 가부장적 권력이 남편으로서 여성의 몸을 통제할 권리인 성적 권리를 갖는다는 데서 나온다는 비판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젠더화된 공사 구분을 사회 정의의 원칙에서도 분석해보면, 시민을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며 그 욕구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매우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상정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거래의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 환자, 장애자, 노인 등이 시민적 주체로 등장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도서출판 여이연의 2006년 겨울 여/성이론 15호, 허라금의 <‘공’, ‘사’ 구분을 중심으로 본 젠더 갈등과 다원주의 정치학> 참조). 나는 여기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것을, <나>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로 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나>이기 때문에 -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 사실 이 두 세계가 분리될 수는 없다. <나>들 간의 차이가 거세된 채 동일한 <나>들이 모인 <우리>의 세계가 아니고, <우리>의 세계를 배제하는 <나>의 세계가 아니라, 분리되어서 동시에 연결된 관계망이 될 수는 없을까, 상상해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랑과 혁명에 대한 꿈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 희생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재생산 활동이 은폐되거나 일방적인 의무로 전가되는 영역이 생길 수도 없을 것이다.
두 영역이 있다고 해서 자아의 분열로 굳이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존에 사회모순을 직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분열을 괴로워하고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자기통일과정이 어느 한 영역을 '희생'하거나 위계를 두어 누군가를 배제시키면서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순된 세계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고 자신이 진실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을 존경하고,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라 믿고 자기 분열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자기 안의 정치, 자기 분열을 직시하고 은폐하지 않은 채 협상해 나가는 정치, <나>의 정치가 <우리>의 정치와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오늘날에는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대학에 들어와 약 4년을 꼬박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서 생각한 것임을 깨달았다. 대학이란 공간이, 타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러한 공/사 경계에 대한 실험이 용이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학에 들어온 지 4년 가까이. 내게는 <여성>이란 <우리>의 이름으로, 혹은 <학생회>라는 <우리>의 이름으로 살아왔던 학교생활이 의미 깊다. 냉소로 견뎌온 어린 시절의 계급적 상대적 박탈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고, 학생회나 여타의 공간에서 내 섹스/젠더/섹슈얼리티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대적 박탈감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학내여성운동단위와 학생회의 정체성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게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다. 하지만 <나>들 혹은 <우리>들 간의 갈등은 내 내부적으로도 심했고, 양자택일의 순간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어디에서도 '순수'한 정통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인 존재였으니까. <우리>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과반 학생회를 마치고, 학생조직에 들어갈 마음도 없고 '이제 더 이상 학생회 활동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길을 모색해보려 했던 나는 당장에 막막했다(내가 학생회 활동을 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학생회라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우리> 속의 개인들에게 요구되는 '결의'는 높아져 갔고, 위기감에 따른 내부 결속의 요구도 높아져서, 주체로 남을 수 있는 조건과 자격은 상대적으로 지배적인 규범들을 따라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여운단위를 계속 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여성>이란 <우리>의 이름을, <나>와 자주 혼동하면서, <나>와 <우리>의 자연스런 동일시가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졌기 때문에 거리를 둬보고 싶어서였다) 그맘때 나는, 어떤 <우리>에서 풀려난 느낌이랄까. 그런데 별로 자유롭지도 않았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우리>에서 떨어져 나온다고 해서 <나>라는 게 온전한 나도 아니며 나는 가족이나 내 주변 친구들, 그리고 더 넓고 희미한 <우리> 속에 놓여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 <나>만 챙기는 이기적인 행위이고, 계속해서 학생회를 하면 <우리>의 활동을 하는 것인가. 그렇게 배타적으로 갈리는 것일까. "활동을 쉰다"는 말은 가능한가. 나는 여러 고민에 빠졌었고 괴로웠다.
그러다 다행히도 나와 유사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 지난 2006년 말경부터 2007년 초반까지, ‘겨울딛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모임으로 07학번 새내기들을 맞이 할 준비를 하는 새맞이 활동에 참여했다. 모처럼 직접 만든 <우리>란 이름이었고, 지금까지 해온 모임과 '다른 실험'을 해볼 수 있었던 모임이었다. 학생회와 '분리'되어 있었지만, '파트너'로서 서로 다른 <우리>들에 관심을 가지려고 애썼고 - 물론, 활동지형에서 학생회가 '중심'에 있고 가진 물적 자원들이나 네트워크들이 겨울딛기보다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조건을 무시하지 않은 채 - 모임의 내부적 <우리>들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에게 언제나 <나>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당시 <우리>가 바라보는 학교의 상황은, 내가 새내기이던 3년 전과 다른 친구가 새내기이던 2년 전, 1년 전 그리고 이제 지나가고 있는 2007년까지, 이제는 ‘학생운동의 위기’라는 말보다는 체념과 좌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정체된 것만 같았다. 학생회로 대표될 수 있는 학생운동과 독자적인 활동을 추구하던 다른 자치/운동단위들도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학생회라는 <우리>가 상정하는 '공동의 적'이 마치 일반학우, 학우대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 반감조차 아닌, 무감함 - 은 커다란 장벽이다. 나 역시 4년여를 늘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연이어 실패만 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빡세게 일을 한다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지만, 빡세게 일이라도 안 하면 마음이 더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당위적으로 행동해왔고, 당위성의 지배는 끝없는 자기 소모를 불러왔을지 모른다. 지금, 나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언제까지나 도덕적 양심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상황 판단 속에서 <우리>는 활동을 했고, 확인하기 힘든 결과와 예상했던 현상들이 실제 벌어지는 것으로 괴로워하긴 했지만, 오래도록 지우기 힘들 기억을 남겼고 서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우연히 칼럼에서 읽은 <그의 20대>를 떠올리고 빌렸던 때에, 나는 백서를 만드는 중 - 아직도 마치지 못했다 - 이었다. 당시 활동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서 의견조율을 해야 하는 일 외에는, 흩어져 남아 있는 여러 자취들을 오롯이 모으는 일뿐일 거라고,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기록들을 대할 때, 아직 채 거리를 벌여두지 못한 감정의 파도에 휩싸이는 일이 많아서 작업은 늦춰졌다. 완성이 다가올수록 설렘과 두려움은 커져간다.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 만드는 친구가 힘들었던 점은, 우리의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한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던, “과연 이게 누구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란 물음이었다. <저들, 그들>을 향한 이야기하기조차 바쁘고 힘들고 인력이 모자란데,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과연 누구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과연 ‘지금’ 의미가 있긴 한 것일까, 혹은 의도와 무관하게 짐 하나를 더 얹어 주는 게 아닐까 불안했던 것이다(학생활동에 대한 비판이 외부에서 이루어지면 ‘공격’이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이들의 ‘비난’으로 여겨져 튕겨나가기 쉽다. “잘 한다고 다독여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기를 죽이느냐”라는 역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이게 사실일 수도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기도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겐’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감을 억누르려 해보곤 했는데, 계속해서 걱정이 되고 떨렸다. 그럴 때 나는 <그의 20대> 책에서 아주 반가운 시를 다시 만났다. 김남주 편에 실린 <돌멩이 하나>이다. 나는 이 시를 2004년 5월, 선배들과 함께 간 광주순례에서 망월동 구묘역의 김남주 시인 묘지 옆 유리 상자 속에서 꺼내든 책에서 처음으로 읽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하고 흔들리며 모호했던 당시의 나는, 나 말고는 믿을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부모님을 위해 나의 20대를 미래에 저당 잡혀 보낼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내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판단을 유보해야 할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내 현실적인 조건들을 뒤엎을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을 가장 믿어주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노력과 멀어 보이는 길로 향한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고, 무엇보다도 ‘나 하나쯤’ 보탠다 해서 시대의 흐름을 막는데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감했다. 그런 고민들을 할 때 만났던 시였고, 과반 학생회로 힘들 때도 여러 번 읽어봤던 시였는데 책에서 만나다니, 새삼 기뻤다. 그리고, 좀 더 편안하게 내가 하는 일을 살펴보자고 마음먹었다(김남주의 <사상의 거처>(창작과 비평사, 1986)중에서 ‘돌멩이 하나’ - 하늘과 땅 사이에/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많게 내고/이내 가라앉고 말/그런 돌멩이 하나 (중략)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_ 20대를 거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을 것을 꿈꿔보다
지난 대학생활의 어느 순간에 나는, 다음 날 자고 일어나 눈뜨면 내가 마흔 살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지금이 견디기 힘들어서. 지금보다는 많은 것들이 선택되어 있을, 마흔 살이 되고 싶었다. 어느 때는, 당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거나, 삶이 지겹고 두려워서, 이쯤에서 관두고 싶었다. 내 삶에서 시간 축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또 올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직 절반도 채 못 지난 내 남은 20대가 기대되기도 한다. 동시에 여전히 두렵고 겁은 난다. 어떻게 될 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내 생각이나 믿음과 관련해서 내가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무엇인지 모르겠고, 모든 것은 여전히 불투명한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일쑤다. 백서를 만들면서도, ‘정리’하는 백서를 쓴다는 것, ‘마무리’를 위한 작업이, 현재의 내가 또 다른 ‘시작’을 모색하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음을 직감했는지 자꾸만 걱정된다.
그래도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나의 20대가 어떻게든 지나고 나더라도,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내가 보고 듣고 행한 것들로 인해 새로운 20대들에게 부채감을 가질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또 내 활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의 20대’는 한 사람의 인생에 단 한 번 뿐일지 몰라도,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한, ‘20대’는 영원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입센은, “다수자에 의한 진리란 우리 조부 代(조부모!) 전선에 섰던 인간들이 승인한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새 시대의 전선에 선 사람들은 그러한 진리를 승인할 수 없다.”(<민중의 적>중에서)고 했나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은, 내가 그때에도 여전히 20대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변하지 않는 것을 꾸준히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그건 <나>를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싶고, 이 믿음의 영역은 내 속에서 영원한 20대의 흔적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이 속에서 언제든 내 시대의 현실들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모색할 수 있기를. <그의 20대>의 이수병 편에서 그가 1961년에 남북 학생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잡혀간 감옥 안에서 출옥 후의 활동을 계획하며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가 생각난다. “너무 큰 계획은 언제나 그 속에 실패를 담고 있는 거”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되, 실패하지 않을 계획들을 잘 세워서 실천하고 싶다.
덧말1>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한 것이지만, 전태일 열사와 윤상원 열사가 살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본다. 그들 행위의 의미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더 사랑하고 혁명하며 살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덧말2> 우리 시대에 20대를 어떻게 재현하고 호명하는 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글이지만, 정작 20대의 목소리로 어떻게 스스로를 이름 붙일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으로는 이어지지 못한 글이 되어버렸다. ‘나의 20대’로 축소되었지만, 이는 내가 바라는 ‘우리의 20대’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가 전부를 대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니까, 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는다.
덧말3>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서평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내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낼까 말까 고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탐난다. 책 살돈이 부족한 걸 보면 88만원 세대라는 걸 절감하다가도, 그나마 있는 돈으로는 돈 안 될 책을 살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지금의 20대가 반드시 절망적이지도 않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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