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닫힌 마음을 열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발전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여타수록작
세상을 향한 닫힌 마음을 열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발전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엑슬린, “딥스”
체육교육과 박정배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아이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아이’이다. 어떤 이가, 소위 말하는 유치한 행동이나 자신의 연령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애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지?”, “하는 짓이 어린애 같다.”하면서 질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위 ‘아이’같은 행동은 좋게 말해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생각, 욕구를 여과 없이 분출하는 것을 지칭하곤 한다. 그런 행동이 아이다운 행동이고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또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러한 행동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이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나 그런 ‘아이’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어른들에 의해서 이러한 행동이 제재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어른스러워’진다. 각 연령대별, 세대별로 요구되는 행동 양식이 있고 이런 양식은 ‘아이가 아이다워야’, ‘학생이 학생다워야’, ‘어른이 어른다워야’라는 표현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양식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때로는 소외당하며 심한 경우에는 자폐나 정신지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위 “~답게”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을 과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여 질시 혹은 동정만 할 수 있을까? 또는 “~답게”라는 표현 자체가 모든 사람의 행동표준을 일괄적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린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답게”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특히 이런 사람이 영유아기의 아이라면 이들의 행동은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의 표상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이들을 자폐아 혹은 정신지체아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 장애증상을 나타내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기도 하고 도리어 “~다운”아이들을 능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아이들이 그대로 성장하면 그들이 속한 사회에 적절히 융화되어 구성원들과 어울려 또는 부대껴 살아가는데 상당한 애로사항을 겪게 된다.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초원이나, 이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 그리고 장애인 수영선수 김진호 군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다수의 자폐아 혹은 정신지체아가 사회에 융화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하기도 한다. 특정 분야에는 고도의 천재성을 보이고 다른 분야 특히 인간관계나 교양 등의 분야에는 능력이 전무한 사람을 우리는 백치천재라고 부른다. 어쨌든 이들은 뒤떨어지는 사회성 때문에 그들의 가진 능력까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 사회집단에 융화시킬 수 있을까? 일단 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자폐나 정신 지체, 혹은 선천적으로 이런 장애를 갖지 않았지만 후천적인 환경의 문제 때문에 장애의 증상을 보이는 영유아기의 아동을 치유시켜 정상인에 가깝게 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도움의 종류 중에 ‘놀이치료’가 있으며 이는 주사치료나 약물치료처럼 아이들에게 어떤 물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즐겁게, 보다 즐기면서 치료 효과를 거두게 하는 방법이다. “딥스”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갇혀 있던 소년이 놀이치료를 통해 정상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책이다.
“딥스”는 이 책의 주인공 이름이다. 상류층 자제들만 다니는 유치원에 다니는 5세 된 남자아이로 타인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공격적 행동을 취하는 아이이다. 흔히 이르는 ‘자폐증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 학습적인 면에서 다른 아이들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언어와 사물에 대한 이해력도 가지고 있는 그 증상을 단적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아이이다. 결국 다니던 유치원에서 제적될 위기에 놓이지만 놀이치료 전문가 버지니아 액슬린 박사에게 치료가 의뢰되어 놀이치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딥스에게는 그럴만한 행동을 보일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과학자이고 어머니도 인정받는 외과 의사였다. 외적으로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고 부모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딥스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아이였고 자연히 부모의 순수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로 성장해야 했던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딥스의 지적 능력을 항상 확인하면서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곤 했고 아버지는 아예 딥스를 가두거나 폭언을 하면서 학대를 하였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을 딥스에게 제공할 수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그들 스스로가 황폐화되어있었기 때문에 딥스에게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없었고, 이런 것들을 물질적으로 채우면서 스스로 자위하는 처지였다. 이런 부모 아래서 딥스는 스스로의 능력 혹은 불만을 표현하거나 표출할 수 없었고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 아래에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해줄 것 다 해주었다는 생각을 고수하면서 딥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장애나 자폐로 치부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딥스가 그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와중에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준 것은 일반 자폐아들이 가지지 못한 지적 능력을 간간이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못하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사물의 원리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딥스를 선생님들은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놀이치료’의 전문가인 버지니아 엑슬린 박사에게 딥스를 의뢰하여 놀이치료를 받게 하였던 것이다.
놀이치료의 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각종 놀잇감이 구비된 놀이방에 딥스를 데려다놓고 스스로 놀게 하면서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전문가가 들어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매주 한 시간씩 딥스는 놀이방에서 이러한 과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간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이 놀이치료 과정을 통해 딥스는 스스로의 느낌과 감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표현하면서 점점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법,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 자기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게 되어 사회화에 첫 발걸음을 떼게 된다. 더불어 그가 가졌던 천재적인 능력까지 빛을 발하게 되어 진정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쓸모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더불어 딥스의 치유과정은 딥스 본인뿐만 아니라 황폐화된 정서 상태를 갖고 있던 딥스의 부모까지 치유하게 되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다른 어떤 물리화학적인 작용이나 압력 없이 아주 순수하고 부드러운 치료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책 한권에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딥스와 함께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또 때로는 분노하기도하는 독자가 딥스의 입장에서 딥스와 함께 놀이치료라는 긴 과정을 여행할 수 있다.
이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딥스는 완전히 치유되어 영재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렇게 딥스가 치료되는 과정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딥스 개인에게는 무엇이 부족했으며 놀이치료는 어떻게 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을까?
일단 어린 아이들이 가장 필수적으로 경험해야하는 것이 보호자의 사랑이다. 일단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부모에게서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베푸는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하고,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아래 아이들의 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대체로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결손 가정, 혹은 소년소녀가장이나 고아원에서 지내는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올바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삐뚤게 자라나는 이유는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딥스 본인에게는 부모, 그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물질적으로 무한히 넉넉하여 딥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줄 수 있는 그러한 부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정신장애증상을 보인 것은 부모들 자신부터 정서적으로 황폐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본인의 생각과 행동을 표현해야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의식의 내면에 꼭꼭 숨겨야했고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학습적인 측면에서는 무한히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타인이 보기에 비정상적인 증상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사물이나 사회에 관한 통찰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였으나 놀이치료라는 기회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고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딥스는 스스로의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딥스는 다중지능의 발달에 장애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중지능이란 인간이 가지는 여러 가지의 지능을 뜻하는데 이 지능은 상호 독립적이다. 다중지능이 발달했다는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의 지능이 고루 발달하여 인간이 가진 소양을 폭넓게 키울 수 있다는 얘기이다. H. Gardner는 총 8개의 다중지능을 소개했고, 물론 개개인의 특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발달해야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가치가 높은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딥스의 경우 성장과정에서 감성이나 사회성의 발달 없이 지적인 면만 발달했다. 부모 또한 딥스의 지적인 면만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불균형하고 조화롭지 못한 인간이 된 것이다. 더구나 이런 지적인 면 또한 감성이나 사회성의 발달과 더불어 그 자체가 한 인간에 의해 표현되고 창작되어야 더욱 가치를 발하는 법이지만 딥스의 경우 그렇지도 못했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마음속에 꼭꼭 눌러 담고 사물에 이치 또한 알고 있으나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대 사회는 외골수가 아닌 팔방미인을 선호하는 추세이고 더 이상은 소위 공부만 잘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혹시 입시 위주의 교육이 제2, 제3의 딥스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중압감을 못 이겨 자살하는 학생들의 뉴스를 보면서 다중지능의 발달을 간과한 교육의 문제점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목 모두가 다중지능 이론의 준거로 제작된 것이고 이를 무시한 채 소위 ‘국․영․수’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과 괴리를 일으킬 여지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딥스에게 보이는 외골수 경향과 H. Gardner의 다중지능이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딥스가 보이는 비정상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 이상의 증오가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딥스의 아버지는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고 오로지 채찍만으로 딥스를 통제하려 했다. 딥스가 놀이치료 시간에 문을 닫고 또는 잠그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버지가 딥스를 방 안에 홀로 가두었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통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을 때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완전히 성장한 성인에게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하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게 느낀 증오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사랑’으로 감싸준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 와 닿게 되는 내용이다. 딥스의 아버지는 지적으로는 완벽한 사람이었을지언정 정서적으로 황폐화되어있는 사람이었고 딥스의 출생 또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제공해야 할지 모르는 입장이었다. 보통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결국 다시 폭력적인 가정을 이루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을 보면서 딥스 또한 그러한 악순환을 경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놀이치료를 통해서 딥스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었다. 사실 어머니 또한 딥스가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그 문제는 딥스와 액슬린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해결되었던 것에 반해, 아버지에 관련된 문제는 심각하였다. 놀이치료의 결과, 겨우 딥스가 자신의 감정과 주위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딥스의 아버지는 그런 모습조차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딥스를 무시했다. 딥스는 더욱 증오를 키울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병정을 모래 속에 파묻고 과거의 좋지 않은 일을 아버지와 연관하여 생각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아이에게 용서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 것일까? 하지만 놀이치료는 딥스에게 용서에 대한 이해를 심어줄 수 있었고 결국 딥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본 아버지 또한 스스로의 마음을 변화시켜 아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우리는 보통 대인관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분노 혹은 증오로 인해 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용서가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를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 마음에 응어리지어 있으면서 정작 필요한 다른 일을 못해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갈등을 아예 무시하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존감을 간직한 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많이 듣고 내뱉을 수 있는 말이지만 또한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이 용서이다. 놀이치료가 딥스에게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했던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증오의 대상에게 일정한 데미지(damage)를 준 후 그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다음 그에게 동정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용서는 성인군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보통사람 스스로의 마음의 전환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것이다. 책 “딥스”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놀이치료를 통해 설명하였고 우리 또한 비단 놀이치료 뿐만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고의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 딥스가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웬만한 종교의 교리 중에서 용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 용서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내가 “딥스”를 읽으면서 느꼈던 문제점도 있다. 이 책이 외국 서적의 번역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5살짜리 아이의 수준을 넘는 어휘가 구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은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어휘인데 딥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간직’같은 표현, ‘교훈’같은 단어의 구사도 보인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6살짜리 꼬마아이 손을 잡고 걸어갔는데, 그 아이가 “이 오빠, 나를 납치한다!”라는 말을 했다. ‘납치’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딥스”에서도 주인공이 보통의 아이들을 뛰어넘는 특별한 지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표현이 이루어졌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읽으면서 “이렇게 수준 높은 어휘를?”이란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의 측면에서 다중지능의 발달과 용서의 필요성은 필수적이고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 안에 적절히 융합시킨 “딥스”는 교육 방법론에 있어서 좋은 예시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액슬린 박사가 딥스와 1시간 동안 놀이치료를 하면서 항상 고수했던 원칙은 아이의 말을 그저 들어주기만 한다는 것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칼같이 놀이치료를 끝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타인과 대화할 때 자기 말을 많이 하여 대화를 주도하려 하지만 정작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어느 정도 부족하다. 하지만 액슬린 박사는 딥스가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어 그의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유도한다. 이는 비단 놀이치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필수적으로 가져야할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해진 시간에 끝내는 것은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마냥 끝없이 누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원칙과 현실이 있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 ‘놀이치료’하면 비정상적인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갖기 위해서 실시하는 치료의 일환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렸을 때, 큰 병원에 가서 놀이치료실을 보았을 때에도 행여 그 곳에서 자폐아 같은 아이들이 나올까봐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갔던 일도 있다. 하지만 “딥스”를 통해서 놀이치료는 치료 대상자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치유할 수 있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인까지도-비록 ‘놀이치료’를 할 수는 없겠지만-정신적 장애나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놀이치료를 응용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나 자신도 정해진 원칙을 지키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 올바른 사회인으로 더욱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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