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지식인, 너는 누구 길래

여타수록작

도대체 지식인, 너는 누구 길래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인문대학 박래현


소크라테스, 라는 인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태까지의 인류가 낳은 성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가 남긴 명언 중 쉽게 떠오르는 것은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와 같은, 그야말로 ‘성인’이라는 칭호에 어울릴 만큼 대담하고, 고지식하리만큼 올곧은 말들이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스승의 어떤 모습을 남기고 싶었는지,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기 전 재판 상황을 기록해 놓았다. 변명이라기보다는 ‘변론’에 가까운 책 내용을 볼 때, 변명이라는 번역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플라톤이 목격한 사실의 기록, 혹은 그가 꾸며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적어도 우리가 성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소크라테스라는 인간이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는가, 또한 어떻게 죽어갔는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단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사형이라는 극형에 마주해야 했던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우선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땅 밑과 하늘의 일을 탐구하여, 약한 주장을 강하게 만드는 따위의 부질없는 짓을 하고, 또한 남에게도 그것과 같은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는 죄를 범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고소장을 읽으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혜로운 자'를 찾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니게 된 계기를 이야기한다. 그의 '지혜로운 자' 찾기 여행은 한마디로 말해서 '나보다 나은 놈'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너보다 더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신의 말씀이 정말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혜롭다고 소문난 이들을 찾아다니며 본의 아니게 그들의 '권위 무너뜨리기'의 선봉이 되어 버린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아테네의 지혜롭다는 이들은 스스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몰랐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서 '당신은 나보다 못하다'는 결론에 다다르며,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 이로부터 나오는 겸손과 오만, 생활을 돌보지 않고 오직 신이 내린 하나의 명제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위 있는 자들'의 미움을 사면서까지 그들의 지적인 권위를 서슴지 않고 무너뜨리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과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지식인이자 철학자로서 충분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와 진리 추구의 방식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해명해야 할 부분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신탁'에 의해서 자신이 신의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혜를 실천한다는 점, 그리고 사소한 거지만 선택된 말이나 일부러 꾸민 말이 아니라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고 있다고 하는 것 등은 마치 '진리의 담지자'로서의 자신을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여기는 듯이 보인다. 자신은 아테네가 잠에서 깰 수 있도록 깨우는 '등에'같은 존재라고 겸손한 듯 말하지만 결국 소크라테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말하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신에 대한 반역과 마찬가지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나를 아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리란 것이 노력보다도 신의 명령에 따라 영감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과연 나머지 인간들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정말 자신만이 신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신의 뜻을 '가르쳐야 할 존재', '계도해야 할 존재'로 비쳐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플라톤의 '철인국가'가 지녔던 생각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이 쓴 이 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소크라테스에 대한 저술이 플라톤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플라톤의 취향이나 사상에 여과되지 않은 소크라테스를 보기가 어렵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소크라테스가 정말 자신을 '진리의 담지자'로 여기고 진리를 인간의 노력이 아닌 신이 내리는 것으로 여겼다면, 이는 인간의 지성에 대한 불신일 뿐 아니라 신성을 주장하는 엘리티시즘의 극치라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권위 무너뜨리기' 과정은 좋게 보면 지식인의 용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논리를 되돌아보면 결국 반정립에 그치고 회의주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진리의 추구'라고 보기가 어렵다. 소크라테스가 지혜로운 자들을 차례차례 만나면서 생각하는 것은 모두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저 사람은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구나. 그럼 내가 낫지'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에 아테네의 모든 이가 동의한다고 한다면,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각하고 있는 인간들의 집합일 뿐이다. 이는 마치 양날의 칼과 같은 가능성을 지닌다. '인간은 모른다'로 끝나면 회의주의와 신중심주의, 다시 말해서 진리 추구보다는 종교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모른다, 그렇지만 알도록 노력해야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이성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전자의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실은 오직 신만이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고 따라서 신은 그 신탁에서 인간의 지혜 따위는 거의 값어치가 없거나 전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말씀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의 지혜에 대한 반정립은 신의 지혜로 귀결되고, 인간의 이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인간의 지혜는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가? 신의 지혜가 아무리 완전한들 인간의 삶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는 오히려 아테네라는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에도 남아있었던 시대의 종교적인 절대성, 그리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의 결여에서 비롯된 소크라테스 자신의 한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부정적인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의 과정은 그 자체로 '위대한 지식인'이라는 호칭에 어울린다. 비록 그 내용이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로 귀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혜로운 자는 없다는 판단이 '진리'라고 생각되었을 때 그것을 자신의 사사로운 자존심과 허위의식 때문에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 자체는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리고 힘닿는 데까지 지혜를 사랑할 것'이라는 그의 선언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호메로스와 같은 현자를 만나 그가 정말로 지혜로운지 알아보기 위해서 몇 번을 죽어도 좋을 것'이라는 고백에 의해 더욱 소름끼치도록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의 결정에 의한 그의 죽음은 답답하기만 한 결과로 다가온다. '탐구'를 인간의 몫이 아닌 신의 몫으로 돌리고, 진리의 추구 자체도 '신탁이 말하기를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참으로 비이성적인 변론을 한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것은 과연 '합리성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이성적인 부분마저도 논리적인 사고로 풀어내는 소크라테스에 반해, 그의 사형에 찬성표를 던진 많은 사람들은 단지 눈앞에서 오랜 권위들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거부와 공포를 느꼈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신성 모독'이라는 그 시대의 금기 사항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사고를 정리해간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은, 그의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의식보다는 오히려 '더 큰 비합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크라테스의 생각들이 엘리티시즘과 회의주의로 점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을 인정한다고 해서, 진리를 추구하려 노력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까지 우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라는 '위대한 인간'을 사형시킨 것 자체보다도, 비합리성에 대해서 더 큰 비합리성으로 대응하는, 진보가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여러 가지 민주적인 재판 제도의 요소를 갖추고 있을 법한 아테네의 재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충격적인 면을 지닌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지나친 순응, 낙천주의적인 말로 지나치기엔 그 변화와 진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뭔가 마음속에 찝찝함을 남기면서도 결국 죽어간 소크라테스의 편에 다시금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불온분자'로 분류되면서까지 지혜를 사랑한 지식인의 모습은, 그가 가졌던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는 사람, 지식인이 되고픈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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