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팬이라면, 진정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3등상
진정한 팬이라면, 진정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생물교육과 김동근
당신처럼 ‘소속’은 저에게도 찰거머리처럼 따라붙는 하나의 족쇄였습니다. 82년, 당신은 중학교 1학년이었고 저는 그 때서야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어도 당신의 85년의 고민과 88년의 대학에서의 첫 느낌은, 거짓말처럼 저의 98년의 고민과 01년의 대학에서의 첫 느낌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세월은 변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게는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이 있었습니다. 만년 최하위 - 83년에 잠깐 화려한 성적을 거두지만 - 에 머무른 그 팀을 바라보며 당신이 얼마나 ‘소속’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는지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야구팀조차 없었습니다. 꼴찌만 하는 팀이라 오히려 없었다고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그 ‘소속’에 대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렇게 당신과 나는 중학교 시절을 건너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야구팀이었던 ‘삼미’는 ‘청보’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것은 곧 ‘삼미’의 퇴장을 의미했습니다. 삼미의 퇴장은 당신에게 ‘잘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이른바 프로의 사회다.’, ‘소속이 인간을 결정한다.’ 등의 생각을 남겼습니다. ‘소속’을 바꾸기 위해 당신은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일류대’라는 ‘소속’으로 갈아타게 됩니다. 만년 꼴찌였던 ‘삼미’의 소속에서 항상 일등이었던 ‘일류대’의 소속으로 말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은 ‘소속’에 대한 콤플렉스를 강하게 심어주었습니다. 집에 돈이 많지 않아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입학했던 시골의 조그마한 학교였습니다. 나름대로 긴 역사를 자랑했던 학교였기에 나의 ‘소속’을 사랑하려고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뭔가 맥이 풀린 모습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명예’와 ‘전통’을 찾아 큰 도시의 학교로 다들 빠져나가버리고, 이른바 떨거지로 불리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학교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피해의식을 넘어선 자신감 결여는 아이들의 눈에서 열정을 앗아갔습니다. ‘경쟁? 어차피 나는 이것밖에 안되잖아.’, ‘좋은 대학은 너희들이나 가라, 난 대충 살아가련다.’의 말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가는 나도 이 애들처럼 생각하게 될지 몰라. 좀 더 높은 소속을 향하는 거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마 당신의 그 ‘일류대’와 같은 학교라고 생각하는 그 학교로 입학하면서 저의 ‘소속’을 바꾸었습니다.
지리멸렬한 당신의 대학생활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일류대’의 꿈을 이루었지만, 그건 허울일 뿐이었지 사실은 명문이라 불리는 고등학교의 졸업장이 대학 내에서의 또 다른 ‘소속’을 결정짓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방황합니다. 그리고 곧 냉소적인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대학 내에서 찾지 못하는 ‘소속감’을 찾기 위해 홍대 주변을 전전합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첫사랑을 만나고, 헤어지고, 군대를 가고, 복학하고, 그리고는 또 다시 높은 ‘소속’을 향해 신발 끈을 동여맵니다. 인생의 낙은 여자를 사는 일, 그렇게 허덕이던 당신은 또다시 일류 기업에 합격하고 첫 출근을 하게 되죠.
글쎄요, 저는 대학에 와서 당신과 같이 첫사랑을 해본적도 없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여자를 사본적도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대학생활은 당신처럼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학교를 들어왔을 때 비명문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남들은 다 하는 큼지막한 고등학교 동문회를 하지 못하였을 때 조금의 박탈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러한 모임 속에서 느끼는 소속감보다 더 소중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싫어할지 모르는 운동권 선배들이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 무모하게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고, 당신의 말대로, 아직은 주변인이었던 나의 행동을 ‘응원’이 아닌 ‘투쟁’으로 추어올리는 모습이 어색하긴 했지만, 나를 구석으로 도피하지 않고 생활의 중심으로 나설 수 있게 잡아준 사람들이 있다면 오로지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과의 여러 독서와 토론 속에서 세상이 여러 ‘소속’과 ‘계급’을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넘어 그러한 구성을 조장하는 여러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과 달리 ‘소속’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98년의 당신은 회사원입니다. 대기업의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던 당신은 IMF의 여파로 인해 실직을 당하죠. 필요 이상으로 바쁘게 살았던 당신은 아내에게서도 이혼 통보를 받습니다. 이래저래 모든 곳에서 버림을 받은 당신에게 남은 것이란 삼미에 같이 열광했던 조성훈이라는 친구의 색다른 제안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창단.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프로’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대중에 대한 기만 - ‘필요 이상으로 일하기’ - 을 알고 더 이상 속지 말자는 것이 조성훈의 말이었고, 그 이야기에 동의하든가 동의하지 않든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죄다 모여들어 그래도 야구팀 하나는 만들어냈죠. 더 이상 ‘소속’에 아등바등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 당신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시 아내와도 결합했고요. 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이 저지른 기만을 알고도 그 기만으로부터 회피하는 당신과 팬클럽의 모습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팬클럽을 해체하는 당신의 모습은 아직 당신이 깨달은 자본의 위선 속에 그대로 순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직도 당신에 있어서는 사회라는 존재가 ‘응원’을 해줄 대상이고, 직접 변화를 하는 것은 사회 그 스스로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당신도 사회의 일원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언제까지고 당신의 모습처럼 도망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깨달은 일상의 소소함은 그래도 일류대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기반으로 마련한 취업 기회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에는 그러한 이름표가 없어서 자신의 능력을 저평가 당하고 피땀 흘려 일한 결과물을 말 그대로 빼앗겨야 하는 사람들이 많죠. 어찌 그들을 모른 척 하겠습니까. 당신은 삼미를 희구하지만, 삼미는 모순에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진 것이 아니라, 그래도 언젠가 다가올 승리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진 것이 아닙니까. 우리 서민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일하며 빼앗기긴 하지만, 세상이 바뀔 수만 있다면 나의 이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하기에 나는 ‘서민’이라는 ‘소속’에서 다시금 나를 발견합니다. 지금은 남들 부럽지 않은 위치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위치를 이용해 많은 이득을 얻지만,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내가 원래 가진 자본의 양에 의해 ‘소속’이 결정되어질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높은 '소속‘에 속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 혼자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사의 삶을 살며 대부분 ‘삼미’의 삶을 살고 있을 아이들에게 ‘삼미’에게도 꼭 승리하는 날은 올 것이라고, 그러하기에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사회가 그것을 막는다면 나와 아이들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결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은 나 혼자서 느끼기 싫고,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이야기에서 난 많은 것을 공감했습니다.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도 그랬겠지만, 당신의 행동 속에 귀감을 삼을 점과 반면교사로 삼을 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랬겠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다시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당신의 그 한마디였습니다.
‘자, 다시 플레이 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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