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근대의 망치를 든 어느 자유주의자의 해방전후사 강의

장려상

탈근대의 망치를 든 어느 자유주의자의 해방전후사 강의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사회학과 김일환


01. 풀어내는 말

2006년 2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전2권, 이하 ‘재인식’)이 서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책이 출간된 이후 초기 몇 달간 이에 대한 반응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색채가 강하게 가미된 양 진영간의 난타전에 가까웠다. ‘재인식’이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에서부터 예견할 수 있었듯이 80년대 소위 ‘운동권’에서 통용되던 역사인식을 겨냥한 이 책은, 집권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새롭게 등장한 소위 ‘뉴라이트’ 진영의 힘을 등에 업고 있었고, 주요 언론들은 단행본 출간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첫 머리에 이를 보도함으로써 이 책의 잠재적 정치성을 더욱 극대화했다. 따지고 보면 어떤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그렇지 않겠나마는, 이 책의 편집의도부터 출간전후 사정에 이르기까지를 관통할 수 있는 말은 결국엔 ‘현실 정치적인 개입’이다.

사실 2006-7년 두 해 동안 시민사회 내에서 ‘뉴라이트’로 불리우는 사회세력들의 활동은 다방면에서 이루어졌으며, 학계와 민간단체, 경영계 등을 아우르는 세력화 시도와 더불어 교육, 시민사회 운동 등등 자신들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확장시킬 통로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이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움직임이다. 이전에는 국가의 적나라한 공권력에 기댄 채 반공주의적 국가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던 보수적 정치세력이 이전의 부정적(Negative)한 형태의 이념 대신 긍정적(Positive)한 자유주의 이념으로 탈바꿈하여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를 선보이는가 하면(중앙일보 2006년 12월 1일 기사 참조) 2007년 여름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에 반대하는 집회를 적극적으로 벌이는 등 이들이 벌이는 다양한 활동의 이면에 놓여있는 학문적 기반에 바로 ‘재인식’이 놓여 있다.

『대한민국 이야기』(기파랑, 2007)는 ‘재인식’ 편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영훈 교수가 ‘재인식’의 전체내용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여 대중적으로 저술한 책이며,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기존의 대중적 역사인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도를 다분히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 자신의 서술과 더불어 책의 곳곳에서 ‘재인식’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논문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탈민족주의라는 공통의 요소를 바탕으로 한 이질적인 성격의 ‘재인식’ 논문들을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서 체계적으로 엮어낸다. 개별 논문들을 전체적으로 엮어낼 수 있는 뚜렷한 틀을 찾기가 힘들며 대중적으로 읽히기엔 딱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재인식’을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듯 서술함으로써 보다 대중적 텍스트가 되었으며, 동시에 보다 정치적 텍스트가 되었다.

자유주의라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이론적 지반 위에 자신의 체계를 쌓아올린 이영훈 교수의 논리를 비평하는 도구로서 또 다른 이론적 지반을 동원하는 것은 본질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무의미하다. 이는 제각기 두터운 성벽 속에 틀어박혀 상대방의 성채를 향해 포탄을 날려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포탄이 성채의 기반을 공격하지 못하고, 지상 위에 드러난 부분만을 타격하는 지루한 공방전만이 오간다면 오히려 성채 밑으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그 구조물의 근본적 결함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을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이영훈 교수의 이 책에 오직 ‘탈민족주의’라는 공통의 키워드만을 공유하는 자유주의와 탈근대적 관점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섞여있고 의외로 그 접합지점들이 허약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 잠재된 모순을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논리적 결함에 대해 지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필자의 생각으로 그 결함은, 이영훈 교수의 생각에서 꽤나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02. 탈근대적 ‘해체’

『대한민국 이야기』의 곳곳에서 반복해서 밝히고 있듯이, 이영훈 교수의 기본적인 관심은 민족주의적 국사학의 패러다임을 넘어선 ‘문명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연원과 형성, 발전 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즉 조선왕조 이래로 지속되어 왔던 전통적인 문명소가 서구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형성된 근대적 문명요소들로 ‘전환’되는 문명사적 과정과, 전통과 근대가 복합적으로 융합, 배제되는 양상들을 고찰하는 것이 그의 주된 관심이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역사 서술의 기본적인 단위는 국사 패러다임에서 상정하는 단일민족국가의 차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 민족사의 패러다임은 이 책에서 철저히 해체, 파괴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영훈 교수는 민족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인 개별인간”을 위치시킨다. 이러한 개별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라는 전제 위에, 이러한 본성의 인간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또 상호 협동하면서 건설해 가는 생산과 시장과 법치와 국가의 역사”(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p. 20-21에서 따옴표 부분 인용)를 서술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통 사회의 문명요소 위에 강압적으로 이식된 서구근대의 개인주의적 문명소, 그리고 그것을 더욱 성숙, 발전시켜가는 과정인 해방 이후의 역사라는 큰 틀로 집약될 수 있는 저자 자신의 사관을 이 책에서 풍부한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그 작업은 논리적 순서상으로 크게 두 가지 단계로 나뉠 수 있다.

첫 번째 작업은 기존의 역사인식, 특히 ‘인식’의 근현대사 인식의 양대 축이었던 ‘민족’과 ‘계급’의 신화성을 폭로함으로써 이 둘은 역사서술의 기본단위로 결코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작업이다. 이영훈 교수가 보기에 이 두 요소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한국 근현대사 서술은 오욕과 부정의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민족, 계급적 갈등을 신화적 역사서술을 통해 격화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신문화의 영역이 답보상태를 거듭하게 하는 주요인이 된다. 이어서 그의 두 번째 작업은 철저히 해체된 민족과 계급을 개별인간으로 바꾸어놓고, 위에서 상술한 자유민주주의의 ‘문명사’를 서술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두 가지 작업은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를 서술순서상으로 분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논리상으로는 분명 선후관계를 매길 수 있으며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 역시 두 가지 구분되는 작업의 접합지점이다.

이영훈 교수가 우선적으로 수행하는 ‘해체’의 작업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실제로 이 책에서는 공식적 역사서술 이면의 인간상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드러난다. 여기에서 그의 관심은 전통/근대, 식민지/피식민지, 남성/여성 등의 이항대립들로 표현되는 당대 역사의 진통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개별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다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단일민족이라는 집합체의 운동으로서 역사를 서술하는 관행을 뒤엎는 것이다. ‘재인식’에 등장하는 다양한 논문들을 인용, 약술하는 방식으로 주로 행해지는 이러한 작업은, 당대 역사의 중층적이고 풍부한 맥락을 되살림으로써 우리 근현대사의 뒤틀린 모습들을 보다 정직하게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재인식’에 들어간 조관자 교수와 최경희 교수의 논문을 풀어쓰는 부분이 대표적인데(이영훈, 위의 책 p.103-106 참조. 인용하는 두 논문은 조관자,「‘민족의 힘’을 욕망한 ‘친일 내셔널리스트’ 이광수」 최경희,「친일문학의 또 다른 층위-젠더와 ≪야국초≫」『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물론 인용한 논문의 개별적인 훌륭함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이영훈 교수는 민족의 자존을 위해 근대문명이란 적의 칼을 뽑아 도리어 거꾸로 적과 맞서 싸워야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실존적 몸부림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개별 인간들이 맞닥뜨렸던 고뇌를 중심으로 역사의 숲을 헤쳐 보았을 땐 일제에 대한 협력과 저항은 빛과 어둠이란 도덕적 메타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성질의 것이다. 사실 역사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당위명제 이전의 것(역사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성격을 배제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이 아닐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섬세하고 두터운 분석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 때문에 도리어 숱한 억측과 맹목적인 비난을 받았던 부분은 위안부 문제를 서술하는 부분이다. 위안부 문제를 1)군에 의한 여성의 성 착취의 수준, 2)식민지의 피식민지에 대한 지배의 수준, 3)남성의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지배의 수준, 위 세 가지로 나누어 면밀히 뜯어보는 이영훈 교수의 시선은 같은 문제에 대한 속류화된 가부장적 민족주의의 시각, 즉 “야만적인 왜놈들이 쳐들어와 순결한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성노예로 착취하였다” 류의 시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제국주의 국가의 피정복자 신분이라는 멍에와, 군(軍)과 그를 뒷받침하는 행정력에 의해 다분히 ‘근대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던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을 동시에 감내해야 했던 위안부의 실상은 가부장적 민족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선정적 이해와는 조금은 거리가 멀다. 때문에 이영훈 교수의 분석은 도덕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주장의 선명성은 줄어들지만, 한국전쟁 당시와 이후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이루어졌던 ‘문명적 형태의 성 약취’에까지 시선을 둘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이영훈 교수의 서술은 분명 논리적으로 크게 흠잡을 데 없다. 식민지기를 살았던 인간들의 삶 자체, 다양한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좌절하고 환희했던 그 개별 인간들의 모습을 두텁게 읽어내는 일은 공식적 역사서술을 보다 풍부하게 하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민족’과 ‘계급’을 철저히 해체, 폐기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고, 그 다음의 작업인 문명사 서술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불과하다. 역사의 기본적 단위로 역설하였던 ‘개별 인간’은 이후에는 조금은 다른, 하지만 완전히 상이한 결론을 낳는 모습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03. ‘개별 인간’(a person)과 ‘개인’(individual) 사이의 논리적 긴장

영국의 역사가 E.H.카의 말대로 사회가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는 암탉과 달걀의 문제와 같다. 개인과 사회는 오직 개념적으로만 분리가 가능한 것이며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다. 개인, 즉 individual이 함축하는 의미대로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다른 외부의 매개 없이는 또 다른 개체와는 어떠한 관계성도 지니지 않는 사회 이전의 개인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인간들을 “모아놓기 전에도 사람들이 존재했다든가, 어떠한 종류의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E.H.카 『역사란 무엇인가』p.53 곽복희 옮김. 청년사 1999). 따라서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개별 인간’(a person)에 대한 탐구와 ‘개인’(individual)에 대한 탐구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역사를 훑는 현미경의 배율을 ‘개별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관계와 고립되어 동떨어져 존재하는 그 무엇을 관찰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행위와 의도, 결과를 매개해주는 사회적 관계와 힘에 대해서 고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영훈 교수는 ‘개별 인간’이라는 단어를 어떠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가?

‘개별 인간’이라는 말은 이영훈 교수가 이 책에서 자신의 사관을 밝히기 위해 되풀이하여 사용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핵심적인 키워드이다. 하지만 이 단어가 사용된 앞뒤 문맥을 비교해 보면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일관되지 않으며, 때론 상호모순적이기까지 하다.

①그렇지요. 역사란 것은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고 필부필부의 삶의 이야기이지요. 그것이 역사의 기초입니다. (『대한민국 이야기』p.317)

②역사에 있어서 궁극의 주체는 개별 인간입니다. 그렇게 역사에 대한 시선을 조정한 다음 식민지기를 살았던 인간들의 삶 자체를 중심에 놓고 역사를 풀어가야 마땅하지요.(p.98)

③내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문명사에서 출발점은, 그리고 언제나 다시 돌아오게 되는 마음의 고향은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그 인간 개체이다. (p.8)

④오히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역사의 단위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개별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고 도덕적 이기심이고 협동능력입니다. (p.20-21)

⑤'문명사의 대전환‘...(중략)... 자유를 인간의 본성으로 알고 개인을 궁극의 실체로 인정하는 서유럽 문명권으로 포섭되어 가는 그 대전환 말입니다. (p.83)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쓰이는 이러한 단어들 사이의 의미격차는 자못 크며, 때론 도저히 쉽게 건너뛸 수 없는 심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②에서 나오는 ‘개별 인간’은 곧 필부필부이다. 민족과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들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한 인간의 삶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위에서 살펴보았던 인간상이다. 반면 그것이 조금씩 비약을 거쳐 ④의 ‘개별 인간’에 이른다. 이때의 개별인간은 분별력 있는 이기적 인간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거의 동일한 의미이며 이전에 드러났었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상은 어느 순간 모조리 삭제된다. 오로지 이기적인 동기에 반응하여 가장 효율적인 수단 합리성을 찾는 독특한 인간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만 남아있으며, 책의 곳곳에서 이는 또 한번의 비약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법적, 경제적 권리의 담지체인 ‘개인’으로 쉽사리 건너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영훈 교수의 책에서 ‘필부필부’와 ‘개인’사이에 놓여진 건널 수 없는 논리의 심연을 언뜻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저자 스스로 이 단어들을 명료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훈 교수가 두 단어 사이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거나, 대중서적인 만큼 용어 사용에 신중을 기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일단 배제하자. 오히려 ‘개별 인간’의 상이한 용례는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가지고 있었던 암묵적인 전제, 혹은 논리전개의 방향을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어 주는 부표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민족적, 계급적 운동논리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층위를 드러냄으로써 이를 해체시켜 버리는 도구로서의 ‘개별 인간’이 먼저 등장한다면, 해체된 파편들을 자유주의적 전제 위에 재결합시켜 정치적, 경제적 권리의 담지체로서 시장영역에 등장하도록 하는 매개물로서 역시 ‘개별 인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과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다층적 면’이라는 명제와 ‘법적 개인의 평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거래하는 시장경제’라는 명제는 결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는 저자의 핵심적인 가정이 숨어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추측컨대 아마 저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식의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민족도 계급도 당대 필부필부의 일상적 삶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외래담론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권리를 제공해주고 ‘밥’을 먹여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구의 근대문명이 아니었나. 광복 이후 우리의 역사는 이런 근대문명이 더욱 확고히 자리 잡고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었고, ‘개별 인간’들의 삶을 따라가 볼 때 이는 명백해진다.”라는 식의 연결고리! 이러한 큰 전제 하에서 ‘개별 인간’은 ‘필부필부’와 ‘개인’이라는 상호 모순적인 의미를 지닌 채로 지면에 반복해서 그대로 쓰일 수 있었을 것이다.

04. 목적론적 인식에 묻혀버린 ‘개별 인간’

하지만 이 책의 3부 이후, 즉 자기 모순적이었던 제국주의 체제가 물러난 뒤에 이루어진 ‘나라 세우기’의 과정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이영훈 교수가 반복해서 역사 서술의 기본단위임을 역설했던 ‘개별 인간’의 모습은 모습을 감추어 잘 보이지 않는다. 해방 이후의 혼란기를 온 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그 인간상들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자리를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은 오로지 개발과 근대화의 풍경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간으로 하는 국민국가를 수립한 국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거의 무조건적인 옹호를 받으며, 이는 심지어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는 사실에 대한 평가에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수입업자들과 정부와의 암묵적인 결탁 속에 저질러졌던 숱한 부정부패에 대한 서술 역시 긍정적인 어조를 띤다.

“기업은 그런 부정한 먹이사슬 속에서만 기업으로 클 수 있었습니다”(이영훈, 위의 책 p.288)에서도, “당시의 경제수준에서, 부패라고는 하나 그 기능을 세밀히 분석해 보면 그것이 없었을 경우보다 시장거래를 활성화했던 측면도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같은 책, p.305)라는 식으로 그것의 숨겨진 기능까지 발견하려 하면서까지 옹호하려 하는 것은 근대적 시장경제의 주체인 기업의 활동과 성장, 그리고 기업들이 매개되는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들이다. 책의 마무리에서 저자의 어조는 메시아의 등장을 갈망하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를 방불케 한다. “그 역시 그에 걸맞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요구하였습니다...(중략)... 그 기틀 위에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일은 그 일에 적합한 의지와 능력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다음은 4.19와 5.16을 경과한 개발시대의 역사가 되겠지요.”(같은 책, p.312-313)

‘에레나가 된 순이’의 슬픈 가사를 소개하며 1970년대 ‘양공주’들의 비참했던 사정을 오로지 그녀들의 선택과 책임으로 치부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못 박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과, 개발의 바통을 이어받아 경제부흥의 사명을 짊어질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저자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두 모습 사이에 자리 잡은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개별적 인간들이 엮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노래들이 ‘지도자의 결단, 사명이라는 말들 앞에서 간단히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는가. 필자는 그 답을 저자의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문명질서를 향한 목적론적 역사관, 즉 또 다른 형태의 신화화된 인식에서 찾으려 한다.

저자의 ‘문명사’적 관심(이영훈 교수의 ‘문명사’적 관점에 대해서는 자신의 논문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국사의 신화를 넘어서』휴머니스트. 2004 참조)이 현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문명, 즉 ‘법적으로 평등한 자율적인 개개인이 시장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영역에서 각자의 이기적 동기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이상적인 형태를 이미 상정해놓은 채, 또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다양한 계기들이 전개됨에 따라 어떻게 특정한 문명이 그곳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파악하려 한다면 그것은 저자가 스스로가 거부하는 목적론적 역사인식을 또다시 들여올 위험을 다분히 안고 있지 않은가. 특정 시기 특정 국면의 역사, 즉 집합적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인간들의 집단적 대응을 내재적 입장에서 온당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에 다가올 어떤 이상적인 형태에 도달하는 한에 있어서 당대의 모든 사건들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에는 과거의 모순도, 실패도, 무목적적 행위도 결국엔 훗날의 종착지에 도달하는 거대한 문명사적 여정에 종속되어 버린다. 굳게 닫힌 나라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침략자의 무기로서 이용되었던 ‘근대문명’도, 개인의 사적 자치의 원리를 보장해주는 식민지 치하의 민법도,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승만 정부의 경제체제도 모두 긍정할 수 있다. 그것이 오늘날의 최종적 목적지에 도착하는 한에서는(그래서 5.16도 쿠데타가 아닌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군사혁명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하나의 거대한 논리체계가 완성된 듯 하다. 1)민족과 계급의 탈근대적 해체 - 2)개별 인간의 자유주의적 개체로의 전환 - 3)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향하는 긴 여정. 이렇게 거대한 논리구조 속에 저자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개별 인간’의 삶이 발붙이고 설 온당한 자리는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근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신화’를 버리지 않는 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05. 맺는 말

신화를 버리고 필부필부의 삶을 보자는 저자에게 아쉬운 것은 그것이다. 제발 개별 인간들의 실존적 삶을 있는 그대로, 조금만 더 찬찬히 보시라고. 어떤 목적에 도달하는 길 위에 있지 않아도 의미 있는 눈물과 고뇌와 희열이 있다고. 인간의 얼굴이 빠진 문명사란 결국엔 냉혹한 우승열패의 점수판이거나, 모든 현세적 고통을 내세에 감해줄 것을 약속하는 묵시록적 예언, 둘 중 하나일 뿐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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