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인권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여타수록작
오직 인권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박원순,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경제학부 박은지
‘생각이 다른 죄, 너는 사형이다.’ (박영률, 한겨레, 2007년 5월 24일자)
이는 사법살인이라 불리는 인혁당 사건을 다룰 연극 ‘심연’의 한 대사이며, 암울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문구라 할 수 있다. 인민혁명당에 대한 정부의 편파적인 발표와 이에 대한 사형선고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종길 변호사의 회고에 의하면 “부당하게 재판이 이루어”(345쪽)졌던 사건이 분명하기에 우리 현대사의 치부를 잘 드러내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인혁당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제 시대 이후 종전으로 인한 해방이었기에 우리 사회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2006년 1월 23일,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면서 이 사건이 일단락지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권력 앞에 상처입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할 법이, 오히려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최근 김승연 회장 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경찰 수뇌부가 비리 의혹에 싸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민주화가 진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여기 우리 사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기에 당당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책이 있다. 바로 박원순 변호사의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이다. 이 책은 저서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로도 유명한 박원순 변호사의 작품으로 그 동안 좌우익 갈등으로 인해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인권변론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머리말을 시작으로 인권변호사의 개략적인 행적을 보여준 다음 이에 대해 일제시대부터 현재의 인권변론의 구체적인 모습을 전개해 나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변호사의 사명부터 시작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변호사의 사명이기에 변호사라면 당연히 인권을 보호하고 법이 지향하는 정의를 실현해야 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당연한 것이 특별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에 ‘인권변호사’라는 별도의 명칭이 생겼던 것이다. 이들은 특별했기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고, 반대로 그 ‘가시밭길’을 걸었기에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주변에서 눈총을 받거나 심지어 ‘빨갱이 변호사’ 또는 ‘정치변호사’라는 험담까지”(18쪽) 들으면서도 묵묵히 때로는 떠들썩하게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이 어느 정도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정부의 탄압을 받았던 인권변호사들이 훈장을 받는 사례까지 생겨났다.”(54쪽)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수난을 위로하고 영광을 주고자 하는 것, 즉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한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식민통치에 협조하며 안일한 삶을 추구했지만 변호사라는 특권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사용했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 또한 독립운동가였던 변호사들도 있었다. 저자는 김병로, 이인, 허헌의 3인 변호사를 대푲거인 예로 든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높은 지위도, 명성도 아니었다. 어느 연구자가 허헌을 평가했듯 “인간에 의한 인간의 압박과 착취가 없는 통일된 조국에서의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삶”(131쪽)을 바랐던 것이다.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인간적인 모습은 인권변호사들의 문학적인 면모를 드러내주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인권변론사를 전개해 나가면서 당사자들의 증언과 변론활동, 그들에 대한 평가를 보여주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변호사들의 삶과 생각을 다루면서 그들이 직접 쓴 글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변호사 역시 문인으로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예를 들어 이병린 변호사의 법격언(191쪽)이나 법의 염도와 순도(193쪽~194쪽)에 관한 이야기는 차갑게만 느껴지던 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고 한승헌 변호사의 문필가로서의 면모는 험난했던 길을 걸으면서도 삶의 여유와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인권변호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변론사건들을 나열함녀서 인권변호사들이 재판 현장에서 실제로 어떠한 변론들을 펼쳤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권변호사들의 ‘뜨거운 가슴, 냉철한 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도 반공법에 위반된다. (중략) 우리의 현실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일이 안 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강요되는 현실이다.”(286쪽) 이는 유신체제 하에 홍성우, 황인철, 조준희, 이돈명의 ‘4인방 변호사’가 리영희, 백낙청 교수 반공법 구속사건에서 펼치는 변론인데 이 부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인권변호사는 변론에서 보이는 냉철한 이성, 차분함과 함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조영래 변호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사법시험에 몰두하는 대부분의 법대생과는 달리 독서를 즐겼고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사회에 나가서도 반정부활동에 적극 가담하는 등 인권을 위한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도피생활 중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듣고 청년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동현장을 직접 목격하고자 나선 것을 보면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국을 무대로 변론을 펼치고 다녔던 ‘4인방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변론만 하는 것을 넘어 변론하던 피고인들의 생각을 지원했던 것을 보면 인권변호사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차분함과 열정, 인간적인 면모는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권변호사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모습이다. 저자는 인권변론사를 전개해나가면서 증언과 변론을 육성 그대로 담으려 노력하면서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시대적 순서에 따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대체 인권변호사이고, 아니고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제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인권변론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면서 그것을 통해 ‘인권변호사의 모습이란 이러한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나 이 책에 인권변호사라 언급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는 진정 이 사람을 인권변호사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가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조봉암을 사형으로 몰고 간 진보당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김춘봉 변호사는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에서도 변론을 맡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김춘봉 변호사가 이런 사건을 변론한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지만 변호사로서 변론 못할 사건이 없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147쪽~148쪽)라고 평가한다. 여기서 인권변호사에 대해 다소 엄격하지 못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인권변론이나 인권옹호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148쪽)을 보였지만 활발하지 않았기에 김춘봉 변호사를 인권변호사라고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권변호사라 부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정구영 변호사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도 “그가 과연 인권변호사로서 얼마나 일했는가를 보면 인권변호사의 범주로 넣을 수 있을지 회의도 든다”(151쪽)라고 서술했듯이 말이다. 이러한 점은 초기 인권변론에 참여하다가 이 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변호사들과 민변 회원에서 사퇴한 강신옥 변호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체 얼마나 열정적인 활동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보여야 인권변호사라 부를 수 있는가? 인권변론에 앞장 서 갖은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인권이라는 가치를 절대 놓지 않았던 사람들과 변절한 사람들을 같은 선상에서 인권변호사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법조계의 선배들에게 주는 “위로와 추모의 징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면서 이 책을 ‘작은 책’이라고 언급한다. 그 분량과 두께는 마치 두꺼운 사전을 연상시키게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역사 속 인권변론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이 책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법조계에 있는 저자에게 있어서 인권변호사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 책은 턱없이 작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듯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인권변론사의 계보를 밝히고 앞으로의 변호활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인권변호사란 차분함과 열정, 무엇보다 인간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간성이 점점 희미해지는 법조게, 나아가 우리 사회에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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