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과 회의 사이: 희망의 탐색
여타수록작
독단과 회의 사이: 희망의 탐색
E. Bernstein,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외』
R. Luxemburg,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
언론정보학과 오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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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그 문제를 칸트와 동일한 비판정신 안에서, 즉 모든 이론적 사유를 좀먹는 회의주의뿐만 아니라 어느 때라도 등장할 수 있는 독단주의에 대해서도 명백히 반대하고 있는 그러한 동일한 정신에서 제기해야만 한다." - E. 베른슈타인「과학적 사회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우울하게도 시대는 사람들을 흔든다. '88만원 세대'라는 불안한 자화상은 우리를 독단과 회의라는 극단으로 내몬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자신만 바라보고 다른 생각은 꿈꿀 수 없도록 삶 속으로 빡빡하게 스며든다. 이 혹독한 경쟁의 장(場)에서 자칫 딴생각을 했다간 개미지옥으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 독단을 벗어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든 해방의 꿈을 꾸려 몸부림치지만, 그 끝은 가없는 회의다. 자본주의에 대한 해방의 희망을 품었던 사회주의는 1989년의 붕괴와, 제3의 길이 보여준 퇴락으로 인해 더 이상 희망을 품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제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은 '구닥다리'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 되었다. 시대가 내 목을 조이는 것을 알면서도, 마땅히 그 답을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독단과 회의 사이를 헤맨다.
하지만 우리가 독단과 회의 사이를 끝없이 방황하는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 희망을 품을 대안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위치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자본주의의 차가운 품속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스탈린이나 블레어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놓여있지도 않을 것이다. 베른슈타인과 로자 룩셈부르크, 아마도 이 두 사람 역시, 그 희망을 향해 부단히 방황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베른슈타인은 독단에서 벗어나 운동으로써 희망을 추구했고, 룩셈부르크는 그 운동이 목적 없는 회의로 향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서 희망을 찾았다. 두 사람의 이론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하나, '사회주의의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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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엥겔스의 유언집행인이자,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던 베른슈타인이,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주의의 '희망'을 찾기 위해 소위 '수정주의' 이론을 주장했던 세 개의 논문을 묶은 책이다. 1899년에 출간된『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가 주요 저작이긴 하지만, 이 논문들에도 그의 주요 논점들이 압축적이고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세기말적 분위기가 가득하던 19세기 후반의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듯 한 현상들이 발견되었다. 경제는 호황을 맞았고, 계급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었으며, 노동자들은 경제적, 정치적 지위 향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더욱이 합법화된 사민당의 지지기반의 확대를 위해서 내걸었던 농촌강령이 당 강령의 기본 전제들을 위협하는 모순에 노출되고 있었는데, 베른슈타인이 보기에,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적 전제들 중 몇 가지를 손봐야 한다는 경고였다.
그래서 베른슈타인은 먼저 사회주의를 과학의 위치에서 '과학적'인 위치로 끌어내려 급진성을 완화시킨다.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상주의적 요소'를 품고 있다. 존재뿐만 아니라 당위를 머금은 사회주의는 엄밀하게는 과학이 아니다. 단지 과학을 가장 올바르게 무기로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사회주의이고, 그것이 과학적 사회주의가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그는 이를 '비판적 사회주의Kritischer Sozialismus'라 불렀다.
베른슈타인은 다음으로, 이 완화된 '비판적 사회주의'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제거한다. 자본주의의 필연적 붕괴, 계급양극화, 노동자계급의 궁핍화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인식할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수집한 자료들은 그의 이론에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슈테인베르크의 지적처럼 1890년대는 독일의 경제적 호황기였으며(Steinberg, 1976), 비스마르크가 사민당을 경계하기 위해 제시한 복지정책들, 자본가들의 트러스트와 카르텔을 통한 생산 통제 등은 자본주의의 안정성과 적응성을 강화시켰다. 때문에 그는 미래에서 현재로 눈을 돌릴 것을 제안한다. "사람들이 보통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Endziel라고 부르는 것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는 운동이 모든 것이다!"(E. Bernstein, 2002. 97p)
마침내 베른슈타인은 결론을 내린다.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을 도구로 사용하며, 궁극적 목표 대신 운동을 목적으로 삼는 비판적 사회주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혁명적 단절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자본주의 내의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한 점진적인 사회주의의 발달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회주의는 의회 내의 권력투쟁과, 노동조합의 쟁의 활동을 통해 확산되며, 민주주의의 돌이킬 수 없는 확대와 함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발달한다. 이것이 베른슈타인의 비판적인 사회주의다.
물론 그의 이론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사민당 내 급진파와 카우츠키를 중심으로 한 다수 정통파의 비판에 동시에 직면한다. 엥겔스로부터 인정받은 권위 있는 이론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정주의 이론들은 치밀함이 부족하다. 때문에 급진파와 정통파 모두에게서 '이론적 이단'으로 규정되고, 쉽게 반박 당했다. 그러나 이는, 한 꺼풀 뒤집어 보면 베른슈타인의 목적이 이론의 수정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인 실천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었음을 반증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는 안정성을 찾아가고 있었고, 사회의 복잡성은 확대되고 있었다. 붕괴를 예측한 기존의 전제들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했고, 이는 실천과 이론의 모순을 낳는 원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이 이론을 독단적으로 고수하는 것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고, 실천과 이론의 모순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이론에 대한 과도하면서도 급격하게 독단에 대한 비판을 시도해야 했다. 실천을 미래로 연기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붕괴에서 기다리는 아이러니를 제거하기 위해, 그는 과격한 길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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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른슈타인의 시도는 그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반(反)마르크스주의자라고 주장할 만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기본 전제들의 대부분을 인정했으며, 진지하게 그 이론과 실천의 모순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19세기 후반부터 세력을 늘리던 개량주의자들에 의해 멋대로 재단되고 악용되었다. 그는 수정주의 이론을 발표한 후 당 내외의 비판에 직면하여 고립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오히려 사민당의 실질적인 조류가 되었다. 당내 개량주의자의 세력이 강성해졌고, 그들의 행동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의해 쉽게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베른슈타인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진지한 의도는 폐기된 반면, 그의 이론은 당 내에서 새로운 '독단'으로 자리 잡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처럼 희망이 거세된 독단으로서의 수정주의를 당 내에서 걷어내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꾸기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1899년에 출간된『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의 핵심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베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1부와, 대중과 노동자의 자발성에 기반을 둔 급진적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이론을 담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가해지는 그녀의 베른슈타인 비판은 매우 혹독하다. 심지어 그의 이론을 "자본주의의 퇴락에 관한 속류 경제학 이론에 기초한, 사회주의의 퇴락에 관한 이론"(R. Luxemburg, 2002. 64p)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들은 사실상 베른슈타인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이라기보다는 베른슈타인의 진정성이 거세된 독단적인 수정주의를 고수하는 당내 주류의 보수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로자는 베른슈타인의 '개혁은 우회할 수 없다'는 주장에 전격적으로 동의했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 Luxemburg, 2002. 10p)
다만 그가 자본주의의 '적응 수단'이라고 보았던 트러스트나 카르텔, 그리고 신용의 확대는 오히려 생산력을 더욱 부풀려 위기의 상황에서 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 체제로 보았다. 이는 모순이 완화된다기보다 모순이 심화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베른슈타인이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전제라고 보았던 점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운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의 발전의 운명이 사회주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다"(R. Luxemburg, 2002. 9p)고 주장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보기에 궁극적으로 수정주의는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분리할 수 없는 개혁과 혁명을 분리시키며, 결국 혁명을 포기하게 되고 사회주의 정당의 목표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운동'은 극단적 회의다. 극단적 회의는 지금의 체제 속에서 변화를 꿈꾸지 않게 만드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양산한다. 로자는 이 극단적 회의가 사민당 내의 주류로서 다시 '독단'의 위치에 올라설 때, 혁명과 해방을 꿈꿀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희망이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그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위당과 자발적인 대중들의 투쟁이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사회주의 하에서 확대된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아가는 사회주의 내에서의 끊임없는 변혁이 필요했다. 로자가 보기에 독단과 회의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 놓여 있을 희망은 반드시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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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른슈타인과 로자는 서로 문제 인식과 해결 방법에 있어 양 극단을 달렸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달성이라는 희망을 위해서 노력했던 이론가였다. 그들이 희망을 추구하고자 했던 이유는 그네들을 둘러싼 시대의 흔들림이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기에 충분했고, 그들이 헌신하던 사민당의 모습이 그 희망의 불씨를 지켜내기에는 너무도 극단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른슈타인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단과 회의라는 양 극단을 오가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반드시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사람들이다. 나를 옥죄고 세대를 옥죄는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불만을 느끼면서도, 그 희망의 대안이 여전히 낡은 시대에 기반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극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면밀히 분석해 현실에서 행할 수 있는 시대적 대안을 창출해야 한다.
비록 그들이 추구하려던 바가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모색하던 진지함과 자발적 대중에게서 희망을 찾으려는 진지함만은 폐기할 수 없다. 자본주의와 경직된 현실 사회주의, 그리고 무력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성찰과 대안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관점을 추구하는 데 베른슈타인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신선한 자극과 격려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 E. Bernstein, 송병헌 역,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외』, 책세상, 2002.
- R. Luxemburg, 송병헌, 김경미 역,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책세상, 2002.
- H. Steinberg, 『Sozialismus und deutsche Sozialdemokratie』, Berlin,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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