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함께하는 인간의 고독
장려상
역사와 함께하는 인간의 고독
임철우, 「백년여관」과 G. 마르께스, 「백년동안의 고독」
사회과학대 김강이
1.서론
“‘고독’이라는 감정이 뭐라고 생각해?”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요즘 고독은 소외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하며 주변에 있는 사람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그 순간(moment)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느냐에 따라 고독이라는 것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많은 그룹 가운데 내가 마음이 편한 그룹이 있고, 왠지 모르게 나만 외로운 느낌을 주는 그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감 이라는 단어만으로 고독을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곳에, 좋은 사람과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세상 누구도 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고독이 싫어 생각할 여유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저 있다.
「백년여관」의 작가 임철우와 「백년동안의 고독」의 G.마르께스는 살아온 역사와 배경이 다르다 보니 고독에 대한 생각과 느낌 뿐 아니라 구성방식과 마무리의 방법 등에서 다른 점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작가는 모두 인간이 가지는 고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것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가들은 역사가 어떻게 인간의 고독을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고독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살펴보게 한다.
2. 본론
1 ) 「백년여관」과 「백년동안의 고독」이야기
「백년여관」은 그림자 섬 영도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흔적을 찾는 이야기다. 작가는 제주 4.3, 국민보도연맹, 베트남전쟁, 5. 18 등 한국의 어두운 현대사를 경험한 등장인물들의 한 가슴 속에 매여 있는 한들을 그려내고 있다. ‘당신’으로 표상되는 작가 이진우는 시간이 없다며 돌아오라는 환청을 듣고 무작정 영도를 찾아오고, 백년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요안이라는 재미교포 역시 환청을 듣고 영도를 찾아오고, ‘당신’은 그곳에서 옛 제자였던 은희와 순옥을 만나는 듯 다시 아픈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백년여관의 주인집 미자, 복수, 문태, 신지, 금주와 함흥댁, 그리고 굿을 주관하는 조천댁 역시 역사의 상흔을 지닌 사람들이다. 소설은 이들이 모두 모여 고통스럽지만 세상에 의해 잊혀진 과거를 떠올리고,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 섬 영도에서 죽은 자는 산 자 주위에서 맴돌고 편히 잠들지 못하며, 산 자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이를 작가는 소설에서 분홍빛 눈 등의 신비로운 현상과 ‘푸른 손 들’ 로 형상화 하고 있으며, 회상의 기법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100년 만에 한 번 있는 개기월식날, 조천댁 외 11명은 안타깝게 죽은 망자와 살아도 사는 것 같은 않은 삶을 사는 가엾은 존재들을 위한 씻김굿을 하고 망자와 산자 모두의 영혼은 위로받는다. 그리고 당신은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과거가 없는 삶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이 현재도 미래도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며,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면서 도시로 돌아온다.
한편, 「백년동안의 고독」은 '가장 질서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곳'인 마콘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에덴동산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마을이었던 마콘도는 어느 누구도 사망한 적이 없는 영생의 낙원이었으나 집시들이 얼음, 자석, 확대경, 사진기와 같은 문명 세계의 발명품을 가지고 오면서 마을은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이런 마콘도에서 소설은 ‘부엔디나’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름이 계속 물려져 내려오는 동안 가족들은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낳기도 하고 마콘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에 휩쓸리기도 한다. 정당이 도입되면서 내란이 일어나고, 정부에서 임명한 군수가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이 마을을 통치하기 위해 부임하며, 미국인들이 세운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들 이 파업을 벌이는 것까지 모두 부엔디나 가족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과 현대 문명은 무려 4년 11개월에 걸친 대홍수에 모두 흔적도 없이 휩쓸려 간 다음에서야 마을은 비로소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복원하지만, 그 뒤로 10년 동안 가뭄이 닥치고, 미콘도 마을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결국 소설은 마콘도 마을이 멜뀌아데스가 쓴 양피지의 예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마콘도는 지상 낙원이 아니었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2 ) 역사적 흐름과 함께 형성되는 인간의 고독
이 두 작품들의 현대사적 의의는 소설 인물들의 이야기가 모두 역사적 사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백년여관」은 제주 4.3 사태에서 강복수의 가족들이 겪었던 수난과 함흥댁이 겪은 아픔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미국으로 입양된 요안이 의식적으로 억눌렸던 무의식속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또한, 작가는 미자의 오빠 허문태를 통해 베트남전쟁의 정신적, 육체적 상흔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당신’인 작가 이진우가 겪은 5. 18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사건들이 남긴 생채기뿐만 아니라 안내양 생활을 하다가 사랑하는 벙어리남자를 잃은 미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등 「백년여관」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그리며 독자로 하여금 그것 때문에 고독감을 느끼는 주인공들과 대면하게 한다.
한편, 「백년동안의 고독」의 저자 G. 마르께스는 ‘소설은 정치적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 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나 대령의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자유파와 보수파의 싸움은 1900년대 초,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난 천일전쟁을 모델로 한 것이다. 미국인의 도래 후 등장하는 바나나 플랜테이션은 중미의 가난한 소국들을 착취했던 악명 높은 미국의 유나이티드 푸르트사(United Fruit Co.)가 바로 그 대상이고 13장에 언급되어 있는 노동자의 학살사건은 1906년 멕시코에서 일어난 동광(銅鑛) 노동자 파업을 모델로 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포르피리아노 디아스는 군대를 동원해 노동자들에게 총알 세례를 퍼부었고, 그 시체들을 화물차에 실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G. 마르께스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마콘다에 사는 부엔디나 가족이 겪은 일로 형상화함으로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 마콘도의 흥망을 통해 서양 문명에 잠식당한 콜롬비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1세대)에 의해 인도되는 마콘도는 목가적·낙원적 이었다. 그것은 촌락 마을로 상징된다. 그러나 집시가 들어와서 문명이 퍼지고 난 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시대(4세대)에서 보이는 마콘도의 이미지는 완전히 도시의 이미지이다. 타락된 물질문화를 반영하는 마쿤도는 소위 ‘선진국’에 의해 발전을 강요당한 ‘후진국’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인물들은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고 소외감을 느껴 고독해진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단순히 소설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나 콜럼비아에만 벌어졌던 이야기가, 그리고 당시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본다.「백년여관」에서 주인공이 역사를 잊지 말자고 말은 지금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구식으로만 치부하고 당시 투쟁했던 열사들의 얼을 잊으려고만 하는 현대에도 유효한 이야기이다. 또,「백년동안의 고독」에서 마쿤도 시에서 벌어졌던 내전, 학살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소설들의 이야기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3 ) 인간이 가지는 고독들
그렇다면 「백년여관」과 「백년 동안의 고독」이 보여주는 고독의 성격은 무엇일까.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픔으로 남은 것일까. 물론 과거의 상처가 무의식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사람들 고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뿐으로는 「백년여관」에서 다른 이들처럼 5.18때 케이에 대한 배신 이외에 겉으로 드러나는 현대사적 상처가 없는 ‘당신’ 은 왜 고통스러워하며, 그것이 어떻게 고독을 만드는 것일까에 대한 설명은 하기 어렵다.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이 고독을 겪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물들은 모두 ‘세상에 의해 잊혀진 역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에 대해 쓰는 ‘당신’의 소설이 모두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평가받고, 사람들이 더 이상 예전의 아픔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세상은 어느덧 그날, 그 도시, 그 기다림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것들은 한낱 과거의 이름, 지나간 역사의 불유쾌한 흉터일 뿐이었다. 잊자. 잊어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잊어버리자. 너나없이 입을 모아 외치며, 세상 사람들은 일제히 앞만 보며 미친 듯 내달리고 있었다(백년여관. 270-271p).'
「백년 동안의 고독」의 고독은 다양한 측면으로 드러난다. 이 소설에 드러나는 고독은 근친상간과 고립으로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부엔디나 가문의 고독이기도 하고, 등장인물 개인의 고독이기도 하고,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마꼰도라는 공간과 빠져나갈 수 없는 돌고 도는 역사로 인한 고독이기도 하다. 우르슬라가 경고했듯이 부엔디나 가족은 근친상간이라는 것이 가족을 파멸로 이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고를 무시한 채 고독감을 풀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결국 가슴 한쪽에는 사회적 윤리관이 자리 잡아 오히려 그들을 쓸쓸하게 만들고,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독해지게 했다. 개인적인 고독은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아우렐리우스 부엔디나 대령의 고독을 들 수 있다. 전쟁이 자신이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는 목표를 상실한 채 고독을 느끼고 황금 물고기에 전념하지만 그것이 그의 고통을 위로해주지는 못한다. 휴전을 한 뒤 나중에 다시한번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을 때, 주위사람들이 반대하자 그는 또다시 고독을 느낀다. 예전에는 자신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주위사람들이 그의 계획에 반대하고, 먼 훗날에는 아우렐리우스 부엔디나 대령의 존재 자체가 허구인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죽은 그의 혼령으로 하여금 고독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미꼰도에서 보이는 고독은 미꼰도가 자리하는 그 공간자체에서 기인할 뿐 아니라 미꼰도를 속박하는 역사적 흐름에서 기인한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나가 처음 미꼰도에 정착했을 때부터 미꼰도는 ‘과거로 흐르고’ 있었다. 이들이 겪은 고독은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모두 한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고독이다.
이러한 고독들은 「백년여관」에서는 우물과 동굴 등 다른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으로 형상화 되어 ‘지옥은 바깥이 아니라 .. 내부에 존재’ 하게 되고, 등장인물들은 고독을 내면화 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드러나는 고독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녹은 황금물고기와 수의, 그리고 가족의 순환적 역사를 보여주는 돼지꼬리를 통해 드러난다.
4 ) 글의 색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짜임과 묘사
「백년여관」과 「백년 동안의 고독」은 모두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백년여관」은 영도를 찾아와서 사람들이 역사의 파편을 짜 맞추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 이진우가 백년 여관에 도착하여 떠날 때까지의 여정을 보여주는 흐름 속에서 역사적 사건의 아픔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식은 가끔 ‘당신’의 일기를 누가 읽어 주는 것 같은 부분이 등장하기도 하고, 객관적인 제 3자의 눈으로 ‘당신’이 영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며 전지적으로 역사속의 일에 대해 논평까지 해주는 등 다양한 각도로 드러난다. 마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독립적인 두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나 결국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듯이, 이 「백년여관」역시 시점의 변화를 주면서 지루함을 없앴다. 그리고 ‘현실’과 ‘역사’를 넘나들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설정하여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신선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G.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 지니지 못한 점으로 독자가 「백년여관」이 그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지루하지 않게 수용하게 한다.
반면, 「백년 동안의 고독」은 내용에 비해 난해한 느낌을 많이 주었다. 1/3정도는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반복되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 때문에 누가 어떤 일을 행했는지 금방 잊게 해 가계도를 그려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엔디나 라는 가족이 ‘마콘다’라는 도시에서 정착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백년 동안의 고독」은 동일한 이름을 계속 반복하여 물려줌으로서 부엔디나 가족의 피에 흐르고 있는 고독이 영속적이고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즉, 고독한 운명과 처절한 싸움, 환락과 사치, 실패 등의 지속적인 흐름을 통해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리듬이나, 공간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이름의 반복 이외에도 퇴역한 아우렐리우스 부엔디나 대령이 황금물고기를 만들었다 녹이고 다시 만드는 장면이나 그의 여동생 아마란타가 수의를 계속해서 풀었다 다시 만드는 장면 역시 콜롬비아의 정체된 사회를 보여줌과 동시에 무슨 일인가 하여 고독을 벗어나 보려는 시도를 형상화 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한한 반복은 인간 고독을 더욱더 내면화 하며 고독을 극복하게 하지는 못하고, 결국 아우렐리우스 부엔디나 대령과 아마란타가 죽을 때까지 그 일만을 반복하도록 한다. 죽음에 이르러서 고독이 끝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죽음에 가서도 끝이 나지 않는 고독은 죽은 뒤 외로워서 다시 돌아온 푸르덴치오 아뀔라와 멜퀴아데스가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여러 해 동안 죽어서 지내려니까 살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강해졌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말동무가 필요했으며..돌아왔다.(백년동안의 고독. 91p)’
또, 이 두 소설은 눈에 보이는 듯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그 현장을 실감나게 느끼게 한다. ‘당신’이 소설을 쓰지 못한 상황을 ‘잠수부의 등에 업힌 산소 탱크 용량의 최대 허용치 같은 것. 당신은 탱크를 지고 깊은 바다 속을 유영 중이다(백년여관.15p).' 고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나 「백년동안의 고독」에서 묘사된 근친상관의 성관계들과 무엇인가에 미쳐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한계를 지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로 특정 사건을 섬세하게 묘사한 장면이 많았다. 이를 라틴아메리카 문학 장르의 특징인 마술적 리얼리즘 이라고 부른다.
5 )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한 묘사
‘달콤 쌉사름한 초콜릿’을 보고 찾은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이라는 단어 뒤에는 항상 G.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 뒤를 따랐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925년경 발생한 후기표현주의 회화를 지칭하기 위해 예술 비평가 프란츠 로가 맨 처음 사용했다. 그는 이 용어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마술적’이라는 말은 ‘신비적’이라는 말의 반의어라고 말한다. 프란츠 로는 이를 통해 “신비(mystery)는 재현된 세계로 내려오지 않고 오히려 그 뒤에 숨어서 고동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남미 문학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 루이스 레알 / 박병규 옮김). 처음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을 접하면 환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마술적’ 이라는 말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이라는 의미의 ‘사실주의’ 라는 말이 상충되는 것처럼 느끼기에 이 둘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해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엔리케 안데르손 임베르트에 따르면 마술적 사실주의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변증적인 관계다.
반: 초자연성의 범주 ― 환상문학
합: 기이성의 범주 ― 마술적 사실주의
(중남미 소설과 마술적 사실주의, 엔리케 안데르손 임베르트 / 현중문 옮김)
이런 마술적 사실주의의 장면은 두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내가 보기에「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고독이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드러난 부분 중 가장 멋진 부분이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로 인해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뭇 남성들이 좌절에 빠져 자살하거나 죽게 되는데 그녀는 아무런 생각이 없고,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승천한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떠나고 나자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하늘로 올라갔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레메디오스가 떠났기에 잠시 슬퍼했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은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다. 소설에서는 그녀가 약간 모자란 듯이 그리고 있는데, 그녀는 주위 상황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 즉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의 세계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승천 역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G.마르께스는 이러한 마술적 사실주의를 고독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삼고 있다.
한편, 「백년여관」에서도 마술적 사실주의가 드러난다. 분홍 눈이 내리는 등의 신기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혼령과 ‘푸른 손’들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영도를 감싸고 있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나타내주기에 적절하다. 이런 환상적인 장치들이 단지 환상에서만 끝나지 않는 것은, 위와 같은 설정이 등장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백년 동안의 고독」과 다른 점이라면 「백년여관」에서 나타나는 설정들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혼령도 볼 수 있는 사람만 보고, 푸른 손에 의해 도움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 둘이다. 하지만 개인을 넘어서 백년 여관에, 그리고 영도에 분홍색 눈이 내린다는 것을 볼 때, 마술적 사실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통해 공간의 한계, 시간의 한계, 그리고 더 나아가 상상력의 한계를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한계들를 없앰으로써 부엔디나 가문의 사건을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 아메리카, 더욱 나아가 인간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시킬 수 있고, 개인의 문제를 영도의 문제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로 이슈화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3. 마무리
이 두 작가는 「백년여관」과 「백년 동안의 고독」을 통해 현실에 기반을 두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고독을 형상화 인간의 고독을 보여주는 동시에 두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역사적 사건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역사가 계속 반복된다면, 그리고 사람들에게 고독을 남겨준다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가끔 시간이 나를 통해 나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고. 내가 존재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다른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현재도 고독 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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