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이고 감각적인 환경・생태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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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이고 감각적인 환경・생태선언
“침묵의 봄”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하지 말라는 메시지
사회학과 윤종
과학기술에 대한 과신은 금물이라는 이야기는 이제는 거의 상식처럼 되어 있어서 대입 논술 논제에도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일 정도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옛날부터 당연한 상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오기 전까지의 미국과 유럽지역에서는 그런 인식이 상식이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1930년대, 그리고 1940년대 동안 세계대전을 비롯한 몇몇 이유들로 인해 다양한 합성화학물질들이 개발되었으며, 그 새로운 합성물질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도처에서 사용되었다. DDT를 비롯한 살충제나 CFCs 냉매, 납이 들어간 휘발유 등이 좋은 사례다. 당시의 화학자, 발명가, 화학회사들은 새로운 합성물질의 효과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고, 그 합성물질들을 광고하고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침묵의 봄』은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 태어나 사람들에게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인간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데 대한 반성과 경계의 목소리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미국에서 시에라 클럽이나 오두봉협회와 같은 환경․생태단체들이 생겨난 것은 『침묵의 봄』보다 70여 년 전인 1890년대였다. 그러나 『침묵의 봄』 이전의 환경․생태운동의 양상과 그 이후의 환경․생태운동의 양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60년대에 출간된 『침묵의 봄』이 담고 있는 합성화학물질 남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 하나가 새롭고 대중적이고 전세계적인 환경․생태운동의 산파 노릇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환경․생태분야에서의 “선언”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들새나 조개 화석을 관찰하고 동물 이야기를 읽는 것이 취미였다. 카슨이 11세 때 직접 쓴 이야기가 어린이 잡지에 실렸고, 이후 1년만에 4편의 이야기를 출판하여 상을 3번이나 받았다는 것은 그 문학적 재능을 짐작케 해준다. 카슨은 자라면서 문학 대신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학에서 전공을 바꿔 해양생물학을 공부했다. 카슨은 석사 학위를 딴 뒤 수산청에서 일하며 바다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해풍 아래서』,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등에서 카슨은 자신이 서정적이고 대중에게 통하는 쉬운 문체와 과학적인 고찰을 결합시키는 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카슨은 “과학지식이 연구실에 갇혀 성직자처럼 살아가는 극소수의 특권”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영리환경단체 ‘자연보존’의 여성 명예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 『침묵의 봄』은 카슨의 대중적인 과학물을 쓰는 능력과 자연보존에 대한 관심의 결합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렉스 맥길리브레이,『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 이충호 옮김. 그린비 출판사. 2005. 12쪽-50쪽 참조.)
「1. 내일을 위한 우화」라는 살충제가 종래에 가져올 수 있는 끔찍하고 비참한 세상을 묘사한 챕터로 시작하는 『침묵의 봄』. 이 『침묵의 봄』은 자극적이고 고발적인 동시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조화시키기 어려운 방향성들을 글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책은 화학살충제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포괄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물, 토양, 식물, 새, 물고기, 음식, 유전자, 암 등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카슨은 살충제가 어떻게 먹이사슬 속에서 농축되는지, 무분별한 화학물질 사용이 어떻게 생태계의 조화를 파괴하는지, 돌연변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조리 있고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을 나열하고 살충제 기업이나 화학계, 정부 관료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고발한다. 그리고 무분별한 화학살충제 사용 외에도 생태계에 피해를 덜 끼치는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침묵의 봄』이 훌륭한 이유 중 하나는 그 글이 감각적이고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한 번 목차를 펴서 보자. 「8.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 「9. 죽음의 강」, 「11. 보르자 가문의 꿈을 넘어서」, 「13. 작은 창을 통해서」, 「14. 네 명 중 한 명」과 같은 소제목들에서 카슨의 문학적 감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카슨은 단순히 “예전에는 봄이 되면 울새가 많이 눈에 띄었지만, 지금은 울새가 사라졌다.”라고 쓰지 않는다. 그는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울새의 출현은 기나긴 겨울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이 새의 등장은 뉴스를 통해 보도될 정도이고, 사람들은 아침 식탁에서 울새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울새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숲에 처음으로 녹색 안개가 싹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침 햇살 사이로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봄날을 맞는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지나간 옛일이 되어버렸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본문 136쪽-137쪽.)와 같은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글을 구사한다. 그리고 카슨은 어려운 과학지식들을 나열하는 데 거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책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화학식이 메탄과 메탄의 수소기를 치환한 사염화탄소 등, 매우 단순한 것 네 개뿐이란 점은 마치 카슨이 복잡하고 일반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과학계에 야유를 보내는 듯하다. 또한 당시 핵실험으로 인해 방사선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는 것을 포착하여 방사능 물질과 화학살충제를 비교한 것도 대중호소 면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
『침묵의 봄』의 이러한 문학적·감각적 수사를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과학기술계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했으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했다. 화학산업계나 정부 부처가 자신들의 잘못을 고발하는 『침묵의 봄』을 달가워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며, 그들도 『침묵의 봄』의 문체나 표현을 놓고 선동적이고 감정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어려운 전문용어가 나열된 딱딱한 글보다는 카슨의 감각적인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잘 읽혔으며, 다수의 사람들은 카슨의 문체에 우호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의 반응은 엘리트들의 비난을 압도하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의 적극적인 로비·운동으로 DDT는 금지되었고 화학산업계는 수세에 몰렸다. 『침묵의 봄』 덕분에 멸종되지 않은 생물도 몇 종에 이른다.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부 지도자가 환경․생태문제를 무시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 『침묵의 봄』은 살충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환경․생태운동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과학기술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침묵의 봄』이 대중과 엘리트 집단으로부터 각각 받은 상반되는 평가와 그 책이 만들어낸 사회 변화는, 사회운동의 텍스트는 엘리트를 위한 글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글이어야 하며 결국 변혁의 주체는 다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정부 부처와 전문적인 과학자들이 아무리 『침묵의 봄』과 카슨을 비판하고 부정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말하자면 대중, 또는 민중)이 『침묵의 봄』을 읽고 그 내용을 받아들였기에 『침묵의 봄』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사람들이 침묵하고 참는 의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알 권리를 주장하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들의 직접적인 행동을 촉구했다는 점은『침묵의 봄』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침묵의 봄』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최근 전세계적인 살충제 생산량이 카슨이 살아있던 당시보다 더 늘어났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침묵의 봄』을 읽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지만, 실제로 화학살충제의 사용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것을 놓고 이는 과학기술에 대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환상이나 근시안적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더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해야만 하는 대량 생산 방식, 정부의 산업 정책, 시장의 작동 방식, 화학산업계와 과학기술계의 이윤 추구,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남성중심의 과학기술계 등은, 계속해서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카슨이 지적하고 있는 살충제 기업을 비롯한 화학산업계의 무분별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이나 과학기술의 근시안적 활용, 정부 관료들의 비합리적 태도와 정책 등은 근대 자본주의 과학기술 사회의 전체적인 패러다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침묵의 봄』은 이러한 구조를 지탱해오던 한 요소인 사람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과학기술계 및 정부의 정보 은폐를 깨뜨리고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정부와 화학산업계의 행동 방식, 그리고 농업․축산업․양식업․건축 등 온갖 분야의 근대적인 대량 생산 방식을 바꿀 수 없었다.
우리가 환경․생태운동에 관한 모든 것을 『침묵의 봄』과 레이첼 카슨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카슨이 더 근본적인 이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 부처나 화학산업계의 잘못된 행동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카슨이 그런 측면을 전혀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침묵의 봄』을 읽어보면 카슨이 그런 부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조금 꺼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는 이 책이 출판되었던 시기가 (미국에서 사회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던) ‘메카시즘’이 유행한 직후였기 때문에, 그리고 기업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공격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법정 소송을 비롯해서 온갖 역공을 가하던 시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록 DDT나 카슨 때 사용되던 다른 여러 화학살충제의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등장한 여러 합성화학물질들이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용량은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살충제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와 같은 더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들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 『침묵의 봄』은 단순히 살충제 남용의 부작용만을 경고한 책이 아니다. 거기에 담겨 있는 정신은, 생태계의 조화는 합성화학물질 남용과 같은 것으로 함부로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자연에 나타나는 위험 징후들을 포착하여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모든 환경․생태문제에 적용되는 대원칙이다. 또한 『침묵의 봄』은 환경․생태운동(그리고 거의 모든 사회운동)이 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극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 훌륭한 사례다. 『침묵의 봄』이 한 획을 그은 변화의 역사는, 지금도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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