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을 읽고: 철학적 실천을 한 실천적 철학자 전태일

2등상

전태일 평전 을 읽고

철학적 실천을 한 실천적 철학자 전태일

사회학과 김건우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貧富)의 법칙입니까?” 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92p.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 난 또 한명의 철학자를 보았다. 그는 철학을 사유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전태일 평전은 평전이기 때문에 전태일이 직접 쓴 책이 아니다. 변호사 조영래가 쓴 평전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 전태일, 임노동자 전태일에 가까이 근접해 갈수록 조영래라는 서술자보다는 언제나 항상 전태일이 내 앞에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점점 전태일의 일기나 수고 등을 발췌한 부분들이 얼마나 보석처럼 빛나며 찬란한 인식론적 각성인지 발견할 수 있었고, 그러한 발견 앞에 숨 죽일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 전태일은 투사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다. 전태일은 실천가이자 이론가였다.

그렇다면 본 논의에서 전태일의 평전을 요약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것은 철학자의 철학을 그의 연대기를 통해서 추론하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것이다. 마치 맑스의 사유를 그의 연보나 그의 가정환경, 그의 경제적 여건, 엥겔스와의 교류 등과 같이 외적인 것에서 추적해 들어갈 때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허망함이 그러하듯이. 물론 인간이 환경을 만들며, 거꾸로 환경이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유물론적 테제인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것이다’는 이런 맥락, 즉 양방향 모든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은 그들 생활의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의 물적 생산제력의 일정한 발전수준에 조응하는 일정한, 필연적인, 그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제관계, 생산관계를 맺는다. 이 생산 제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현실적 토대를 이루며, 이 위에 법적이고 정치적인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일정한 사회적 의식형태들이 그 토대에 조응한다. 물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일체를 조건 지운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김호균 역, 중원문화, 1989, 7p) 그런 만큼 이 테제는 조심스럽게 이해되어야 한다(이론가들의 요란한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임금노동자 전태일은 이미 다음처럼 쓰고 있지 않던가!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환멸과 ⋯⋯ 자기 자신의 나약한 소리를 증오하면서. 인간의 둘레를 얽어매고 있는, 인간이 만든 ⋯⋯ 인간 본질의 희망을 말살시키고 있는, 모든 타의적인 구속을 ⋯⋯.”(강조는 인용자) 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135p). 왜냐하면 알튀세르의 이른바 ‘구조주의적 맑스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존재를 결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주체는 사장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맑스의 사상을 전기와『자본』이후의 후기로 나누고 양자 간에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보았다. 즉 초창기의『1844 경제학-철학 초고』나『독일 이데올로기』,『철학의 빈곤』와 같은 저작들은 철학적 저작들임에 반해, 1867년의『자본』에서의 맑스는 과학적 맑스이며, 역사과학자로서 맑스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의 목적이 인식론적 단절을 통한 후기 맑스에 방점이 찍혀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자들에게 ‘주체’나 ‘임노동자’, ‘자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오직 구조의 담지자(agent)로서 그들의 행동을 객체화하고, 고정시킨다. 이제 주체는 사라져 버리고, 경제라는 객관적 구조가 심급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면, 전태일도 당시의 수많은 청계천 노동자들처럼 자본의 부속품(이를 저자 조영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결국 스스로의 젊음과 소망과 건강과 생명을 그날그날 갉아 먹으며 살아야만 하는 피팔이(賣血)인생들이다.”위의 책, 107p), 기계로서 대상화될 뿐이다. 그러나 전태일은 자신이 인간임을, 주체임을 명확히 했다. 임노동자 전태일이 철학자 전태일로 이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전태일은 자본의 부속품에서 인간으로 이행한 것이다. 토대와 상부구조간의 관계는 이항대립적으로 이해되거나, 토대가 상부구조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그렇게 ‘객관적으로’ 대상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관계는 ‘계급역관계’를 통해 구성되고, 운동하며, 재생산되고 그렇게 자신을 ‘사회의 모순적 총체’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역동성은 경제지표나 수요-공급의 균형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시장이 그리고 자본주의가 그것의 외부인 국가를 매개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심급이라 할 이윤인 잉여가치는 가치를 생산하는 힘(이를 맑스식으로 말하면 ‘가치생산물=가변자본(c)+잉여가치(s)’가 된다), 즉 노동력을 매개해서만 생산될 수 있다. 맑스는 이를『자본』에서 자본의 공식 ‘G-W-G'’(G'=G+⊿m, G:화폐, W:상품, m:잉여가치)으로 확인했다. 이 간단한 관계는 자본주의의 다른 성격이나 양상을 사장하거나 제거하는 抽象이 아니라, 거꾸로 그런 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抽象이다. 동시에 그 抽象은 자본-노동이라는 사회적 관계로서 계급적대나 투쟁이 반드시 매개되기 때문에,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잉여가치(m)는 생산될 수 없다, 즉 자본축적이 불가능해진다. 자본주의에서 모세의 예언은 ‘축적하라, 축적하라’(맑스,『자본론 I-하』제2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3, 811p)가 아니던가- 그 기반은 언제나 ‘지금-여기’에 존재한다. 자본가가 또 자본주의적 국가가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투쟁에 강박증환자처럼 폭력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그들이 임금노동을 자본의 부속물로 파악할 때조차도, 사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의 축적은 언제나 임금노동자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임을 그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지배계급의 폭력과 언론이나 법을 통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는 거꾸로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인 것이다. G는 생산과정을 통해서 잉여가치(m)만큼 가치를 증식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된 잉여가치만큼 양적으로 커진 G'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증식은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착취관계로서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임금노동을 매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의 공식은 계급투쟁이 내재하는 공식이다. 그래서 그 공식은 객관적인 형태로 임금노동자의 노동마저도 계량화된 수치의 형태로 함수의 독립변수, 투입요소 아니 ‘비용’으로 취급하는 지배계급의 물신화된 경제이론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혁명성을 내재하고 있다. “자기를 증식하는 가치로서 자본은 계급관계(임금노동으로서의 노동의 존재에 의거하는 일정한 사회적 성격)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 그러므로 자본은 정지상태의 사물로서 이해될 수가 없고 운동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가치의 자립화를 단순한 추상(抽象)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산업자본의 운동이 바로 이 추상의 현실화(this abstraction in action)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가치는 여기에서 각종의 형태, 각종의 운동을 통과하며, 이 운동 중에서 가치는 자기를 유지함과 동시에 증대[증식]시키는 것이다.”(맑스,『자본론 Ⅱ』제1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4, 122p) 헤겔적인 표현을 빌리면, ‘부정의 부정’인 셈이다. 맑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바로 이러한 자본의 계급적 본질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만약 화폐가, 오지에(Marie Augier)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한쪽 볼에 핏자국을 띠고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면, 자본(資本)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맑스,『자본론 I-하』제2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3, 1046p).

그러나 철학자 전태일은 보통의 철학자와는 다르게 사유했다. 그는 대개의 철학자들이 책상에서 사유하며,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정반대로 그는 문자나 개념에 의존하기 보다는 현실과 치열하게 대면하고 대결하면서 철학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유했던 철학자였다. 그의 문제의식이 노동조건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구체적인 것이었으며, 현실적-물질적인 것이었고 그런 만큼 그의 분노는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있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삶 그 자체에 기반하고 있는 분노는 거꾸로 그런 분노를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조건에 육박해 들어가는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전태일 평전』에는 그러한 전태일의 문제의식이 수기나 일기의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분량이 길기 때문에 직접 인용하지 않지만, 다음의 수기는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조영래가 “이것이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노동조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이다.”(강조는 인용자)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116~7p). 이러한 노동조건이 전태일로 하여금 임금노동자가 곧 기계의 부품이라고 인식하게 했으며, 소위 ‘공돌이’에서 철학자로의 전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전태일은 다음과 같이 쓴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위의 책, 125p. 강조는 인용자) 이런 발언은 이제 전태일이 철학자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맑스가『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치열하게 다루었던 ‘소외’, 즉 맑스를 전혀 알지 못하는 한 평범한 임금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소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는 무엇보다도 임금노동자가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팔 것이 없는 자기 자신의 ‘노동력’조차 상품화하는 것이면서 인간과 인간의 대면이 상품과 화폐의 교환이라는 판매(W-G)와 구매(G-W)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자본주의적 관계는 경제적 세포형태(“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가 경제적 세포형태이다.” 맑스,『자본론 I-상』제2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3, 4p)로서 상품을 매개하지만 화폐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은 화폐를 소유하지 못하면, 즉 화폐를 소유할 능력이 없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때의 인간은 역사적 주체, 존재로서 자본주의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령 ‘이론적 반인간주의’와 같은 이론적 논의를 끌어들여 전태일의 삶과 언어를 인간중심주의라고 간단히 판정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알뛰세르,『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역, 백의, 2002 중「맑스주의와 인간주의」참고. 그는 인간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용어’라고 하면서 ‘과학적 용어’와 대비하고 있다). 가령 맑스와 포이에르바하의 관계를 밝혀보고자 할 때, 알튀세르가 지적한 것처럼 맑스가 포이에르바하의 용어 또는 포이에르바하식의 용법 등을 사용한다고 해서 맑스를 포이에르바하주의자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맑스는 이미 유물론자이지만, 아직 포이어바흐적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고, 포이어바흐적 용어법을 차용한다. 그렇지만 그는 더 이상 포이어바흐주의자가 아니고, 순수한 포이어바흐주의자였던 적도 결코 없었다.” 위의 책, 68p.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른바 ‘인식론적 단절’(epistemological break)에 대해서는「서문: 오늘」을 참고하라. 특히, 30~38p.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 단절은 비(非) 또는 전(前) 과학적 문제틀(problematique)에서 과학적 문제틀로의 발전(mutation)이자 이행이다)처럼 전태일이 인간(성)을 주장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의 용어 사용을 문제 삼아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사후적으로 편리하게 판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철저하게 따라가 보는 것, 그렇게 사유와 삶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그를 따라가 보는 것이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아무튼 자본주의적 인간, 자본주의적 주체는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물신화되고 소외된 만큼 교환가치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태일이 말하는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이라는 사용가치는 그렇게 교환가치로 대체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가치의 증식과 이윤, 즉 잉여가치의 획득을 위한 것으로 강제하는 자본의 운동 앞에서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인간(맑스는 근대 자본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존재’라고 했다. 첫째는 봉건적 신분제로부터의 자유이고, 두 번째는 생산수단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물론 이 두 번째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는 자유가 아니라, ‘박탈’을 의미하는 소외된 자유다)은 임금노동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화폐와 교환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전태일의 ‘자본주의적’ 분노는 그 어떤 경제학자나 철학자의 논리나 이론보다 탁월한 것이며, 또한 그것이 자신의 삶 -그에게는 삶이 곧 노동조건이었다. 이는 비단 30년 전의 상황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적이다.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마저도 여전히 그들의 삶은 노동조건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노동조건은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서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역관계의 중요한 쟁점이 된다. 즉 계급역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노동조건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지배계급의 주장처럼 더 개선되고 나아지기 보다는 계급투쟁을 통해 운동하는 역사적인 것이다.- 을 통해서 온 몸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 축적에 종속된 존재로서 임금노동자는 다음처럼 말한다. “내가 직장생활 근 3년 고생해서 얻은 건, 인격과 경제는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3년 동안의 고생과 14년 동안의 고역이 나를 경제문제 계산기로 만든 것이다.”(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130p. 강조는 인용자) 교환가치화된 자신을 전태일은 이처럼 너무나도 정확하게 인식했던 것이다. 또 그렇게 임금노동자는 기계가 되었다. “무의미하게. 내가 아는 방법 그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이외에는 무아지경이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도 순서대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될 행동만이 질서정연하게 자동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의 나는 일의 방관자나 다름없다. 내 육신이 일을 하고,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때까지의 육감과 이 소란스런 분위기가, 몇 인치 몇 푼을 가리키는 것이다.”(위의 책, 133~4p.「모던 타임즈」에서의 채플린의 경우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진실하고 놀라운 성찰이며 그래서 급진적인 자기의 재인식이 가능해졌다.

이제 철학자 전태일은 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실천적인 지점에 선다. “교차로에서 저는 언제나 좌회전입니다. 세상에서 우회전의 우선권이 있다는 법칙 속에서, 우회전의 부러운 우선권을 바라보며, 알파와 오메가.”(전태일의 1969년 12월 낙서. 위의 책, 206p) 이렇게 세상에다 외치는 전태일은 자신의 과제를 다음처럼 정립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탁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위의 책, 213p) 그렇게 금전대의 부피만을 생각하는 인간은 자본가다. 그래서 “제주도의 화이트 빠꾸샤 같은 기업주는 기름기계에 집어넣은 불쌍한 샐러리맨들을 마구 조롱하고, 큰 오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짜낸 샐러리맨들의 기름을 흐뭇한 기분으로 주판질한다.”(위의 책, 214p)

그러므로 우리는 박정희 시대와 정확히 일치하는 전태일의 생존 시기를 다시 비판해야 한다. 이제는 박정희를 통해서 자본을 통해서 이른바 ‘근대화’를 바라보는 대신, 전태일을 통해서, ‘인간’을 통해서 당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은 박정희와 전태일 간의 대립으로 인격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그 두 인물로 표상되는 계급역관계의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체제는 이제 ‘국가의 정당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이제 자본은 자본과 노동 간의 매개와 중재를 시도하지 않는다. 이미 국가는 계급적 국가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국가의 본질이 애써 감추어지거나 왜곡되지 않고 온전하게 폭력적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자본주의적 국가의 원형을 우리는 오히려 과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박정희는 한국 자본주의가 아니 세계가 아직 케인즈주의적 축적체제 또는 조절의 개념을 끌어들이면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로 재생산되고 있을 60년대 당시에 이른바 ‘사회적 총자본’으로서 국가, 국가와 독점기업이 일정하게 융합한 국가독점자본으로서 국가, 그래서 지배계급의 계급지배의 도구로서 물질적-이데올로기적 기구로서 국가를 필요로 했다(조희연의 경우 ‘정상국가’로의 이행을 전제로 하면서 “후-후발 산업화국가들 -특히 이른바 신흥공업국-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국가형태를 개발독재적 ‘예외국가’(developmental dictatorial exceptional state)로 파악”하고 그것의 형태변화 측면에서 부르주아(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정상국가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의 경우, “국가에 대한 지배계급적 이해를 응축적으로 관철하는 지배계급의 부재(舊지주계급의 몰락과 新지배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지의 취약성), 전쟁으로 인한 노동계급 및 민중부문의 정치사회적 무장해제와 탈동원화, 식민지 시기와 해방공간을 거치면서 비대화된 ‘과잉성장국가’(overdeveloped state)”를 조건으로 한다고 본다. 또한 이 때의 과잉성장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심대한 비대칭성을 말하는 것으로 국가의 사회에 대한 막강한 지배력을 의미한다.『IMF 체제와 한국 사회 위기논쟁』(문화과학사, 1998) 중「IMF 지원체제와 김대중 정부하의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조희연) 116~122p. 참고). 역설적으로 이런 점이 자본 축적의 위기에, 이윤율의 저하 경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대응/공세가 강제되는 오늘날 박정희 신화가 재연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자본은 축적을 위해서는 국가형태가 군사독재든, 왕정이든 개의치 않는다. 자본축적과 결합한 국가의 자본주의적 폭력성과 본질을 철학자 전태일은 다음처럼 처절하게 고발하고 있다. “앙상한 가지마다 잎새는 매달렸지만 짓궂은 북풍은 앙칼지게 발버둥치는 매달림을 비웃는다”(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220p).

전태일은 여전히 현재적이다. 따라서 철학자 전태일은 실천적이다. 1948년에 태어나서 1970년에 세상을 떠난 이 실천적 철학자는 자신의 22년 짧은 인생을 자본주의와 대결하면서 산화했다. 그의 삶이 진지한 만큼 그의 고민과 문제의식은 치열했으며, 치열한 만큼 그의 산화는 뜨거웠다. 그리고 그의 산화가 현재적이라면 그것은 그가 자본축적의 기계, 또는 계기로서 임금노동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였고, 자신의 삶을 강제하는 특정한 양식을 노동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은 생활양식 또는 문화를 생산양식에서 자율적인 영역으로 분리하는 대신, 두 영역 간의 관계를 분명히 인식했다고 하겠다. 그것을 ‘접합’ 또는 ‘중층결정’이라 한다면 그런 개념은 전태일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앎과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인식과 자신의 존재가 현실에서의 실천을 통해 일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이른바 ‘이론적 실천’이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정당화하는 수사로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 인식이라는 미명 하에 실천과 격리된 이론에 함몰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태일은 과학적 인식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일치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그가 이론적 실천의 한 전형이었다는 점을 확인해야 할 것 같다.

가령 알튀세르가 철학을 ‘최종심급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알뛰세르,『철학에 대하여』, 서관모, 백승욱 역, 동문선, 1997, 61~2p)이라고 하면서 철학이 이론 외부의 영역에서의 우발적인 침투가 가능한 것으로 볼 때 또 “철학이 자신의 역사 속에서 야기해온 갈등들에 당면하여, 계급투쟁의 일의적인 결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변들, 지대들이 출현합니다. 이를 테면 언어학, 인식론, 예술, 종교적 감성, 관습, 민속 등에 대한 성찰의 어떤 영역들이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철학 내부에는 작은 섬들과 틈새들(interstices)이 있”(위의 책, 62p)다고 하면서 철학이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우발적인 현실성, 우발적 틈새들로서 자신의 삶으로서의 실천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실용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 함의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태일을 전형이라고 할 때 그것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인식과 존재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용주의나 기능주의는 무엇보다도 우선 대상과 인식대상의 관계를 사고하지 않는다. 그 때의 인간의 행위는 공리주의에서 보는 것처럼 선택의 문제요 효율의 문제일 뿐이다. 이것으로 전태일의 삶과 그의 산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그럴 경우 전태일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미친 놈’이 될 것이다. 다시 알튀세르가 칸트의 용어를 빌려 철학을 ‘철학적 전략들 간의 전장’이라고 할 때(위의 책, 60~61p) 전장은 헤겔식의 용법을 빌면 말 그대로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정투쟁인 한 그것은 자기의식과 그 의식의 대상을 필요로 하며 각각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인간과 역사적,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현실을 말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전태일이 당대의 한국 사회와 생사를 건 전쟁을 치루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가 투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론이 자신의 문제설정(problematic)을 끝까지 밀고나갈 때, 그리하여 지금 부재한 문제까지도 대상으로 삼고 사유하는 이른바 ‘징후적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 일 때 우리는 여전히 현재적인『전태일 평전』을 읽고 어떤 징후적 독해를 할 수 있을지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의식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이 평전이 ‘죽은 개’ 취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독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동시에 우리는 우발성의 개념을 우연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특정한 경향과 조건을 강조하는 맥락에서의 필연성으로 이해해야(가령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연성을 필연성의 양상 또는 필연성의 예외로서 사고할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우연적인 것들의 마주침의 필연적 생성으로 사고해야 합니다.”위의 책, 43p. “확실한 것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철학 따위는 없는 것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경향들입니다.”, 위의 책, 57p) 전쟁으로서의 철학이 현실적이고 실천적일 수 있을 것이다. 전태일의 죽음이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죽음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전태일을 실천적 철학자라고 말했다. 그의 철학적 실천이 전쟁이요 인정투쟁이라고 할 때 그리고 그것이 철학의 외부로서의 실천, 우발성의 필연성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 실천과 우발성을 자기의식의 대상으로서 사회적 조건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실천의 침투는 철학은 외부가 있다는, 더 적절히 말하자면 철학은 이 외부에 의해서만, 그리고 이 외부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확언입니다. 철학이 이 외부를 진리에 종속시킨다는 환상을 철학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저 외부, 그것은 바로 실천, 사회적 실천입니다. … 실천은 흔들리지 않는 어떤 철학을 위한 진리의 대체물이 아닙니다. 반대로 실천은 철학을 흔들어 놓는 어떤 것입니다.”(위의 책, 69p. 강조는 인용자) 그러므로 전태일은 철학적 환상과 대결한 철학자였고 그 틈새/지점에서 사회적 실천이 가능했다. 위의 인용문을 철학적 실천을 한 실천적 철학자 전태일의 삶과 그의 평전에 대한 알튀세르의 철학적 서문이라고 징후적으로 읽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참고 문헌

  1. 조영래,『전태일 평전』, 돌베개, 2005
  2. 맑스,『자본론 I-상』제2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3
  3. 맑스,『자본론 I-하』제2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3
  4. 맑스,『자본론 Ⅱ』제1개역판,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04
  5. 맑스,『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김호균 역, 중원문화, 1989
  6. 루이 알뛰세르,『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역, 백의, 2002
  7. 루이 알뛰세르,『철학에 대하여』, 서관모, 백승욱 역, 동문선, 1997
  8. 김성구, 김세균, 조희연,『IMF 체제와 한국 사회 위기논쟁』, 문화과학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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