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폭력의 문제, 건강불평등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구조적 폭력의 문제, 건강불평등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정수환
많은 사람들이 죽음만큼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에서 만인이 평등한 것은 오직 “모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반면 죽음의 원인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평등하다. 인간은 살면서도 다양한 불평등을 겪고, 죽음에 임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역학에서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건강상의 격차를 일컬어 “건강 불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연구하고 있다. 사실 계층과 계급에 따라 나타나는 건강상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오래되었다. 멀리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인용하는 공장 감독관들의 보고서에 담긴 19세기 노동자들의 건강 및 생활 실태도 건강 불평등에 대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 불평등”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학계와 정책 당국의 주목을 받은 것은 보다 최근의 일이다. 건강 불평등 연구에 있어서 1970년대 말 영국의 블랙 리포트(Black Report)의 발간은 그 분수령이라 할 만하다. 블랙 리포트는 인간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수명과 건강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을 밝혀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후 어떤 사회경제적 조건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며, 어떤 사회에서 인간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사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계급과 젠더 등 다양한 요소는 물론, 어떤 성격의 사회에 사는가에 따라서도 삶과 죽음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서는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보건의료 정책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처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대단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시도는 있었다. IMF 이후 한국에서도 사회복지제도나 안전망 건설이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로 떠올랐고, 2000년대 중반에는 건강 불평등이 보건 정책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 부족하던 관심과 지원마저 싸늘해졌다. 참여정부 시기에 건강 불평등과 관련하여 정부 지원으로 제작된 보고서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보건 정책에서 건강 불평등을 간과하고 있는 가운데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한국의 건강 불평등 상황은 더욱 더 크게 악화되고 있다.
김기태 저,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을 고발하고, 한국의 건강 불평등 실태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한겨레21>에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된 내용을 다듬고 보완하여 낸 성과물로서, 현장 취재에서 나온 생생함으로 한국사회 건강 불평등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 건강 불평등과 관련된 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전문적인 연구서로 대중적 관심을 받기 어렵거나 혹은 외국의 책을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추천사에서 김창엽 교수가 언급하고 있듯, “이번 작업은 건강 불평등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한 두 번째 이정표”(263p)로 그 가치가 크다(첫 번째 작업은 같은 <한겨레신문>에서 취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으로 엮어낸 이창곤(2007),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사회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 (서울: 밈) 이다).
책은 1부와 2부에서 취재에 기반을 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한국 사회 건강 불평등의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인 성가복지병원에서 봉사 및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1부를 전개하며, 2부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같은 활동을 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말기암 환자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들은 걸린 병도 다양하고 살아온 인생과 태어난 사회경제적 조건도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말기암에 걸렸으며, 가난으로 인해서 말기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천주교가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동인 성가복지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저자는 그들과의 교류와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건강 불평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2부에서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중증외상환자들과 그들의 현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응급의료 인프라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자주 접하는 외상 치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과, 잠깐의 사고로 인한 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의 최대 강점인 현장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당연한 것이지만, 어느 가난한 개인은 부자보다 훨씬 건강할 수 있다. 건강 불평등은 전체 집단 사이를 대조할 때에만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고통은 객관화되고, 오로지 건조한 숫자로만 표현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는 현장에서의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어, 실제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령 1부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 2부의 응급실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읽는 사람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커피 한 잔의 선물에 좋아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할머니의 모습, 응급실에 늦게 도착하여 죽어가는 외상 환자의 모습은 보는 건강 불평등의 실태를 고발함과 동시에 보는 이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러면 건강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은, 그리고 건강 불평등은 대체 왜 발생하는 것인가?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논의는 1부와 2부에서도 일부 이야기되지만, 특히 3부에 집중되어 있다. 3부는 건강 불평등의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와 통계 지표들을 탐구한다. 가난과 학력 등 다양한 이유가 나오지만, 저자가 특히 핵심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지역에 따른 불균등한 의료 인프라와, 부와 여유 수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 기회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는 사뭇 충격적이다. 가령 표준화사망률을 비교했을 때, 경남 창녕군의 한 해 사망률은 10만 명 당 663명인데 비해 분당은 336명에 불과하다. (150p) 또한 전남 신안군과 서울 강남구의 1000명 당 의료 인력의 수는 각기 2.25명과 10.45명으로, 거의 5배의 차이가 난다. 이처럼 부유하고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에는 의료 인프라와 사망률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이 격차는 어쩌면 점점 더 커질지도 모른다. 저자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지역 의료의 중추를 맡고 있던 보건소의 예산이 삭감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자주 직면하는 응급 외상에 대한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겪을 수 있는 산업재해에 대한 의료 대책이 부족한 점을 고발한다. 이처럼 저자는 앞선 부분에서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건강 불평등의 실태를 고발하고, 3부에서는 중요한 통계 자료들을 함께 제시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치료받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현실을 알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과연 차별적인 의료 인프라가 건강 불평등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의료 인프라의 차이는 이미 발생한 질병과 상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건강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가령 응급실 인프라가 충분했다면 “해마다 9245명 더 살릴 수 있었다”(99p)는 말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를 사망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망 불평등은 건강 불평등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에는 평균수명과 사망 원인 그 자체보다는 그 기간 동안 얼마나 건강하게 살며,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는가에 대해서 더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이미 발생한 질병에 대한 사후 대처의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질병에 걸리는 과정과 질병으로 인해 겪는 고통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러한 시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책에서 저자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부분이다. 저자는 부제로 “가난한 이들은 쉽게 아팠고 쉽게 다쳤고 쉽게 죽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책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쉽게 죽었다.”만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 불평등은 단순히 이미 발생한 질병에 대한 사후 대처의 과정, 즉 “쉽게 죽었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책의 부제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아팠고 쉽게 다쳤다.” 즉 질병을 쉽게 치료하지 못하지만, 또한 질병에 쉽게 걸린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차별적인 의료 인프라만 가지고 생각할 수는 없다. 가난한 이들이 질병에 쉽게 걸린다는 것은 이들에게 질병이 더 쉽게 걸리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물론 저자 역시 이 점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요소, 특히 가난과 자살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책을 마무리하면서 건강 불평등 연구의 대가인 리처드 윌킨슨의 연구를 바탕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모두가 더 건강하니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야 하며 사회정의는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의료 인프라며, 건강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고 원론적인, “좋은 말을 써놓은”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히려 건강 불평등 문제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바로 건강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근원적인 요인, 즉 사회경제적 구조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더 큰 사회구조적 맥락들이 작동하며, 따라서 건강 불평등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의 반영이다. 가령 소득 불평등은 건강 불평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책에도 인용된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불평등과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불평등도가 클수록 건강의 질과 평균수명이 악화됨을 밝힌다. 또한 윌킨슨은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하층부에서는 경쟁의 패배로 인한 박탈감이 만연하며, 이 박탈감을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해소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발생함을 지적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박탈감을 해소할 수 없는 사람들은 담배나 술과 같은 값싼 위안거리를 찾기도 하고, 종종 우울증을 호소하며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리처드 윌킨슨(2005), 『평등해야 건강하다』, 김홍수영 역, (서울:후마니타스), 특히 2장과 5장 참고. 더불어 마이클 마멋(2006),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 김보영 역, (서울:에코리브르), 3장과 5장 참고). 한국에서도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을수록 흡연율이 높다는 보고가 존재한다(이창곤(2007), 앞의 책, pp.35-50).
각국에서 행해진 연구, 그리고 여러 국가를 비교하면서 이루어진 연구들은 소득과 계급뿐 아니라 다양한 불평등적 요소들이 건강 불평등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밝힌다. 가령 젠더 관계와 인종 관계 역시 건강 불평등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심지어는 모든 사람의 건강에 평등하게 악영향을 미칠 것 같은 환경오염 역시 사회에서의 위치에 따라 상이한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김민정(2009), 「자본 관계에서 고찰한 환경 불평등」, 《마르크스주의연구》6권 1호)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건강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폴 파머가 『권력의 병리학』에서 제시하는 “구조적인 폭력”의 개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폴 파머(2009), 『권력의 병리학』, 김주연·리병도 역, (서울:후마니타스). 파머는 아이티 등 제3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는 의사이자 인류학자로, 건강권이 인권의 중요한 부분임과 사회경제적 요소가 보건과 건강,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사회적인 폭력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쟁 범죄에서부터 질병의 발생과 시장 중심 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영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논하면서 이 사회적인 폭력을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구조적인 폭력은 “극단적이나 상대적인 가난, 인종차별에서 성차별에 이르는 사회적 불평등, 명백한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폴 파머(2009), 위의 책, p.39)을 의미한다.
구조적인 폭력의 개념을 가져올 때, 건강 불평등은 구조적인 폭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력 관계와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며, 기존의 사회과학적 연구와 연결되어야 한다. 이는 건강 불평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의료 기회와 인프라의 관점에서 건강 불평등에 접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에만 집중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쉽게 병에 걸리는 문제”를 간과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는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는 통계와 숫자 속에 묻히기 쉬운 건강 불평등의 실태를 생생하게 조명하고 있으며, 가난하고 아픈 이들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관심도 인상적이다. 또한 저자가 취재하고 제시하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은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이 어떤 형태로 작동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책에는 아픔으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아파진 사람들, 40년대에 일본 유학을 했던 부유한 집안의 자녀부터 가난하게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산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저자가 설명한 것 이상의 시사점을 얻어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의, 식, 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문 25조의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건강권은 인권의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로, 만인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는 인권의 핵심적인 부분을 보장받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또한 “불평등은 우리 몸에 축적된다. 건강의 불평등은 보건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순의 핵심지표이다. 건강 불평등의 심화라는 이 불편한 진술 앞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창곤(2007), 앞의 책, p.274)이라는 신영전 의료연대 정책위원장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건강 불평등의 해결은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가 건강 불평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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