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인정하자

새내기부문 3등작

욕망을 인정하자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이형우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다.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적 욕망에서부터 개인적 목표에의 욕망,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서의 욕망과 같은 사회적 욕망까지 욕망의 종류는 다양하다. 다양한 종류만큼 그러한 욕망이 형성되는 원인 또한 다양하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타인에 대한 질투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갖지 못한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갖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질투심과 함께 나도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 새내기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게 된 이후의 가장 큰 변화가 넓어진 인간관계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했고 그들 중 몇몇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접해야 했다. 이러한 경험이 계속되면서 피상적 인간관계와 깊은 인간관계 간의 차이에 대해서 또,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큰 고민은 점차 사람들 속에서 나의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 바쁘기 때문에 어렸을 적 나의 부모님들처럼 나를 일일이 챙겨주는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소수의 친구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챙김을 받는 주변 친구들을 질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느끼면서 나도 나를 잘 챙겨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나를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고민을 갖고 이후 다른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끝에 이러한 욕망을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사회에 갓 진입한 새내기들한테 자신들에게 먼저 다가와 주는 사람에 대한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와 같은 욕망이 은근함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은근함은 욕망이 쉽게 노출되지 않고 개인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들 누구도 자신이 이러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욕망에 대한 고민은 서로 고민을 털어 놓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만 사람들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인간관계에의 욕망에 대해서는, 대부분 모든 새내기들이 은근하게 이러한 욕망을 지니며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만 있었기에 은근함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은근한 욕망은 다른 사회적 분야에도 존재한다. 책『욕망해도 괜찮아』에서는 성적 영역, 학벌, 사회계층 등에 관한 은근한 욕망을 다루고 있다. 보수적인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해 온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성적 욕망이 아직까지는 개방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성적 욕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부끄러움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람들은 인간 본능에 의해 성적 욕망을 갖는다. 즉, 그러한 욕망이 사람들의 보수적 사고방식에 의해 마음 속 깊이 묻혀 있는 것이다. 학벌이나 사회계층에 관한 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높은 학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더 높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을 바깥으로 표출하려는 것을 참는다. 표출은 시샘과 질투에 대한 인정이고, 그러한 인정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망의 은근함은 부작용을 낳곤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직접 표출하기를 꺼려하며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희생양 메커니즘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 개개인이 가진 욕망을 표출하기를 꺼려하고 마음속에 숨기면서 겉으로는 모순적이게도 그것을 드러내는 소수의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을 벌인다. 대표적인 예가 신정아 씨와 ‘똥 아저씨’이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책 『4001』에 담긴, 학벌에의 욕망을 표출한 신정아 씨와 중년 남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 ‘똥 아저씨’의 경우를 인용하고 있다. 욕망을 숨기지 않고 표출한 것, 또 그것이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신정아 씨와 ‘똥 아저씨’는 다수의 사람들의 표적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사람들 개개인 또한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지만 그 둘이 욕망을 표출한 것에 대해 벌을 내린 것이다. 이와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욕망을 인정했을 때 그들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도 적어질 것이며 사회적 희생양을 몰아세워 사회적으로 다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자가 청춘에게, 중년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나는 욕망을 인정하는 것에 관한 저자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학년생의 경우와 책에 등장한, 공익변호사를 꿈꾸는 법조계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자 한다. 먼저, 나는 전공 진입에 관한 고민을 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학년생의 경우를 예로 들고 싶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1학년은 학부에 속해 2학년 진급 시 과를 정하게 된다. 학생들이 과에 지원을 하는 시스템이므로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과인 경제학부는 전공 진입 학점 한계선이 있기 마련이다. 전공 진입을 앞두고 있는 1학년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겨울방학이 다가올수록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그 중에는 학점이 충분히 높은데 경제학부에 대해 회의감을 갖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고민을 가진 학생들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안정성과 다른 과에 대한 흥미 간의 갈등을 갖고 있다. 경제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정치외교나 심리와 같은 다른 과목에 흥미를 갖고 있어 그러한 쪽으로 과를 정하고 싶으나 경제학부에 진입하지 않을 경우 미래 안정성의 보장이라는 선택지를 버리는 것이기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예로 들었던, 공익변호사를 꿈꾸는 법조계 학생들의 고민 또한 마찬가지다. 판검사가 되어 돈, 권력을 추구할 것인지와 자신의 소신을 지켜 공익변호사를 택하는 것 간의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이 때, 저자는 전자의 경우에는 경제학부에 진입하라고, 후자의 경우에는 판검사가 되라고 조언할 것이다. 돈과 권력에 대한 개개인들의 욕망을 인정하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욕망을 인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사회적 규범을 뛰어 넘을 것을 주장한다. 위의 예들의 경우, 돈과 권력에의 욕망을 감추려고 노력하려는 사회적 규범을 뛰어 넘으라는 것이다. 즉, 저자는 ‘색’과 ‘계’ 중에 ‘색’을 추구하고 ‘계’를 뛰어 넘거나 그러지 못하는 경우 그 경계선이라도 넓힐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욕망의 인정이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규범을 뛰어 넘어 욕망을 인정하는 일은 이렇게 개인의 차원에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전체적인 규범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규범을 확장시키고 변화시킬 때에 비로소 사람들은 욕망을 쉽게 인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적 욕망에의 추구를 예로 들어보았을 때, 저자의 주장에 따라 개인적으로 성적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뛰어 넘고, 있는 그대로의 욕망을 추구한다면 일시적으로 사람들 개개인은 성적 욕망을 인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개인들이 사회적 관계 속으로 나아갔을 때는 서로 욕망을 인정했다는 점이 소통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다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게 된다. 욕망이 다시 은근해 지는 순간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두 욕망을 쉽게 인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인 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적 욕망을 인정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규범의 총체적 변화가 필요하다.

한편,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과 권력에 관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적인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다. 각 개인들이 자신들의 그러한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타인의 존재는 고려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타인에게 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적 차원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인정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를 추구하게 될 가능성을 함축하게 된다. 이는 이미 개인주의가 많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의 “완전한” 인정은 꺼려져야 할 필요도 있다.

결론적으로 욕망을 인정하는 일은 여러모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사람들은 개인의 욕망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의 욕망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정책들에 반영되기 마련이고, 사회의 변화는 개인들이 움직임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욕망을 인정하는 개인들의 변화는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대 사회는 가치의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추구되는 시대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통한 욕망의 인정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많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점들 때문에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욕망을 억누르는 보수성을 없애고, 단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취해 사회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며 사람들이 욕망을 인정해 나간다면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전체가 합심하여 욕망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러한 방법의 확산을 통해 개인은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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