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윤리가 아닌 욕망을 위해

일반부문 3등작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윤리가 아닌 욕망을 위해

헤더 로저스, 『에코의 함정』

오윤명


평소의 난 사회의 일반적 시각을 비뚤게 보는 걸 좋아한다. 그것은 세계적 유행코드가 되어버린 녹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들였던 녹색자본주의에서 녹색은 그저 때깔 좋은 포장지에 불과했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대중들은 여전히 소비를 하면서 자신이 녹색실천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끌렸다. 에코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 같아서 그리고 실제로 서론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소비 자체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이어진 에코의 진실도 흥미로웠다. 외국산 유기농을 사먹는 것은 나 스스로가 정립한 유기농의 원칙인 내 건강을 위한 것과 최대한 가까운 지역의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을 위반되는 행위였기에 굉장히 꺼려했는데, 실제로는 자연까지 파괴하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까지 파괴하는 줄은 몰랐다. 또한 국내의 농업관련 법보다도 황당하리만치 소농민들에게 불리하고, 대량생산농업에만 집중적으로 혜택을 주는 미국의 법에는 치가 떨렸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바이오디젤의 실태도 유익했고, 이름만 들어보고 정확하게 어떻게 거래되고, 어떤 방식으로 탄소를 상쇄시키는지는 몰랐던 탄소 상쇄권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고,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사람들을 농간하고 사기를 치는 개념인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에겐 이러한 사실들보다도 해결책이 중요했다. 작가가 이 모든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해결책이 특별하길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너졌다. 내가 언제나 그렇듯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해결책들이 다른 곳에서 읽거나 주워들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호해야 인류 전체의 미래가 안전하다. 그러니 다 같이 자연을 보호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하고, 정치 구조도 개혁해야 하고, 또 이것도 해야 하고, 또또 요것도 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해결책에 개인은 없었다. 결국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잘못이고, 이러한 기업들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제정하는 정부의 잘못이고, 이익만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와 자본주의의 잘못이라는 등 구조의 탓만을 하고 앉아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개인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하며 그것을 고치지 않는 사람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며 사람들의 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결국 죄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이를 씻어내기 위해 외국에서 들어온 유기농산물을 사먹었고 바이오디젤이 고비율로 함유된 경유를 구매하고, 심지어는 아무짝에도 도움도 안 되는 탄소 상쇄권을 구매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번엔 이러한 반성은 오히려 자연에 해가 되니 이러이러한 실천들을 하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살아있는 것이 자연에 해를 끼치는 죄를 범하고 있으니 당신에겐 그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해결책은 답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자연보다 내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남보다 내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의를 위해서 나를 완전히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주 극소수다. 그나마 대의를 위해서 나를 조금 희생하는 사람들은 그보단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조금만 불편하면 곧바로 원래의 편안한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이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하질 않는다. 돈만을 추구하며 온갖 파괴를 일삼는 자본가들과 같은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이 꽤나 불편한 모양이다. 나도 옛날엔 나 자신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채식을 결심하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이며, 나한테 이득이 있어야지 내 삶의 방식도 바뀐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채식을 하기로 결심한 건 대학교 4학년 때 『동물의 역습』(마크 롤랜저 저)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다. 그 책에서는 고기를 먹는 나를 통렬히 비판했다. 가축의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나는 무자비한 인간이었고, 가축의 사육에 의해 자연을 손상시키는 나는 환경파괴범이었고, 가축 사육에 따른 식량가격상승을 도운 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굶어 죽인 살인범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난 이후로 나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기를 보면 약간의 구역질이 날 정도가 되었고, 스스로 굳게 다짐하며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단단해보였던 나의 다짐은 얼마 안 가서 깨지게 되었다. 죄책감에 의한 채식은 나의 정신력을 오히려 약하게 만들었던 데다가 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 중에 아무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없자,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 하나 바뀐다고 해서 지금의 현실이 바뀔 거란 생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결국 닭고기를 먹고, 돼지고기를 먹다가 나중에는 완전한 육식인이었던 예전으로 되돌아가버렸다.

그런 내가 지금은 거의 채식인에 가깝게 되어버렸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고기를 먹기 때문인데, 고기를 먹는 양이 채소의 10분의 1도 안 된다. 한 100분의 1도 안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스스로가 놀랍게 생각할 정도로 채식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계기는 단 한 가지, 채식이 피부 건강과 몸 건강에 좋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부터다.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정말로 채식이 내 몸에 좋을까하는 호기심에 시작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피부가 좋아졌다는 말을 듣기 시작하고, 내 스스로가 소화가 전보다 더 잘 되는 것을 느끼면서 채식을 계속하게 되었고, 이제는 야채가 고기만큼이나 가끔은 고기보다 더 맛있게 먹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채식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예전엔 비싸다고 안 사먹던 국내산 유기농 농산물도 조금씩 그 비율을 늘여가고 있는 중이며, 몇몇 농산물들은 아예 직접 농사를 지어가며 먹고 있다. 이 모든 실천의 동기에는 1순위가 나를 위해서요, 2순위는 자연을 위해서,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은 3순위다.

이처럼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난 채식에 성공하게 되었고, 이러한 결과로 인해 나는 자연을 지키는 녹색실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아니, 나는 그래서 더욱 더 에코를 이야기할 땐 ‘나’를 빼놓으면 안 된다고 본다. 오히려 나로 시작해서 에코로 끝나는 것이 진정 에코를 위한 길이다.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것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작가는 알지 못한 것 같지만, 보르네오 섬에 사는 파게 마을의 다야코족 공동체가 혼농임업을 이용해 자연을 지키며 생활한 것도 결국 자연을 위해서는 2순위였고, 자신들을 위해서가 1순위였다. 그들은 숲을 파괴하는 농업을 하면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오던 부족함이 없던 삶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즉, 바꿔 말하면 그들이 혼농임업을 한 이유는 그들 자신들의 삶의 풍요를 죽을 때까지 누리고 싶었던 욕망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후손들 역시 대대로 자신들이 누린 풍요를 그대로 누리길 바라는 욕망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욕망을 모르는 멍청한 서양인들은 다야코족과 같은 원주민들이 숲을 개간하면 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걸 모르는 미개인들로 안다. 정말 멍청한 존재는 진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돈이 아닌 평생의 풍요란 걸 모르는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뒷밤침해주는 사건은 또 있다. 1990년대 말 인도네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도시의 극빈층들 중 상당수가 열대우림에 의존한 삶을 살기 위해 사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은 그 삶이 자연을 위한 삶이라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항상 의식주의 빈곤에 시달리며 내일이 오는 것을 불안해했던 삶보다 항상 의식주가 충족되는 삶을 욕망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작가가 책에서 주장한 것들 중 짚고 널어가야 할 것들에 얘기를 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저자는 대중들이 자원이 무제한이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소비를 했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대중의 소비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것이건 스스로의 의지건 간에 그들이 무분별한 소비를 해온 것은 이것이 자연에 해로울 것이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대중들에게 그들의 소비가 자연을 파괴하는 잘못된 행위이니 그만두라고 소리쳐도 그들의 소비행위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유기농 농산물을 좀 구입한다거나 바이오디젤, 탄소 상쇄권, 환경친화적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약간의 노력을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정말로 자연파괴를 상쇄시키는지의 여부는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죄책감을 더는 것일 테니 말이다. 두 번째로 저자는 사람들이 시장을 맹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계속 언급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며 사람들이 시장을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시장 밖에서 그들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의 욕망을 파악하고 시장 밖이나 안에서 그 욕망들을 채워줄만한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대중들의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 자체를 틀어버리는 것이 에코혁명의 출발점일 것이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방법은 새로운 욕망 충족의 방법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이 자연에도 이로운 것이어야 하며,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자극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떤 욕망을 더욱 자극하고 충족시켜야 할까? 사람마다 각자 욕망하는 것과 그 정도가 다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강력하게 욕망하는 돈과 건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본다. 예로 유기농을 들어보자. 현재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농민들에게는 이런 산업화된 농법이 유기농법보다 더 생산량이 많고, 노동력이 적게 들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기농법을 활용하는 것이 더 생산량을 늘릴 수 있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기존에 해오던 농법보다 더 이득이라고 증거를 보여주며 설득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몸에 더 이상의 농약이 축적되지 않아 건강해질 수 있고, 자신이 먹는 음식 또한 화합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고 설득한다면 농민들은 변할 것이다.

물론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이 제대로 공급되어야 농민들의 소득이 안정적이 되므로 소비자도 설득해야할 것이다. 유통거리를 최소화해서 가격을 줄이고, 유통단계를 1단계나 직거래로 해서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맛과 건강, 가격 등 모든 측면에서 이득이 되는 상품을 제공하면 사람들이 바뀌고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이는 비단 농사와 관련된 욕망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하지만 모두가 자연을 위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서 진짜 녹색물결이 일도록 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우리가 녹색 혁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함께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채식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가 나 하나 채식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였듯이, 정말로 소수의 사람만이 삶의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진 않는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너무나 당연하게도 모든 녹색 관련 이야기들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나왔지만,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하고, 서로 협동해야 하며, 풀뿌리에서부터 일으킨 변화가 전체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사람들은 외친다. 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이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나라는 개인에게 어떠한 이득이 있는지를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왜 사람들이 다함께 시위를 하고,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하는지를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에코를 말할 땐 이상하게도 항상 개인의 이득은 아득히 멀리 있게 느껴지고, 전 인류, 다르게 말하면 타인의 이득으로 보이는 것만을 외쳐댄다. 사실 이건 어려운 게 아니다. 전 인류의 이득 속에서 개개인이 원하는 욕망들이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지를 개인별로 집어내어 각각의 욕망의 주체들에게 던져주면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서 더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 추상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둥의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하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제발 녹색분자들도 말 좀 하자!”고 말하고 싶다. 기업은 자신들의 미래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그들에게 언제, 얼마나, 어디서, 어떻게, 왜 이득이 되는지를 끊임없이 광고한다. 그리고 이에 현혹된 대중들은 끊임없이 기업의 제품을 소비한다. 왜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는가. 아니 왜 못하는가. 그 기업의 제품은 당신의 이런 욕망을 채워줄 지라도 이런 욕망을 채우진 못할 거라고, 오히려 해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보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도 기업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대중들이 자신들의 또 다른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해야지, 백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지구를 위하는 위대한 일이니 동참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대중들의 죄의식을 부추길 생각을 하면 안 될 것이다. 괜히 죄의식을 건드렸다간 책에 소개된 외국산 유기농, 바이오디젤, 탄소상쇄권 등의 잘못된 소비방식에 의해 돈을 욕망하는 이들의 배를 불리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제발 우리도 솔직하게 대중들의 마음에 돌직구를 던져보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