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옳지 않았는가

일반부문 2등작

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옳지 않았는가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류한수진


1.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는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들을 골라 분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졌으며, 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하고 있다. 공부깨나 했다는 교수들마저 마르크스의 몇몇 구절들을, 의미를 왜곡하여 해석한 다음 피상적으로 비판하면서 소위 ‘이념을 넘어선 지성’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시대에, 이글턴의 날카롭고 위트있는 반박은 메마른 여름날 청량음료처럼 시원하고 달게 느껴졌다.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가 경직된 결정론도, 모든 것을 경제로 설명하는 조악한 환원론도, 완벽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론도, 인간을 물질의 꼭두각시로 취급하는 싸구려 유물론도 아니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남성 블루칼라 노동자만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지도 않고, 불필요한 폭력을 즐겨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권력을 구축하려 하거나 여성․민족․생태 등의 이슈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론적으로도 그러하고, 역사적으로도 그러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진보적 사회 운동에 광범위하고 깊게 영향을 끼치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살아 있는 이념이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야기하는 마르크스는 그들이 만들어낸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이 말하는 ‘마르크스의 세계관’은 사실 그들 자신의 세계관의 한 변형일 따름이고, 그래서 대개의 경우 마르크스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야 온당하다. 가령 마르크스주의가 인간을 경제적 구조의 꼭두각시로 환원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사회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맺고 있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간과하고, 경제와 경제 외 영역을 기계적으로 분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야말로 경제가 인간의 사회적 실천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라 독자적 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인간 외적 구조인 양 착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경제를 인간의 실천으로 바꿀 수 없는 영역으로 밀어내버린다. 경제가 삶에서 차지하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변인에 휘둘리는 수동적 존재로 격하하는 결정론이다. 마르크스는 기실 당대의 누구보다도 이런 관점을 철저하게 극복해낸 학자였다.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읽는다면, 운동은 얼마나 많은 불합리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컨셉이나 제목이 좀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이 몹시 안타깝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그러나 이런 즐거운 상상은 늘 바로 다음 순간 제동이 걸리곤 했다. 그렇다한들 크게 달라질 게 없으리란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이글턴이 아무리 글을 잘 써봐야 피상적인 반박에 대한 재반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 한 권 읽는다고 오랜 편견에서 금방 벗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니다. 이 책은 웬만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보다 더 내용이 풍부하고 탄탄하며, 잘 쓴 책은 그 한 권만으로도 관점을 뒤흔든다. 그런데 왜?

‘그래, 그렇다치자. 그래도 현실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는 전망이 안 보여.’ 상상 속에서, 내가 건네준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를 읽은 지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실제로 여러 번 들어온 말이기도 했다. 이글턴이 명쾌하고 편리한 언어들을 많이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논리 가운데 많은 부분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고 이야기해 왔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으로 변호해내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유효성을 설득해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안 되잖아’라는 말 앞에서 난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아무리 적실한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실천까지 적실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2.

내가 최초로 집회에 나가본 것은 2008년 촛불 정국 때였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 도로를 점거하는 광경을 보고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고, 소고기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4대강으로 언론으로 정권 퇴진으로 나아가는 구호들을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학교에 돌아와 교실에 앉아있어도 여운이 마음에서 가시질 않아 자꾸만 다시 거리로 나가보고 싶었다. 나는 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낼 거라고 생각했다. 운동이 불어나고 불어나면서 이들의 요구도 점점 나아갈 것이고, 마침내 소고기 문제는 잊혀질 만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감격이 무색하게, 2008년 촛불은 허무한 해프닝으로 끝나 버렸다.

2008년의 나는 스스로를 ‘시민’들과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고 생각했다. 아무 피해도 입히지 않고 아무 불편도 끼치지 않고 그냥 모였다 흩어지는 게 도대체 무슨 압력이 되겠는가? 여론과 양심에 흔들릴 정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사태를 만들지 않갔겠지. 2012년의 나는 스스로를 좌파 운동권으로 규정하고, 우리가 너무 무능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좌파들은 처음 보는 시위의 양상 앞에 그야말로 넋을 놓고 있었다. (어설프게 통제를 시도했던 다함께는 시민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무시당했다.) 소고기 문제가 봉기할 이유가 될까? 누구도 조직하지 않은, 지도부 없는 봉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촛불의 의제는 전통적 좌파운동의 의제가 아니었고, 촛불의 주체들은 전통적 좌파운동의 주체들이 아니었다. 이 의제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 운동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잘 하면 되지.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들이 무기를 들고 공장을 점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혁명은 사회 전체의 통제권을 억압계급에게서 피억압계급에게로 이전하는 과정이다. 생산 수단은 그 핵심 고리다.

촛불은 생활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한 대중의 반발이었다. 광우병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때도 미국산 소고기는 잘 들어와 팔리고 있었다. 문제는 국내 자본과 정권의 이익을 위해 정권이 대중의 안전을(실제 정도가 크든 작든 간에) 일방적으로 희생시켰다는 데 있었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대조시키며 노무현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던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이것은 이윤을 지상의 목적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노무현이 좀더 세련되었고 이명박이 좀더 조야했을 뿐이다. 피억압자들의 복리를 희생시켜 자신들의 이윤을 증대시킬 권력이 있는 한, 억압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한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이윤이 아닌 대중의 복리를 목적으로 대중 자신이 통제하는 정치 체제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는 안전에 대한 통제권 문제를 계급투쟁의 범주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좌파들은 이 의제가 소부르주아적이라는 의혹에 갇혀, 그것을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소고기 이슈는 대중에게 권력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지 못하고 반MB 프레임에 무력하게 흡수되었고, 권력투쟁이라는 맥락을 회피한 운동은 비폭력이라는 교리에 자기 스스로 손발을 묶어 고사하고 말았다.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2008년 촛불의 말로 덕분에 나는 ‘데모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훈시를 한층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교육의 효과는 그리스를 며칠 동안 일시정지시켜버린 총파업 앞에서 너무 쉽게 날아가 버렸고 나는 입학한 지 일 년 반만에 데모 일정을 수업이나 식사 약속마냥 일상적으로 다이어리에 적어넣는 골수 운동권이 되고 말았다. 나는 씻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대부분을 정치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선거가 화두가 되면서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전교에서 가장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르크스의 계급론과 혁명 이론에 대해 제법 주절거릴 수 있었고 어느 회사 노동자들이 어디서 농성을 하고 있는지는 알았어도 어느 후보가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 뭘 하겠다고 하는지, 사람들이 왜 그를 지지하는지는 전혀 몰랐고 조직은 그런 나의 무지를 별로 꾸짖지 않았다. 선거에 대해 조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당은 부르주아 온건파이며, 민노당은 개량주의 정당이다’라는 것 정도였다. 선거를 비판하는 조직신문을 아무리 뜯어봐도 구체적 기조나 공약에 대한 분석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마르크스 자신이 선거에 대해 이렇게 성의가 없는 것을 칭찬했을 리는 없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국가기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했지 그것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대중을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부르주아적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공산당은 필요한 경우에 선거에 상당한 역량을 투여했고, 선거 결과 많은 의석을 확보한 시기도 있었다. 대중의 관심이 선거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성실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하다못해 민주당이 부르주아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공부하고 논쟁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조직은 소위 진보적 의회정당들에 대해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 외의 어떤 비판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선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대응은 많은 부분 그러했다.

내 조직생활은 내가 전혀 예기치 못한 이유로, 예기치 못한 시기에 막을 내렸다. 나는 이별을 통고하면서 줄담배를 피운 것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조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것을 다분히 폭력적으로 반려했다는 이유로 학내 페미니스트들에게 2차 가해자로 몰려 활동을 접어야 했다. 조직은 처음에는 ‘담배를 피운 것은 성폭력이 아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180도 전향하여 ‘성폭력은 아니지만 폭력은 맞다. 가해 사실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그 바람에 나는 사건 발생 후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피해자의 치유’를 빌미로 온갖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언뜻 상반되어 보이는 초기와 후기의 대응은 ‘여성운동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조직은 초기에 확장된 반성폭력 개념과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 개념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후기에는 그 해석을 ‘여성주의자’들에게 맡겨버렸다. 양자 모두 여성 문제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실천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당시 가족 제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자들이었으며, 여성 억압 역시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크스주의 운동은 가장 급진적인 여성주의적 담론과 실천들과 결합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실현되었던 소비에트 러시아의 여성 정책은 당대는 물론 지금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선진적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당시 페미니즘의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반영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운동적 해답은 언제나 스스로의 관점에 입각하여 능동적으로 내렸다.

내가 보아온 조직의 페미니즘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계급환원론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 일쑤였으며, 많은 활동가들이 여성운동에 대한 존중을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한 에티켓으로 취급할 뿐 뿐 진지한 정치적 목표로 사고하지 않고 있었다. 꼭 지켜야 하는 규범을 설정하고 해석하는 과제는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전담하였고, 다른 활동가들은 그 선을 지키고 그 이상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굴었다. 마르크스주의 활동가들은 페미니즘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3.

마르크스는 옳았으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옳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론적․역사적으로 얼마나 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든, 그 증명은 내가 겪은 한국 사회의 마르크스주의 운동에서는 실현되지 않은 추상에 불과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도 환원론도 아니며 지극히 입체적이고 유연한 이론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실천태는 결정론적이고 환원론적이며 단선적이고 경직되어 있기 일쑤였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마르크스주의는 많은 경우에 이론적으로만 타당했다.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이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은 테리 이글턴의 능숙한 반박이 불어넣어주는 자신감을 도로 꺾어놓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는 공허감과 괴리감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실천되지 않았기에 유효할 수 없었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실천된다면 유효하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단순한 말장난은 아니다. 2008년 처음으로 시청광장에 나가본 이후로 나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무수한 문제들을 보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시정해나가는 모습들 또한 보았다. 2011년 서울대 학생들이 법인화 날치기 추진에 반대하며 본부를 점거했을 때, 조직은 2008년보다 훨씬 기민하게 대중의 반발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포착하고, 학교에 대한 학생의 통제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것을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 끌어올렸다. 날치기에 대한 반발은 소시민적이고 초벌적이라고 비하한 것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을 주장하며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던 이들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조직은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세우고, 현장 투쟁에서 제기되는 요구들을 선거의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성운동이나 소수자운동 등 계급 문제 이외의 이슈들을 재평가하고, 조직 기풍에 대한 내부토론을 진행하고, 능동적으로 여성운동을 전개하는 등의 노력들이 이어지면서 다른 급진적인 운동들을 대하는 분위기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통념과 달리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수정이 아니다. 소박하게 말하면 이것은 적용의 방식에 대한 문제이며, 과감하게 말하면 이것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타당성을 현실에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마르크스를 지나치게 절대화하고 있다고 비판받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운동의 핵심적인 과제는 기존의 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 선배들의 유산을 우선 제대로 이어받는 데에,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는 것보다 우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옳았는데 마르크스주의자가 옳지 않다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마르크스는 옳았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옳다면, 마르크스주의자는 옳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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