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흘려버리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는 인지심리학적 의의와 사회학적 한계

일반부문 예선통과작

“생각 흘려버리기”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는 인지심리학적 의의와 사회학적 한계

혜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지훈


I. 서론

2012년 현재 한국 출판계를 관통하는 테마 중 하나는 단연 ‘힐링(Healing)'일 것이다. 혜민 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연장선에서 평가해야 옳다. 힐링이 사회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현대인이 극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 피로감, 박탈감이 그만큼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사회는 실제로 경쟁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높은 이혼율과 자살률, 비정규직으로 인한 고용 불안, 양극화, 청년 실업, 낮은 출산율 등과 같은 만성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러한 사회 구조를 전제했을 때, 혜민 스님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 즉 “생각 흘려버리기”가 갖는 의의와 한계는 다각적으로 조명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혜민 스님의 에세이가 내포하는 인지심리학적 요소를 추출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정당화할 여지를 지적하여, 사회학의 관점에서 “생각 흘려버리기”의 잠재적 위험성을 논해볼 것이다.

II. 첫 번째 본론: “생각 흘려버리기”의 의미와 인지심리학적 함의

혜민 스님의 저서는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종교를 초월하여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 이유는 바로, “생각 흘려버리기”라는 심리학적 도구를 에세이 전반에 걸쳐서 다루기 때문이다. “생각 흘려버리기”란 자신이 갖고 있는 상념, 생각을 붙들고 있는 행위를 중단하고 그것들을 내려놓는 행위로서, 자연 발생적인 생각들로부터 개인을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는 이로움을 지닌다. 혜민 스님에 따르면, 개개인은 자신의 관성에 의해서 발생한 상념들에 사로잡혀 현재를 직시하는 능력을 상실하기 쉽다. 과거에 대한 기억,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현재 이 순간, 이 공간에 존재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서 자연이 물에 비추어진 풍경을 그린 삽화가 등장한다. 이는 “세상은 곧 나의 생각의 투영이다”라는 혜민 스님의 주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한정된 세상을 인식하고, 이를 인식함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특수한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그 렌즈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쉽게 영향을 받는 틀에 불과하다. 따라서 생각하는 주체가 자신임을 자각하고, 붙잡고 있던 생각을 내려놓으면 피로하던 세상 또한 달라진다. 생각이 바뀌면 우리 주변의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을 수용한다는 전제 하에 혜민 스님은 휴식, 관계, 미래, 인생, 사랑, 수행, 열정, 종교 등의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던 생각들을 우리가 흘려버릴 수 있음을 설파한다. 이는 마치 뜨거운 쇳덩이를 굳이 붙잡고 있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이 해야 할 것은 단순히 그 쇳덩이를 내려놓는 것에 있다. 자연 발생적인 생각으로부터 해방되어 생각의 주체성을 스스로가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멈추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를 볼 수가 있다.

사실, 이러한 인식론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제기되어 왔으며 가치 있는 논의이다. “감정의 파동”과 같이 종교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나면, 혜민 스님의 주장은 현대 인지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초기 심리학자들은 원래 인지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 이외의 대상을 다루는 것은 그들에게 사회과학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지 혁명’으로 인해 현재 추세는 바뀌어 있다. ‘인지 혁명’이란 주관 의식에 관한 연구를 포기하고 객관 행동만 연구하는 행동주의 노선에 반대한 심리학 개혁 운동을 가리킨다(송송라오한, 『심리학 산책』, 시그마북스, 2010, p. 258.). 인간이 경험 세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하여 행동하는지 개인의 주관성, 주체성에 주목한 것이다. 인지 과정을 통해 개인은 어떠한 정보가 더욱 의미가 있으며 어떠한 정보는 기각할 만한지 선별적으로 의미 부여를 한다. 따라서 세상을 구성하는 데에 개인의 사고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혜민 스님의 “생각 흘려버리기” 방법론은 개인이 생각의 주체성을 회복하여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세상을 수용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객관적으로 불행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불행한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이며 성공일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의 관성에 의해 발생하는 생각들을 수동적으로 경험했던 현대인들에게 혜민 스님의 가르침은 큰 위로가 된다. 생각으로부터 해방될 때 개인은 자신을 위해 어떠한 생각을 할지 비로소 취사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묶음이 바로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가끔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찾는 것, 고속버스를 타느라 놓쳐 왔던 주변 풍경을 발견하는 것, 모두 혜민 스님의 가르침이 가능케 하는 상황들이다.

III. 두 번째 본론: “생각 흘려버리기”의 사회학적 한계

그러나 혜민 스님의 가르침이, 개인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참고 사항 이상으로 해석되어 복수의 개인에게 적용되는 윤리로 응용될 때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주의적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당위성, 지속성을 부여할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와 유사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제기한 바가 있다.

“종교는 인간소외의 근원이다. ... (중략) 종교는 고통 받는 피조물이 내쉬는 한숨이며, 가슴 없는 세계의 영혼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정신이 머물지 못하는 상태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칼 마르크스(K. Marx), 『헤겔 법철학 비판』(서문), 1844.)

혜민 스님이 “생각 흘려버리기”를 설파하면서 생략한 전제는 바로, 세상은 개인이 인식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불행한 상황으로부터 고통 받는 사람이라면,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처지에 놓였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반대로, 풍족한 삶 속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보상으로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러한 논증은 개인이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갖는 데에는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순간, 혜민 스님의 가르침은 독이 된다. 이 가르침 하에서는, 모든 불행의 책임은 개인의 생각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를 탓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불행한 현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현재 처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기인한다. “세상은 나의 마음의 투영이기 때문에” 세상의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비슷하게 생각의 힘을 다루는 저서로서 베스트셀러인 『시크릿(The Secret)』이 있다. 이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찬양하고 축복하면, 불화와 부정이 해소되고 가장 고차원적인 주파수인 사랑과 조화를 이루게 되리라.” (론다 번, 『시크릿』, 살림Biz, 2007, p. 183.)

이와 같이 생각의 인지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개인의 불행을 일차적으로 개인의 책임에 귀속시킨다는 것이다. 관계, 미래 등의 주제를 다룰 때, 혜민 스님은 “나를 위해서” 억울해도 참아야 한다고 서술한다. 또한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본인한테 이로우며, 긍정적인 사고는 곧 긍정적인 결과로 치환된다는 서술이 이어진다.

“마치 내 꿈이 벌써 이루어진 것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세요. 그러면서 열심히 준비하세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쌤앤파커스, 2012. p. 103.)

이러한 가르침이 현재 비정규직의 처지로서 고용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오히려 가진 자들이 더 가진 이유는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아닐까? 불합리한 사회 구조 하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자기기만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보다 논의를 확장하면, 서울역에서 쫓겨나 잘 곳이 없어서 추위에 떠는 노숙자들에게 현재에 집중하고 행복을 찾으라고 권할 수는 없다. 또한 절대적 빈곤의 상황까지 몰고 간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한 채 노숙자 개인의 문제로 상황을 환원하는 것에도 비약이 존재한다. 혜민 스님은 본문에서 독자들에게 복권을 사기보다는 직접적인 만족감을 주는 꽃 한 송이를 사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애초에 복권으로 상징되는 물질만능주의를 개인이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부재하는 것인가? 사회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이다.

IV. 세 번째 본론: “생각 흘려버리기”의 사회학적 한계에 대한 보완

생각을 흘려버림으로써 개인이 겪는 경험 세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은 분명 사회학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민 스님의 가르침이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너무 많은 선택이 사람을 오히려 불행하게 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귀하다.”(위의 책, p. 44.) 등의 언급은 시장경제체제에서 초래되는 인간소외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사회 구조 하에서 인간이 인간이기에 존중되던 가치들은 상품이 주는 수치적 효용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에 불교적 가르침도 충분히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혜민 스님이 사회 비판적인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한계로서 지적되었지만, 그러한 한계 못지않게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퇴색된 가치들을 재조명하는 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도 사실이다. 자아 경계를 넘어선 무조건적인 사랑, 자신의 이해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조화를 중시하는 조직 경영 태도,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회복되는 자아 효능감 등은 현대 사회에서 간과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불교라는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들이다. 나아가, 스님은 어떠한 사람의 정체성을 논할 때 그가 속한 그룹보다는 그가 하고 있는 일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 맞는 형태로 자본주의가 정착하면서 발생한, 소속을 통해 개인을 서열화하는 문화를 적확하게 비판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단편적인 언급이나 문장에 그친다는 점이 여전히 짙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V. 결론

결론적으로, 혜민 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핵심 주제인 “생각 흘려버리기”는 자연 발생적인 부정적인 생각에 대항하여 개인의 주체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인지심리학적인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사회적 맥락,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책임에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사회학적인 한계를 지닌다. 경험 세계가 개인의 생각으로 구성되고 개인이 어떠한 렌즈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인식론은 순수한 자기이해 차원에서 받아들일 만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확대 해석은 논리적 비약을 함축한다. 가진 자는 현재 자신이 누리는 것에 대해 전적인 정당성을 부여받고, 못 가진 자는 현재 자신이 불행하다고 치부하는 처지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 노력 외에도 그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개인차가 유발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 하에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고치는 것이 경험 세계를 실제로 개선시킨다는 가르침은 공허한 희망만을 부추길 따름이다. 그러나 수용의 범위를 개인과 사회로 나눴을 때, 인지심리학과 사회학은 충분히 상충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혜민 스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비판 의식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독자의 태도일 것이라 생각된다.

VI. 참고 문헌 (단행본, 가나다 순)

  • 론다 번, 『시크릿』, 살림Biz, 2007
  • 송송라오한, 『심리학 산책』, 시그마북스, 2010
  • 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서문), 1844
  • 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쌤앤파커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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