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고등부_귀이빨대칭이상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광신고 차필립
이 책을 우연히 ‘그날이 오면’을 지나치면서 보았을 때, 왠지 조금은 길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름 때문인지 첫 인상은 그다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과 책을 덮는 순간, 나는 누군가 뒤통수를 한 대 “쾅!” 치는 느낌이였다.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환경파괴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많은 정신적 성숙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환경시계가 9시 35분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가고 있다! 지구의 허파가 병들어간다!
등등 수많은 지구환경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가 하루에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뉴스와 신문으로 도배를 하기까지 한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그래, 지구가 위험 하겠구나”라고 생각한 뒤, 까마귀 고기라도 먹은 듯이 바로 덥다며 에어컨을 틀며 냉장고를 뒤적인다. 이처럼 우리의 사고방식 속의 환경보존이란 것은 어느 곳엔가 자리 잡혀져 있기는 하지만 결코 우리의 행동과 삶에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즉, 겉절이의 상식, 이면의 상식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그것들을, 성장만을 바라온 무분별한 환경파괴의 결과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겪고 있다. 가까운 예로써, 얼마 전에 엄정난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마을 하나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 산사태가 천재가 아닌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한 인재임을 증명해주는 증거가 수두룩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모든 환경전문가와 심지어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계속 진행하여 환경과 국토를 파괴하는, 말 그대로 경제적 성장만을 위한 발전인 4대강 살리기 등 우리 주변에서는 실시간으로 “환경파괴”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제대로 “인식” 하지 못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인식”이란 무엇이고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따지고 보자면 나도 이 책을 보기 전까지만 하여도 제대로 된 환경파괴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 하였으며 환경파괴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식”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 내에서도 나왔지만 비유적인 표현을 통하자면 우리는 타이타닉 현실주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모두가 빙산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빙산이 아직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타이타닉 호의 엔진만을 더욱 세차게 가동시킬 뿐이다. 타이타닉 호 속의 승객들, 즉 우리는 왜 끔찍한 미래를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타이타닉호의 엔진을 멈추지 않는가? 나는 여기서 인식의 중요성을 말함과 더불어 “보는 것은 무엇이 눈에 들어오는 것 이상이다”라는 핸슨(Hanson)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어렴풋이 눈에는 보일지는 몰라도 빙산으로 표현되어 있는 환경파괴와 그 결과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제대로 된 인식은 무엇인가? 만을 설명하기보다는(제대로 된) 인식에 따른 행위와 (제대로 된) 인식을 위한 과정, (제대로 된) 인식의 보편화와 문제점 등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만약 제대로 된 인식을 한다면 그 결과는 간단하다. 우리는 곧바로 엔진을 끄고 최대한 빙산에서 멀어지기 위하여 노력을 할 것이다. 즉, 환경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보일 것이다. (이하, 제대로 된 인식=인식으로 표현) 다음으로 인식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핸슨의 말과 같이 인식이란 단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 더 나아가 기존의 생각과 사고방식, 배경지식 등등과 결합되어 그 사물 혹은 사건 등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인식의 과정을 위해서는 올바른 배경지식 습득 맞 올바른 생각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 전에 나는 인식을 개인적 차원에서의 인식과 사회적 차원의 인식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방법으로써는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며 생각하는 방법 등이 있겠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차원의 인식인데 이것이 바로 주류의 상식과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인식의 보편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데여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올바른 인식을 위한 배경지식으로써의 경험이다. 어린 아이가 뜨거운 주전자를 보고서 뜨겁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데여보지 않고서는 계속하여 그 주전자를 향해 손을 내민다. 하지만 아쉽게도 데인 아이의 손을 치료할 수는 있지만 데여버린 지구의 환경은 되돌릴 수 없다. 즉 사회적 차원의 인식의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방법, 인식의 보편화의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시급히 그에 대한 연 구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환경보존을 위한 올바른 인식의 보편화의 과정을 혹자는 인식과 사고방식의 획일화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식이란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의 존속을 위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더 나아가 주류의 상식이 된다면 누구도 그러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며 인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즉 상식이 올바르게 되기 전의 과정에는 올바른 인식의 과정이 있어야 하며 올바른 상식이 주류의 상식이 되기 위한 과정의 전에는 올바른 인식의 보편화의 과정이 있어야 하며 그렇기에 우리는 인식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환경에 대하여 연관시킨 발전에 관한 이야기는 의외로 내가 평소에 생각해오던 부분과 상당히 일지하여 나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몇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인류가 어느 정도 문명이란 것을 갖추고 우리정도로 치자면 삼국시대나 조선시대 초쯤에는 특별히 기근이 들거나 전쟁이 없거나 왕이 미치지 않은 이상은 굶어죽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가까운 예로는 불과 현재 아마존에 살고 있는 부족들도 불과 몇십년 전만 하여도 전혀 생계의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발전’이란 것을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났다. 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말할 것도 없다. 예전의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자동자로 대표되는 교통의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에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 환경오염 등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편안함을 위한 희생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별거 아니게 생각하였던 ‘부가적’인 희생이란 것이 우리가 해결하여야할 ‘주’의 문제가 되었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원자력 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거의 똑같이 말한다. 희생은 있다고. 다만 줄이려 노력한다고. 하지만 도저히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지난 시간 동안 배웠고 겪고 있지 않는가? 그런 식으로라면 발전은 편리함과 희생을 가장한 악마와의 거래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목숨을 주는 대신 잠시 동안의 쾌락을 안겨주는 식의 말이다. 발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될 발전의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반드시 환경보존과 인류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 전 인류공동체적인 규모에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가치란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인문학적인 방법으로 접근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그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될 발전’에 대한 논의 혹은 검토가 이루어진 뒤 우리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은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공부(혹은 일)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예쁘게 다이어리에 적어놓아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그저 세우고 나서 뿌듯해하는 장식용이거나 짐만 될 뿐이다. 조금 전의 검토와 계획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지만 현대 사회에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것이라 하여도 힘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실행되며 아무리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라 하여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힘이 없다면 실행되지 않는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마음 모아서…” 식의 실행은, 미안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힘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며 그것이 곧 인류가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지지와 동의가 있어야지 실행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을 움직이는 힘의 주체는 언제까지나 위라는 사실을 간과하면은 안 되는 것이다.
제로성장과 대항발전,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여 주는 훌륭한 지침서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실질적인 제로성장과 대항발전의 실행을 위해서는 힘이 있는 자들의 판단과 동의가 시급하다. 경제적인 논리로 보자면 그들은 절대 모두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먼저 앞장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바로 ‘교육’이라고 생각 한다. 올바른 교육을 통한 사고방식의 성숙을 겪은 사람은 개인의 이익만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과 화합, 평화를 중요시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소유주의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타이타닉호의 방향을 바꾸고 엔진을 멈주려 하는데 최소한 혼자서 구명보트나 찾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힘을 더 갖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에 있어서 형식적 허례의식이 아닌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이러한 환경보존과 인류의 미래, 그리고 그를 위한 방법 등에 관한 교육의 빈도를 늘리고 질도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비관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인류는 그 동안 많이 환경파괴에 따른 후폭풍이라는 뜨거운 물에 데였을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사회적 인식 변화의 기본이 되는 경험 중의 ‘데임’ 말이다. 그렇게 수도 없이 데이다 보니 결국, 지금은 무감각해져버려 고장이 나버린 타이타닉 호가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배는 고장 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배를 되돌릴 방법을 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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