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일반부_본선진출작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김효진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은 신비로운 천연자원들을 품고 있는 ‘낙원’이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판도라가 지구의 아프리카를 닮았다고 했다. 대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는 그들의 문화가 판도라 나비족의 문화와 흡사한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지구는 에너지 고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한다. 그것은 지구와 판도라의 전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판도라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어쩌면 이것은 영화 속에서 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저 재미로 볼 수만은 없었던 터라,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아픈 ‘경고’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오늘날 이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선내방송에서 몇 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엔진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경제성장’을 외치며 그것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데, 누군가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잔인한 사회의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그 말에 당황하여 더욱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이들에 의해 설 곳을 잃을지도 모른다. 누가 감히 ‘정지’를 외칠 것인가, 눈치만 보던 사람들도 편한 ‘전진’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전속력으로 달리는 타이타닉호에서는 판에 박은 일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타이타닉 현실주의’라는 것이다.
몇 주 전, 베트남으로 생태기행을 갔었다. 그곳에서 가장 경제가 발달한 호치민시는, 내가 상상해왔던 베트남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루며 선진국 흉내를 내는 듯 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낀도’라는 베트남 전통 빵집 옆에 우리나라 브랜드의 제과점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말로는, 그 브랜드가 들어오기 전까지 ‘낀도’가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이제는 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브랜드의 빵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가격 면에서 크게 차이나지 않았고 ‘낀도’ 매장에 비하면 인테리어가 매우 고급스럽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또 ‘낀도’ 빵과 비교했을 때 그 브랜드의 빵은 정교하게 모양을 내고 있었다. 한국 사람인 나는 그곳에서 그 브랜드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 베트남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러 간 것이지 한국 빵을 먹으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맛있는 빵집’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낀도’가 아닌 그 브랜드를 가리킨다. 전통을 지키기 보다는 발전된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들도 발전하고 싶어 하며 ‘전진’하는 타이타닉 현실주의에 빠진 것이다. ‘낀도’의 운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생각했다. ‘눈부신 경제성장 아래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경제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발전된 중심도시에서 조금 벗어나면 베트남의 대자연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그곳에서 베트남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베트남만의 문화 말이다. 우리나라도 한국만의 향기가 남아있을지 덜컥 겁이 났다. 아스팔트 시멘트 냄새가 아닌, 우리 고유의 향기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그것부터 지키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자연이 남아있다면 더 발전할 수 있는가
워싱턴 디씨에 숲이 있다는 이유로 “미국은 아직도 발전 가능하다”라고 누군가가 저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어딘가에 있으면 발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자연을 어떻게든 인간의 방식대로 바꾸려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나를 소름 돋게 했다.
도시 생활에 지쳐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가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매연 속에 찌들어 있다가 천상에 가까운 자연의 신선함과 만났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초록의 자연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발전’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정부가 주장하는 장밋빛 미래, 4대강 사업. 그것이 정말 장밋빛이 될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을 시작하며 정부가 내 건 계획은 이런 것이다.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생산 유발 효과. 그런데 정작 이 사업으로 혜택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다고 한다. 강바닥 준설 작업으로 노동자들이 일당 45만원을 받을 때, 건설사들이 챙긴 부당 이득은 7000억 가량.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억 원을 들여 백양리역 주변에 만드는 문인광장과 수변생태공원은 급물살에 휩쓸려, 심어놓은 나무와 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얼마 전 신문에서 생태환경이 변해버린 사진들을 보면서 땅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장밋빛이 아니라 재앙의 시초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실제로 그것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많은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빈곤은 재생산 된다.
경제발전으로 빈곤은 해소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함께 부자가 되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불가능해 보인다. 경제나 기술의 발전에 따라 빈곤은 오히려 재생산된다는 내용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명백히 보여주듯 “파이가 커지면 조각도 커진다.”고 하는 거짓은 이제 그만두고 제로성장을 꿈꿀 때라고 생각된다. 즉 저자의 말처럼 성장이 아니라 정의에 바탕을 둔 분배에서 해결을 찾자는 것이다. 풍요로운 나라의 풍요로움이 이른바 가난한 나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지 않고 산다면 ‘풍요’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막연히 생각했던 경제와 풍요에 대한 관계가 그 속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고 있는 세대라면 반드시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느꼈다.
열심히 미래의 과제를 생각하며 읽던 책을 이제 덮는다. 진정한 풍요 속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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